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86화 (86/241)

86화

하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면 사정은 다르다. 강현의 연구실은 성역이 될 것이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야 할 사람만이 알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는다면 사회와 대중이 강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옐리만큼 적당한 인물이 없다. 그가 가진 식견과 인맥이라면 대중과 언론이 모르게 그들만의 커넥션으로 알아야 할 사람만 일의 전모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저는 용서해 주는 겁니까?”

“네. 저는 그저 돈만 밝히는 탐욕스런 자들이 그런 일을 꾸미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강현은 옐리를 용서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정의론에 공감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과 같은 학자에 대한 용서였다.

강현에게 옐리의 행동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리고 지적 욕구를 풀기 위한 행동을 한 번쯤은 용서해 주고 싶은 것이 그의 속내였다.

“그럼, 이만 대화를 끝내기로 하죠. 아참,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옐리 씨를 귀찮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이 바닥에서는 비일비재합니다.”

한 순간에 몰락하는 것은 이 바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그래도 살 사람은 살지만 강현이 두 사람에게 했던 것처럼 표적이 되어 버리면 살기 힘들다.

옐리는 강현과 악수를 하고는 NASA를 나섰다. 정문을 나왔을 때 잠시 멈추어 서서 고개를 돌린 옐리의 등은 식은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었다.

“괴물이군.”

옐리는 그 한 마디를 하고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을 넘긴 저 청년이 자신이 벌인 일의 크기와 중요성을 알고 있을까? 아니,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간의 행적으로 보아 자신의 영향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이용하고 있었다. 이번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때문에 무서웠다. 보통 20대의 젊은 혈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되면 천방지축으로 날뛰거나 명성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현은 달랐다. 그에게 사회적 명성이나 거대한 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말은 돈이 곧 권력의 상징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현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강현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의 기술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가치에 자본이 모여든다. 그래서 강현과 세상의 역학관계는 항상 강현이 위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처럼 금융에서 노는 사람에게 돈이 통하지 않는 강현은 공포,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 = = = =

공화당 파티에서 시작한 자정주의는 매우 긍정적인 여론을 이끌었다.

결집된 자정주의 세력은 탐욕스런 자본가들을 대상으로 공세를 시작했다. 공세의 대상이 된 이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이들 역시 탐욕을 부렸던 이들이라면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공격한다고 반격했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힘이 너무 없었다. 이미 자정주의 세력은 그들을 제물로 여론을 환기시키며 자신들에게 우호적으로 만들기로 작정했고 이에 공화당의 정치적 논리까지 가세하자 차근차근 무너졌다.

민주당 인사들의 지원 사격도 있었다. 자신들의 눈으로 보자면 공화당의 자정주의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표에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소수세력이 되어버린 고전 보수주의 세력은 하나 하나 날개가 뜯긴 새처럼 추락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의 주가는 떨어졌고 그나마 재빨리 현금으로 팔아 치운 이들도 불법적인 행위와 탈세에 대한 거액의 징벌적 벌금이 부과됐다. 반박을 위해 이름 있는 변호사들을 선임하려고 했지만 이미 맞고 있는 사건이 있다며 거절당했다.

사회전체가 그들에게 등을 돌린 듯 했다.

“무섭군.”

강현은 사태의 추이를 아즈삭에게 전해듯고는 감상을 내뱉었다.

시작은 자신이 했지만 상황은 이미 자신도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통제하기에는 주도권이 이미 결집되어 하나의 조직이 된 세력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알아서 목표를 씹어먹고 있었다.

“나는 정치는 하면 안 되겠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순발력이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감이다. 하지만 강현의 정치적인 식견은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속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렇게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것뿐이었다.

강현이 한 발 물러서자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앙드레 파셀이 되었다. 공화당의 거두인 그는 이번 일로 다른 경쟁자들을 해치고 공화당 최고의 대선 후보로 선정되었다. 카리스마를 발휘해 자정주의 세력을 결집시키고 자유주의를 해친 부패한 자들을 쓸었다는 긍정적인 여론 덕분이었다.

그래도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공화당의 실세가 강현에게 우호적이라는 점은 강현을 귀찮게 할 사람이 줄어든다는 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또한 강현이 얻은 것은 인맥만이 아니었다. 월가에 진출한 제현 투자회사가 쏠쏠한 수익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떨어지는 배당금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동일 액수를 기존 투자회사에 집어넣는 것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은행 이자보다는 많았다.

여기에 더해서 애시당초 목적으로 했던 연구실의 성역화는 완전히 성공했다. 음모자들의 목적을 분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일에 자극받아 동일한 일을 벌릴 인사들 역시 사라졌다. 지금 상류층에서는 은밀하게 이 모든 일이 감히 강현의 연구실을 건들려고 했던 이들 때문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되자 강현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연구에 돌입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의 모든 외부 방문객은 사절이라고 하고 연구실에 처박혀 지냈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초연구에 가까웠기 때문에 시간과 돈이 매우 많이 걸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 기초연구란 다름 아닌 그 자신이 제정립한 신 통일장 이론의 실험적 증명 과정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13개의 차원이 겹쳐있다는 강현의 논리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공간 그 자체를 변수로 만들 수 있는 실험이 필요했다.

강현은 그 방법으로 가능한 것은 천체 물리학에서 하는 것처럼 천체와 우주를 관측하거나 거대 입자 가속기를 이용해 공간에 간섭할 수 있도록 가속질량을 무한대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전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후자는 돈이 많이 걸렸기에 강현은 고민할 것도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그에게 시간은 돈보다 더 소중한 자원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돈이야 시간이 지나면 계속적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문제는 강현의 생각보다 돈이 더 드는 것이다. 강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투입했을 경우 건설비용과 운용비용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고 아즈삭이 계산했다.

강현은 고민했다. 정부 지원을 받을까, 아니면 돈을 더 벌까? 전자는 아무래도 정부의 간섭이 들어가지 않을리가 없다. 아무래도 국민의 혈세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민간 투자를 받을 수도 없다. 간섭은 그쪽이 더 심할 것이다. 국민의 혈세가 아니라 자신의 피같은 돈이지 않은가?

그래서 강현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히 후자쪽이었다.

“제약쪽이 돈이 된다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돈 많은 사람들이 가장 챙기는 것이 건강 아니겠습니까?]

“그럼 병을 치유하는 것보다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약품이 돈이 더 되겠네?”

동양쪽의 몸보신용 약시장만큼 큰 것이 서양의 비타민, 미네랄 복합제 시장이다.

“그런데 건강하고 싶으면 적당히 절제하는 삶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적당히 먹고, 적당히 살찌고, 적당히 운동하고, 적당히 노동하는 것이야 말로 몸을 아끼는 최고의 방법이지 않을까?

[비만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니 비만 치료제를 개발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돈이 되겠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로 비만의 원인은 과식이라고 한다. 맞다. 맞는 말이다. 먹는 만큼 배출한다면 비만이 생길 리가 없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과거, 진화의 과정에서 제때 끼니를 못 먹었던 시절이 있었는지 과잉 에너지를 지방으로 축적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메커니즘을 밝힌다면 비만을 막는 약품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현은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그것은 아즈삭의 가공할 시뮬레이션 능력을 바탕으로 원자, 전자 레벨에서 DNA가 작동하여 신체를 구성하는 과정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동일 조건에 대한 비만과 비만이 아닌 대조군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며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뻔한 이상, 이 방법 이외에는 딱히 빠르게 비만 유전자의 기제를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물론 비만 치료제는 엄청나게 큰 시장이기에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 ARF1, PLIN2 등 몇가지 비만에 관련된 유전자를 발견하기는 했다.

하지만 비만이라는 것은 비단 유전적 요인으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비만이 발생하는 원인을 알아내야 부작용이 적은 치료제를 만들 수 있었다.

한 가지 유전자를 타겟으로 하는 치료제의 개발이 진행되고도 있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가능성을 보면서 연구하는 것보다는 돌파구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하아.. 이것도 일이네.”

신체에는 몇 개나 되는 원자가 있을까? 그 원자들이 가진 전자와 화학적 특성을 시뮬레이션을 한 각각의 개체에 부여하는 것 역시 얼마나 방대한 작업일까?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전자 세계상의 DNA, 세포, 신체 조직의 활동을 구현하는 것은 아즈삭으로서도 버거운 일이었다. 인간의 몸에 있는 세포만 해도 100조개고 각 세포에 들어있는 원자의 개수는 그 수를 능가한다.

야심차게 작업을 준비했던 강현은 아즈삭의 가용 소스가 5%대로 떨어지자 이내 원자 레벨에서의 신체 조직 시뮬레이션을 포기하고 말았다. 거미줄 단백질을 설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스템을 잡아먹었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네가 죄송할 게 뭐 있냐? 내가 뻘짓을 한거지.”

편하게 연구 좀 해보겠다고 꼼수를 부려봤지만 역시 자연이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목적은 결국 가설의 검증이니 그를 위한 방법을 찾아봐야지.”

돈을 처발라 연구를 한다면 누가 못하겠나? 강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돈을 버는 기술을 만드는 계획을 취소했다. 돈이 없다면 돈이 없는 데로 연구를 해내는 것 또한 연구자의 필수 자질이었다.

일단 그는 자신이 써 놓고도 자신도 무슨 소린지 당췌 알 수 없는 수식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구상이 있었다.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돈이 든다면 차라리 어떤 완성품을 만들어서 관찰해보자는 것이 강현의 생각이었다.

전파의 공진 효과가 발견된 것은 결국 멕스웰이 수식적으로 전파의 존재를 예언하고 나중에 헤르츠가 실험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즉, 수학적 완성이 먼저 존재했고 그를 바탕으로 실험이 꾸려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강현은 자신이 쓴 신 통일장 이론을 (비록 수식적으로 완전했지만) 완전히 이해하고 그 의미가 모호한 변수들의 의미를 확실히 하는 것을 먼저 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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