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98화 (98/241)

98화

“아무튼 자주 보겠네요.”

“아아.”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부서에 배속된 그녀는 여러 업무를 보게 될 것이고 강현이 실험하기 위해서 여러 물품을 구입하거나 외주를 주거나 하는 일에 관련되어 그를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결제할 것이 왜 이리 많죠?”

“박사님께서 만드신 장치가 방사능을 뿜어내니까 그렇죠.”

강현의 반감기 가속장치는 베타 붕괴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과정의 응용이었다. 그러나 알파선과 베타선보다 금속 용기를 뚫기 쉬운 감마선이 주로 튀어 나왔다.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동안 방사능을 뿜는 장치에 대한 각종 안전 규제가 필요하고 그 때문에 판매에 대한 것도 여러 허가를 받아야 했다.

관료주의의 답답한 예지만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 했고 아무리 미 정부에서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형식상 서류에 사인하는 과정은 필요했다.

강현은 그런 가보다다 싶어서 십 수 개의 서류에 사인을 하고는 서류 뭉치를 샐리에게 도로 넘겨주었다. 이제 남은 건 그녀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응? 뭐죠?”

강현은 돌아가기 전 샐리가 또 꺼낸 우편물을 보았다. 편지 봉투가 한 뭉치나 있었다.

“저도 몰라요.”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편지는 거의 이메일로 주고 받는 세상이다. 강현도 마찬가지라 이메일을 애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즈삭이 그의 메일을 관리해 스팸 메일이나 쓰잘데기 없는 청탁 따위의 이메일을 미리 정리해 주기 때문에 매우 편했다. 물론 팬레터의 경우 아즈삭에게 알려준 메뉴얼대로 일괄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뭐 기껏해야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든지 아니면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지 따위의 상투적인 문구에 고유명사와 이름만 바꾸어 전송하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직접 손으로 쓴 팬래터도 받아봤고 그 정성에 간단히 자신도 손으로 편지를 써 보내기는 했지만(들리는 후문으로는 그 소년은 강현이 했던 대로 폰 노이만 학습법을 하다가 과학자의 꿈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리 많은 일도 아니었고 이렇게 편지 뭉치가 날아온 적도 없었다.

“박사님, 인기 많네요.”

샐리는 편지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강현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 했다. 하지만 강현의 표정은 굳어갔다.

“박사님?”

“샐리. 그만 가보도록 하세요.”

“네? 네.”

샐리는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강현의 분위기가 심각했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고민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었지만 자신은 아직 그의 애인이 아니었다. 그것을 자각하자 샐리는 시무룩해질 수 밖에 없었다.

샐리가 나간 후 강현은 아즈삭을 불렀다. 분위기는 근엄했고 착 가라앉아 마치 추궁하는 듯 했다.

“아즈삭.”

[네, 박사님.]

“이게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환경 단체에서 이메일이 온 적 있었나?”

[네, 박사님.]

“어떻게 처리했지?”

[삭제했습니다.]

“왜?”

[박사님에게 더 이상 신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지 말라는 내용이었기에 삭제했습니다.]

“왜 내게는 알려주지 않았지?”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손으로 쓴 편지, 그리고 이메일의 내용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모두 동일한 단체에서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강현이 생각하기에 허투루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의 내용이었다.

[알려 드렸습니다.]

…. 강현은 순간 당황했다. 근엄한 분위기가 일순간에 흐트러졌다.

“..... 그, 그래?”

[네. 박사님께서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시고 바로 관심을 끄셨습니다.]

“그, 그렇군.”

근엄하게 나가다가 할 말을 잃은 강현이었다. 그때 자신이 왜 그랬을까? 그것은 정보의 양 차이 때문이었다. 단순히 아즈삭이 편지의 내용에서 요점만을 간추린 것을 들은 상황과 직접 읽어 편지에 담긴, 뉘앙스, 감정 따위를 느낀 상황에서의 판단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그는 붉어진 얼굴을 슬쩍 문질러 민망함을 털어내고는 편지의 내용을 아즈삭에게 알려주었다.

“반핵주의자들의 항의 서한이야. 내가 만든 기술 때문에 인류에 위기가 올 거라고 주장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저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잔류 방사선을 제거함으로써 차후 원자력 사고에 인류가 대처할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더 안전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바로 그런 판단이 문제라고 하네.”

방사능 물질 제거 기술을 획득함으로써 인류는 방사선에서 안전해 졌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핵무기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미국의 어떤 우익 인사는 다량의 소규모 전술핵을 보유할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그 주장의 바탕에는 전술핵 사용 지역을 정화 시킬 수 있는 반감기 가속 장치가 있었다.

한 마디로 적이 있는 시가의 민간인을 소개 시키고 핵으로 확 불태워 버린 다음 잔류 방사선을 제거하면 만사 OK라는 소리다.

미친 소리지만 어떤 주장이든 잘 포장하면 그럴싸하게 들리는 법이다. 그 포장지를 뚫고 핵심을 보는 지성이 있다면 선동되지 않겠지만 그런 지성을 가진 이는 가지지 않은 이보다 대체로 적은 편이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래 전쟁이란 그런 거야. 어떻게 시작되든 광기로 물들지. 하여간 좋게 쓰라고 만든 기술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려고 하다니. 인간이란 참 나쁜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

인간의 선의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너무나 많다. 어떤 사기꾼은 빈 지갑을 떨어뜨려 놓고 그 지갑을 경찰에 맞긴 선한 이에게 지갑의 돈이 없어졌다고 고소하겠다고 공갈을 쳐 많은 합의금을 뜯어낸다. 어떤 비양심적인 자선단체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둔 성금을 자신들의 보너스로 환원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더 추해질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걸 박사님에게 항의하는 겁니까?]

“기술의 개발자로서 책임을 지라는 말이지.”

아인슈타인도 평생 반핵 운동가로 살았다. 자신의 연구 결과가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현은..

“귀찮은데..”

그에 대해서 별로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기술은 모두의 것이다. 비록 자신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미 공개된 지식을 회수하는 방법은 그 지식을 익힌 이들을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강현은 공개된 기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그 사회 전체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총을 만들어도 그 총을 당기는 것은 결국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 및 반핵 단체의 뛰어난 행동력은 강현을 매우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린피스라는 환경단체의 회원들이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고래를 사냥하는 거대한 일본 포경선을 향해 카미카제식 돌진을 하자 카미카제의 원조인 일본인들마저 당황할 정도다.

또한 그들의 주장대로 만일 핵이라도 사용이 되고 자신의 반감기 가속 장치로 그 오염 지대가 정화된다면 자신을 보는 대중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분명 강현의 연구 활동에 적잖은 걸림돌이 될 것이기에 강현은 입장을 확실히 정해야 했다. 자신의 기술을 빌미로 핵무장 강화를 주장하는 흐름에 반기를 들 것인가? 아니면 그럴싸한 명분을 들어 책임을 사회로 미룰 것인가?

아무래도 강현의 마음은 후자가 좋았다. 전자는 이런 저런 사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연구 시간이 부족해 졌다. 아니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미묘한 이해관계에 대처하는 것이 강현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후자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중은 복잡한 존재다. 강현이 내민 명분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다. 왜냐면 개개인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때문에 대중에게 일어나는 일은 카오스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초기수치의 미세한 차이가 나중에 매우 큰 차이로 나타나듯이 강현이 주장하는 명분을 가장 먼저 누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 어떻게 전파하느냐가 강현을 연구만 생각하는 괴짜 연구자로 인식되느냐, 아니면 자신이 만든 것에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이기적인 작자로 인식 될 것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문제에서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마녀 사냥은 대체로 언론의 의도적인 실수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실수, 혹은 미필적 고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날조해 내보내는 언론은 부지기 수 였으며, 언론과 친하지 않은 강현이 마녀 사냥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강현이 원하는 언론 플레이를 하려면 먼저 언론부터 우호적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그 또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귀찮은 사회 활동을 해야 했다. 결국은 뭐를 선택하든 강현으로서는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 짜증나!”

강현은 짜증났다. 도대체 왜 평온한 일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도대체 원흉이 뭔가?

“페트 로버튼! 그 작자!”

페트 로버튼. 기독교인이면서도 핵무장을 강화하는 주장을 펴는 공화당 당원이며 반핵 운동 단체를 경악하게 만든 남자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을 대량 학살할 수 있는 핵무기의 보유량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는 기독교인이라... 스탠딩 개그를 하는 어떤 코미디언의 말처럼 참 세상은 알 수 없게 돌아간다. 성경에는 종교가 다른 사람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명시되어 있는 걸까?

그럴 리는 없다. 그런 말이 경전에 적혀있는 종교를 보호할 자유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도태될 것이다.

그러니 로버튼의 주장은 종교와는 관련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가 말 끝마다 하나님께서 미국을 보호하실 거라는 상투적인 멘트를 달지만 그 자신도 그리 독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핵무장 강화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대체로 매스 미디어에 나와 무언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동지들이 붙어있기 마련이기 때문이고 매스 미디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세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작자에 대해서 조사해보자.”

[단계는 어느 단계까지 합니까?]

“일단 합법적인 단계까지. 불법적인 수단은 그 결과를 보고 고려해 보지.”

불법적인 수단은 바퀴벌레 스파이 로봇을 의미한다. 자주 쓰면 들킬 확률이 높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안 쓰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써야 했다. 비록 그것이 불법인 줄은 알고 있더라고 해도 강현의 양심은 찔리지 않았다. 음모를 꾸미는 것들에게 적법, 합법을 구분해가며 대우해 주고 싶지 않았다.

일단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즈삭은 인터넷의 영역에서 페트 로버튼에 대한 자료를 쭈욱 수집했다. 그의 약력, 그 약력을 기반으로 그의 비공식적인 인맥을 유추해 내고 페트 로버튼의 발언과 이해 관계에 있는 이들까지 유추해 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보수? 우익? 참...”

페트 로버튼의 입장을 옹호하는 인사들이 대거 공화당에 집결해 있었다.

“이상하다. 세이브를 안 했나?”

자정주의 세력을 일으키고 자정주의 물결로 이상한 생각을 하는 이들을 대충 거르고 경고의 의미도 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덕분에 공화당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지금은 지지율이 민주당과 업치락 뒷치락 하는 등 발언력이 강해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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