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그런데 핵무장 강화라는 상식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것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일까?”
내밀한 사정을 알기 위해서 다시 바퀴벌레 로봇을 이용해야 할까?
“귀찮은데..”
사실 강현 그 자신을 대상으로 한 계획이 아닌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강현이 목적이 아님에도 불과하고 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었다. 페트 로버튼과 그 뒤에 있는 이들은 강현에게 확실하게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물론 반핵 단체가 강현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멀뚱히 관람만 하면 되었기에 그들 역시 민폐는 마찬가지기는 매한가지지만 다루기 어려운 대중을 다루는 것보다 일을 벌리는 이들을 다루는 것이 강현에게는 더 쉬웠다. 대중이란 감성적인 존재라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며 이해득실을 따지는 인맥의 줄기들은 바로 그 이해득실만 잘 조정해 주면 설득의 여지가 있었다.(혹은 협박도 가능하다.)
“흐음.. 실버스트리 공업이라..”
3차원 이미지 화면으로 페트 로버튼의 인맥 관계도를 찬찬히 살피던 강현의 시선에 어떤 흐름이 보였다. 그것은 실버스트리 공업이라는 탄약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을 매개로 페트 로버튼을 지원하는 군산 복합체의 일부 세력이었다.
그들은 주로 강현이 개발한 CNC 장갑을 제작해 경장갑 차량의 방호력을 증가시키는 사업들을 하고 있거나 각종 탄약을 제작하고 있었다.
“핵무장 강화와 탄약, 장갑 제조 회사라.. 무슨 관련이 있지?”
잠시 생각하면 강현은 그 셋을 연결하는 이해 관계를 발견했다.
CNC 장갑은 대물 저격총을 최소 세 발까지 막아내는 엄청난 성능의 장갑이다. 그러나 기술이라는 것이 영원히 보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타국에서 CNC 장갑을 역설계해서 그대로 모방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CNC 장갑을 무력화할 수 있는 선행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그 방법 중에는 정확도 높은 중기관총을 이용해 CNC 장갑의 피로도를 순식간에 올리는 방법과 열화우라늄 탄, 텅스텐 탄과 같이 일반적인 철갑탄보다 관통력이 뛰어난 탄환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전자는 CNC 장갑의 피로도를 올리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탄약이 엄청나게 필요하기 때문에 탄약 보급이 문제가 된다.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라, 탄약을 들고 이동해야하는 전술적인 문제를 생각해도 그다지 적절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수한 관통력을 가진 탄환을 개발하고 있는 중인데 그중에 가장 유력한 후보가 바로 열화우라늄탄과 텅스텐 탄이다.
일반적인 철갑탄은 재료 자체의 특성 한계 때문에 도저히 CNC를 관통할 수가 없다. 왜냐면 강한 경도를 가진 CNC 장갑과 부딪혔을 때 아무리 철갑탄이라고 해도 그 끝이 뭉개져 관통력을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단한 물질에 부딪혀도 끝이 뭉개지지 않아 관성력을 뾰족한 끝에 집중시킬 수 있는 물질을 관통자로 사용해야 했고 열화우라늄과 텅스텐이 자기첨예화란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물질이었다.
자기첨예화란 간단히 말해서 탄환, 혹은 관통자가 날아가거나 목표에 부딪혔을 때에도 일반적인 탄환처럼 뭉개지는 것이 아니라 뾰쪽한 모양을 유지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 현상은 금속의 기계적인 성질과 관련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 열화우라늄과 특정 텅스텐 합금이 가진 단열전단밴드라는 성질이 자기첨예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속이 강한 힘을 받으면 변형되면서 내부에 전단(Dislocation)이라는 결함을 만든다. 이 결함은 금속원자가 제자리 없는 것, 전문영어로 Vacancy라고 하는 빈공간의 1차원적인 배열인데 금속의 가공경화 기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전단은 금속이 변형되면서 점차 축적되어 금속원자의 밀도를 줄이게 되고 마침내 구멍, 균열을 만들게 된다. 철사를 반복해서 구부리면 어느 순간 툭하고 부러지는 이유가 바로 이 전단의 축적 때문이다.
그러나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철갑탄은 이 구멍이나 균열이 생기면서도 마찰열에 의해서 유동화된 금속원자로 인해 즉시 전단이 매워져 버린다. 즉, 변형된 전체적 모양이 유지되어 관통에 필요한 모양(관성력을 집중할 수 있는 모양)을 상실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관성력의 반작용이 탄 전체에 걸리게 되면서 더 큰 변형을 일으켜 관통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열화우라늄탄과 텅스텐 합금탄은 그 결정구조와 물리적인 특징에 의해서, 강한 힘을 받아 생성 및 축적되는 전단이 일종의 방열 기능을 하게 된다. 바로 단열전단밴드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찰열과 변형에 의해 생기는 열이 탄환의 바깥 껍질에만 머물게 되고 이 바깥쪽에 존재하는 변형된 조직이 벗겨져 나가 버린다. 그리하여 충격에 의한 변형 에너지가 탄환 전체에 가해지지 않고 충격면에 존재하는 얇은 조직의 변형 및 이탈에만 사용되기 때문에 모양이 일정한 자기첨예화 성질을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서 열화우라늄탄은 사용시에 우라늄 분진을 날리게 되는데 이는 자기첨예화 성질을 이용한 관통자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다.
“흐음. 자기첨예화 성질을 가진 탄이라면 충분히 CNC를 뚫을 수 있겠지.”
제 아무리 경도와 탄성이 뛰어난 CNC 장갑이라고 해도 일점 집중의 운동에너지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열화우라늄이나 텅스텐 탄환에게 CNC 장갑을 뚫을 정도의 운동 에너지를 부여하려면 보통 화약량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장갑의 성능을 올리기 위해 곡면, 굴곡처리까지 했으니 빗겨서 튕겨나가지 않을 정도의 관성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환 자체가 무거워져야 했다. 즉, 탄환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것과 핵무장 강화 발언이 관련이 있습니까?]
“지금 쌓인 열화우라늄탄의 재고가 전세계적으로 약 백 만톤 정도 되지 않나?”
싸고 무거우면서 자기첨예화 성질을 가진 열화우라늄 탄이 CNC 장갑을 무력화 하는데 가장 적절한 후보였다.
[네,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약 40만 톤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재고를 쌓은 기업들 입장에서는 CNC 장갑에 대한 대응 연구를 빌미로 열화우라늄탄을 팔아먹고 싶지 않겠니?”
열화우라늄탄의 주 재료는 우라늄 238이다. 매우 안정한 방사능 물질이기 때문에 내뿜는 방사능도 그리 위험한 양은 아니다. 심지어 자연적인 우라늄 광석보다 적은 방사능을 풍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우라늄 238의 용도가 중성자를 흡수시켜 또 다른 핵분열 물질인 플루토늄을 만드는데만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라늄 238은 우라늄 235의 농도를 조절하고 잉여 중성자를 흡수하기 때문에 핵분열의 연쇄 반응을 조절하는 데 더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물질이었다.
그리고 열화우라늄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우라늄235의 농축을 거치고 난 폐기물, 즉 우라늄 238이기 때문에 방사능이라는 요소를 보았을 때에는 인체에 해가 거의 없는 물질이었다. 반감기가 무려 42억년이나 되기 때문에(우라늄 238이 반으로 줄기 위해서는 지구의 역사와 맞먹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붕괴를 통한 방사능은 매우 매우 적다.
그러나 그런 우라늄 238이라도 전혀 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꼴에 핵물질이라고 방사능을 미약하게 나마 배출하기 때문에 오염 농도가 짙어지면 인체에 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며 기본적으로 중금속이기 때문에 중금속 중독을 일으킨다. 물론 화학적으로 치사량이 청산가리에 버금가는 플루토늄보다는 안전한 물질이다.
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연구된 내용이 없고 전세계적으로 방사능 물질을 탄환에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기 때문에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재고가 나날이 쌓여가니 탄약 제조 회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처리할 궁리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은 돈입니까?]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과는 결국 돈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미친 놈들도 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핵무장 발언도 핵무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핵물질을 무기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에게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으름장일 가능성이 무척 높을 것입니다.]
협상의 기본 중 기본이다. 10을 원하면 100을 요구하는 것. 세금 인상을 위해 거의 모든 정부에서 전형적으로 구사하는 방법으로 10%의 세금 인상안을 제출하고 강한 반발이 일어나면 슬그머니 5%로 수정안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쪽에서 이만큼 양보했으니 그쪽에서도 양보하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원래 목표는 10%가 아니라 5%였다.
“핵폭탄은 이쪽에서 양보할 때니까 대신 열화우라늄탄을 쓰자?”
사실 전술적으로 열화 우라늄탄의 사용은 매우 유용하다. 엄폐물 뒤의 적을 엄폐물과 함께 처리하기에도 좋고 또한 관통 후 생기는 우라늄 분진에 불이 붙게 되었을 때 생성되는 열과 폭발은 사람에게 2차 충격을 가하기 충분했다.
대부분의 건축물에 사용되는 콘크리트 격벽은 이 우라늄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전술적인 가치가 높았다. 거기다가 차량 역시 쉽게 무력화 할 수 있었다. 엔진에 한 방만 맞아도 엔진은 그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물론 방사능 물질을 사용한다는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열화우라늄탄과 비슷한 정도의 강력한 관통을 가능하게 하는 대체품이 있다. 바로 텅스텐 합금 관통자지만 아무래도 열화우라늄보다 훨씬 비쌌다. 열화우라늄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우라늄 235의 농축과정의 폐기물이기 때문이다.
“한 번 물어보자.”
강현의 아즈삭의 판단에 누군가에게 문의해 보기로 했다. 정말로 핵무장 강화가 목적이 아니라면 강현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상황은 자연히 잠잠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현은 그에 대해 문의하기 적절한 사람에게 연락했다. 자본주의 자정세력을 첨두에서 이끌어 차기 대선 후보로 유력한 앙드레 파셀 의원이었다.
[하하! 강 박사! 오랜만이군. 그런데 어쩐 일인가? 먼저 연락을 다하고.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앙드레 파셀은 강현에게서 먼저 연락을 받자 매우 놀라웠다. 강현의 은둔주의는 매우 유명했기 때문이다. 강현은 거의 사회에 나서지도 않고 자기가 먼저 어떤 인물과 접촉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에게 커다란 목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대표적으로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과 자본주의 자정운동이 그러했다. 강현의 접촉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동과는 달랐고 오직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럴 리는 없죠. 저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공화당의 당원으로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기 위해 먼저 연락도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자정운동을 통해서 강현의 정치적인 성향이 공화당이라고 확실하게 인지되었다. 게다가 자정주의 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공화당에 당원 등록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민주당에서는 그런 그의 행보에 당황했지만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그럴 만도 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금세기 들어 자본주의의 체제 아래에서 가장 최대의 이득을 본 인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었다면 그의 발명과 연구 결과물이 정당하게 평가 받아 그 개인이 막대한 재산을 벌어 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