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69화 (69/241)

69화

그러나 전자나 후자나 모두 효용성을 발휘하려면 일단 강현의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을 곧 경악하고 말았다. 이미 강현이 개발한 피스톤식 챔버를 이용해 상용화를 위한 기술이 이미 개발되었고 최주정 교수의 연구팀에 의해서 실험 및 보완을 거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교수님. 저희 회사와의 계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허허허, 알겠소.”

CNT 섬유 상용화 기술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을 물론 전 세계 섬유 산업 종사자들 중 좀 크다 싶은 곳에서 죄다 사람들을 보냈고 때문에 최주정 교수는 거의 매일 외부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정신 없는 생활을 보냈다.

최주정 교수와 만난 파견 인원들을 견학 삼아 실제로 CNT 섬유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는 연구실을 방문할 수 있었고 연구가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 볼 수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두툼하고 시커먼 원반에서 섬유가 뽑아지고 연구원들이 모터로 만든 방적기에 의해서 꼬이고 실이 되어 실패에 감겨 완전히 실이 되고 있었다.

최 교수의 말로는 실의 강도와 적절한 실의 굵기, 꼬임을 연구하고 그에 필요한 패드(CNT를 성장시킨 기판)의 개수가 몇 개인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즉, 상용화가 초읽기에 들었다는 것으로 공장을 세우기만 하면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견학을 했던 모든 이들이 저렇게 허리를 숙이며 최주정 교수에게 라이센스를 부탁한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허리를 숙이며 부탁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접은 섭섭치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이 기술을 부디 국내 기업에게..”

대한민국의 대기업에서 나온 이들은 실리와 명분을 들이밀며 최주정 교수를 설득하고 어떻게든 구두 약속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최주정 교수 혼자서 답할 수는 없었다. 생산 기술의 개발에 대해 강현의 기여가 무척 컸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상용화를 위해서 몇 년은 걸렸을 기술이 순식간에 실현된 것이다.

“그럼 원천 기술만이라도 독점 계약하고 싶습니다.”

“그건 아니될 말입니다.”

한 대기업 간부의 요구에 최주정 교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 뒤로 여러 경로를 통해 갖은 압박과 회유가 들어왔다. 그 중 압권은 대학 총장이었다. 뭐 하자면 같이 식사하자고 하고 라이센스 이야기를 꺼내고 사람을 짜증나게 했다.

제현 그룹이 대한민국 경제의 한 부분을 잡아 먹었다지만 이런 인맥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아직 기존의 기득권을 따라오지는 못했다. 아니 애시당초 그런 식으로 영향력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제현 그룹의 경영 방식과는 달랐다.

‘기업은 기업의 영역에서 착실히.’

돈이 있다고 법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거나 학교를 학교답지 않게 만든다던가 시민단체가 시민단체가 아니게 만든다던가 언론사를 딴따라로 부린다던가 하는 일들은 그런 기업 경영 방침에 의해서 배제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 압박을 받은 최주정 교수의 마음을 표현하자면 한 마디로 ‘좆’같았다.

임용시기에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서 인맥이나 사회 생활, 뭐 그런 것들로 고생고생하며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좀 그런거 걱정없이 마음 편하게 연구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기에 파리가 날라들 듯 온갖 잡놈이 귀찮게 했다.

대학 총장? 이공계 출신도 아닌 작자가 기술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니 배알이 꼴렸다. 적어도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모집 요강에 미분적분은 필요망이라고 적시하고 그런 소리나 할 것이지 왜 가뜩이나 상급자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 딴 소리를 지껄이는지..

당연히 최주정 교수가 총장의 본뜻을 모를리가 없다. 대기업과 그 라이센스를 독점계약해라 그 말이었다. 총장의 뉘앙스와 배경을 알고도 그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면 바보다.

최주정 교수는 스트레스가 쌓였다. 다시 이런 이해관계가 얽히는 정치는 전혀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건 교수 임용 시기에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확 때려 치울까?”

‘헉!’

그는 스스로 내뱉은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번 CNT 섬유 상용화에 선공한다면 자신과 연구원들은 엄청난 재산을 가지게 된다. 전 세계적 수요를 생각해 보았을 때 자손이 3대는 먹고 살 수입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최주정 교수는 더 이상 교수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그게 아니지.’

최주정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돈이 많으면 좋다. 하지만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동물들처럼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도 만족하지 않고 그 상위의 욕구가 등장한다. 명예가 그 상위 욕구 중 대표적인 한가지였다. 그래서 대학 교수로서의 명예는 그가 교수직을 유지하자는 마음 속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그 역시 다음과 같은 질문에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국민대 교수의 자리라는 명예가 강현과의 공동 연구자라는 명예보다 높은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국민대의 이름과 강현의 이름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국민대의 이름을 모르는 학자는 있어도 강현의 이름을 모르는 학자는 없었다.

그러니 세기의 천재가 관심을 가진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자라는 타이틀 하나 만으로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을 만했다. 게다가 그는 강현과 같이 공동 연구를 한 몇 안되는 연구자 중의 한 명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가 먼저 공동 연구를 제의한 ‘최초’의 연구자였다.

그 말은 이 세기의 천재가 최주정 교수의 결과물을 그 만큼 인정한다는 것을 뜻했다. 이미 최주정 교수는 세계적인 연구자로 알려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최주정 교수는 무척이나 지금의 상황이 시시해졌다. 대기업의 청탁도 총장의 식사 제의를 가장한 은근한 압박도 무척이나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정말로 교수를 때려쳐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주정 교수는 교수를 때려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신 대응 방침을 완전히 바꾸었다.

“교수님. 총장님이 이번에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 왔습니다.”

“연구가 바빠서 안 된다고 전해드려.”

조교가 총장의 말을 전달하자 최주정 교수가 거절하라고 지시했다. 불쌍한 조교는 그게 말이 되냐고 반문하는 총장과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최주정 교수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잡아먹었다.

그런 조교의 고생에 미안한 최주정 교수는 그날 저녁 조교들에게 치킨을 선물했고 그 다음부터는 총장의 전화를 직접 받아 거절하기 시작했다.

[오늘 시간이 나시오?]

“요즘 바쁜데 왜 그렇게 전화를 하십니까?”

[허허. 저녁 한 끼 정도 어때서 그러시오?]

저녁만 먹고 덕담만 나누면 충분할 것을 쓰잘데기 없이 대기업에 잘보인다고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이는 최주정 교수의 본심이었으나 그런 본심을 곧이 곧대로 전달하지는 않았다.

그는 교수 임용 시절에 터득한 처세술을 꺼내들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며 총장을 달랬다.

정면으로 대응하면 상대의 불같은 기세를 마주할 것이 뻔하니 그저 시간을 끌어 총장의 의욕이 한 풀 꺽이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을 손자 병법에서는 이일대로(以逸待勞 )라고 하던가?

그렇게 며칠 시간을 끄니 연락하는게 뜸했다. 이쯤 되면 총장도 최 교수의 본심이 어떤지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미쳤다고 국내 기업에 라이센스를 독점적으로 주나? 전 세계에 팔아먹으면 돈이 얼마나 되는데?

때문에 CNT 섬유 상용화 기술에 눈이 벌게진 대기업들을 안달이 났다. 그들은 기존의 관행을 완전히 파괴하는 거액의 특허료와 로열티를 제시했시만 이미 뿔이 날대로 난 최주정 교수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총장은 총장대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 동안 자신을 도와줬던 이들에게 뭔가를 보여 줘야 했는데 이 교수 자식이 도저히 말을 안듣는다. 마음 같았으면 확 잘라버리고 싶었지만(그럴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는 둘째치고) 최주정 교수가 딴 데로 간다고 하면 오히려 잡아 두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 최주정 교수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이공계에게 희망의 등불이었다. 연구를 열심히 하면 돈을 번다, 명예를 얻는다, 이공계를 천대하던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다 등을 실현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강현의 경우도 있지만 강현은 애시당초 본인들로서도 따라한 엄두가 나지 않는 천재였으니 롤 모델로는 부족했다. 반면에 최주정 교수는 그닥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평균적인 수준의 교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아이디어 하나만 잘 만들어 대박을 친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대학가에서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열풍이 불었다.

그런 자신감은 다시 이공계열의 사원들에게 전해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풍조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사용인 입장에서는 로열티를 요구하는 건방진 연구 기계들의 행동이 탐탁찮았다. 로열티를 요구하려면 좀 대박 기술을 만들어 내던가..

결국 본질은 돈으로 로열티를 받으려면 그만한 기여를 하라는 태도였고 이런 사용인의 태도는 자신이 받아야 할 권리를 깨닫기 시작하는 연구자들의 눈에는 탐욕스럽게 돈만 밝히는 천박한 자본가의 태도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뭐 연구비만 나오면 즐겁나?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대접을 해주고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사용인 입장에서는 회사의 어려움도 모르고 건방지게 탐욕스러워졌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이렇게 점점 연구 개발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기득권 탈취를 꿈꾸는 제현 그룹의 경영진들은 그 사이를 파고들어 유능한 연구원들을 하나 하나 빼돌렸다. 강현의 무한 자금이 없는 이상 과거처럼 무식하게 회사를 사들이는 방법은 할 수 없었다. 자본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였다.

대한민국 법에 의하면 고용인들은 퇴사하고 나면 관련 업종에 일정기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명분은 영업 비밀 보호. 이 영업 비밀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대한민국에서는 무척이나 포괄적인 개념이고 어떤 자료가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지는 가이드 라인 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즉, 영업 비밀은 엿장수 마음대로 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술. 기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기술은 확고하게 영업 비밀의 영역에 있었다. 또한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기술은 곧 기업의 경쟁력이기 때문에 기술 유출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현 그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술직들을 고용했다. 경쟁 업체들이 분명히 이때다하고 맹공세를 할 것이 분명했지만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미국에 아예 따로 미국 법인으로 제현 리서치라는 연구기업을 하나 차린 것이다. 지분은 제현 그룹이 아닌 제현 투자회사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이름만 제현 리서치지 제현 그룹의 계열사가 아닌 완전히 다른 기업이었다.

당연하게도 미국은 그런 이직의 자유를 헤치는 법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제현 리서치에 고용되어 다시 자신이 연구하거나 개발하던 분야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 마련된 연구소로 가거나 아니면 한국에 남아서 인터넷으로 일할 수도 있었다. 주로 한국에 남은 이들은 IT관련해 개발을 하던 전문 인력이었다.

============================ 작품 후기 ============================

글 전개를 위한 퍼즐 조각을 찾기 어렵네요. 근 스토리 흐름은 있는데 말이죠. 난감하네요. ㅡㅡ;;;;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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