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그러니까 박사님께서 레이저를 사용하신 방법을 이용하면 어찌 되지 않을까요?”
“제가 레이저를 이용한 방법은 레이저를 이용한 관성 가둠과는 목적 자체가 달라요. 핵융합에 사용하는 건 무리라니까요.”
강현은 좀 제대로 이해하고 왔으면 했다. 자신이 레이저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간적으로 양성자를 흔들어 필요한 충격량을 생성하기 위해서였다. 동시다발적인 폭발을 일으켜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레이저 빔을 쏘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로 방법이 없겠습니까?”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 만든 베타 붕괴 장치를 핵융합 발전에 응용하겠다면 저는 빼주세요.”
“끄응...”
그의 수긍하지 못하는 태도에 강현은 혀를 찼다. 핵융합은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핵융합을 채산성이 맞도록 가속시키는 기술적 방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는 것이다. 현재 핵융합 반응의 실용화에 대한 분석으로는 최소 1억도의 플라즈마를 가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예측치가 있다.
설사 그런 용기를 만든다고 해도 어떻게 복잡하고 정밀한 기계장치 사이로 열량을 뽑아낼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다. 한 마디로 현재 핵융합 발전의 기술은 아직 그런 기본적인 선행 조건조차 만족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었다.
“사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원자핵끼리가 아니라 원자핵과 중성자의 결합을 이용했다는 그 방법론입니다. 그 방법을 이용한다면 굳이 쿨롱 장벽이 아니더라도 원자핵 수준에서 열량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나쁜 방법은 아닌데요... 제가 베타 붕괴를 일으킬 때에 이미 그 쿨롱 장벽을 넘겼다는 생각은 안해 보셨어요?”
쿨롱 장벽은 핵융합을 위해서 양성자로 인해 양전하를 가지는 원자핵이 정전기적 반발력보다 핵력이 우세해지는 거리까지 가까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말한다. 이 때문에 핵융합 발전에서 양성자가 오직 하나인 수소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원자핵은 양성자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양전하의 크기가 크고 따라서 이 쿨롱 장벽을 넘기 위한 에너지 역시 매우 높다.
따라서 이미 쿨롱 장벽을 넘겨 양성자의 쿼크들을 자극한 강현의 방법 역시 전체적인 과정을 따지면 쿨롱 장벽을 넘기 위해 에너지를 들인 것이다.
“즉, 반응전과 반응 후에 든 에너지만 든다면 기존의 핵융합 공식에 비해서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베타 붕괴 장치를 핵융합으로 사용하는 건 무리에요.”
“그럼 박사님의 신 통일장 이론으로도 상온 핵융합을 실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몰라요.”
“예?”
정부 관계자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했다.
“이번 인공 베타 붕괴 장치는 신 통일장 이론의 공식중의 일부를 이용한 것 뿐이라구요. 아직 전체적으로 이론의 수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론을 이용해 핵융합 발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는 저도 확답할 수가 없어요.”
“박사님께서 만드신 이론인데 박사님께서 이해하실 수 없다니요?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이론 물리학이란 말이죠, 그렇게 편리한 도구가 아니에요. 비유하자면 GPS와 같은 겁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주지만 다음 장소가 어떤 지형인지 가는 방향이 맞는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듯이 하나 하나 차근차근 검증해가는 수 밖에 없어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중력왜곡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설로만 남았겠죠.”
“그럼.. 핵융합 발전에 대한 연구는 언제 하실지..”
“.......”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가자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지자 정부에서 나온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안하니까 가세요.”
“저, 저기 박사님!”
정부 관계자가 연구실로 돌아가는 강현을 불렀지만 강현은 서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말귀 못알아 먹는 사람이 와가지고..”
[공화당 상원의원 한슨의 큰 아들인 맥이라고 합니다. 원래 그 집안이 고집이 세답니다.]
“저게 고집이 센거야?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거지.”
그렇게 설명을 해줬는데 다시 핵융합 연구를 할지 안할지를 물어보는 처음으로 돌아오니 혼백이 빠질 지경이었다. 유체이탈 화법도 이런 유체이탈 화법이 없었다.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박사님. 베타 붕괴 장치로 신 통일장 이론의 일부분을 증명하셨으니 이제는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량적인 예측치를 이용해 베타 붕괴를 인공적으로 일으킨 강현의 논문은 상당한 신빙성을 얻었다. 때문에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 대한 전세계 물리학자들의 관심과 연구에 박차가 가해질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강현이 신 통일장 이론은 발표하고 나서도 물리학계에서 신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는 이들은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양자색역학과 M이론 등 이미 상당히 연구가 진행된 분야를 이용하는 것이 앞으로 더 나가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강현의 논문을 이용한 검증이 일부나마 이루어졌으니 그동안 기존의 학문에서 답을 찾지 못한 물리학자들이 대거 신 통일장 이론으로 눈을 돌릴 상황이 된 것이다.
“고로 나는 좀 놀아도 된다니까.”
머리 아픈 이론 연구는 당분간 남에게 미뤄두고 강현 자신은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가지고 놀 생각을 했다. 사실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구상할 때 그 응용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구상해 둔 바가 있었다.
[핵분열 가속장치입니까?]
“그래. 인공 베타 붕괴 과정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촉매처럼 사용해 핵물질의 붕괴 속도를 가속하는 거야.”
강현이 만든 인공 베타 붕괴 장치는 양성자를 중성자로 바꾸면서 양전자와 중성미자를 배출한다. 이 때 발생하는 양전자는 음전자와 쌍소멸하면서 거의 대부분 감마파로 방사되어 버리고 중성미자는 방출되고 전파되어 가는 과정에서 역시 중성미자 진동이라는 현상을 일으키고는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강현이 만든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이용하면 여기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운동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로나 태양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에너지가 수 MeV라는 것을 생각할때 중성미자의 운동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성미자의 전파속도를 조절해 원자핵의 중력으로 흡수당하게 만드는 거야. 방사선 원소 대부분이 질량이 더 많으니까 중성미자를 흡수할 경향성이 더 크지. 그렇게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되면 핵붕괴에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를 충족시키거나 그 양을 줄여서 반감기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것이 나의 발상이야.”
한 마디로 핵 붕괴 반응의 촉매로 중성미자를 사용하겠다는 것이 강현의 발상이었다.
[그걸 어디에 씁니까?]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 = = = =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물건 거의 모든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일단 원자로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이 사용하고난 방호복, 장갑, 장화는 물론이고 폐연료봉 등이 있다.
이 모든 폐기물은 저준위 폐기물, 중준위 폐기물, 고준위 폐기물로 구분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쓰레기들이 저준위, 중준위로 구분된다. 그러나 폐 연료봉 같은 경우에는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되는데 이 고준위 폐기물이 전체 방사능의 95%를 뿜어댄다. 그렇다고 저준위나 중준위 폐기물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발암을 일으키기 충분할 정도로 방사능을 뿜을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저준위, 중준위 폐기물은 땅속 깊이 묻어 버릴 수 있다. 깊으면 깊을 수록 방사선이 지표상으로 올라올 일이 없기 때문이고 상대적으로 방사선 양이 매우 적다.
그러나 문제는 고준위 방사능 물질이다. 아무리 재처리 기술을 이용해 다시 연료인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뽑아낸다고 해도 초우라늄 폐기물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중성자 흡수재인 붕소를 탄 대형 수조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꼴이다.
똥이라면 어찌어찌 썩어서 거름으로나 쓸 수 있겠지만 반감기가 최소 20년에서 2만 4천년이나 걸리는 초우라늄 원소들은 썩지도 않으니 처리방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리고 기껏 나온 처리 방법이라는 것이 유리화시켜서 역시 방사능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땅속 깊이 묻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처리 방법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이런 방사성 폐기물이 위험한 이유는 딱 한가지. 바로 방사성 물질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반감기가 20년 이상인 물질을 초 우라늄 물질로 선정하고 이 물질에 오염된 모든 것을 특별히 초우라늄 폐기물로 분류해서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이유는 방사선의 강도가 아니라 그 지속성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방사성 요오드의 경우 반감기가 8일에 불과해 1년이면 천조분의 일로 양이 줄어 들어버리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이상의 반감기를 가진 초우라늄 원소들은 방사선 강도가 반으로 줄어들기 위해서 20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니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반감기를 인위적으로 가속시킬 수 있다면 방사선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더욱 유연할 수 있다는 말이지.”
[…. 방금 계산해 보니 박사님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경우 약 10조 달러 가량을 벌어들 일 수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생각보다 싸내?”
[현재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의 재력과 폐기물 처리 시절 운용에 드는 비용을 감안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아즈삭.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어.”
[무엇입니까?]
“안전비용.”
인체에 치명적인 해가 되지만 딱히 처리할 방법이 없는 물질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약값이 비싼 이유는 뭘까? 단지 수요 공급의 원리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거금을 내놓을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강현은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기본 베이스로 해서 중성미자 방출 장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저 양성자를 충돌시키기만 하는 장치와는 더 어려운 기술적 난제가 있었다. 어떻게 내구성이 있으면서 효율적으로 중성미자를 장치 밖으로 뿜어지게 설계를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강현의 이론대로라면 공기중에서 중성미자가 전파되는 거리가 약 1미터에 불과하므로 중성미자 방출 장치는 이동성을 확보해야 했다. 그래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방사선 물질의 반감기를 가속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보다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었다. 각 방사선 원소의 반감기는 다 다르다. 원소의 특성도 다르다. 때문에 반감기를 가속하기 위한 활성화 에너지 역시 다 다르다.
방사선 물질의 처리에 가장 큰 문제인 초 우라늄 원소 모두에 대한 응용이 가능하려면 다양한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가 방출되어야 한다.
때문에 어떤 온도, 어떤 파장의 레이저에서 어떤 에너지의 중성미자가 방출되는지 데이터를 축적해야 했으며 인공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챔버의 크기 역시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면 인공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양성자 플라즈마를 유지하기 위해서 플라즈마가 챔버의 내벽에 부딪히는 일을 최소화 해야 했는데 밀도에 따라서 이런 기체와 같은 거동을 하는 물질들의 평균 자유행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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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슬럼픕니다. 왜이리 슬럼프가 자주 오는지 모르겠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