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아무튼 제현 그룹의 농간으로 핵심 인재가 하나 둘씩 빠져나가자 인재를 빼앗긴 기업들은 제현 그룹을 성토했다. 부도덕하고 상도덕이 없는 기업이라고 몰아붙이며 소송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제현 리서치는 제현 그룹과 상관없는 미국 법인 회사였고 한국의 법에 적용받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들은 한국 국적을 가진 고용인들에게 법의 칼날을 돌렸다. 한국 국적을 가진 개개인은 기업들의 소송 공격에 끙끙 앓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회사가 변호사 선임 비용을 대주고 걱정없이 일하라지만 대한민국 법이 서민의 편이 되기 힘들다는 사실과 대기업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사실은 익히 몸소 익힌 교훈이었다.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푸념도 해보고 혹시나 정말로 제현 리처치와의 고용 계약이 파기 될까봐 마음 고생이 심했다.
이런 그들의 상황은 몇몇 대안 언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져 이슈가 되었다. 주류 언론에서 무시하기에는 제현 그룹의 영향력이 만만하지 않았다.
개인을 타깃으로한 소송 공격이 알려지자 기업들의 횡포다, 아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등등 말이 많았다.
이에 대응하는 제현 그룹의 입장은 이랫다.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이고 기업이 나라 경제의 핵심이니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제정할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기술 인력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법안이 국가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을 통한 공식적인 발표는 이랬지만 뒤로는 정치권과 기업들에게 이렇게 협박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연구소의 일을 방해해 막대한 손해를 끼치면 ISD 제소를 하겠다.’
이런 협박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제현 연구소에 고용된 개개인에게 소송을 건 기업들에게 역으로 제소를 하겠다는 것이다. 소송을 건 기업들에서는 적반하장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기업들에게 자중할 것을 요청했다. 한미 FTA로 인한 분란으로 정치적인 부담을 지기는 싫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시 한미 FTA가 발목을 잡자 대기업은 이를 갈았다. 이렇게 되려고 한미 FTA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미 FTA는 비유하자면 한국과 미국 간의 경제에 고속도로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 세계적 시장에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로 역으로 대한민국의 기반이 잠식당하고 있었다.
물론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가진 미국에 의해서 국가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친 기업적인 조항으로 인해서 기업들에게는 손해가 없는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당연했다. 이윤 추구를 목표로하는 기업이 대한민국에 들어온다면 이윤을 위해서 대기업 자신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손해다. 차라리 손을 잡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러나 제현 투자회사의 경영 이념은 이윤 추구와 거리가 멀었고 너무나 노골적으로 대기업과 대척점에 서 있었고 충돌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번 사건 역시 그러한 본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고 상황은 대기업에게 불리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미 FTA의 부작용이 다시 한번 들추어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막대한 부담이었기 때문에 대기업들을 다독이는 수 밖에 없었다. 대기업들은 정치권의 든든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입장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대처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기술 유출이 꺼려지는 기업들은 핵심 인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챙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방향은 기존의 대한민국의 풍조와는 반대를 걸을 수 밖에 없었고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 거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합리적인 고용문화가 임금 제도가 들먹여지기 시작하자 언론을 통해서 각종 사건들을 크게 부각시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인 강현은 대한민국에 자신이 또 어떤 태풍을 몰고 왔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완충 기술을 위한 점탄성 물질의 완성에 힘을 기울였다.
단백질 수소 결합으로 인한 강한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거미줄 단백질의 분자를 좀 더 작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단백질을 단일하게 사용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슬 형태의 고분자와 섞을 필요가 있었다.
이는 단백질 분자 끼리의 얽힘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 사슬 구조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단백질의 자체적인 접힘 구조는 점탄성을 위한 사슬 얽힘을 일으키는데 걸림돌이었다.) 또한 강한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부분과 약한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부분을 동시에 주어 얽힘을 더 강하게 만들 목적도 있었다.
사슬에 강한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부문만 있다면 사슬 얽힘에 에너지적인 굴곡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 하자면 에너지적인 매끈한 표면으로 인해서 힘을 받았을 때 서로 잘 미끄러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강한 상호작용을 가진 부분과 약한 상호작용을 가진 부분이 점탄성 물질의 사슬에 불규칙적으로 있다면 사슬이 미끄러질때 에너지적인 굴곡이 생긴다. 마치 도로의 과속방지턱처럼 얽힌 사슬이 미끄러지는 속도가 느려진다. 즉 점탄성 물질이 깨지지 않고 받을 수 있는 탄성력의 한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분자의 구조를 고안하고 합성하는 것은 제아무리 강현이라고 해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화학은 어렵네.”
공상 과학 영화처럼 원자를 일일이 조합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현 인류의 과학 기술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강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에서는 어려운 화학을 손쉽게 다룰 수 있는 강력한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아즈삭이었다.
[시뮬레이션 완료.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잠깐. 용액의 산성도를 약간 더 낮춰서 8.1pH에 맞춰보자.”
[실험 데이터의 조건과 맞지 않습니다만..]
“단백질은 안정한 물질이야. 약간의 염기성으로 조금 더 풀어주지 않으면 나일론 단량체와 펩티드 결합을 일으키는 건 어렵지 않을까?”
나일론은 종류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합성에 필요한 단량체도 다르다. 하지만 주로 분자 양쪽에 아민기(-NH2)와 카르복실기(-COOH)를 가지고 있는 두 종류의 단량체의 축합 반응에 의해서 생산하게 된다.
이런 나일론의 합성에 의해서 생기는 결합을 아미드 결합이라고 하는데 결국에는 ‘-CONH-’결합을 만든다. 즉, 단백질의 팹티드 결합의 일종인 것이다. 그러니 나일론이 초기에는 인조 비단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했다. 누에의 입에서 나온 실도 결국에는 단백질이니 말이다.
강현은 이 나일론을 합성하는 단량체와 적당한 크기로 끊어진 단백질의 끝을 연결할 생각을 했다. 단량체는 나일론 생산에 많이 사용되는 헥사메틸디아민과 아디프산을 사용했는데 때문에 두가지 공법이 차례로 시행되어야 했다.
먼저 하나의 단량체와 거미줄 단백질을 합성시키고 나서 다음 단량체와 합성을 시키는 것이다. 왜냐면 헥사메틸디아민과 아디프산이 섞이면 자발적으로 나일론 합성 반응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먼저 일정하게 끊어진 단백질의 끝에 한 종류의 단량체를 붙여야 하고 그 반응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용액의 농도 조건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강현와 아즈삭의 판단이었다. 왜냐면 화학 반응이란 유효 충돌이 필요했고 그 유효 충돌을 위해서 자체적으로 접혀 굳은 단백질보다는 용액에 녹아 부드럽게 풀린 단백질의 경우가 그 절단된 말단이 나일론 단량체와 반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백질을 녹일 수 있도록 약간의 염기성 용액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해서 가장 적절한 pH를 찾아내었다. 그 값은 7.8. 하지만 강현은 어찌된 일인지 약간 산성도를 더 낮춰 보자고 했다.
7.8에서 8.1. 언듯보면 그리 큰 수치는 아닌 것 같지만 pH라는 단위는 수소 이온 농도의 로그 값을 뜻하기 때문에 농도만으로 따지면 두배의 차이가 난다. 농도가 두배라는 말은 그만큼 반응 속도도 빨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수치는 아즈삭의 시뮬레이션결과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아즈삭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즈삭은 ‘강현의 연구를 보조한다.’라는 자신의 존재 목적으로 인해 이 이레귤러와 같은 상황에 대한 데이터 수집에 들어갔다. 그것은 차후 강현을 원활하게 보조하기 위한 본능적인 자료 수집과 같은 것이었다.
[박사님께서 설계하신 거미줄 단백질에 사용된 단백질은 일반적인 단백질과 같이 염기성에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존의 시뮬레이션이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단백질의 용해성은 그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특성에 달려있다. 아미노산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아민기와 카르복실기, 수소 원자, 그리고 그 아미노산의 종류를 분류하는 탄화수소 그룹, 이렇게 네 개가 탄소 원자 하나에 붙어있다. 이 탄화수소 그룹은 구성과 구조에 따라 극성도 있고 무극성도 있으며 아민기를 가져 염기성을 띄고 있기도 하고 카르복실기를 가지고 있어 산성을 띄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펩티드 결합을 하는 아민기와 카르복실기 부분을 제외한 탄화수소 그룹으로 인해서 단백질의 용해성은 같은 분자내에서라고 해도 부분부분마다 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염기성에 단백질이 잘 녹는다는 말은 이 탄화수소 그룹이 염기성에 잘 용해되는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그게 말이야 거미줄 단백질은 구성이 일반 단백질과는 조금 다르잖아. 배열도 기존의 단백질과 조금 틀리고 좀 더 안정한 구조라고나 할까? 그래서 7.8pH는 조금 약한 것 같아서 말이지.”
[박사님께서 설계하신 인공 스피드로인 구조의 견고함을 생각하면 납득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고려한 것이 시뮬레이션 결과가 아닙니까?]
“아 모르겠다. 뭔가 기분이 찜찜해서 그러니까 그냥 8.1로 해. 아니지. 7.8의 실험도 동시에 진행해서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도 확인해 보자.”
한 번의 실험으로 점탄성 용액의 합성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오차를 확인하겠다는 강현의 의도였다. 그리고 그런 강현의 의도는 아즈삭이 제어하는 두 대의 HA로 인해서 성공적으로 실험이 진행 되었다.
아즈삭은 두대의 HA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같은 환경 같은 조건에서 단지 pH만 바꾸어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강현의 예상대로 산성도를 8.1pH로 맞춘 경우가 반응 시간이 압도적으로 짧았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즈삭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뭐, 직감이라는 거겠지.”
[….]
아즈삭은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도 분석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하고 침묵했다. 아즈삭의 연산회로가 쌩쌩 돌아갔다.
강현의 능력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란 명제는 답이 ‘불가’로 나왔다. 그렇다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은 무언인지 사고 회로를 돌리고 인터넷으로 여러 자료들을 검색해 답을 도출했다.
강현의 능력에 대해서 ‘그러려니’하는 태도가 자신의 연산 회로에 가해지는 부담이 극히 적어지면서도 효율적으로 강현을 보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 아즈삭은 다시 얌전하게 강현의 말에 꼬치꼬치 되묻지 않고 순종했다.
‘신앙은 어쩌면 합리적인 논리 사고 과정의 결과물일지 모른다.’
그러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불가해한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때론 시도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합리적인 이론이 있더라도 그것을 검증하기 불가능하다면 결국에는 답은 도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