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93화 (93/241)

93화

여기에 더해서 잔류 방사능을 측정할 가우스 측정기부터 광센서, 온도계, 스펙트럼 측정기 등 여러 센서를 설치한 다음 장치를 가동시켰다.

[시료의 온도가 상승합니다. 냉각장치 가동 시작. 방출열량을 측정합니다.]

챔버 내 양성자의 온도와 레이저의 파장 등을 조절하여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운동에너지를 다양하게 조절하기 시작했을 때 어느 순간 반응이 왔다. 특정 조건에서 플루토늄 조각에서 더 많은 열량을 내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붕괴 반응의 가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막대한 방사능이 뿜어지며 가우스 측정기에서 띠리리리릭하고 미친듯이 소리는 했다. 또한 스펙트럼 측정기에서는 헬륨가스의 존재를 확인했고 설치되어있던 물통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을 내면서 체렌코드 봇가가 일어났다. 과학자라면 누구라도 있고 싶은 실험실 환경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강현은 멀리 떨어진 건물에서 원격으로 실험을 실시하고 감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HA 안드로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내 시료에서 열이 뿜어지는 상황은 멈췄다. 다행이 플루토늄이 녹아 증기가 되지 않도록 재빨리 냉각장치를 가동했기 때문에 공기 오염도 극히 적을 것이라고 보았다. 설사 오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반감기 가속이 실증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삑삑삑삑삑삑!

그런데 분명히 반감기 가속이 끝났을 터인데 가우스 계측기가 여전히 삑삑거리고 있었다.

강현은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답을 알아냈다.

“하아! 붕괴경로를 생각 안 했구나!”

높은 원자 번호를 가진 방사선 원소의 붕괴는 한 단계로 끝나지 않는다. 우라늄을 비롯한 방사선 원소들은 각기 알파 붕괴, 베타 붕괴 등을 거쳐 점차 원자 번호와 원자량이 낮아지는 붕괴를 실시하여 최종적으로는 납으로 변한다.

납이라는 물질은 원소번호가 82로 원자번호가 26인 철보다 원자량이 무척이나 높지만 그 방사성 동위원소가 자연적으로 붕괴하지 않는 안정원소로 분류되며 그 중 가장 원자번호가 높은 물질이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구조가 매우 안정하다는 뜻이다.

이는 에너지적으로 준 안정상태로 분석할 수 있으며 다시 붕괴해 가장 낮은 핵 에너지 준위인 철이 되려면 많은 활성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방사선 원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보다 작은 원자 번호를 가진 방사성 원소로 차츰 붕괴하다가 최종적으로는 납이나 납의 방사선 동위원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전히 가우스 측정기가 삑삑 소리를 내는 이유는 플루토늄이 붕괴해서 생긴 방사성 원소가 남아있다는 의미였고 이는 다시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차근차근 가우스 계측기가 조용해 질 때까지 실험을 하니 어느 새 날이 밝아오고 잠이 몰려왔다.

[박사님. 깨어있으닌지 벌서 30시간 째입니다. 이제 그만 주무시죠. 이미 실험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잘 시간이 되어서 아즈삭이 수면을 권했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여기까지 온 강현은 이번 제안에는 그럴까? 하면서 한 쪽에 비치된 간이 침대에 씻지도 않고 엎드렸다. 그리고는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즈삭을 실험 결과를 마무리 하면서 그런 강현의 모습이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인간이 타인에게 느끼는 이타적인 감성과는 달랐다. 강현이 건강을 해친다면 자신의 존재 목적이 훼손이 되기 때문에 발생한 생각이었다.

아즈삭은 강현을 내조해 줄 사람에 대한 필요성을 강력하게 실감했다. 과거 제시가 있었을 경우에는 이런 경우 귀를 잡아 당겨서라도 건강을 챙기도록 했겠지만 제시가 없으니 강현의 생활이 점차 절제를 잃어갔다.

타인이 보기에는 그것은 열렬하게 연구에 열정을 바치는 모습이지만 아즈삭이 이해하기로는 평범한 남자가 마음대로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놀고 문란한 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즐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강현에게 최고의 유희는 바로 연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시라는 보호자가 없으니 강현의 생활에 점차 절제가 없어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아즈삭은 그 이유가 제시를 잃은 상실감을 연구 활동으로 보상하기 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차츰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일종의 중독 현상으로 이해한 것이다. 중독 현상이란 무엇에 강하게 집착하는 행동패턴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므로 연구에 집착하며 건강을 해칠 정도인 강현의 현재 상황을 그렇게 해석했다.

그에게는 내조해 줄 여자가 필요했다. 적어도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가 필요했다.

그 동안 축적한 많은 인문학적 데이터를 통해서 창조주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보았을 때 강현은 너무나 극단에 몰려있었다. 잠시라도 발을 삐끗하면 망가지기 쉬울 것 같았다.

강현은 지속적 연구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즈삭은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참하고 이쁜 처자의 물색부터였다. 샐리? 미안하지만 정부의 입김이 닿아있는 그녀는(심지어 스스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해도) 아즈삭의 고려 대상에서 처음부터 제외되었다. 샐리의 지적능력은 또래 여성에 비해서 매우 뛰어나지만 아즈삭은 강현의 여자가 되어줄 여성들은 지적능력보다는 감성적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강현을 보듬고 품어줄 여자가 딱 제격이었다. 흔히들 공대 출신이 예술계 출신에게 끌린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은 이성적 사고만 하는 생활로 인해 감성이 부족한 이공계열이 자신에게 부족한 감성을 채우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항상 갈구하는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흐아암! 아즈삭, 실험은 끝났어?”

한 숨, 푹 자고 일어난 강현은 힘차게 기지개를 켜며 아즈삭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도 모르는 채, 일어나자 마자 물었다.

[납과 그 납의 동위 원소를 확인했습니다.]

이미 강현이 잠들어 있는 동안 방사능 수치가 통상치로 돌아갔고 아즈삭은 생성된 물질의 불꽃 반응을 스펙스럼을 이용해 분석, 어떤 원소가 생성되었는지 확인했다. 불꽃 반응은 고등학생도 배우는 것으로 각각의 원소가 가열될 때 고유의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를 내뿜는 현상이다. 이런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각 원소가 가진 전자 껍질의 구조와 전자 에너지 준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쩝. 편하기는 한데 좀 기분이 그렇네.”

강현은 아즈삭이 실험 과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는 말에 시원섭섭했다. 그것은 새로운 기술의 실현과, 자신의 이론의 검증, 실용화에 대한 흥분을 졸려서 제대로 맛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너무 편하게 연구를 하나?”

[네, 그렇습니다.]

아즈삭은 긍정했다. 사실 강현의 연구 과정은 일반적인 과학자들이 보았다면 침을 흘릴 정도로 편했다. 실험하기가 예산이 많이 드는 경우에는 아즈삭을 통한 시뮬레이션으로 가장 적절한 방향성을 찾아낼 수가 있었고 실험 데이터의 기본적 분석, 관리는 물론 HA 안드로이드를 이용한 각종 잡무 등등. 강현은 할 수 있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고 편하게 누워서 연구를 위한 생각만 할 수 있었다.

이런 강현의 실태를 알고 있는 NASA의 연구원들은 강현처럼 편하게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커다란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예산. 대학 교수, 일반 연구소의 연구원은 물론 모든 연구자들의 걸림돌이 바로 예산이란 놈이었다. 기술 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이제는 과거의 에디슨이나 테슬라처럼 집에서 뚝딱 발명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뛰어난 머리가 모이고 비싼 연구 자재들과 지원이 있어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 면에서 강현은 전혀 걸림돌이 없었다. 석유 제조 기술, IAPP 점탄성 물질 기술, CNT 섬유 제조 기술, 인공 거미줄 단백질 특허 등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뿐인가? 미국에서 전략 물자로 지정한 CNC 장갑, 그리고 HA 안드로이드 자세 제어 데이터로 만든 모빌 아머에 전투형 안드로이드인 K 시리즈까지. 강현이 벌어들이는 돈은 정말로 엄청났다.

그래서 NASA에 매달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아즈삭의 유지비를 혼자서 감당하며 사비를 들여 연구 장비를 제작하고 만들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과학자였다.

때문에 채산성, 경제성, 미래성 등등 온갖 핑계로 예산을 삭감하는 당국과 상부와 지겹게 입씨름할 이유 역시 전혀 없었으며 그로인해 연구 주제를 제한 당할 이유 역시 전혀 없었다.

강현은 오직 법규만 잘 지키면 자신이 원하는 어떤 연구 주제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자였고 이는 모든 연구인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했다.

그러나 이런 축복받은 환경을 혼자만 누린다는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강현이었다. 그 영역은 과학적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개인과 타인이 속한 사회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일종의 긴장이었다.

튀어나온 못은 망치를 맞는다. 주머니에서 삐죽하게 빠져나온 송곳은 타인의 우려, 혹은 두려움을 산다. 강현은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무의식적인 사고력은 사회로부터의 고립과 경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박사님께서 능력이 있으시니 편하게 연구를 하실 수 있으신 겁니다.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즈삭은 그런 강현의 속은 몰랐다. 그래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강현이 누리고 있는 것은 온전히 그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비난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아즈삭은 강현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언제든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그 부당한 대우의 기준이 강현의 자유로운 연구 생활이라는 점이었다.

“그럼 됐고. 그건 그렇고 이걸 뭐라고 이름붙일까? 그냥 중성미자 방출장치라고 할까? 아니면 반감기 가속 장치라고 할까?”

[박사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리하여 강현이 만든 장치의 이름은 반감기 가속 장치가 되었고 발표되자마자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모든 국가에서 제발 팔아 달라고 문의를 했다. 그중 역시 가장 빨랐던 것은 강현이 몸담고 있는 미국이었다.

“아직 안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는데요?”

“반감기를 가속할 때 나오는 막대한 방사능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그럴 수록 실사용으로 인한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미국에서는 이미 한번 방사능 유출 사고가 있었다. 1979년 스리마일 섬 유출 사고라고 열교환기의 고장과 냉각장치의 운영 미숙으로 인해 원자로까지 파괴된 사고였다.

다행이 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문제점을 알아내고 냉각펌프를 가동해 큰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한 10만명이나 되는 주민들의 대피 소동으로 인해 미국내 반핵 운동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고 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당시 미 대통령의 선언까지 불러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이후로는 새로운 핵발전소가 세워지지 않았다. 계획도 되지 않았다. 스리마일 섬 유출 사고 이후 러시아의 그 유명한 체르노빌 사고가 있은 이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전력 생산 시설을 짓는 것을 멈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을 가져왔다. 풍력이나 태양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단가가 비싸다. 설치한 발전 장치의 감가 상각을 생각해도 비싸다. 그래서 화력 발전을 애용하고 있는 미국이었지만 강현이 등장하기전에만 해도 해마다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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