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88화 (88/241)

88화

이레이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되도록 빨리 해주세요. 세기의 대 발명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웃는 이레이의 속은 부러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도대체 세기의 대발명을 몇 개나 만드는 걸까?

= = = = =

본의 아니게 두 달여간의 휴식을 갖게 된 강현은 느긋하게 앉아 아즈삭을 통해서 인공 베타 붕괴 장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시설이 필요하니까 실험실에서는 무리구나.”

전기장, 자기장 제어장치, 고출력 자외선 레이저 방사장치, 그리고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충분한 부피가 필요한 용기까지 강현의 실험실에서 제작하기에는 그 자체가 크기가 컸고 이를 만들기 위한 시설은 더 컸다.

[제료만 있다면 HA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은 좀 걸릴 듯 합니다.]

“됐어.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는 없지.”

고도의 사회로 갈 수록 분업화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것이 생산성이 향상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좀 볼까?”

아즈삭은 강현의 요구에 세상의 이모저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순서는 기술, 경제, 정치에 이어 사람들의 자세한 생활상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연계되어 있기에 강현이 재미있어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하니 어느 새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석유업계 사람들은 이제 석유를 캐내지 않는다. 석유를 재배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왜냐면 강현이 만든 석유 제조 기술은 물과 햇빛으로 고부가가치인 석유를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물론 석유로 만들기 이전, 연료용 에탈올은 불티나게 팔렸다. 일단 휘발유보다 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은 에탄올용 내연 엔진을 개발하고 전기 모터와 하이브리드를 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에탄올 연료 전지를 이용한 전기 자동차를 만들어 출시하기도 했다.

강현의 무전극 배터리 기술을 응용해 만든 이 에탄올 연료 전지는 극적으로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였는데 이는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기 자동차는 그 출력의 한계로 인해서 서민들이 애용하는 중소형 차량에만 적용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화물차나 트럭 같이 무거운 짐을 싣는 차량은 엔진의 토크가 중요했기 때문에 강력한 폭발력으로 작동하는 내연엔진이 필요했다.

물론 더욱 운송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대형 자동차를 전기 자동차로 만드는 노력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피할 수 없는 대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내연 엔진은 몰락할 것 같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연 엔진이 작동할 때의 그 엔진음. 부우웅하는 그 소리가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 때 도태되어야 하는 물건들은 때로는 사치품이 되어 명맥을 잊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스위스의 정교한 시계다.

태엽장치로 움직이는 이 시계들의 정확성과 내구성, 그리고 가격은 전자 시계와 비교하면 분명히 도태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살아 남게 된 것은 바로 명품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연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는 비록 그 유지비가 전기 자동차 보다 많이 들지라도 고급화 전략을 통해 충분히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단 수요층의 변화만으로 내연 엔진이 살아남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고품질의 자석에 사용되는 원소는 희소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고연비의 전기 자동차가 생산될 수록 모터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어느 순간 모터의 비용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에 들어서게 되면 서민들은 전기 자동차보다 내연 엔진을 이용한 자동차로 다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석유 제조 시설에서 내연 엔진용 연료는 고갈되지 않고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로 석유 제조 시설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담수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강현이 유전자 조작을 한 녹조류는 해조류와 다르기 때문에 해수에서는 살 수가 없다. 때문에 해조류로 강현의 석유 제조용 녹조류를 대체하려는 연구가 있었지만 강현이 유전자 조작 녹조류에 삽입한 유전코드는 이미 강현의 소유였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현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지 않는 것은 바로 담수가 아닌 해수를 이용한 석유 제조는 물 고갈을 해결하면서 담수를 끌어오는데 사용하는 막대한 비용을 해결해 고스란히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비단 자동차 시장, 석유 시장, 물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세상 만사는 연결되어 있기에 이에 동반한 여러가지 정치적인 사항들도 발생했고 갈등 역시 발생했다. 수많은 갈등 중에서 당연 압권은 석유 제조 시설에 공급되는 담수의 양을 놓고 벌어진 중동의 갈등이었다.

건조한 지역이고 농사를 위해서 물을 대야하는데 이 물을 석유를 만드는데 사용해 버리면 농산물의 생산량이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식자재의 비용이 상승하고 그 피해는 서민들이 입게 되는데 이를 빌미로 테러 세력들이 준동을 하고 테러가 일어나고 군대가 투입되고 중동 여기저기가 소란스러웠다.

이에 누군가는 강현을 탓하기도 했지만 한 학자는 물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있었고 강현의 기술은 그에 계기를 마련한 것 뿐이라면서 물부족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는 사회의 탓이라고 강현을 옹호하기도 했다.

사실 물부족에 고통받는 국가는 이미 세계 여기 저기에 널려있었기에 새삼 그 모든 문제를 강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시기심의 발로에 불과했고 강현이 그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없었다.

[여기까지가 석유 제조 기술에 관련된 변화입니다. 다음은 CNT 섬유와 거미줄 단백질에 의한 변화임니다.]

아즈삭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듯이 영상을 틀었다. 꽤 재미있었다.

“CNT 섬유를 이용한 전선이라.. 나쁘지 않지만 산화는 어떻게 해결했지?”

[고전압이 아니라 저전압용으로 사용할 것이라 수요가 꽤 된다고 합니다. 특히 이어폰용 선으로는 없어서 못말 정도라고 합니다.]

CNT 섬유. 탄소의 연속적인 파이 결합으로 전도성을 가지게 된 이 섬유의 전도성은 도체와 맞먹을 정도다. 물론 그 결합 구조의 방향에 따라 전도성이 바뀌기는 하지만 최 박사의 아이디어에서 만든 CNT 섬유는 다양한 결합구조의 CNT들이 무작위적으로 한데 꼬여 있기 때문에 일정한 전기적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CNT섬유는 매우 질기기 때문에 반복적인 구부림에도 결코 끊어지는 법이 없었고 이는 흔들거리고 때로는 잡아당겨지는 이어폰 선에 매우 적격이었다. 아무리 잘만든 구리 합금으로 만든 이어폰 선이라고 해도 반복적인 구부림에는 결국 끊어지기 때문이다.

CNT 섬유의 전도성과 강한 장력으로 인해 특정 분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CNT천에 대한 수요 역시 특수한 분야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일단 질긴 섬유를 요구하는 분야를 제외하고 그 전도성으로 인해서 정전기가 금물인 작업장의 작업복으로 많은 수요가 존재했다.

그리고 기존의 거미줄 단백질 섬유는 그 특유의 매끈한 촉감과 탄성으로 인해서 스타킹에 필수적인 재료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스타킹을 찢는 플레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스타킹을 찢지 못해서 고생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다.

이 거미줄 단백질을 이용하는 IAPP는 이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일단 각국의 방탄복은 물론 헬멧에도 사용되기 시작했고 충격 완충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어떻게든 CNT천을 제단하여 IAPP를 이용한 충격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IAPP에 유기물질을 섞어 점성을 높여서 장난감까지 만드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역시나 특정 유기물질과 혼합해 탄성력을 조절해 초고품질, 고가격의 샌드백을 출시한 회사도 있었다.

이 샌드백은 격투기 선수들에게 매우 각광을 받았는데 일단 샌드백을 치는 것보다 사람을 치는 느낌에 훨씬 가까워서 관절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

[박사님?]

강현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이렇게 사람들의 생활에 속속들이 파고들자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것은 일종의 감동이었다.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누구가 이타적인 면이 있다. 그 이타적인 본성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자각은 매우 보람차고 명예로 인식되는 일이었다.

그 동안 사람들에게 무심했던 강현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자세하게 알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 사회적 위치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었다.

그것은 권력과 자본의 논리가 휘몰아치는 저 위의 세상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곳이 약육강식과 이익논리에 따른 이합집산이 지배하는 곳이라면 지금 강현이 느끼는 것은 고스란이 그 개인적인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개인적인 감동을 느끼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그 곳에서는 세계의 파워 밸런스나, 자신을 탐내는 누군가의 시선을 대비하거나, 차후의 일을 위해서 응징하거나 하는 일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느끼고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네. 내가 개발한 기술이 이렇게나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니 말이야.”

[어떤 기분인지 해석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세상에 필요한 인간이라는 감상이지.”

[영향력을 뜻하시는 건가요?]

타인이 자신의 능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그 타인에게 자신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수요의 원리가 적용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요구할 수록 자신은 좀더 귀한 몸이 되고 영향력은 좀 더 증대 된다.

“영향력? 아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하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냉철한 이성으로 사고하는 아즈삭에게 강현 자신이 방금 느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건 타인과 상관없는 거야. 그저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하지.”

사람은 상호작용을 한다. 하지만 그만큼 홀로 존재한다. 그 이유는 개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상호작용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존감없는 존재를 형성한다.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삶은 없다. 사회가 요구하는 삶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개성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때문에 과도한 사회화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과도한 개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웃나라 일본의 히키코모리, 오타쿠같은 문화 현상은 개인에게 규격화된 삶을 강제하는 사회에 대한 반동이다.

“예를 들면 이런거야. 너의 존재 이유는 내 연구를 보조하는 것이지?”

[네, 그렇습니다.]

“잘 보조했을 경우에는 논리 회로에 부담이 적지만 잘 보조하지 못했다고 판단되었을 경우에는 부담이 많이 가지?”

[네, 그렇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적 기여에 관한 욕구가 있을 수 밖에 없어. 그런 욕구는 단순한 이타심, 동정심, 명예욕 등으로 나타날 수가 있고 지금 나의 경우에는 보람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이해했습니다.]

본능, 혹은 욕구의 충족은 그 존재 이유를 만족한다. 그 상황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 행위를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며 생명활동의 시발점이 된다. 이는 이성이 본능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강현의 지능이론에 따르면 매우 당연한 현상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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