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95화 (95/241)

95화

‘......’

그리하여 외주 업체의 직원들은 로봇의 감시, 아니 관찰을 받으며 장치를 분해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인간처럼 움직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의 얼굴에 붙은 투명한 렌즈가 자신들을 관찰하는 것이 꼭 감시당하는 느낌이었다. HA가 각 기에 할당된 인원들의 분해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서 몸을 수그리거나 허리를 굽히거가 고개를 들이밀기도(‘히익!’이라고 비명을 지른 직원 때문에 한동안 웃음바다가 되었다.) 했기 때문에 기분이 아주 묘했다.

‘햐~! 이것이 닥터 강의 퀄리티구나.’

인간처럼 자유스럽게 움직이는 안드로이드들 사이에서 작업을 하니 마치 SF소설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말로만 듣던 소문의 물건을 들으니 기분이 요상했다.

제어 컴퓨터의 크기가 세상에 있는 어느 컴퓨터보다 크다고 하던가? 규모만 따지면 최초의 컴퓨터로 불리는 에니악(폭 24m, 높이 약 2.5m, 길이 약 1m, 중량 30ton) 정도라고 한다.(물론 과장이다. 그리고 사실 최초의 전자 컴퓨터는 1937년부터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5년간 개발된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라고 한다.)이런 거대한 제어용 인공 컴퓨터의 존재와 높은 유지비로 인해 경제성이 없어 시판되지 않는 강현의 유명한 발명품이었다. 역시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은 예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분해가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즈삭.”

[작업을 시작합니다.]

분해가 끝나자 강현은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아즈삭과의 원거리 통신을 위한 폰이었다. 회선은 기본적으로 통신망 제공 업체의 것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당 데이터 전송량이 그리 좋지 않았다.

때문에 HA들의 행동은 신중하기 그지 없었다. 자세 제어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도 서로 협동해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경우는 입력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즈삭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새로운 자세제어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했다.

“느려.”

아즈삭이 예상 소요 시간을 6시간으로 본다는 소견을 밝히자 강현이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강현에게도 불가능한 점은 있었다. 근본적으로 정보 통신을 위한 대용량 회선이 없다면 아즈삭이 HA를 이용해 장거리 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한국에서 K시리즈가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땅이 좁아 통신 인프라가 매우 잘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너무 넓었다.

하지만 강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때문에 한 번쯤 통신 기술을 연구해 볼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데이터 전송량을 증가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보처리 기술이지만 수학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그 외에는 투자를 통해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이지만 유지비가 든다.

물론 통신을 위한 대역폭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통신기술로 있었지만 통신을 위한 전파 주파수는 근본적으로 유한한 자원이었다. 전자기파를 통신으로 사용하는 이상, 언젠가는 기술적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것이 강현의 예상이었고 신 통일장 이론의 가능성을 본 이상 전자기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에 미련은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에 어떤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았다. 좀더 신 통일장 이론을 해부하고 분석해서 이해도를 높여야 신통한 수가 나올 것이기에 강현은 불만스러웠지만 6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프로그램 셋팅 완료.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자세 제어 프로그램이 업데이트 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각종 기자재의 설치를 끝냈다. 통신 장비, 가우스 측정기는 물론 정부 연구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연구과정의 데이터를 기록할 각종 광학, 화학적 측정장비가 설치되었고 수시로 HA에 전력을 공급할 어댑터 장치와 케이블이 깔렸다.

강현이 있는 제어실은 많은 14대의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각 디스플레이는 HA가 보내오는 화상 영상을 출력하고 남은 두 대의 디스플레이에는 장치 구동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수치들과 그래프를 출력하도록 되어 있었다.

“톰 씨. 여기에서 직원분들이 각 로봇이 작업을 잘하고 있는지 감독해 주세요.”

“네? 박사님께선 어쩌시려구요?”

“아직 제가 할 일이 없으니 낮잠이나 자려고요.”

아까 낮잠만 6시간을 잔 것도 부족했나? 외주업체측 책임자인 기술부장 톰은 역시 천재는 괴짜구나라는 생각으로 간이 침대쪽을 바라보았다. 사실 미국인은 굉장히 자기주도적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부류들은 지식뿐만 아니라 헬스를 비롯한 각종 운동을 통해 몸을 가꾼다. 비만? 미안하지만 자기관리 능력이 모자란다고 판단되어 각종 취업 활동에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주류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란 것이다. 특히 강현처럼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해도 현장에서 이렇게 대놓고 낮잠을 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주류에 끼기 힘들었다.

그러나 강현에게는 낮잠 역시 창조적인 활동에 속한다. 잠을 자는 시간은 무의식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의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요소를 끄집어내어 해답을 돌출하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케룰레란 과학자가 스스로의 꼬리를 문 뱀 꿈을 꾸고 벤젠의 고리형 분자모양을 생각해낸 것이 가장 유명한 일화다.

다시 말하면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각종 색깔을 보거나 음성을 듣고 어떤 경험을 하는 등 수면이란 가장 활발한 뇌활동이다. 그것은 깨어있는 시간에 학습하거나 직접 경험의 과정에서 뇌가 활동하는 것과 종류가 다른 것일 뿐 분명 활발한 활동이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이 마이크에 대고 잘못되었다고 즉시 말해 주세요. 아즈삭이 바로 수정할 겁니다.”

“아즈삭이요?”

“제가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요. 걔가 HA들을 제어하거든요.”

강현의 말에 톰은 소형 마이크를 받아 들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강현은 간이 침대에 누웠다. 안대를 차고, 푹신한 베개를 베고, 얇은 천을 목까지 덮은 그는 곧 색색 거리면서 잠에 빠졌다.

그가 자는 동안 톰과 부하직원들은 그의 말대로 자신이 맡은 모니터 앞에서 작업 과정을 집중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이거 우리 실업자 되는 거 아냐?”

“....”

누군가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동의했다.

HA 시리즈의 손놀림은 자신들에 비해서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망설임이 없고 머뭇거리지 않았으며 신속하고 정확했다. 몇 년을 같은 일만 반복한 숙련공 같았다.

때문에 외주업체 직원들은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저런 HA가 널리 퍼진다면 자신들이 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HA는 거침없이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 = = = =

삑삑삑.

얼마나 잤을까? 강현은 아즈삭이 설정해둔 알림음을 듣고 부스스 일어났다. 꿈의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잠은 뇌가 활발하게 활동하며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이지만 그 최대 부작용은 꿈꾼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꿈의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인간은 두 배의 경험, 두 배의 시간을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강현이 간이 침대에서 일어나자 스피커에서 아즈삭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사님.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시작하자.”

강현은 누군가 내민 커피 한 잔을 홀짝였다. 카페인은 잠을 쫓는데 유용한 약물이다.

그가 의자에 앉고 어떤 사람들이 그 뒤에 서있거나 아니면 의자를 가져와서 앉았다. 정부 연구 기관에서 이 실험을 참관하기 위해 온 과학자들이었다.

이 실험에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강현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결코 실험에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감기 가속 기술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보안상 문제를 들어 참가를 불허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관대했고 특히 학자라고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더욱 관대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부류에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고 강현에게 수작질을 부렸던 제이먼 옐리가 별다른 일을 겪지 않은 것 또한 그의 학자적 기질이 강현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논문을 끄적거려 발표했다고 해도 다 같은 학자는 아니었다. 그 중에는 분명 돈과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논문을 발표하는 인간도 있었기 때문에 강현은 어디어디 교수, 어디어디 연구소장이라는 직책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할 뿐이었다.

[플라즈마 생성 시작. 플라즈마 유지를 위한 전기펄스를 주입합니다.]

플라즈마의 온도를 올리면서 벽에 부딪히는 시간 간격을 최대한으로 늘리는 조율된 주파수가 주입되었다. 기본적인 원리는 베타 붕괴 장치와 거의 동일했다. 다만 온도와 주입되는 레이저의 주파수가 다를 뿐이었다.

레이저는 펄스파의 형태로 조사되는데 그것은 순간적인 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차피 지속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양성자가 부딪힐 때 필요한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를 뿜어낼 정도면 되기 때문이었다.

[레이저 예열 완료. 인공 붕괴 시작.]

플라즈마의 온도가 지속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파괴된 노심을 식히는 냉각장치의 가동률을 더욱 올렸다. 반감기의 가속으로 인한 발열을 고려해서 냉각을 관리하는 관리실에 미리 말을 해둔 상태였다.

“오오!”

참관인들을 가우스 측정기의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들로서도 핵분열이나 핵융합이 아닌 반응에서의 방사능 수치 증가가 의미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상 소요 시간 54시간. 박사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즈삭의 물음은 이대로 계속 대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것인가의 물음이었다. 데이터 수집은 아즈삭이 알아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동안 강현은 여유롭기 때문이다.

“그럼 그동안 방정식이나 풀자. 아즈삭 통일장 방정식 출력.”

강현은 테블릿 PC와 테블릿 펜을 꺼냈다. 필기감은 종이보다 떨어지지만 아즈삭과 협동해 수식 풀이 과정의 오류나 실수를 그때그때 잡아내기 쉬웠다.

[통일장 방정식을 출력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열에너지의 조절을 이용해서....”

“... 그에 따른 응용 방법은...”

강현은 옆의 과학자들이 토론하는 와중에도 자신은 공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공식을 해체하고 변형하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가 고개를 드니 한참 토론을 하던 연구원들이 일제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신 통일장 이론에 대해서 궁금해서요.”

“아, 그거요?”

그들은 혹시나 강현의 집중을 방해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나 걱정 했지만 강현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질문에 답했다.

통일장 방정식의 개요는 파견 나온 연구원들도 대충은 알고 있었기에 강현은 자신이 모르는 것 이외에 확실하게 검증된 부분과 가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또한 이번 베타 붕괴를 인위적으로 일으킨 이론적 수식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평소라면 논문을 읽고 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서비스는 하지 않았겠지만 기술 언론에 발표된 반면에(NASA 측의 강력한 애원으로) 아직 그 원리를 수식으로 해석한 확실한 논문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해 주기 위해서 큰 선심을 쓴것이다.

============================ 작품 후기 ============================

며칠 쉬어볼까 합니다. 뭐랄까.. 앞이 안보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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