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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77화 (77/241)

77화

아무리 나노 입자라지만 여러개의 원자가 뭉친 나노 입자의 운동성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원자보다는 떨어졌다. 때문에 자기 조립이 끝나고 나서도 제자리에 찾아가지 못한 나노 입자들이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거듭한 끝에 가장 불량률이 적은 나노 입자의 농도를 찾아내고 처리 시간과 유기 용매의 종류를 찾아냈다.

“역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은 미시 세계에서는 절대적이구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은 어떤 미소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확실하다는 원리였다. 이는 미소 세계에 대한 인간의 제어 능력의 한계를 뜻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나노 입자의 위치를 완벽하게 제자리에 올려놓으려고 한 강현의 시도는 실패였고 전체적인 연구의 결과는 절반의 성공에 끝났다.

“아즈삭. 표준화 가능성은 있지?”

[네. SNP의 경우 사회화 시간이 압도적으로 짧습니다. 이 정도면 컴퓨터 개발부에 있는 연구원들 수준으로도 SNP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습니다.]

SNP라고 해도 물리적, 열역학적 한계 때문에 실리콘 나노 입자의 위치에 결함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아즈삭에 사용된 RNP처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어떻게 회로가 구성되었는지 유추해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자기 조립 제어를 이용해서 그런지 RNP보다 SNP가 훨씬 간단했다. 반도체의 역할을 하는 실리콘 나노 입자의 위치를 통계학적으로 추측하고 구성해 RNP보다 훨씬 단순한 과정을 거쳐 회로맵을 알아낼 수 있엇다.

모든 것은 자기 조립 제어를 통해 전도성 고분자의 미세구조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즈삭의 성능이 없더라도 일반 슈퍼 컴퓨터로도 SNP의 표준화를 한 시간에 끝낼 수 있는 프로그램 알고리즘을 짤 수 있었다.

“흐음.. 이정도면 양산이 가능하겠네.”

강현은 흡족했다. 사실 RNP의 사회화 작업을 하는 일을 아즈삭에게 계속 시키는 것은 강현으로서는 매우 불쾌한 일 중에 하나였다. 정부의 비호가 필요했기 때문에 정부의 K 시리즈의 최종 조정에 대한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사실 그 때문에 아즈삭의 자원 30% 정도가 항상 그 일에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SNP가 상용화 된다면 아즈삭의 부담이 사라진다. 강현으로서는 상용화가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그런데 SNP와 RNP의 차이가 커?”

[RNP에 비해서 SNP는 좀 더 프로그램적으로 운용됩니다. 사람의 감각에 비유하자면 RNP를 확장하는 것은 저를 확장하는 느낌이지만 SNP는 유용한 팔다리를 붙이는 느낌입니다.]

“흐음. 본능적 사고회로와 이성적 사고회로라..”

인간의 본질은 욕망에 있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확장하는 느낌의 RNP는 아즈삭에게는 본능적 사고회로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밖에 다른 점은?”

[RNP를 이용할 때 가끔 사고회로가 널뛰는 현상이 생깁니다.]

“호오? 구체적으로?”

[A에서 B, B에서 C로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A에서 C로 바로 뛰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A에서 D나 E같이 엉뚱한 결론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다시 절차상 A, B, C로 다시 연산한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강현은 아즈삭의 대답에 아즈삭에게 SNP를 더 붙여 확장하기로 했다. 적어도 논리 연산적 사고에서 프로그램적으로 움직이는 SNP가 더 안정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RNP의 연산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관심을 돌리지는 않았다. 중간 절차없이 그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 그것은 직감의 영역이었고 아즈삭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오류가 생기기도 했지만 변수가 과다하게 많은 경우 직관적 사고는 정보처리에 필요한 자원을 아껴주는 유용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강현은 다시 아즈삭의 OS소스에 손을 대어 RNP영역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논리 도약 현상을 보존하도록 했다. 때문에 아즈삭의 연산 과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했지만 SNP영역에서의 연산으로 보완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강현이 아즈삭을 그런 식으로 개조한 것은 아즈삭이 현재만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역시 설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직감이라는 것은 예측의 한 갈래였고 정보가 부족할 때 오히려 예측보다 정확하기도 했다.

강현이 SNP를 완성하고 뜻하지 않게 RNP와의 차이점, 특징을 알게 되어 아즈삭을 개량하고 있을 때 펜타곤 무기개발부장 마이클은 강현이 도무지 연락이 없자 답답했다.

벌써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강현의 개발 속도라면 중간 프로토 타입이라도 나와야 할텐데 소식이 전혀 없었다.

마이클은 답답한 마음에 직접 전화도 해봤지만 도무지 연락을 받지 않았고 NASA에 직접 문의도 해봤지만 NASA에서는 강현의 개인적인 연구 생활을 일절 밖에다가 공개하지 않았다.

강현의 프라이버시와 동시에 그의 연구 보안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NASA 역시 국가 기관인지라 아무리 마이클이 펜타곤의 사람이라도 정식 공문이 없으면 NASA에서 강현에 대한 정보를 빼내는 것은 무리였다.

때문에 마이클은 직접 강현을 만나기 위해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강현에 대한 NASA의 보안 정책과는 상반되게 강현은 자유롭게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 발표하고 싶은 논문에도 제약이 없었다. 왜냐면 천재에 대한 속박은 곧 천재의 창의성을 제약하고 그와 분란을 야기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ASA는 강현에 대해 세상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강현이 좋아하는 음식은 카레라이스, 카레 돈가스였고 잠은 주로 11시에 자며, 주로 읽는 잡지는 과학 잡지이며 정치 성향은 민주당에 가깝다는 등 강현이 입밖에 내지 않아 세간에서 모르는 그의 개인적인 정보를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정보들은 문서화하지는 않았다. 다만 알고 있는 직원들에게 보안 서약을 시켜 강현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NASA에서는 내부적으로 강현의 은밀한 비밀을 지켜주는 보금자리의 역할을 확고히 할 수 있었고 그런 방침은 아즈삭으로 통해 강현에게 전해져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강현에게는 상당히 고마우면서 흡족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강 박사.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마이클은 강현과 약속을 잡아 그를 직접 대면했다. 그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강현의 성향에 따라 바로 본론을 꺼냈다.

“글쎄요...”

강현은 만족스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SNP는 RNP 표준화 밑 상용화를 위한 연구의 결과물이었지만 그 결과는 반쪽의 성공에 불과했다. SNP를 제조하는 동안 나노 입자의 위치를 완벽히 조절할 수 없는 확률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준화를 통한 상용화의 길을 열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일단 결과물이 있기는 했는데 만족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강현은 그렇게 운을 띄우면서 컴퓨터 화면에 그 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띄우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SNP. 블록공중합체의 자기조립제어를 이용해 나노 입자간의 연결에서 무작위성을 배제하고 구조 예측을 가능하게 만들어 각 SNP 덩어리의 회로 구조를 파악하기 용이하게 만들어 상용화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었다.

강현의 설명을 다 들은 마이클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훌륭합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하실 수 있나요?”

“하하! 이 정도면 거의 모든 장비를 무인화 시킬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흘릴 피가 격감하겠죠.”

“그런가요?”

강현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무기를 만드는 사람이 타인의 생명을 걱정하는 태도라니.. 하지만 곧 생각을 지웠다. 사람의 신념이란 생각보다 무척이나 모순적인 것이었다.

“SNP를 조정하기 위한 설비에 다소 비용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면 예산 범위에 충분히 들어가니 부담이 없습니다.”

마이클은 강현이 만들어낸 표준형 인공지능의 하드웨어가 될 SNP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정보처리를 통한 전술 보조는 물론이거니와 무인화 전쟁으로 일컬어질 미래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무기 개발부서의 수장으로서 궁극적인 무기의 원리는 나는 다치지 않게 하면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전쟁이야 말로 무기의 최종진화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이제 남은 것은 SNP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무인 전쟁기계를 개발하는 것 뿐이었다.

펜타곤의 연구실로 돌아가기전 마이클은 무인 전쟁 기계 개발 과정에 이 미칠 듯한 연구 개발 속도를 가지고 있는 강현이 참여하기를 바랬고 그에게 권유도 해봤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K 시리즈를 개발한 강현은 자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로봇에 대한 흥미가 부쩍 떨어져 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아즈삭이 느낀 RNP와 SNP의 차이를 이용해 아즈삭을 더욱 개량하는 것에 몰두하고 싶었다.

“미안하군요. 연구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그러시다면야..”

마이클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강현과 SNP의 제조와 사용에 대한 라이센스를 계약하고는 돌아갔다. 그 뒤로 무인 전투 병기에 대한 연구 개발 프로젝트를 발의, 정부의 동의를 얻어 개발을 시작했다.

강현의 K 시리즈가 있기는 했지만 K 시리즈는 시가전에 어울리는 모델이었다. 야전이나 게릴라전에 어울리는 모델은 아니었다.

때문에 무인 전투 병기는 기존의 장비를 무인화 시키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탱크, 헬기, 전투기였다.

K시리즈가 무인화 된 보병부대이라면 기계화 사단을 무인화시키는 것이 프로젝트의 1차 목표였다.

펜타곤에서는 강현이 만든 SNP를 기반으로 IT 기술이 뛰어난 이들을 고용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적당한 인공지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강현은 아즈삭의 개량을 마무리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강현이 만든 SNP는 공표되지 않았다. 다만 그에 관한 라이센스는 은밀하게 승인되었다. 강현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개발은 계속되었고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K 시리즈를 통제하는 전술기가 개발되었으며, 석유 시장은 고갈되지 않는 석유 자원으로 인해서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고 자동차 시장은 강현의 IAPP 완충 시스템을 도입해 더욱 안전해졌다. 물론 그 밖에 상용화된 CNT섬유라든지 인공 거미줄의 패션 시장 진입이라든지 다양한 곳에 강현의 기술들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강현의 계좌에는 돈이 쌓여 나갔다.

“박사님. 저 저녁 사줘요.”

“.....”

“싫어요?”

“사줄게요.”

다시 방학이 되어 NASA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샐리는 이번에는 아예 작정을 했는지 본격적으로 애정 공세에 나갔다. 강현은 자신의 왼손에 낀 두 반지를 보여주며 절대로 제시를 잊지 않을 거라고 공언했지만 샐리는 태연하게 거기에 반지 하나를 더 끼라면서 애정 공세를 시작했다.

강현은 아즈삭을 통해서 그녀 주위에 있었던 정보를 취합하여 혹시나 CIA에서 그녀에게 미인계를 사용하도록 작전을 꾸민 것이 아닌가 하고 조사를 해봤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고 한 달 간 그녀의 집에 스파이 바퀴벌레를 집어 넣어 정보를 모았지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화로 MIT의 친구와 대화하며 자신이 좋다는 그녀의 속마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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