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96화 (96/241)

96화

<10-실망>

덕분에 참관인들은 강현에게서 신 통일장 이론의 일부와 복잡한 수식을 일부 이해하는 행운을 누렸고 이는 나중에 그들이 신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

강현이 자신이 파악한 부분까지 설명을 해주고 나서 이들은 서로 이론과 가설에 대해서 토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각자가 있던 연구소의 이름난 재원들이라 강현으로서도 가설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얻을 수가 있었다.

“가설에 의해서 운동에너지를 전자기파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결국에는 각 에너지가 존재하는 차원이 가진 밀도차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면..”

“.... 일반적 시공간에 있는 운동에너지의 정체는 중력장처럼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파동으로 해석할 수...”

“.. 입자는 결국 파동이고 파동이 곧 입자라면 실존하는 것은 결국에는 공간을 지나는 에너지의 잔상에 불과할..”

강현은 물론 참관인에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토론이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철학의 영역을 넘볼 정도로 심도가 깊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원자가 가진 부피의 99.99%가 허공이고 극히 일부의 부피만 전자와 원자핵이 차지한다는 물리적 진실을 두고 이렇게 비유한 것이 있다.

공즉시색 색즉시공(色卽是空 空卽是色)문자 그대도 해석한다면 존재는 곧 비어있는 것이고 비어있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인체의 99.99%가 사실은 비어있는 진공이라는 사실과 이 문장을 동시에 떠올리면 굉장히 신비롭지 않은가? 99.99%가 허공임에도 물질은 존재하고 인간은 생각한다. 단지 전자기적인 반발력으로 구성된 입자들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말이다.

물론 제대로 불교적으로 해석한다면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말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깊게 파고 들어갈 수록 모호해지고 어려워진다.

한문의 의미만 따지자면 공(空)은 비어있다는 의미다. 무(無)와 다르다. 비어있다는 것.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無)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비어있다는 것은 예전에 그 곳이 차있었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어떤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어떤 것으로 다시 가득 찰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존재의 실존을 증거하는 것이 비어있는 공간, 공(空)의 의미였다.

때문에 양자역학을 알고 있다면 더욱 저 문장이 와 닿는다. 양자역학에서 진공은 진공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소립자와 그 대칭이 되는 소립자가 탄생하고 쌍소멸하는 공간이다. 즉, 진공은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너지로 가득 찬 공간이라는 말이다.

공간에 가득 찬 그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존한다. 왜냐면 모든 물질, 에너지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이중성, 전자의 산란 실험, 운동량을 가진 물체의 물질파 등 입자는 곧 파동이라는 예는 너무나 많고 파동은 공간을 채우는 속성을 가지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양자역학에서는 물질 속을 지나는 음파나, 금속의 전자구름의 진동 따위를 포논이나 플라스몬이라는 이름을 붙여 양자화된 입자로 다루고 있었다. 이는 어떤 파동이라도 양자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파동과 입자가 결국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초끈이론이나, M 이론 역시 진동하는 끈, 진동하는 막이 곧 물질을 이룬다는 아이디어를 이용하므로 파동이 곧 실존이라는 것을 전제했다.

강현이 토론하면서 느꼈던 신기한 점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말이 이렇게 물리학에 잘 어울릴까?

사실 천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원자론도 과거 그리스 시절에 누군가가 주장했던 것이다. 갈릴레오 이전에 이미 지동설을 주장했던 이가 있었으며 당장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도 아인슈타인이 생각했던 것이다.

과학의 수준이 고도화 될 수록 그 개념적인 부분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철학이나 사상의 개념과 상당히 닮아갔다. 한 예로 과학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칭성의 경우 동양의 음양론으로 간단히 비유할 수 있었다. 어느 곳 어느 시간에서나 물리 법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보편성, 그리고 입자가 생길 때 그 반입자가 생긴다는 대칭성은 음양론에서 음(陰)과 양(陽)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반복적인 닮음이 존재한다. 프랙탈 이론처럼 세상을 관찰하는 프레임의 크기만 잘 조절하면 비슷한 원리가 서로 그 스케일이나 속성이 다른 곳에서도 적용된다는 사례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 극단적인 예로 인과관계와 논리로 쌓아 올려진 수학이란 세계의 법칙이 실제 세계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강현은 작업이 마무리되는 약 이틀의 시간 동안, 쉬는 시간에 이 똑똑한 재원들과의 토론을 계속했다. 그것은 그에게도 휴가를 쓰면서까지 참관인으로 참석했던 이들에게도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강현으로서는 제시의 사망 이후, 그리고 아즈삭의 개발을 위해 NASA의 컴퓨터 개발부를 들락거렸던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간과 인간과의 교류였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관심사가 같았기 때문이었지만, 고작 그 뿐이었지만 그것 만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인간은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교류할 뿐이다.

[작업 완료되었습니다. 각종 센서의 지표를 확인한 결과 잔류 방사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렬한 방사능의 방출이 끝나고 나서 각종 지표가 통상치를 기록했지만 강현은 김치국부터 마시지는 않았다. 혹시나 남은 잔류 방사능이 있는지 확인 시켰다.

“HA 시리즈에게 가우스 측정기를 들려서 원자로 건물 내부와 외부를 샅샅이 훑어봐.”

탐색 결과, 약간 방사능이 높은 지점들이 발견되어 시료를 측정하고 정밀한 분석기를 이용해 어떤 종류의 방사능 물질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래야 다시 반감기 가속 장치를 이용할 때 전체 과정을 반복하지 않고 해당 물질의 붕괴만을 가속시키는 중성미자를 방출시켜 장치를 가동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이는 장치 자체의 감가상각과 운영 메뉴얼 작성을 위한 것으로 차후 장치를 상용화 할 때 필요한 것이었다.

왜냐면 반감기 가속 장치는 매우 비싼 장치였고 잡아먹는 전력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가동되는 시간 동안 원자력 발전소에서 원자로 노심 하나가 생산하는 정도의 전력을 잡아먹기 때문에 지금 스리마일 섬 인근 지역에서는 순환 정전을 실시하고 있을 정도였다.

주민들에게는 불편한 일이지만 불편함을 감수할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왜냐면 파괴된 노심의 방사능을 완전히 처리했다는 희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원자로 사고로 폐쇄된 스리마일의 정상적인 다른 원전의 재가동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역에 많은 이점을 준다. 일단 전기를 공급하는 지역으로서 각종 혜택을 기대할 수 있었으며 원자로 운영을 위한 정부예산과 지원등이 지역 경제를 살찌울 것이다. 또한 전기료가 싸져서 각종 기업들이 입주해 올 가능성 역시 있었다.

역시나 가장 큰 이점은 원전 사고 지역이라는 이미지로 덧씌워진 ‘위험지역’이라는 인식을 벗어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방사능의 위협에서 벗어나다!]

가장 강력한 농도의 방사능을 가진 파괴된 원자로를 처리했으니 언론에서 날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확실하게 방사능 처리 능력이 검증되었으니 미 정부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는 빨리 팔아 달라고, 아니 만드는 것은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라이센스만이라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중에는 우크라이나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소련 연방 중 하나로 그 유명한 체르노빌이 있는 곳이었다.

“체르노빌이요?”

“그렇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물이 아닌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했고 또한 그 때문에 현재의 원전들 중에 더 이상 흑연 감속재를 사용하는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서 체르노빌 원전 인근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으며 1미터가 넘는 돌연변이 지렁이가 존재하고 아직까지 잔존된 방사능으로 인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되어 있었다.

그런 광대한 지역에 대한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해달라고 우크라이나에서 요청이 왔던 것이다.

“흐음. 한 번 해야 하기는 해야겠는데.. 저는 다른 연구를 시작해서요 직접 가기는 힘드네요.”

“괜찮습니다. 장비의 사용 허가만 해주신다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강현의 허락이 떨어져도 정부에서 나온 사람은 돌아가지 않았다.

“저...”

“왜요?”

“그 HA 시리즈를 빌릴 수 있겠습니까?”

방사능 지대에 들어가고 싶은 인간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는 최적의 도구였다. 이족보행을 이용해 캐터펄트를 단 로봇보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빌려주는 건 괜찮지만 각종 기자재를 옮기기 위한 제어를 위해서는 적어도 아즈락 정도의 인공지능은 필요할 텐데요.”

“에~. 그러니까 그 아즈삭도 같이..”

“그건 힘들겠는데요..”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아즈삭이 하는 일도 있고, 그리고 거기까지 통신망이 원활하지 못해요. 그러니 아즈삭이 HA 시리즈를 통제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죠.”

“그렇습니까? 혹시 좋은 방법이 없을 까요?

“소프트웨어를 드릴테니까, 모빌 아머 전술기 타입에 사용해 보세요. 아마 K 시리즈라면 가능할 겁니다.”

HA 시리즈와 K 시리즈의 차이점은 골격의 크기와 인공 근육의 양에 있었다. CNC 장갑을 착용하고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출력과 그 출력을 버틸 수 있도록 더 굵고 튼튼한 합금 뼈대가 도입되었다.

그 외의 차이점은 없다. HA 시리즈는 K 시리즈의 모태가 되었고 K 시리즈는 HA 시리즈의 개량을 위한 프로토 타입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출력과 야전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K시리즈는 연료전지를 추가로 장비하고 있다는 것 정도?

“감사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것으로 다시 한 번 미국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었다.

“아, 참! 체르노빌에서 나온 데이터는 저도 주셔야 합니다.”

대규모 면적의 방사능 제거 작업은 체르노빌이 처음이니 개발자로서 그 데이터가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당연히 드려야죠.”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강현이 지금까지 미국에 기여한 것을 생각하면 전략 물자에 대한 데이터까지 줘보자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럼, 용건은 여기까진가요?”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강현의 반감기 가속 장치가 공중 수송으로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이를 운용하기 위해서, 또한 조립하기 위해서 스리마일 섬 방사능 제거 실험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인원이 동원되었다. 반감기 가속 장치를 만든 외주업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CNC 대신 방사능 방호복을 착용시킨 K 시리즈 운용팀과 현지 특수 건설 기업이 추가로 참가했다.

체르노빌의 방사능을 처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오염지역이 너무 넓었다. 거기에다가 당시 사고가 일어났던 4호기안에 그때 있었던 연료 95%가 남아있었고 그 양은 약 4 톤 가량이라고 한다.

============================ 작품 후기 ============================

아직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완결로 가는 길이 완전히 보이지 않아요. 매일 두 편 연재는 아무래도 힘들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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