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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01화 (101/241)

101화

알면서 그랬다는 말에 더욱 웃을 수 밖에 없는 파셀 의원이었다. 그는 곤란한 상황에서 웃는 습관이 있었다.

카길(Cargill). 영국계 미국인이 세운 곡물 회사로 지금은 세계를 주름잡는 곡물 카르텔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었다. 물론 창업주는 영국계 미국인이고 대대로 가족기업으로 운영되어 주식 상장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영은 항상 유대인들이 맡고 있었다. 하진 세계를 주름잡는 곡물 카르텔 거의 대부분이 유대인들이 창업주거나 유대인들이 경영을 하고 있으니 비 유대인 경영자로는 곡물 카르텔에 끼기 무척 어려울 것이다. 유대인들간의 유대감은 중국인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 유대인들이 지배하는 곡물 카르텔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고 그 먹거리 중 인류 생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곡물 시장을 쥐고 있는 카르텔의 영향력은 작은 국가를 두렵게 할 정도다. 함부로 심기를 거스르다가는 소국의 대통령이라도 물러나게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들이었다.

거기다가 석유 카르텔까지 유대인이 쥐고 있으니 각종 음모론에서 유대인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할 만 했다.

“껄껄. 의원님 왜 그러십니까? 이거 괜히 저를 나쁜 사람 만드는 거 아닌가요?”

“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강 박사의 말이 거침이 없어서 잠시 당황했을 뿐입니다.”

헨델 사장의 뼈있는 말에 파셀 의원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 진땀을 뺐다. 헨델 사장을 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야 할 이유는 그 뒤에 있는 곡물 카르텔 뿐만이 아니다. 바로 각종 자원 시장을 꽉 쥐고 있는 유대인 네트워크 때문이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 소유고 금융, 석유, 곡물 및 국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자원 시장도 유대인이 주름잡고 있다. 이미 세계 경제는 유대인이 없다면 유지되지 않을 정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헨델 사장을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현의 반응이 상상 외였지만 자신의 처신도 실수였다고 생각하면서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파셀 의원이었다.

강현은 그런 파셀 의원의 반응에 헨델을 보았다. 사람 좋게 생긴 장년의 신사였지만 그 본질은 곡물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카르텔 중 1위인 카길의 현 경영자. 그의 이름은 이미 강현의 기억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기득권에게 엿을 먹일까 궁리하던 와중에 식량을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 했었지만 그렇게 하려면 이 카르텔이란 것과 연관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조사를 하는 와중에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물론 계획은 포기했다. 별로 그들과 관련되고 싶지 않았다. 경쟁은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현은 카르텔 따위를 만들어 서로의 이익을 보호하는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카르텔의 이미지와는 달리 헨델은 아주 호감형의 남자였다. 그에게 카르텔을 경영하는 경영자라는 선입관이 없었다면 강현은 기꺼이 그가 인사 때 했던 말처럼 서로 이름을 터고 대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흐음. 강 박사는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딱히 헨델 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기보다는 카르텔이 마음에 안 드는 거죠. 거기에 속한 기업들끼리 경쟁은 합니까?”

강현의 적나라한 질문에 헨델은 잠시 뻥 져있다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당연하지. 기업이란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일세. 아무리 같이 카르텔 안에 들어 있다고 해도 서로 경쟁을 하는 건 당연하지.”

“그리고 새롭게 나타나는 경쟁자는 합심해서 제거하고요?”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것이 기득권이라는 의미일세.”

하긴. 그것도 그렇다. 기껏 시장을 개척해 놨는데 어떤 놈팡이가 슬그머니 숟가락을 들이미는 것을 좋아할 이는 없을 것이다.

“듣자 하니 카르텔이란 것에 반감이 큰 것 같은데 이유라도 있는가?”

“제대로 된 경쟁을 하지 않는 카르텔이 사회 발전을 얼마나 저해하는지 한 번 봤기 때문이죠.”

“한국 말인가?”

“알고 계시는군요.”

“작은 시장이지. 수출형 경제가 아니었다면 이리저리 뜯겨 먹혔을 거야.”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경제가 미국에게 종속된 상황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이 탐을 낼 만한 것이 없던가, 아니면 그중 하나의 그늘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운이 나쁘게도 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그 주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군침을 흘리기에는 최적이었다. 대륙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태평양 진출의 발판으로,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입장에서는 대륙 진출에 적합한 발판으로 말이다.

그러나 또한 운이 좋게도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그늘로 들어갔다. 덕분에 여러 나라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 미국이 다인종 국가라는 것이 더욱 다행이었다. 만일 미국이 민족국가 개념이었다면 한국인은 2등 시민 취급 받았을 것이고 역으로 미국사회에 진출에 명성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도 능력이 있다면 성공을 보장해 주는 국가였다. 그렇게 보면 미국이 주장하는 세계화에 가장 큰 혜택을 받은 나라는 아마 한국이 아닐까?

“그런 작은 나라에서 큰 기업들이, 아 물론 내가 봤을 때에는 코딱지 수준에 불과하지만 말일세, 아무튼 지 잘났네 하면서 지들끼리 뭉치면 당연히 사회에는 안 좋지. 작은 연못에서 큰 물고기들이 서로 협력하면 자연히 작은 물고기들의 씨가 마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하지만 세계는 넓어. 아무리 우리 곡물 카르텔의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쉽지는 않아. 사람도 많고 나라도 많고. 그 뿐인가? 지리적인 장벽은 물론 인종적인 장벽과 종교적 장벽 등 갖가지 문제들이 산적해 있네. 결코 한국과 같은 일이 벌어질 리는 없지.”

“그건 그렇죠.”

강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는 넓기 때문에 변수가 너무 많다. 아무리 카길이 곡물시장을 주름잡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그 많은 변수를 확인하고 조율하고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과 행동이 일정 선을 넘을 수가 없다. 특히 국가가 정한 법률이라는 틀 밖을 벗어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국가의 영향력은 기업의 영향력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영향력이 더 크다면 각종 편법을 동원해 초법적인 일을 벌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정부가 힘이 없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재벌이란 기득권의 강력한 통제가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작고 고립된 한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의 대화는 적나라했기 때문에 다소 아슬아슬하면서도 의외로 나쁘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파셀 의원은 점차 좋아지는 분위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치가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경영자와 사이가 나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강현을 초대한 파셀 의원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강현이 실수하면 그의 안목 역시 의심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호오. 그럼 방사능 물질들을 처리하는 기업을 차리면 엄청나게 돈이 되겠군.”

“독점은 안 됩니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인데 독점을 하면 얼마나 욕을 먹겠습니까?”

“카르텔은 독점이 아니라네.”

“뭐, 헨델 사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별로 큰 문제가 아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대중의 시선이 아닐까요?”

“끄응. 나도 사실 그 점이 걱정스러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사람은 사회적 동물일세. 아무리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고 기득권 보존을 위해서 행동하더라고 해도 사회를 간과해서는 안되는데.. 요즘 젊은 사장들이 그 점을 계속 간과하고 오만하게 행동하지 뭔가?”

“뭐, 어떻게든 되겠죠. 살아남든 도태되든 간 시간이 결정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 자네의 정치적인 관점은 신기하단 말일세. 어떨 때에는 참 기득권에 대한 반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그런 기득권의 존재를 인정하니 말일세.”

“기득권을 없애면 그 자리에 또 다른 기득권이 올 뿐이죠. 그렇다면 좀 더 좋은 기득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자네가 시작했던 자정주의 운동말인가?”

“저는 그냥 첫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렸을 뿐입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그런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파급이 컸던 것 뿐이죠.”

“그 과정에서 거부가 된 이들이 죄다 자네의 지원을 받았다고 하던데?”

“으음. 그 얘기는 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제가 무슨 막후에서 음모를 꾸미는 모사 같지 않습니까? 저는 단지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금전적인 도움을 줬을 뿐입니다. 어차피 제가 평생 다 못 쓸 돈이지 않습니까?”

“뭐? 푸하하하!”

헨델은 이 젊은 천재와의 대화가 정말 즐거운 듯 했다. 둘의 분위기가 이제 좀 좋고 아직 한 참이나 더 이야기를 나눌 것 같자 파셀 의원은 슬슬 다른 볼일을 보러가도 될 것 같았다. 그도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다.

“하하. 그럼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요. 저는 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강 박사. 즐겁게 있다가 가도록 해요. 헨델 사장, 그럼 나중에 또 뵙죠.”

파셀 의원의 퇴장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두 사람의 대화는 슬슬 스케일이 커져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둘의 관점 차이는 극명했다. 헨델은 기업의 입장에서 앞으로는 어느 나라가 뜰 것인지, 또 세계 경제의 흐름은 어디로 치중할 것인지를 생각했다면 강현은 기술에 의한 인류 문명의 진화 과정과 그와 연계된 국가들 간의 관계 변화 등을 예견했다.

그러나 둘이 공통적으로 동의한 것이 있다면 인류의 발전과 세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땅은 바로 아프리카라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개발은 기업들에게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제3세계의 발전은 자기들이 앞으로 국제 사회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국가들이 다시 생각할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변화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식민지 상태를 벗어난 그들은 가난했고 각종 이권은 기존의 강대국에게 빼앗긴 상황. 기아, 전쟁,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들을 둘러싼 여러 세력들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자네는 그런 변화에 어떻게 이바지할 것인가?”

“글쎄요. 저는 그저 제 연구가 좋아서 하고 있을 뿐이라.. 어떤 파급효과나 결과를 바라면서 연구를 하지는 않아서요. 그건 연구의 폭에 제한을 걸 뿐이거든요.”

“흐음. 그런가? 그럼 기업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에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겠군.”

“당연하죠. 위에서 이거 연구해라, 저거 연구해라 간섭하는 것은 꼴보기 싫거든요.”

“하긴, 그때문에 강 박사가 미국에 왔지. 미국으로서는 행운일세. 그런데 왜 굳이 미국으로 온건가?”

“다인종 국가잖아요.”

“그것뿐인가?”

“의외로 민족이나 종족을 중요시 생각하는 이들이 많더라구요.”

중국 사회에서 흑인이 성공할 수 있을까? 유럽에서 백인이 아닌 이가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글쎄.. 그들의 역사는 민족이나 혈통과 함께 한다. 그건 국가와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시당초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이야 말로 종족을 초월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국가였고 그건 강현이 보았을 때 자신이 차별 당하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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