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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82화 (82/241)

82화

“허허! 강 박사, 이렇게 또 찾아와 주시니 고맙군요.”

호만 상원 의원은 공화당이 주최한 파티에 강현이 참가하자 매우 기꺼워했다. 강현을 저번 파티에 초청하는 것에 성공한 덕분에 자신의 입지와 영향력이 넓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기술 문명 시대에 강현이라는 아이콘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뭘요. 저와 생각이 같은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공화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것 참 다행이군요.”

강현의 말에 호만 상원 의원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던 것이다. 강현은 호만 의원을 따라 여러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정치적인 주제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강 박사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말인가요?”

“궁극적으로는 그렇죠. 참으로 신기한 것이 어떤 힘이 일정량, 일정 밀도 이상 모이게 되면 주위의 힘을 빨아들여 점점 강해지죠. 마지 중력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파국이죠. 저는 이러한 원리가 사회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국가는 곧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체주의 국가 중에서 잔혹한 일을 벌리지 않은 나라가 없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죠. 강력한 권력은 반드시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하하! 그렇죠.”

강현의 말은 매우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런 강현에게 한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강 박사님은 이번 세금 인상안에 반대하시겠군요.”

이번 세금 인상안이란 공화당의 반대에 표류해버린 금융세금 인상안을 일컬었다.

“아니요. 찬성합니다.”

“......”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공화당의 파티 안에서 민주당이 옳다는 말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 말은 강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비웃었을테지만 강현의 발언력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파급이 컸다.

저번 청문회의 참고인으로 나와 말한 내용이 학문적으로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참조가 되는 것은 물론, 일반 시민 단체들 역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깊게 가지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 이슈화되고 정치권에서도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강현이 민주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말을 공화당 파티에서 했다. 분위기가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쯧쯧. 너무 짧게 보시는 군요. 공화당은 전통적 가치를 지지하는 당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세금 인상안 문제에서 월가의 기부금이 없다고 태도를 싹 돌리다니요. 그것이 공화당이 말하는 미국의 정신입니까? 고작 예산에 휘둘리는 게?”

신랄한 강현의 말에 몇 사람이 얼굴을 붉혔다.

“허허.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나 보군요. 그 세금 인상안은 기업의 생산성을 낮추고 경쟁력을 악화시켜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르군요. 그 세금 인상안은 부패한 월가의 금융에 대한 징벌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모기지론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통 받게 만들었으니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죠.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오히려 세금으로 경영자들이 보너스를 탔다는 말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

호만 의원이 침묵했다. 강현은 말을 계속했다.

“공화당의 적은 민주당이 아니라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공화당이 주장하는 가치의 이념을 방패 삼아 방종을 부리고 있어요. 보수주의의 암 종양입니다.”

“그렇다면 강 박사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제제 해야죠.”

“어떻게요? 민주당이 주장하는 바와 같군요.”

한 쪽에서 비아냥 거리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강현은 태연하게 설명했다.

“이런 일에 국가가 나서서는 안 됩니다. 하이에나를 잡기 위해 오히려 사자를 키워주는 격이 되죠. 방종을 부리는 자들을 견제하고 공화당을 정상화 시킬 수 있는 지지 세력이 필요합니다. 국가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한국에 저지른 일을 똑같이 하겠다는 거요?”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공화당의 거두, 파셀 상원 의원이었다.

“한국에서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흥! 그 나라의 기득권 세력을 완전히 일소해 버렸잖소.”

“아닙니다. 저는 단지 개혁의 단초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버린 옛 모국이지만 애정이 없을 수는 없죠. 그래서 좀 더 건강한 자본주의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 뿐입니다.”

“글쎄..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난 모르겠소.”

파셀 의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강현, 중요한 인물이다. 이미 공화당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여했었던 시대의 아이콘이니 만큼 그의 행적을 살피고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파셀 의원은 강현의 성향에 대해서 파악한 상태였다. 강현은 분명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세계의 석유 시장, 섬유 시장 등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라이센스 분배를 보면 확실하게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파셀 의원은 강현이 이 자리에서 저런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에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을 잡아냈다. 그래서 의뭉스럽게 말을 흐렸다.

그런 파셀 의원의 말에 강현은 직설적으로 설명을 했다.

“뭐, 파셀 의원께서 말씀하신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개입이 없는 개혁이 바로 제가 생각해낸 해결책이죠.”

“정부의 개입이 없는 개혁?”

파셀 의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청교도적 정신에 따라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자들이 돈을 쥘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공화당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죠.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두 조직을 너머 참가하는 개개인 각자가 계몽적인 의식을 가져야 하죠.”

“풋!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못하면 공화당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당과 정부는 계속 커져나가겠죠.”

“전 그걸 못한다고 공화당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죠.”

“저는 과학자라서 정치공학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유권자라면 부패한 이들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패는 곧 무능하다는 말과 동일하니까요.”

“훗, 말이 안 통하는군.”

처음부터 끝까지 비아냥 거리던 그 사람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가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강현의 말을 더 듣는 것을 포기하고 딴 곳으로 이동했다. 강현은 남은 이들을 보았다.

자신을 초청해준 호만 의원마저 자신을 버려두고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대신에 새로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강현이라고 합니다.”

“앙드레 파셀이라고 하네.”

강현의 인사에 파셀 의원은 손을 내밀었다. 둘의 악수가 끝나자 남아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물었다.

“구체적인 방안은 있습니까?”

“저는 돈이 많고 여러분은 인맥이 있죠.”

“???”

“부디 훌륭한 사람을 추천해 주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강현은 이번 공화당에서 주최한 파티의 목적을 달성했다.

= = = = =

[세기의 천재! 또다시 공화당의 파티에 참석하다!]

[보수주의 개혁을 부르짖은 악마적 두뇌!]

[과학에서 정치로. 천재의 종착역은 정계인가?]

강현이 공화당 파티에 참석해 벌린 일을 기자들의 후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인맥과 집요함을 총동원한 기자들은 강현이 파티에서 발언했던, 어쩌면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내용을 알아냈다.

보수주의의 부패를 꼬집다!

고인물은 썩는다. 끝없이 뒤돌아 보지 않는 순간 발자취에서 똥내가 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진취적인 사상은 비록 실패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실패를 거름 삼아 끝없이 앞으로 향한다. 보수적인 사상은 비록 안정을 통해 미래로 발을 디딜 수 있는 여유를 주지만 관습이 인습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 어렵다.

그렇다고 진보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너무나 빠른 변화는 중요한 것을 상실하게 만들고 사회의 역량을 감소 시킨다.

때문에 보수주의와의 조화가 필요하다. 균형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균형을 논하기에는 보수주의가 너무나 약하다. 이미 십 년이 넘도록 국민들 다수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었고 민주당 정권이 미국을 이끌고 있었다. 반면에 공화당은 월가,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견지해 비난을 사고 있었다. 도덕적 해이로 드러난 부패한 자본주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강현의 주위에 모여든 이들은 공화당의 앞날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지켜야 할 전통적인 가치관이자 미국의 뼈대였다.

때문에 보수주의의 자발적 개혁이란 강현의 발상에 깊은 공감을 얻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보수주의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들은 강현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기업인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세계적인 기업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주에서는 매우 견실한 회사로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금융에 관련된 거물들이 필요했다. 자본주의의 꽃은 금융 공학이었다. 하지만 강현과 동조하기로 한 정치인들이 소개해준 인물 중에서는 쓸만한 금융인은 없었다.

그래서 강현은 다시 한 번 제현 투자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렇군요.”

오랜만에 만난 제현 투자 회사의 대표이사 제임스 킬덤과 강현은 악수를 나누었다.

“심장이 뛰는 군요.”

“그래요?”

“네.”

제임스 킬덤의 심장이 뛰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했다. 과거 금융 위기 사태 당시, 모든 것을 잃고 바닥에 나앉았던 그 곳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강현이 그의 도움을 청한 이유를 듣고는 더욱 가슴이 뛰었다.

사실 그는 그가 쫓겨난 이유가 그저 자신의 무능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객이 손해를 입어도 증권사나 금융회사의 경영진에서는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고객이 입은 손실을 회사에서 어느 정도 보상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여전히 매니저 자리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납득하지 못했다. 잘못은 이쪽에서 했는데 왜 손실은 자신들을 믿고 돈을 맞긴 고객들이 보아야 하는가? 제임스 킬덤에게 월가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의 거대한 사기였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제임스 킬덤을 고용해줄 금융사는 전혀 없었고 강현을 만날 때까지 제임스 킬덤의 인생은 망가져 갔다. 그리고 제임스 킬덤은 누구를 증오해야 할지도 모른채 세상을 잊고 술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강현에게서 구원을 받았다. 그의 인생은 다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리고 그는 비양심적인 행태에 대해서 강한 증오를 느끼는 인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에 강현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리 틀리지 않았다.

그가 강현의 연락을 받고 냉큼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복수.

과거 몰락했을 시절, 그는 원망할 구체적인 대상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강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는 원망할 대상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이들, 시스템을 부패하게 만드는 비양심적이고 탐욕스런 자들이 바로 자신이 원망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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