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그는 즉시 서랍을 꺼내 월가에서 지내면서 차근 차근 모아놨던 서류 뭉치를 가방에 넣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강현이 구상한 일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이번 일을 이렇게 명명했다. 작전명 ‘경고’. 부패한 이들 중 하나를 철저하게 짓밟아 그 인맥에 관련 이들에게 강현의 인맥이 가진 위력을 보여주고 공화당 자정주의 세력에게 힘을 싣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강현은 제임스를 믿고 경제 분야에 대한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강현 자신의 경험이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즈삭이 보조를 해 준다고 해도 이런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 강현과 아즈삭의 콤비로도 취할 수 있는 방법의 가짓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제임스는 강현이 소개해준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고 만나면서 계획을 짰다. 일단 적의 사업권을 빼앗아야 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경제 규모, 상대의 인맥과 경제 규모를 보았을 때 무척이나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재산 다 날려도 되니까. 진행하세요.”
그러나 강현의 전폭적인 지지는 제임스에게 많은 용기가 일을 진행할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강현에게 깊은 존경심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막대한 돈을 다루면서 때때로 초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는데 강현은 일 조 달러(약 천 조원, 대한민국 1년 총 수출액 두 배)나 되는 재산도 다 날려도 된다면서 담담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은 곧 생존과 생활에 직결되는 요소였다. 제임스 자신도 강현처럼 초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강현이 더욱 대단하게, 그리고 무섭게 느껴졌다.
돈이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 그러나 강현은 돈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는 사실을 강현의 결정이 확고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제임스는 강현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아 월가에 진입했다.
[제현 투자회사! 드디어 월가에 상륙!]
처음 강현이 새웠던 투자 회사는 강현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도 월가에 들어가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금융회사들의 견제를 받지 않으면서 한국에서 계획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금융회사들은 강현이 세운 제현 투자회사가 오랫동안 한국에만 관련되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서서히 관심을 거두고 있었다. 자신의 밥그릇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에서 재껴둔 것이다. 그들은 제현 투자회사를 강현이 대한민국에 영향력을 드리우기 위한 바지 회사 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격적으로 월가에 사무실을 냈다. 제현 투자회사에 있다가 사무실에 온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 같이 범상치 않았다. 그들은 기존의 질서를 무시해서, 아니면 금융을 다루는 이 치고는 너무나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일부터 도태시켜버린 이들이었다. 결코 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강현의 막대한 투자금을 쥐고 월가로 들어온 것이다.
[이단자의 역공이 시작되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들의 행보에 주목했다. 제임스 킬덤을 위시로, 월가에서 쫓겨난 늑대들은 돌아오자 마자 일을 벌였다. 기존의 인맥을 통해서 고객들을 자신들의 회사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들은 금융회사의 부도덕성과 고객의 손실에도 성과급 잔치를 하는 경영진을 비난하며 고객의 손실이 곧 회사의 손실이라는 기치로 책임 경영을 내세웠다. 이익이 발생할 때 그 이익을 투자자와 회사가 나누듯이 손실이 발생해도 그 손실을 투자자와 회사가 나누겠다는 경영원칙을 세운 것이다.
이 경영원칙은 많은 금융사의 비난을 받았다. 그런식으로는 절대로 회사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제현 투자회사와 같은 경영방침은 당연히 회사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고 급감하는 배당금에 화가 난 주주들이 경영진을 교체해 버릴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주주의 탐욕이 그대로 경영방침에 영향을 끼치는 것. 미국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현 투자회사의 경영원칙은 지난 금융 위기 때 많은 손해를 보았던 중소 고객들의 공감을 샀다. 믿고 투자를 했는데 손실을 내면서도 뻔뻔하게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 탐욕스런 투자회사에 진절머리가 난 것이다. 그들은 제임스 킬덤의 경영 이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거래처를 바꾸었다.
이로 인해서 가장 막심한 손해를 본 기업은 모건스텔리 투자은행이었다. 제현 투자회사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대량의 고객들이 빠져나가자 투자금이 급감했고 그에 따라 이익금 역시 급감했다. 당장 다음 분기에 적자를 볼 정도였다.
“Fuck!”
J 모건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모건스텔리의 대주주로서 당장 올해 배당금이 급감하거나 아니면 아예 못할 수도 있다는 사장의 말을 전달 받고는 열불이 터졌다.
지금 막 강현 박사의 연구에 대한 감시 인원 밀어넣기 경쟁이 시작되어 여기 저기에 기름칠 할 곳이 많았는데 갑자기 현금흐름의 일부가 막혀버린 것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다른 회사의 고객 유출보다 모건스텔리에서의 고객 유출이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은 즉슨 제현 투자회사의 공격적 영업이 모건스텔리를 대상으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켄? 나 모건일세. 제현 투자회사의 책임자와 만나고 싶은데 방법을 찾아보게.”
제임스 킬덤. 그를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 = = = =
제이먼 옐리, 전 연방준비은행의 의장인 그는 현재 정권에서 경제 자문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미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분석하고 조언해 주는 것이다.
그런 그는 요즘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모건의 칭얼거림에 짜증이 날 정도였다.
강 박사의 연구를 감시하고 그 정보를 이용해 증권가에서 돈을 번다는 계획이 미리 돈좌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모건을 끌어들인 것을 후회했다. 이리도 무능할 줄이야.
딱 봐도 제현 투자회사의 표적이 모건인 것 같지 않나? 하긴 돈만 밝히는 모건이 자본의 움직임 뒤에 있는 사람의 의도를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나오는데..
“한국에서의 일을 견본으로 행동하겠다는 것이군.”
고객을 빼앗아 영역을 구축하고 기존 자본주의 기업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경영 방침으로 지지층을 형성, 차근 차근 기존의 경영 행태를 가진 기업들을 압박하는 일이 일어난 한국의 상황은 그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 기존 기업들은 스스로의 경영 방침을 바꾸거나 아니면 일의 원흉인 제현 투자회사를 무너뜨려야 한다.
전자는 주식회사의 경영자로서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윤을 창출하기 원하는 주주들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해야 경영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무려 일 조 달러의 자본을 가진 강현이 무제한으로 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제현 투자그룹에서 공언했기 때문이다.
옐리는 팔짱을 끼고는 푹신한 의자에 폭 박혀서 깊게 사고의 바다에 잠겼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 동안 얌전했던 제현 투자회사가 이렇게 전격적으로 행동을 한 것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대표이사가 된 제임스 킬덤이 정말로 언론의 말처럼 썩은 금융 시스템에 복수를 하기 위해 칼을 뽑아 든 건가? 그렇다면 대량의 자금이 강현에게서 제현 투자회사로 들어간 최근의 소식은 무엇을 뜻하는 건가? 강현과 제임스 킬덤간에 사전에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둘의 의도가 정말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썩었다고 생각하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응징이라면 이들이 이 일을 계속 진행됐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가?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돈으로 돈을 불리는 자본가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돈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니 끝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국가의 제제가 불쾌해지는 것 역시 당연지사.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돈이 많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이들은 사회를 위해서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을 지지하기도 한다. 유명한 OS 회사와 신화적인 투자가가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공개적인 발언은 돈 많은 이들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수익의 많은 비율을 세금으로 내고 있는데 거기서 더 내라니? 그것은 평등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말이었다. 마치 자신들을 사회의 죄인 취급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기부로 절세를 하는 주제에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위선이라거나 노골적으로 욕설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왜냐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는 것과 강제로 세금을 내는 것은 천지차이다. 결과 역시 전혀 동일하지 않다. 노골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명예와 불명예의 차이다. 기부를 하는 것은 찬사를 받지만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은가? 돈많은 이들이 기왕 돈을 버릴거 기분좋게 기부를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미국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부자도 역시 사회적 동물인 것은 마찬가지이며 돈 많은 이를 범죄자 취급하듯 증세 법안을 통과 시키려는 것은 국가의 강압으로 비칠 수 밖에 없으며 자유주의의 원칙 아래, 반발할 수 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강현이 저번 공화당에서 한 자발적 보수주의의 개혁이란 컨셉은 탐욕스런 자본주의라는 국민적 비난과 국가 강압의 속도를 늦추어 줄 효과적인 방패막이였다. 여기에 제현 투자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계기로 중소 고객뿐만 아니라 돈 많은 거물들이 하나 둘씩 제현 투자회사로 거래처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부류에도 기성세대라는 것이 있다. 좋게 말하면 전통을 지키자는 이들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인습마저 유지하려는 꼰대정신이 투철한 이들이었다. 그 말은 강현이 주장한 자정주의 세력과 자본주의의 본질, 이윤추구를 고수하려는 세력간 갈등이 발생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옐리의 예상은 단 한 줄로 정리되었다.
‘돈과 돈의 싸움이 시작된다.’
물론 그 싸움은 각 국가간의 환율 전쟁과는 양상이 전혀 다를 것이다. 증권가의 작전 세력끼리 부딪히는 것과도 전혀 양상이 다를 것이다.
이는 금융과 자본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일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자본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을 노골적으로 물을 것이다. 자본가를 대중 앞에 끌어내고 공인의 신분을 씌울 것이다.
‘.....’
생각을 마친 옐리는 이것이 손해인지 이득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왜냐면 자본주의는 이 일로 지속될 수 있는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시험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도태냐, 변화냐?
자본가의 성향에 따라서 이 일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고 매우 불쾌해서 짓뭉개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분명 모건 같은 이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 역시 시대의 변화에 시험대에 오를 수 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