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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02화 (102/241)

102화

“무슨 얘기들을 하세요?”

둘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강현이 뒤돌아보니 짙은 초록빛 비단 드레스를 입은 갈색 머리의 미녀가 서있었다. 몸매는 무척이나 풍만했지만 허리와 복부가 잘록해 섹시미를 풍겼다. 그러나 얼굴은 요염하지 않고 무척이나 자애로운 인상을 주었는데 연상의 느낌이 직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오! 왔니? 강 박사. 여기는 내 딸인 마리아라고 하네. 마리아, 이쪽은 바로 그 유명한 강 박사란다.”

헨델 사장은 딸을 강현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신 분이라면서요?”

“안녕하세요.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군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라.. 특정 분야를 짚으면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지만 자신의 입으로 그렇다고 말하려니 좀 민망했다.

“그런데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나누고 계셨어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니? 절대 그렇지 않다. 헨델 사장이 일방적으로 즐거워하는 대화였다. 거기에 강현은 솔직하게 대답 했을 뿐이다. 헨델 사장이 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강현에게는 웃음이 터질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껄껄. 강 박사의 입담이 아주 재밌더구나.”

“그냥 저냥,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게 반박하는 강현을 마리아는 아주 신기하게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손에 꼽았다. 특히 이런 정치적인 사교회장에서 자신의 아버지는 모든 사람들이 우호를 맺고 싶은 이였기에 강현처럼 평이하게 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제 아버지께서 카길의 사장이라는 건 아세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파셀 의원이 물었던 질문이라 또 입을 열기 귀찮았다. 그건 매우 무례한 일이었지만 강현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자리 이후에는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은 연구실로 돌아갈 것이고 이들은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삶을 누릴 것이다. 그 관계는 비유하면 지상 동물과 해상 동물과 같았다. 잠시 물가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서로 살아가는 환경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강현의 내심과는 다르게 마리아는 이것 저것 물으면서 그를 귀찮게 했다. 엄청 돈 많은 젊은 갑부 천재에 대한 호기심이 든 그녀는 강현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는데 그녀가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은 것이 그의 불행이었다.

“석유 제조 기술은 그냥 이대로 개량 안하고 놔둘 거에요?”

“반감기 가속 장치의 후속작은 언제 나와요?”

“HJ 세포를 이용해 신약 개발을 할 생각은 없으세요?”

“각국의 IAPP 방탄복으로 엄청나게 돈을 버셨다고 하는데 그 돈 전부다 연구비에 쓰실건가요?”

여러 질문에 강현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연구실에서 그런 질문을 들었다면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인상을 찌부렸겠지만 이곳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교회장이다. 그리고 강현은 여기에 파셀 의원과의 거래를 성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 자기 희생 정신으로 온 것이다.

그 때문에 강현의 내면은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며 도 닦는 상태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내면에 흐르는 감정을 흘러 넘기며 귀찮은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뭐 그래봤자 ‘아니요.’ ‘아직 생각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따위 이상으로 대답의 수준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리아의 궁금증을 채워주기에는 무척이나 모자랐고 질문은 계속되었다. 강현은 계속 대답을 하다가 문득 왜 이 아가씨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지 영문을 몰랐다. 원래는 카길의 사장인 헨델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강현이 고개를 돌려 헨델을 바라보자 헨델은 즐겁게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응? 왜?’

헨델의 표정은 딱 그 의미였다. 그는 자신의 딸의 질문 공세에 곤란해하는(사실은 귀찮아 하는) 강현의 모습이 무척이나 재미가 있었다.

그런 곤란한 상황의 강현을 도운 이는 어느새 만날 사람들을 대충 다 만나고 강현과 헨델 사이의 분위기가 어떤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파셀 의원이었다.

“하하, 이거 마리아 양 아닌가?”

“파셀 의원님 안녕하셨어요?”

“그러고보니 선남선녀의 즐거운 대화에 내가 초를 쳤구만.”

“그럴리가요.”

강현은 한숨 놓았다는 듯이 파셀 의원의 편을 들었지만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고 파셀 의원 쪽을 슬쩍 흘겨보았다. 그녀는 강현이 적잖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마리아의 그런 모습에 파셀 의원은 뭔가 또 자신이 실수했구나라고 생각하고는 헨델 사장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하하, 헨델 사장님. 마침 방금전에 록펠러 사장님을 만났는데 가보시겠습니까?”

“물론이죠.”

헨델 사장이 흔쾌히 말했다. 그의 태도에 파셀 의원은 헨델 사장이 강현과 마리아 사이의 썸씽을 기대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남녀간의 일을 할 수 없다지만 강현은 가문으로 끌어들인다면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자본가로서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마리아와 단 둘이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록팰러 사장님이요? 마침 저도 그분께 볼일이 있었는데 같이 가시죠.”

“... 그, 그러세.”

아차! 강현과 록팰러 회장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지! 파셀 의원은 다시 한번 예상 밖의 상황에 실수를 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설마 젊은 청년이 마리아와 같은 아리따운 여성과 단 둘이 있는 것을 거부할 리 없을 거라는 선입견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지 못하고 강현과 안면이 있는 록팰러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자, 자. 갑시다.”

강현은 파셀 의원을 앞장 세우고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는데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져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마리아가 샐쭉한 눈매로 강현을 보고 있었다.

“왜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현은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끝난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리아 역시 아버지인 헨델 사장의 뒤를 따라 록팰러 회장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뒤로는 별일 없었다. 강현은 록팰러 회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기회를 봐서 빠져나갔고 마리나는 연회장에 남았다. 강현은 그 뒤로 마리아와 만나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연회는 즐거우셨습니까?]

“네, 예상은?”

[귀찮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 맞아.”

강현은 아즈삭의 판단에 긍정하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특히 그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그것을 인지하면서 다루는 이들의 연회장은 훨씬 더 피곤했다. 평이한 듯 일상적 대화 하나하나에 정략적인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마치 수수께기를 푸는 듯한 대화들이었다. 그런 부류에게 그것은 하나의 놀이에 지나지 않겠지..

강현은 한 숨 푹 쉬고 일어나서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요즘 그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역시나 신 통일장 이론이었다. 최근에 그 이론을 이용해 만든 반감기 가속장치처럼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져 있었다.

[박사님. 면회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누군데?”

[마리아 헨델입니다. 곡물 카르텔 1위인 카길을 경영하는 율리우스 헨델의 첫째 딸로,]

“그만 됐어. 알고 있으니까. 저번 연회때 본 안면이 있어.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왔는데?”

[투자에 관한 상담입니다.]

“투자?”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돈에 관한 일로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가 저축하는 은행의 재무설계사 정도에 불과했다.

강현은 살짝 궁금증을 가진채 응접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흰 가운이 잘 어울리시네요.”

“감사합니다. 투자에 관한 일로 저를 보러 오셨다면서요?”

“어머! 다짜고짜 본론인가요? 연회는 잘 보냈냐는 등 궁금한 건 없어요?”

“전혀.”

마리아는 강현의 시크함에 약간 불만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용건은 남녀간의 일이 아니라 투자에 관한 일이니 용건을 꺼냈다.

“연회 때 저와 하던 대화 중에 그 동안 벌어들인 돈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죠?”

“그렇죠.”

강현이 벌어들이는 돈은 가치 천문학적이다. 아즈삭이 정리해서 보고해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박사님이 묵혀 두는 그 자본은 인류를 위해서 투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인류를 위해서요?”

“네. 굳이 연구만이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방법은 아니죠.”

강현은 인류를 위해서 헌신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어디다가 투자를 하는 거죠?”

“아프리카요. 사막화 저지를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요.”

그러면서 마리아는 알렌 세이버리(Allan savory)라는 짐바브웨의 생태학자를 언급했다. 그와 그가 몸 담은 단체는 세계적으로 가속되는 사막화 현상을 막기 위해서 수십 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조사했다.

사막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연구 분야의 권위자들을 만나보면서 해결책을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특히 강수량이 적지 않은 지역의 사막화는 그들로서도 골머리를 앓는 문제였다.

왜 사막화가 일어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지구 온난화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생태와 관련이 있었다.

초목은 초식 동물과 함께 진화해 왔다. 또한 초식 동물은 그들을 추적하는 포식자와 진화해 왔다.

초식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서 뭉쳐야 했다. 그래야 포식자들로부터 개체가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편 그들의 먹이를 부족하게 만들었다. 그들에 의해서 짓밟히고 똥오줌에 오염된 풀을 먹을 수가 없으니 이동하게 된다.

이 초식 동물들의 무리가 떠난 지역에 남은 풀들은 그 지역의 땅에 매우 놀라운 효과를 부여한다.

땅, 즉 주로 규소로 이루어진 광물들은 물에 비해서 비열이 낮다. 그것은 낮에는 계란이 익을 정도로 달구어지고 밤에는 시릴 정도로 온도가 내려간다. 사막의 가혹한 밤낮의 온도차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초식 동물들에 의해 밟혀 누운 풀들은 낮에는 그 뜨거운 햇살로부터 땅의 수분을 보호하고 밤에는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이는 지면으로부터 약 몇 센티 정도 안되는 부위지만 국소적인 항상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 국소적인 항상성은 수분과 온도를 유지해 그 땅의 미생물을 활발하게 만들어 쓰러진 풀들을 썩히고 퇴비를 만들어 땅을 거름지게 하고 다음 풀들의 라이프 사이클을 용이하게 만들어 더 풍요로운 대지를 약속한다.

그리고 포식자들을 피해 자리를 이동한 초식 동물 무리가 있는 지역에서 다시 이와 같은 라이프 사이클이 반복된다.

알렌 세이버리는 사막화가 가속되는 지역에 이러한 생태계의 순환 과정이 파괴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사냥되어 버린 포식자. 자유롭게 방목되어 어린 순을 맛나게 뜯어먹는 가축들. 밟히지 않아 잘 썩지 않은 풀들은 다음 라이플 사이클에 새롭게 풀들이 자라는 것을 막고 대지는 황폐해진다. 그렇다. 인간이 땅을 사용하는 방식은 생태계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알렌과 그의 동료들은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포식자가 사라지고 초식 동물 무리마저 사냥 된 지금, 땅과 초목, 초식 동물과 포식자로 이어지는 라이프 사이클을 다시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모방이라고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축은 무리지어 집결하게 되었고 인간은 포식자의 역할이 되었다. 그리고 땅은 구획이 나뉘어져 차례로로 무리지어진 가축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황폐화된 땅이 십 년 만에 극적으로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다. 풍요로워진 대지로 인해 가축이 처음 시작했던 때보다 두배는 증가했고 마을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고기가 생산되었다.

============================ 작품 후기 ============================

TED에서 Allan savory를 검색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사람의 방법이 사막화를 해결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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