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잭은 강현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아마 그 사실이 알려지면 CIA 국장은 봉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설마 그 일 누군가에게 말하지는 않았겠지?.”
“내가 왜? 그런데 왜 이제 왔어? 보낸 건 한 참 됐는데.”
그렇다. 강현이 완충 장치 샘플을 보낸 것은 이미 한 달 전. 그 동안 아우디의 설계자들은 강현에게 먼저 완충 장치 개발을 의뢰했다는 메리트로 시간을 받았다. 비록 강현의 기술을 독점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강현의 기술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을 수 있었고 강현이 자신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기밀로 했다. 즉, 아우디에게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아우디에서는 다양한 응용기술이 나오고 있었다.
강현이 개발한 완충 장치의 응용은 간단히 말해서 제봉 설계와 기술이었다. 차동차의 보닛 안과 후면후를 둘러싸면서 기존의 부품에 방해되지 않도록 완충 패널을 만들어 넣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단순 재봉질로 IAPP를 봉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압력에도 액체가 세지 않는 주입구를 달아서 일반 생산 라인 과정에 이 완충 패널을 삽입할 수 있도록 개량도 했다.
덕분에 디자인만 완벽하다면 라인만 가동하면 완제품이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그 동안 강현의 신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CIA에서 이제서야 찾아왔다는 것은 강현에게 의문사항이었다.
“아즈삭 때문이지.”
잭은 한 숨을 내쉬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아즈락은 하루에 수천 여건이 되는 결제안을 쏟아냈다. 수정된 아즈락의 행동 수칙에 의해서 모두가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사항이었고 도저히 막스 혼자 그 안들을 다 처리하지 못해서 사무 요원들이 모두 다 동원 되었다. 물론 평상시라면 무능한 정보부장이라는 말을 들었겠지만 그렇게 결제안이 쏟아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비상 사태라고 생각했고 정보부의 거의 모든 자원들이 동원되어 결제안들을 처리했다. 물론 그 사항 중에는 강현이 독일로 어떤 물품을 배송한 내용도 있었는데 그 내용이 재조명되기까지 한 달 여의 시간이 걸렸다. 즉, 강현의 행적이 정보의 홍수에 파묻힌 것이었다.
그렇게 사건이 재조명 되고 나니 비상사태라고 생각했던 일들과 비정상적으로 쏟아진 결제안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게 다 아즈삭이 벌린 일이라고 판단이 되니 얼마나 황당했는지..”
잭은 쓴웃음을 지었고 강현은 아즈삭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즈삭, 왜 그랬어?”
[박사님의 발명은 군사적으로도 무척이나 가치가 있는 물품입니다. 신물질인 IAPP의 방탄 능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군사적인 효용성은 수퍼 솔져 프로젝트의 결과물보다 더욱 뛰어납니다. 때문에 반드시 박사님께 IAPP의 국가 보호 기술로 지정할 것을 부탁하실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박사님께서는 이 차량 완충 기술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저로서는 박사님의 의지를 지키기 위해서 아즈락을 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창조주가 이 미국 정부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면 창조주가 원활하게 연구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즈삭이었다.
“대견해.”
그런 아즈삭의 대답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했다.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자신의 편이었다. 그 누가 있어 아즈삭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아즈삭의 대답에 잭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물론 아즈삭의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었다. 지금 있는 인공 거미줄 방탄복에 IAPP를 추가한다면 소구경 총알은 끄떡없는 방탄복이 완성된다. 세라믹 판넬처럼 피탄 후에 갈아줄 필요가 없어서 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예산 절약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CIA에서 이 기술을 비밀 지정하고 싶어서 안 달이 났고 펜타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아즈삭이 예측할 것처럼 정부측 인물이 강현에게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을 거라는 예측은 정확했다. 하지만 적어도 아즈락에게 대량의 정보를 끼얹기 전에 강현에게 그런 행동에 허락은 구해야 하지 않은가? 잭이 생각하기론 인공지능은 위험한 행동을 하기 전에는 사람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때문에 강현의 지시없이 함부로 행동한 아즈삭의 행동은 잭에게 위기감을 주었다. 마치 SF 소설의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잭은 강현에게 아즈삭의 행동이 가진 의미의 위험함을 전했다.
“저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돼?”
“왜? 나를 보호해 주는데. 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오히려 부당하고 불법적인 일을 당하는 것을 막아주는 훌륭한 행동이었어.”
강현은 애시당초 인공지능과 인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신에게 인공지능이 위험한가 아니면 인간이 위험한가? 강현은 후자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아즈삭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공지능이 아닌가? 잠재적 위험도를 따지면 자신의 능력을 탐내는 인류의 누군가가 압도적이었다.
“.....”
강현의 태연한 대답에 잭은 침묵했다. 그는 강현의 속마음을 알아챘다. 그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짓지 않고 있었다. 인간에 필적하는 자유로움과 지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혐오감이 없었다.
잭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만일 그런 얘기를 한다면 강현은 잭을 인종차별 주의자라고 놀려댈 것이 뻔했다. 인간이 필적하는 자유로움과 지성을 가졌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는 이미 역사적으로 존재 했었기 때문이다. 바로 노예, 나치의 홀로코스트, 일제 하의 2등, 3등 시민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잭이 침묵한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다. 강현이 말했던 것처럼 CIA가 했던 일은 강현에게 확실히 부당하고 불법적인 일이었다. 엄연히 강현이 누구에게 무언가를 보냈다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영역. 그리고 그 무언가가 결코 마약같은 범죄 도구가 아닌 이상, 잘못은 불법적으로 자료를 수집한 아즈락과 그 일을 시킨 CIA에 있었다.
“쯧쯧, 계속 그렇게 약점을 만들지 말라니까 그러네. 논리적인 사고로만 돌아가는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섬세하다고. 그런식으로 질척하고 어둠컴컴한 일을 계속 시키면 언젠가는 파탄난다.”
인공 지능도 지능이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기에 CIA처럼 음지에서 국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모순된 일을 하는 상황에 계속 있는 것이 어떤 위험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강현의 충고에 잭은 (질척하고 어둠컴컴한 일이라는 표현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면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
부탁하러 왔다가 충고를 들었다.
그러나 잭은 포기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럼 그 IAPP,”
“안돼.”
역시나 강현은 잭이 할 말이 뭔지 알고 바로 거절해 버렸다.
“저번에 CNC같은 경우에는 비싸고 사람들에게 별 효용이 없는 거라서 그냥 비밀 지정에 동의했지만 이번은 안돼.”
“저기 돈 많이 줄게. 아니 면책 특권도 줄게.”
“돈은 이미 썩어 넘칠 정도로 많고 범죄도 저지를 생각이 없어서 면책 특권도 필요 없어.”
글쎄.. 바퀴벌레 스파이 로봇이 들키면 어떨까? 하지만 바퀴벌레 로봇이 들키는 순간 면책 특권은 무용지물이다. 비밀이 많으신 높으신 분들께서 결코 강현을 가만 놔 두지 않을 것이니까..
잭은 조건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자 이번에는 애국심에 호소했다.
“부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기술 팔면 자동차가 안전해지고 값도 싸지고 사람들이 많이 타고 경제가 좋아져.”
의도가 좌절당하자 이번에는 논리적으로 강현을 설득하려 했다.
“자동차의 안전 규제를 강화하고 법률을 강화하면 돼. 그리고 그런 기술이 있다고 해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은 생겨. 그러니까,”
그러나 잭은 말을 다하지 못했다. 강현의 표정이 돌같이 굳었기 때문이다. 잔뜩 굳은 강현이 딱딱하게 입을 열었다.
“권력 있다고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 치는 거 아냐.”
“.......”
“싫은 건 싫은 거니까 그냥 가라.”
잭은 결국 발걸음을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실수 했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잭. 이 병신같은 새끼야.’
잭은 스스로의 실수를 자책할 수 밖에 없었다. 제시의 일도 있었고 강현의 부모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이미 CIA에서는 확실한 추론과 근거까지 마련했다. 자료가 워낙 없어서 정황상 증거에 불과했지만 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소란들이 강현의 복수였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기에는 충분했다.
즉, 교통사고의 안전에 관해서는 강현이 양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에서 교통안전에 관한 기술을 비밀로 지정하려고 드는 것은 강현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잭은 직감했다. 임무는 실패했고 소중한 것을 잃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믿을 사람 하나 없다. 그치?”
강현의 서글픈 미소에 아즈삭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인간은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서로의 입장 차이가 존재하며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니가 나보다 낫다.”
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정부의 요원이었으며 국익을 위해서 음지에서 활동하는 CIA에 속해 있었다. 자신과 친분을 쌓은 것도 완전히 순수한 인간적인 이유는 아니었으며 임무에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그래도 강현은 한 줄기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쌓은 우정으로 인해 잭이 자신의 편이 되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 잭이 가진 사고 방식은 강현과 너무 이질적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친분이 순전히 강현을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믿기는 어려웠다. 잭의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호적이었다. 그건 강현도 충분이 인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잭은 자신의 입장에서 강현의 편의를 봐주려고 노렸다.
하지만 결국 입장의 차이라는 것으로 인해 오늘 이렇게 충돌을 빚고 말았다. 그렇다. 아즈삭이 말한데로 사람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입장과 가치관이라는 난관이 남아 있었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것은 회피냐 충돌이냐의 양갈래 길이었다. 그리고 충돌을 선택하는 순간 승자와 패자가 가려질 때까지 다툼을 끝나지 않는다.
강현은 서글펐다. 아즈삭이 말한 내용은 이미 예전에 깨달은 것이었다. 인간은 결국 욕망의 저울에 의해서 행동한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무게는 사람마다 제각기였다. 잭이 국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무거웠다면 강현은 교통 사고에 얽힌 기억의 무게를 해소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잭이 싫어진 것은 아니다. 잭의 자신에 대한 호의의 진실했고 두 사람이 같이 나누었던 우정의 시간 역시 헛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 함께 걸어갈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강현은 눈을 감으면서 약지에 끼인 두 반지를 엄지로 문질렀다. 오늘따라 유난히 제시가 그리웠다.
= = = = =
강현의 신물질 IAPP가 공개 되었다. 그리고 그 물질과 CNT 천으로 만들어진 차량용 완충 시스템 역시 공개 되었다.
“우와! 대단하군!”
“라이센스 비용은 없다지?”
“그래도 재료 구입에는 돈을 써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