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자연계에 나타나는 4가지 힘. 중력, 전자기력, 핵력, 약력은 서로 독립적인가?
강현의 논문에서는 그렇다고 하지만 단 몇 가지 조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붕괴 현상.
중성자가 붕괴되어 양성자와 전자를 뱉어내는 붕괴는 이미 존재한다. 핵물리학에서는 이미 중성자가 양성자와 전자를 뱉어내는 음의 베타붕괴, 양성자가 붕괴되어 중성자와 양전자를 뱉어내는 양의 베타 붕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놓았다.
각각의 방법은 반중성미자와 중성미자를 발출하는데 이 둘은 질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기적으로는 중성을 가지고 있다.
즉, 전혀 다른 형태의 붕괴지만 그 본질은 중성자와 양성자가 가진 잉여 에너지의 방출을 의미한다. 에너지는 곧 질량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중성자와 양성자가 딱딱한 구형이 아니며 말랑말랑한 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 않으면 잉여된 에너지를 품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서 이 붕괴현상은 약력장(場)이 중력장과 전자기장으로 변한 것으로 대치할 수 있었다.
“흐음.. 이걸 양자 역학으로 해석해야 하나.. 아니면 통일장 이론으로 해석해야 하나..”
중성자의 붕괴 현상에 대한 매커니즘은 양자 역학이 그 동안 연구를 더 많이 해 왔기 때문에 그 쪽이 더 잘 해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중성자의 붕괴 반응에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결국 통일장 이론을 이용하기로 한 강현은 베타 붕괴를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에너지는 어느 차원에 있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전환되어 질량을 가진 중성미자를 배출하는 걸까?
베타 붕괴가 완료되고 난 후 이 질량을 가진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중력에 끌려서 다시 중성자나 양성자가 흡수하게 되는 것일까?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끼리 만날 수는 없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쌍소멸을 통해 질량이 사라지는데 그 에너지는 어떤 모양으로 방출될까?
수식의 모호함이 하나 하나 해결되어 갈 수록 그보다 훨씬 많은 의문들이 강현의 머리를 채웠다.
아무튼 베타 붕괴를 통일장 이론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완료한 강현이 확인한 것은 약력장 차원이 가지는 에너지 밀도가 중력과 전자기력 차원이 가지는 에너지 밀도보다 약간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베타 붕괴에서 질량을 가진 반중성/중성미자와 양/음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약력에 인위적으로 에너지를 가하는 방법은 없나?”
강현은 수식을 정리하면서 중얼거렸다. 그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인위적 베타 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여 자신의 이론을 검증할 수 있었다.
[운동에너지는 어떻습니까?]
“흐음.. 입자 가속기는 쿼크 단위로 물질을 분해하는데 사용하니까 이 경우에는 과한 방법이겠지. 아니면 방사선이라도 이용해 볼까?”
원자핵이 가진 결합력은 사실 무시무시하지 않다. 대부분의 원소들이 가지는 핵결합력의 크기는 7에서 8 MeV(메가 전자볼트)에 불과하고 이는 줄(J)단위로 환산하면 약 1pJ(피코 줄 : 일조분의 일)에 불과하다. 1J의 에너지가 1V(볼트), 1A(암페어)의 전류가 1초 동안 흐를때의 에너지이니 원자핵의 결합력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핵이 그렇게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가? 간단하다. 숫자의 힘이다. 작은 동전에 있는 원자의 개수는 도대체 얼마일까? 10조개 100조개? 원자의 크기는 생각보다 훨씬 작다.
핵폭발이 무서운 이유 역시 이 숫자 때문이고 핵에너지를 이용해 원자력 발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숫자 때문이다. 연쇄반응을 하지 않도록 초당 핵분열하는 원자핵의 개수를 조절한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핵결합력은 생각보다 약하다. 인위적으로 핵분열을 시키기 위해서 우라늄이 중성자를 흡수할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감속해 주어야 할 정도다. 일단 중성자를 흡수한 우라늄은 불안정해져서 분열하기 때문이다. 중성자로 우라늄 원자핵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핵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불안해진 원자핵은 갖가지 방법으로 안정화된 상태로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전자파를 동반한 방사선을 내뿜게 된다.
“하지만 이 방사선으로 핵을 자극하는게 쉽지 않은데...”
방사선에는 감마선, 알파선, 베타선, 중성자선 등이 있다. 그러나 각각이 가진 물리적인 특성 때문에 원자핵을 자극하는 것은 매우 난해한 문제였다.
알파선은 헬륨의 원자핵으로 주로 양성자 두개와 중성자 두개로 이루어진 입자로 당연히 전기적으로 양성이다. 때문에 전자기적인 반발력으로 공기중에서 3cm도 나가지 못한다. 베타선은 베타 붕괴와 관련있으며 그 이름답게 전자를 내뿜는 것이다. 이 역시 전하를 띄고 있기 때문에 얇은 금속판 만으로 막을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짧은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인 감마선과 전기적인 중성인 중성자성이다. 이들을 막기 위해서는 두꺼운 벽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방사선은 매우 순간적으로만 일어나기 때문에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잔류 방사선이라는 말은 이들이 잔류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방사선 붕괴를 일으키는 핵물질이 남아있다는 의미였다.
“인위적인 베타 붕괴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떤게 가장 좋을까...”
강현은 일단 알파선과 중성자선은 제외했다. 그들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약력을 관찰하기 위한 실험기구에 맞지 않았다. 차후 강력에 관련된 실험을 할때 사용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흐음.. 통일장 이론의 가장 큰 장점이 에너지의 정량화니까.. 이를 이용하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양자 역학의 세계에서 동일한 종류, 동일한 에너지, 동일한 상태를 가진 입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두 입자의 충돌 실험에서 입자가 정말로 충돌을 해서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에너지만을 교환하고 진행하던 길로 계속 가는 것인지 구별하는 것은 요원하다. 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미시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에너지를 동시에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통일장 이론에는 입자를 사용하지 않고 장(場)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위치의 공간에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어느 만큼의 에너지를 가해야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지 예측할 수 있지.”
[만일 중성자나 양성자에 정확하게 에너지를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박사님의 논문이 신빙성을 더할 수 있겠군요.]
“거기에 이론을 이용한 예측치를 사용해 성공한다면 반 쯤 인정을 받겠지.”
강현의 통일장 이론은 방대했다. 13개의 변수를 사용한 복잡한 수식은 그 의미조차 파악하기 힘들정도였다. 이번 인공 베타 붕괴 실험을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파악된 전자기장, 중력 축과 약력 축의 상관관계만을 증명할 뿐이지 나머지 정의조차 되지 않은 5개의 차원 축은 여전히 미지수였다.
“아무튼 머리를 굴려보자.”
[네, 박사님.]
강현과 아즈삭은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강현과 아즈삭은 양성자와 중성자에 인위적으로 에너지를 가하는 방법을 찾다가 플라즈마를 이용하는 방법을 구상할 수 있었다.
원자핵을 반응시키는 방법인 핵융합에서 착안한 방법으로 기체를 플라즈마화 시켜 원자핵에서 전자를 때어내어 원자핵을 서로 부딪히게 만들어 에너지를 가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서 강현은 수소를 플라즈마용 물질로 선택했다. 왜냐면 수소는 전자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플라즈마로 만드는 것이 매우 쉬웠고 또한 양성자를 하나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자기파를 이용해 진동시키기가 쉬웠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이 플라즈마를 잡아주는 것이었다. 방전을 이용하면 수소를 플라즈마 시키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즉시 전자기적인 인력에 의해 전극으로 끌려가 전자를 받아 먹거나 아니면 벽에 부딪혀 전자를 빼앗아 중성원자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성원자로 돌아오면 전자의 정전기적인 반발에 의해 원자핵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해 에너지를 주입하겠다는 강현의 계획이 실패하게 된다. 전자가 일종의 방어벽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핵융합 발전을 꿈꾸는 모든 과학자들이 골머리를 앓는 문제였고 강현 역시 풀기 힘든 숙제였다.
그러나 강현에게는 아즈삭이 있었다. 아즈삭은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을 계산하여 구체적인 수치를 보여주었고 이 덕분에 공학적으로 어떻게든 플라즈마를 유지할 수 있는 전자기적인 수치와 온도 등을 맞출 수 있었다.
거기에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으로 과잉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가 양의 베타 붕괴를 일으키는 시간을 계산하여 플라즈마를 유지해야하는 최소 시간을 구하여 장치를 좀 더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장치의 설계가 차근 차근 진행되는 와중에 강현은 양성자간의 충돌을 위해 온도를 올리는 방법이 아닌 자외선 레이져를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온도가 올라가면 양성자의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벽에 부딪혀 중성원자로 돌아올 가능성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외선 레이져를 이용해 필요한 부분의 온도만 올리게 된다면 그 부분에서만 양성자의 충돌을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 플라즈마화된 양성자의 밀도, 레이저를 가하는 시간 등 다시 복잡한 수식적인 계산과 장치 설계의 개조가 필요했지만 아즈삭이 이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여 강현으로서는 그저 편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공 배타 붕괴 장치의 설계가 완성되었다.
컨셉은 간단했다. 양성자에 에너지를 가한다. 불안정해진 양성자의 쿼크들이 양의 베타 붕괴를 일으킨다.
이를 위해서 수많은 장치가 필요했고 가하는 에너지를 조절하기 위한 많은 방법과 조건들에 대한 계산이 필요했지만 강현과 아즈삭은 해냈고 이제 실제로 장치를 구현해 실험하는 것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강현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에.. 그러니까.. 그.. 인공 베타 붕괴 장치라구요?”
NASA 기획부장, 이레이는 떨떠름했다.무려 반 년간 연구실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던 인간이(샐리가 식사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분명히 굶어죽었을 것이다.) 갑작스레 찾아와서는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 설계도요. 돈은 제가 부담할 테니까 최대한 빨리 만들어 주세요.”
“저, 저기. 이런 종류의 장치들은 다 주문품이라 가격이 좀 비쌉니다.”
“괜찮아요. 저 돈 많이 벌어요.”
그제서야 강현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것을 깨달은 이레이는 속으로 부러워할 뿐이었다.
‘부자면 부자답게 티를 낼 것이지..’
예산에 고민하는 학자들과 자주 면담과 상담을 했던 이레이의 고정관념과 부자티를 전혀 내지 않는 강현의 생활 태도의 결합은 이레이가 쓸데없는 말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 그러시다면야.. 그런데 최소 두 달은 걸릴 겁니다.”
“그래요? 보너스 줄테니까 좀 더 줄일 수 없을까요?”
“그, 글쎄요. 하지만 이런 정밀장치는 시간을 너무 줄이면 불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