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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71화 (71/241)

71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답을 도출하는 것이 생각과 사고 과정의 목적이라면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명제를 납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박사님은 원래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강현의 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전혀 보장해 줄 수 없으면서도 더 이상의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명제는 아즈삭이 강현의 능력에 대한 분석에 쓸모없이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막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즈삭의 존재 목적인 ‘강현의 연구를 보조한다.’라는 명제와 상충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없이 아즈삭에게 수용되었다.

[그럼 테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아즈삭은 결론을 내리고 실험을 계속 진행했다. 이제 남은 건 완성된 점탄성 물질이 어떤 물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뿐이었다.

“응. 나는 좀 쉴 테니까 수고해.”

강현은 하품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아즈삭이 대답을 하지 못하며 답을 구하던 10시간 동안 시뮬레이션 오차를 줄이기 위한 변수 지정과 코딩 작업을 하며 밤늦게까지 깨어있었던 그였다.

그 뒤 며칠 동안의 테스트 끝에 강현이 설계한 점탄성 물질의 성능은 성공적으로 확인되었다. 단백질 사슬과 유기화학 공업용 화학물질과의 합성을 통한 단백질 플라스틱이라고 할 수 있는 구조는 그 진가를 확실하게 발휘했다.

이 신물질의 질감은 약간 뻑뻑한 무른 진흙의 감촉, 점토보다 더 부드러웠지만 순간적인 충격에 대한 저항성은 소구경 권총탄환을 5센치 깊이에서 잡아낼 정도로 강력했다.

“완성했다!”

강현은 권총을 이용한 충격 저항 실험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두 팔을 위로 쭉 뻗으며 환호했다. 언제나 의도한 창조물을 창조해내는 것은 기분 좋고 흐뭇하고 보람찬 일이었다. 생각대로 완벽하게 작동을 했을 때의 짜릿함 역시 대단했다.

[그럼 CNT 천으로 만든 튜브를 주문하겠습니다.]

“급행료는 얼마든지 줘도 되니까 빨리 배달해 달라고 해줘. 빨리 실험해 보고 싶네.”

강현이 점탄성 물질의 연구를 완성하는 4개월 동안 최주정 교수의 CNT 상용화 특허는 누구도 독점하지 못했다. 최주정 교수의 의도 대로였다.

그러나 이 기회에 대박을 맞으려고 하는지 강현과 상의해서 상당히 높은 로열티를 지불하기로한 기업들의 리스트를 뽑아 약 200여개 정도의 기업에 3년의 기간을 배타적으로 라이센스를 계약했다. 이 3년 동안 그 기업들 이외의 다른 기업들은 CNT 상용 기술의 라이센스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덕분에 최주정 교수진의 계좌에는 연일 숫자가 쌓여갔다.(당연하게도 강현의 계좌는 티가 나지 않았다.)미국의 한 섬유 회사에서도 라이센스를 획득해 CNT를 이용해 섬유를 뽑았는데 그 목적은 다양했다. 하지만 아직 그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주로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상품들을 위주로 생산이 되었는데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CNT 섬유로 만든 로프였다. 새끼 손가락만한 굵기로 열 몇 사람의 체중을 가볍게 지탱하는 이 로프는 암벽 등반가들에게는 없어서 못 사는 물건이었다. 가느다란 로프라는 의미는 같은 부피로 더 긴 길이의 로프를 가지고 다닐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단 로프 뿐만 아니라 CNT천으로 만든 경호용 방탄 우산이라던지 결코 찧어지지 않는 트렘블린이라던지 여러 제품으로 나와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엄청난 성능의 미래적 신소재는 과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유혹이었다.

덕분에 강현도 주문한 CNT 천으로 만든 일자형 튜브를 금방 구매할 수 있었다. 천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에 단단히 재봉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재봉에 사용한 실 역시 CNT섬유로 만들어졌다.

강현은 이 튜브안에 점탄성 물질을 집어 넣고 다시 끝을 단단히 재봉질해서 막았다. 그리고 이것의 완충 실험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자신이 굳이 그런 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충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튜브의 정면을 무언가가 때리고 그 뒤의 압전 센서가 튜브에서 전달하는 압력을 측정하면 된다.

하지만 자동차 추돌 사고같이 강력한 충격을 목적으로 만든 완충 장치이니만큼 실험을 위한 장비 역시 그에 준하는 설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강현이 어느 세월에 그런 설비를 지을까? 또 짓는다고 해도 무척이나 클텐데 몇 번 쓰지도 않을 설비를 짓는다는 건 돈 낭비, 시간 낭비, 심력 낭비였다.

“아우디에 보내자.”

[네, 박사님.]

강현은 30여개의 완충 장치 샘플을 아우디에 보냈고 아우디의 안전 기술 연구원들은 이 1미터 남짓한 시커먼 튜브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고?

“제르망 씨. 강현 박사가 보낸 신형 완충 장치라고 합니다.”

수석 연구원인 제르망은 본사에서 나온 사람의 말에 더욱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응원용 풍선 막대기 안에 물컹한 액체를 채운 것 같은 것이 완충 장치라고?

완충 장치는 크게 차량 내부에서 에어백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승객의 안전을 보호하는 방법과 차량 자체의 구조와 설계로 효과적으로 충격을 흡수해 승객에게 전달되는 충격을 줄이는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그런데 강현 박사가 보내온 이 물건은 아무리 봐도 에어백에는 사용할 수 있지만 차체의 충격 흡수에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런데 완충장치다?”

제르망은 일단 의문은 접고 실험해 보기로 했다.

차량 충돌 테스트는 단순히 차량을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좌석만 따로 빼서 급격한 속도 변화에 따라 더미가 받는 충격을 시험하는 것도 있었다. 마치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캐터펄트와 같은 장비가 있는 것이다.

제르망과 연구원들은 강현이 만들었다는 완충장치를 설치하고 캐터펄트를 작동 시켰다. 캐터펄트에 설치된 벽이 빠른 속도로 설치완 완충장치를 강타했고 완충장치는 찢어지고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바닥에는 진흙을 던진 듯한 갈색의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었다.

실험은 실패한 것일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순간적인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변화가 급격하기 때문에 사람의 시각으로는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충돌 순간부터 정지까지 완충장치 뒤에 설치된 압전 센서는 모든 것을 기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건... 강도가 너무 좋은데...”

“압전 센서가 기록하는 최대 응력이 180MPa입니다.”

“완전히 철이구나.”

제르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런 응력을 충돌초기부터 거의 충돌이 끝날때까지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철강으로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장점이었다.

거의 모든 금속도 마찬가지지만 한계 이상으로 변형되면 끊어져 버린다. 그리고 끊어져 버리는 순간 외부의 힘을 지탱할 능력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남은 운동량은 운전자에게 전해져버린다. 즉, 차량 프레임의 설계에는 ‘어떻게 해야 부러지지 않고 적절하게 끝까지 구부러질 수 있는가?’를 위한 재질과 원가, 디자인의 싸움인 것이다.

하지만 이 강현의 완충 장치는 그 싸움에서 디자인의 편을 들어주는 획기적인 재질이었다. 일단 그냥 집어 넣어주기만 하면 지속적으로 철에 준하는 강도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었다.

“IAPP(Impact absorption Protein Plastic)이라.. 대단하군..”

제르망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강현이 보내준 완충장치를 이용해서 여러각도로 실험을 해보았다. 길쭉한 형태라서 그런지 굽힘 충격에 다소 약한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그럼에도 충돌 초기부터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힘을 받는 능력은 여전했다.

제르망은 몇 번의 실험결과 CNT천과 강현의 IAPP로 만든 충격 완화 시스템은 당장 도입해도 될 정도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강현에게 전달했다.

“튜브를 CNT 섬유 재질로 한 것이 주효 했던 걸까? 생각보다 성능이 좋네.”

강현은 굽힘 충격 강도의 결과 데이터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즈삭은 그 중얼거림을 받아 대답했다.

[굽힘 강도는 결국 굽혀지는 표면이 얼마나 질기냐에 따라서 결정되니 말입니다.]

강철의 몇 배나 질긴 CNT섬유가 구부러지는 바깥쪽에서 찧어지지 않고 단단히 버텼다는 것이다. 이런 기계적인 특성은 금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금속을 구부리는 테스트를 할때 금속의 표면을 얼마나 반질반질하게 폴리싱하느냐가 실험 테스트의 결과에 큰 차이를 준다. 표면이 균질하지 않으면 약간 움푹 들어간 곳으로 크랙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금속의 바깥에 CNT섬유를 붙여 굽힘 강도를 늘리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었고 금속과 강력한 장력의 섬유 복합재는 그리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다. 실제로 차량 사이드의 임팩트바에 그런 복잡재를 사용한 제품도 있다.

강현은 자신의 개발한 기술이 이미 충분히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는 제르망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미 CNT 천은 공업적으로 생산이 되고 있었고 IAPP의 경우에는 원 재료인 거미줄 단백질 생산 시설(이미 인공 거미줄 섬유는 상용화 되어 팔리고 있었다.)과 기존의 화공업 시설을 이용하면 충분히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차량 자체의 디자인과 응용에 관한 것이고 그건 각 자동차 회사의 몫이었다.

강현은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이 기술을 무료로 발표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IAPP쪽은 전적으로 자신이 개발한 것이니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CNT의 경우 최주정 교수의 기술이 있기 때문에 무료로 공개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도 그런 경우 강현 자신이 받는 몫은 대폭 줄여서 가격을 낮추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 발표를 하려고 계획을 잡는 동안 잭이 찾아왔다.

“여어.”

“......”

잭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자 강현이 오른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잭은 나름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다고 했지만 강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막 신형 완충 기술을 발표할 준비를 하는데 이렇게 잭이 찾아왔다. 뭔가 또 상부의 명령을 받아 부탁을 하러 온 모양이다.

잭은 강현이 자신의 인사에도 대답하지 않고 턱만 쓰다듬자 속으로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눈치도 빠르다.

잭은 방심할 수 없었다. 강현은 단순히 연구를 잘할 뿐인 Nerd가 아니었다. 정치적인 식견 역시 충분히 갖추고 있는 눈치 빠른 인물로 이미 CIA에서는 정평이 자자하다. 물론 그런 능력을 자신의 연구 생활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번에 아우디에 물건을 보냈다며?”

“어떻게 알았데? 아참. 아직 아즈락이 불법 정보 수집을 계속하고 있겠구나.”

강현이 저번에 잭에게 말했던 사항(아즈삭의 아즈락 협박 사건)은 결국에는 덮어두기로 했다. 괜히 들추어 분란을 만들면 골치 아프다. 강현의 경우에도 충분히 골치가 아플테지만 CIA가 마주해야 할 골치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여기 저기에 CIA라면 잡아먹으려 드는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강현의 처세술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결코 강력한 적을 만들지 않으니 말이다.

아니 그런 강력한 이들과 적이 되기에는 강현의 생활 양식은 무척이나 검소했다. 그냥 돈많은 서민? 상류층에 포함시키고 싶을 정도의 천재기는 했지만 초기 석유산업계 인사들을 완전히 작살낸 전모가 밝혀진 세계 석유 컨소시엄 이후에는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건들지만 않으면 나름 조화를 꾀하며 살려는 온건한 인물이 강현이었던 것이다.(남한에서의 미친 짓 때문이기도 했다. 괜히 건드렸다 피보고 싶은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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