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그러나 한 편 그가 완전히 우파로 분류되지는 않았고 중도 성향의 우파로 분류되었는데, 이는 자정주의 운동을 촉발시킨 부의 분배에 대한 그의 문제인식이 민주당과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해결 방법이 정부에 의한 규제를 수단으로 삼는 민주당과 다르게 자본가 개개인의 각성을 요구하는 수단을 내걸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강현 개인에게 과연 공화당의 정치적 신념을 옹호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강현의 솔직한 대답은 ‘알게 뭐야?’일 것이다.
[궁금한 게 있다라.. 뭔가?]
“페트 로버튼이란 사람 제정신이 맞나요?”
[… 풋!]
다소 과격한 표현에 파셀 의원은 실소를 토했다.
[그 핵무장 강화 발언 때문인가?]
“그렇죠.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전혀 제대로 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그렇지. 이미 지구상의 핵무기는 너무나 많으니까.]
많은 정도가 아니라 인류를 세 번은 멸종 시킬 수 있는 양이다.
“그래서 그 양반의 진의는 뭔가요? 설사 진짜 미친 건 아니겠죠?”
[푸하하하! 설마 그렇겠나. 그리고 또 진짜 미쳐도 그가 주장한 핵무장 강화는 실현되지 않을 걸세.]
“정말인가요?”
[과거처럼 신앙 같은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냉전시대가 아닐세. 자유주의는 승리했고 그 안의 다원주의가 꽃피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야. 물론 종교에 미친 것들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핵무장은 전세계적으로 감축 되어야 하고 그렇게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을 이상, 신을 부르짖으며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는 놈들에게 핵무기가 들어가게 하면 안 되거든.]
핵무기는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이다. 또한 순식간에 한 나라를 몰락시킬 수 있는 위험한 무기다. 만일 테러리스트가 핵배낭을 미국 주요 도시에 빠짐없이 설치한다면 미국의 몰락은 순식간이다. 그러므로 핵무기 확산에 가장 민감한 국가 역시 미국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그런 속사정보다는 종교를 부정하는 듯한 앙드레 파셀의 용어 선택에 더 관심이 갔다. 과학자로서 경전을 신봉하고 의문이란 인간 본성을 저해하는 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과학은 의문에서 시작해 무지를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의문에서 시작해 신이란 무지로 나아가는 종교를 과학은 용납할 수가 없다. 종교는 신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종속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원님은 기독교인 아니셨어요?”
[근본주의자는 아니네.]
강현은 납득했다. 파셀 의원의 융통성은 근본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나?
[그런데 고작 그 때문에 연락을 한건가?]
파셀 의원은 강현이 물어 본 것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그 정도 발언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정치가이기 때문에 극우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고작이라니요? 그 때문에 제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데요.”
강현은 기술개발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여러 환경단체의 편지 공세에 시달린다고 엄살을 떨었다. 본인에게는 엄살이 아니었지만 파셀 의원에게는 엄살로 들렸다. 강현의 영향력이면 그 모든 것을 묵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뭐, 그렇다면 이쪽에서 조치를 취해주겠네.]
“그래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껄껄! 그러면 이번 연말 파티에 참석하는 건 어떤가?]
강현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졌다. 역시 뭔 가를 얻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죠, 뭐.”
파셀 의원은 미소 지었다. 이 젊은이는 확실히 주고 받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개념이 잡혀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정확해야 했다. 받는 것이 있으면 주어야 했고 주는 것이 있다면 받아야 했다. 그것이 사람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강현과 파셀 의원의 통화는 끝났고 강현은 파셀 의원이 과연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아즈삭을 통해서 상황을 살폈는데 의외로 파셀 의원의 일처리는 매우 간단했다. 바로 모든 일의 원흉인 페트 로버튼의 주둥이를 틀어 막은 것이다.
페트 로버튼의 핵무장 강화 발언에 그동안 가만히 있던 공화당 내부에서 ‘미친 발언’이라며 젊은 당원들이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페트 로버튼은 진작에 안방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했던 노망난 할배 취급을 받아 황급히 모습을 감춰 버렸다.
너무나 쉬운 해결에 강현이 어리둥절할 정도였지만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페트 로버튼의 발언을 지지하는 세력의 크기와 공화당 지지 세력 전체를 비교해 보았을 때 전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실 그 동안 공화당 내부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던 이유는 그 발언이 공화당에 어떤 이해득실을 가져올지 명확히 판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트 로버튼의 뒤에 있던 일부 군산 복합체의 로비는 진행 중에 있었고 아직 각자의 입장이 명확하게 판별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갑자기 공화당의 실력자인 파셀 의원이 나서자 순식간에 입장들이 정리되어 버린 것이다.
“참, 정치란..”
강현은 혀를 쯧쯧 차면서 순식간에 일을 처리한 파셀 의원의 솜씨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역시 정치가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아무튼 헛소리를 하며 환경단체를 자극하던 로버튼이 기어 들어가고 강현은 골치 아픈 일을 조기에 방지해, 다시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즈삭에게서 그 일과 관련된 후속 내용을 듣게 되었다.
[박사님. 핵물질 규제 완화에 대한 법안이 통과 되었습니다.]
“응? 뭐?”
[실질적으로는 열화우라늄탄의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입니다. 아마 내년부터 군부대에 본격적으로 보급될 것 같습니다.]
“이것 때문에 파셀 의원이 그렇게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가?”
간단히 말해서 씨끄럽게 일을 벌일 필요없이 탄약 제조 회사에게 뼈다귀를 던져 입을 다물게 한 것이다.
하긴, 정치는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인 파셀 의원으로서는 고압적인 방법을 이용해 중요한 지지층을 잃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화생방 물자에 반드시 반감기 가속 장치를 포함시키는 법안 역시 통과 되었습니다.]
“그걸 빌미로 이번에는 환경단체를 다독인다? 정치란 것도 만만한 건 아니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은 그로서도 골치가 아픈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에고이스트적 기질이 넘치는 강현은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무척이나 체질에 안 맞고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 그렇게 되면 열화우라늄탄과 반감기 가속장치가 군대에 있게 되는 거잖아. 사고가 나지 않을까?”
만일 반감기 가속장치를 사용하는 영역에 열화우라늄탄이 있게 된다면 엄청난 방사능이 분출될 것이다.
[그에 따른 갖가지 규정과 메뉴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한 화생방 제독 부대에만 반감기 가속 장치가 배치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문제가 없으면 됐지.”
강현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자신의 발명품이 악용된다면 대중이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간직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페트 로버튼에게 약간 고마울 정도였다.
그래도 대중의 인식이라는 신경 써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생겼기 때문에 귀찮기는 했다. 물론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아즈삭의 행동지침을 손봐서 이번 일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게 되면 자신에게 자세히 알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감기 가속 장치는 전 세계로 잔뜩 팔려나가고 있었고 위험한 방사능 제거에 한 몫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쌓여 나가고 있었다. 이는 나중에 어떤 우호적 여론을 조성할 필요가 있을 때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편, 이렇게 팔려나가는 반감기 가속 장치는 심지어 러시아에도 팔려나가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방사능 오염 지역을 정화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러시아도 강현의 장치를 구매해 방사능 정화 작업에 참여하고 말았는데 이는 검증된 기술을 미국 혼자 독점하려 한다는 전세계적인 비난 여론 때문이었다.
방사능 제거 기술에 안달이 난 나라들이 체르노빌로 가는 안전지대가 놓이자마자 이미 충분히 장치의 성능이 검증 되었다며 빨리 판매를 위한 법적 절차를 신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 강력한 요구 때문에 미국은 한 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무역 관세라든지, 시장 진출이라든지, 강현의 기술을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의 단축이란 손해에 대응하는 이득을 얻어냈다. 물론 그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공화당에서 무능한 외교를 펼친 정부라고 거세게 몰아붙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츰 시간이 지났고, 강현은 차세대 통신 기술인 양자 통신 기술을 위한 기초 이론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가 파셀 의원과 약속된 연말 공화당 파티에 참가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왔다.
“아아. 귀찮다.”
하지만 신세진 일이 있으니 파셀 의원에게 갚아야 하는 일도 있었다. 단지 그의 초대를 받고 파티에 참석을 하는 것이지만 그 정치적인 의미는 파셀 의원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강현과 이해 관계가 얽힌 이라면 파셀 의원에게도 매우 조심할 것이며 그를 적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강현은 베푸는 것에 인색한 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적은 적었고 우호적인 이는 많았다. 물론 적이 적은 이유에는 적을 무참하게 짓밟아 재기할 수도 없게 만드는 철저한 후속관리가 더해졌기 덕분이기도 했다.
“하하하! 강 박사. 왔는가?”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감사는 무슨. 굳이 이렇게 귀찮은 발걸음을 해줬으니 내가 더 고맙지.”
강현과 파셀 의원의 대화에 주위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정치권력과 기술자본권력의 만남이었다. 거창한 표현이었지만 둘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이들에게는 그만큼 어울리는 표현도 없었다.
강현은 파셀 의원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소개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귀찮았지만 웃었고 즐기는 척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현은 거래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강현의 모습에 파셀 의원은 흐뭇하게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현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역시나 천재. 그가 아마 정치쪽에 관심이 있었다면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키워줬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강현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인사하게. 율리우스 헨델이네. 카길의 경영자로 있으시지.”
파셀 의원이 소개시켜준 사람은 파셀 의원 만큼 나이가 든 반백의 장년이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율리우스 헨델이라고 합니다. 율리우스라고 불러주세요.”
“네, 안녕하세요. 현 강 입니다. 그냥 강 박사고 불러주세요, 미스터 헨델.”
강현의 대답에 파셀 의원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헨델의 말은 이름을 트고 서로 친하게 지내자라는 의미였는데 강현이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허허. 카길 모르나?”
“알죠. 세계 1위의 곡물 메이저 아닌가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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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이 났습니다. 뭘 잘못 먹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