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물론 강현이 만든 레드 솔라셀과 석유 제조 시설로 인해서 부담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원자력 발전을 한다면 더 싸게 풍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좋다. 정권 차원 입장에서 지금 쌓여있는 막대한 핵 폐기물들을 완벽하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국민들의 지지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국가가 주도적으로 강현과 그의 발명품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실용화해 방사능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 미국 정부의 태도는 강현으로서도 손해가 없었다. 실제로 실험실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의 사용 데이터는 그에게도 탐나는 것이었다.
정부의 이익과 강현의 이익이 합치하는 일이니 강현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Welcome! Dr. Kang!]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던 스리마일 섬 인근의 주민들은 강현과 반감기 가속기를 열렬하게 맞이했다.
인명피해는 전무, 기껏 흉부 X레이를 두 세번 쪼였을 정도의 방사능이 세어 나왔을 뿐이라 사고 이후에도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살았다. 핵반대론자들은 그런 그들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사람들과 정부에 원자력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매년 사고 있었던 3월 28일 새벽 반핵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그리 먹혀들지 않았다.
사실 사건 이후 미국의 수습은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각종 암 발생 지표는 미국 전역과 스리마일 섬 주변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냉각탑 네 개가 수증기를 뿜어대면서 여전히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지 관리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방사능 누출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냉각탑을 가동하는데 예산이 쓰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미국 정부가 예산을 들이면서 방사능 문제를 확실하게 제어하고 있었지만 그 이미지가 문제였다. 방사능 사고가 일어났던 지역이라는 이미지는 지역 발전에 강력한 마이너스 요소였다. 또한 어느 학자도 원자로 사고에 대해서 100% 안전할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으며 그것은 확률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일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99.9999%라고 해도 그 확률이 날이 바뀔 때마다 매번 곱해져 가면(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각 날짜의 확률을 서로 곱해야 한다.) 결국 0에 수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한번이라도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무한대. 다시 말하면 원전의 존재로 인한 부정적 영향의 기대값 또한 무한대(사고 발생 확률X무한대의 피해)이기 때문에 원전 사고 지역이라는 스리마일 섬의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때문에 마을에서 떠나는 사람은 있어도 이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때문에 강현의 발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설사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사고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는 원자로 사고가 발생했을 시의 손해에 대한 기대값을 무한대에서 유한대로 줄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강현의 발명품을 사고 원전에서 시험한다는 사실에 반대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흔히 기술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이들로 지금 와서 안정되게 관리되고 있는 사고 원전에 수작질을 부리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을 부른다는 논리를 펴고 실험장비를 싫은 트럭이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위를 벌렸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저지 당했다. 그럼 뭘 어쩌자는 건가? 세금만 낭비하는 저 냉각탑을 녹은 핵연료봉의 방사능이 자연적으로 사라지도록 계속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면서 운영하자는 건가? 계속 스리마일 섬이 원전 사고 방사능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라는 말인가?
지역 주민들에게 이들 소위 환경 단체라고 불리는 이들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원전의 위험성은 그들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년 사고가 났을 때마다 퍼포먼스를 벌여 스리마일 섬에다가 원전 사고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씌우지 않나, 지금처럼 강현 박사가 기상천외한 발명품으로 골칫거리인 방사능을 해결해주겠다고 하는데 훼방을 놓지 않나, 하는 일마다 밉상이었다.
딱히 실감할 만한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주장만 주구장창 외치는 반핵주의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지역주민은 없었다. 막말로 저들은 사고가 나면 도망가면 되지만 고향과 가족이 여기에 있는 지역주민에게는 그저 원전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환경단체보다 그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라고하는 강현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하여 지역 주민이 반핵주의자들과 맞섰다. 피켓을 들고 원전이 있는 섬으로 향하는 다리를 막아섰던 시위대들은 몰려드는 지역 주민들의 흉흉한 기세에 당황했다.
“Hey! Get out of here!”
오고가는 고함 속에서 지역주민들 중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고 그에 발끈한 시위대의 누군가가 뭐라고 대답하자 분위기가 점점 나빠졌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정보부 요원들이 재빨리 시 당국에 연락해 파견된 경찰들로 지역 주민과 시위대의 사이를 갈라 놓지 않았다면 난투극이 일어났을 것이다. 강현 같은 VIP인사를 경호하기 위해서 정부 요원들이 파견된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게 갈라선 공간 사이로 커다란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 7대가 마치 개선장군처럼 지나갔다. 시위대들은 그 트럭의 움직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처다보는 동네 주민들의 시선과 기세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인가요?”
트럭 조수석에 앉아있던 강현이 물었다. 그는 굳이 승용차를 타지 않았다. 트럭을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한 번 타보고 싶었던 것이다. 덕분에 정보부 요원인 캄부는 팔자에 없던 트럭 운전을 했다. 마침 트럭 운전에 대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던 가용한 현장 요원이 자신밖에 없었던 것이다.
캄부는 강현의 물음에 잠시 귀의 이어폰을 누르고 누군가와 몇 마디를 주고 받더니 강현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반핵주의자들의 반대 시위와 지역 주민들간의 대치 상황입니다. 반핵주의자들은 박사님의 발명을 여기에서 실험하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지역 주민들은 딱히 대안도 없이 불안감을 조정하는 반핵주의자들에게 반감을 가진 상태입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과학은 편리함을 주는 대신 수많은 문제점을 만들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치 모든 물리 법칙에는 반작용이라는 것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그로 인한 문제점은 항상 생겨왔다. 스마트 폰만 봐도 그렇다. 스마트 폰에 빠진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서로 마주하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농약,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총, 극단적으로 원자력 기술로 만들어진 핵폭탄까지.
강현 역시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누구나 놀랄만한 성과를 세워오고 있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기술 만능주의자는 아니었다. 다만 문제 해결에 대해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과학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신을 반대하며 다리를 막아섰던 저들도 계몽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 뿐이었다.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저들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태가 온다면 저런 계몽가들에 의한 사회 전체적인 노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철컹.
출입금지라고 쓰인 푯말이 붙어있던 철망이 열리자 강현은 상념을 접었다. 트럭이 다리를 지나기 시작한 것이다. 트럭이 다리 위를 천천히 달리자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는 네 개의 냉각탑이 완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쯤이 딱 좋겠네요.”
강현은 트럭을 다리를 건너자마자 멈춰 세웠다. 여기에 실험 관제를 위한 각종 컨트롤 장비를 설치하고 원자로 내부에는 HA 안드로이드를 진입시킬 작정이었다. 여기에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원자로 내부의 방사능 농도는 통상치의 천 배가 넘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집어넣는담...”
일단 진입하여 장치를 설치할 인력은 안드로이드를 이용한다고 해도 문제는 컨테이너 하나를 다 차지할 정도의 크기를 가진 반감기 가속 장치였다. 그 동안의 보강공사를 통해 두터워진 특수 콘크리트벽을 뚫은 방법은 무모하고 방사능 유출 가능성으로 인해서 고려 대상도 되지 못했다.
노후 원자로의 교체를 위해서 만들어 둔 원자로 폐기용 통로를 이용한다면 손쉬웠겠지만 막상 와보니 그 통로 역시 막혀있었다. 이미 망한 원자로라 약간의 방사능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통로마저 납을 씌우고 콘크리트를 발라 막아버린 것이다.
“저, 저기 박사님. 죄, 죄송합니다.”
정부에서 나온 책임자는 의외의 사태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원자로 폐기용 통로가 저렇게 처리되어 있다는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대로는 반감기 가속 장치가 현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강현 박사를 헛걸음하게 하거나 아니면 건축장비나 건설, 건축 전문가 등 새로운 추가 지원을 받을 때까지 강현 박사를 대기시켜야 했다. 그러니 정부측 책임자가 안절부절하며 강현에게 어떤 사과의 말을 할지 고르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강현은 정부측 책임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정부측 준비가 미흡했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해서 죄송하고 재빨리 상부에 연락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은 이미 강현의 머리속에서 없었다. 담당자에게 책임 추궁을 하겠다는 지엽적인 문제 역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서만 사고하고 있었다. 어떤 문제를 인지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공학적으로 사고하는 조건반사이자 일종의 직업병인 것이다.
“할 수 없지 역시 분해하는 수 밖에.”
강현은 함께 온 외주업체 직원들에게 장치를 분해해서 집어넣는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장치의 잔고장에 대비해서 왔던 직원들은 강현의 말에 아현실색했다. 분해해서 집어넣는다면 다시 조립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자신들이 방호복을 입고 통상 방사능치의 천배가 넘는 저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기껏 자신들이 불려온 이유는 그냥 장치에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에 대한 조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치도 못하게 방사능 환경에서 작업해야할 판이었다. 당연히 이는 계약 위반이었고 화가 난 외주업체측 책입자는 강현의 대답여하에 따라서 즉시 돌아갈 생각도 했다.
“분해는 그쪽이 하구요, 조립은 안드로이드들이 할 거에요.”
무거운 반감기 가속 장치를 방사능이 있는 건물 내부로 옮기기 위해서 총 12대의 HA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 외주 업체측의 직원은 9명이었기에 그들이 장치를 분해하는 과정을 각 HA가 각 직원에게 달라붙어 모두 기록하고, 아즈삭에게 그 데이터를 전송하고 나면 다시 아즈삭의 제어를 받아 조립을 그 역순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