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66화 (66/241)

66화

그러나 강현은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을 알면서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자본가들이 무력 역시 소유하는 상황은 권력의 집중을 뜻한다. 그것은 강현에게 득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권력의 속성은 계속 권력의 집중을 가속화하니 그들은 강현을 자신의 손안에 잡아두고 좌지우지 하고싶을 것이다.

강현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그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지만 그건 매우 귀찮은 짓이었다. 강현은 자신의 성품과 이들이 어울리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자본주의자’였고 자신은 ‘그딴 거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한 이들의 목적이 ‘부’라고 한다면 자신의 목적은 ‘탐구와 창조’였다. 또한 같이 가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부류였다.

그래서 강현에게 가장 유리한 것은 현상 유지. 권력은 권력대로, 부는 부대로 각자의 영역을 나누어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첨단과학기술로 대변되는 시대에서 강현의 영향력을 막강했다. 그러니 그가 나서는 것은 파급효과가 컸다.

강현이 나서게 된다면 마치 그의 입장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가 있었다. 그의 영향력을 고려해 본다면 자본가들이 강현을 자신들에게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적을 만드는 행위였다. 적이 생기면 피곤해진다. 신경 쓸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 많은 이들이 수 많은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인재풀이라면 그런 자본가들을 견제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강현은 최악의 상황에만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강현은 다시 평화롭게 연구자의 삶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서도 강현 개인으로서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 = = = =

강현의 일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강현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집에 갔다가 연구소에 출근하고 연구하고 퇴근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인간관계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업무에 필요한 것 이외에 그가 뭘하는 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과거에 제시와 잭이 있었을 경우에는 그나마 사람들과 조금 어울렸지만 제시가 죽고 잭은 정체가 탄로가 본부로 돌아가 버린 후에는 정말로 무미건조했다.

예를 들면 임금 협상의 시절이 돌아왔을 때에도 이메일로 합의를 보고 누군가의 연락도 아즈삭을 통해서 걸러버렸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것은 이제 잭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슈퍼 솔저 프로젝트 같이 특별히 협동이 필요한 일이 아니면 그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출퇴근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NASA의 직원들은 그런 강현의 행동을 천재 특유의 괴팍함과 고고한 자기 세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NASA의 경영진과 미 정보부는 강현의 올바른 인성 배양과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 형성에서 의견 일치를 보고 강현과 친한 사람을 만들 것을 계획했다.

그 결과가 강현을 이렇게 귀찮게 하는 샐리 클린턴이었다.

“박사님. 저번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서 K 시리즈를 추가로 하는 지휘관 타입의 모빌 아머에 대한 의뢰가 왔는데요.”

“박사님. 세계 물리학 협회에서 입자 가속기 실험의 결과 데이터를 보내 왔어요.”

“박사님. 공화당 마이클 의원께서 이번 연회에 참석을 부탁한다고 연락을 보냈어요.”

“박사님.”

“박사님.”

장학 재단으로부터 이번 방학에는 NASA에서 인턴을 하도록 지시를 받은 샐리는 NASA에서 강현을 사무보조하는 일을 맡았다. 그전까지 강현의 사무보조는 NASA의 행정실에서 다른 연구자들처럼 담당했었다. 물론 아즈삭이 강현의 스케줄을 관리하기 전에는 거의 매주 찾아와 이것 저것 이야기하고 서류 작성을 요구하며 강현을 귀찮게 만들었다. 아니 아즈삭이 스케줄을 관리한 후에도 종종 찾아와서 필요한 서류에 사인을 요구하며 강현을 귀찮게 만들었다. 아무리 아즈삭이라도 강현에게 관심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재주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NASA의 생물학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온 샐리는 NASA의 정중한 요청을 받아 강현의 사무보조도 같이 담당해 줄것을 부탁했다.

명분상으로는 파스퇴르 연구소 인턴 시절에 강현과 연을 맺고 안면을 익힌 사이라는데 사실은 미 정보부의 은밀한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본인은 자신을 강현에게 붙여놓으려는 주위의 의도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맡은 일을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었다.

“박사님. 이 서류에 싸인 좀 해주세요.”

“무슨 서류?”

“이번에 들여온 화학물질에 대한 확인 서류요.”

“아아. 고마워.”

강현은 연구를 위해서 실험을 한다. 하지만 그리 많이 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화학 약품을 사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만 확인증에 싸인을 사는 것을 그만 깜박하고 만 것이다.(아즈삭이 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뭘요.”

강현의 말에 샐리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녀에게 강현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참. 그리고 내일 아스칼 회장님이 찾아오시는 건 알죠?”

아스칼은 아우디의 회장이었다. 이번에 강현을 찾아오는 목적은 새로운 자동차 기술에 관해서 이야기 하기위해서라고 한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따로 필요하신 건 없죠?”

“없어.”

“그럼, 연구 열심히 하시고 다음에 봐요.”

“응.”

샐리는 손을 흔들고 가버렸다. 생물학 연구실에서 배울 것이 많은 그녀였다.

다음날 예정대로 아스칼 회장이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한 시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나서였다.

“하하하! 닥터 강. 오래간만일세.”

“오래간만입니다, 회장님.”

한국에 아우디 HJ를 설립하기 위한 계약을 하고 나서 얼굴을 직접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무슨일이세요?”

“흐음. 그러니까 새롭게 자동차 관련 기술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맞기고 싶어서내.”

“연구 용역이요?”

강현은 탐탁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구 용역이란 말 그대로 돈을 받고 대신 연구를 해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연구의 방향성을 비용을 지불하는 측의 입장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자유로운 연구를 지향하는 강현에게는 별로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연구 용역은 강현의 표정처럼 그렇게 연구자의 창조성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 의뢰를 받은 연구자는 실제 세상에서 원하는 기술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고 연구자가 아닌 기업인, 경영자, 비지니스 맨의 시각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위한 연구 자금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스칼 회장이 부탁하려는 연구는 강현의 강한 의욕을 자극할 만한 소재였다.

“충격 흡수 시스템이요?”

“그렇네. 자동차의 연비가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 결국에는 디자인과 이미지가 마케팅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네.”

부가가치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사람이 그 물건에 그만한 가치를 느끼면 된다. 그리고 지구상에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은 ‘예술품’이다.

공산품이 풍부해지고 기술적인 격차가 줄어들어도 경쟁은 계속된다. 상품은 끊임없이 진화되어야 하며 그 종착점은 예술품이었다.

도자기가 단순한 도구에서 지금은 예술적 가치도 가지고 있듯이, 태엽 시계가 단순히 시간을 가리키는 기능에서 지금은 명품 시계가 되는 예술품이 되었듯이, 공산품은 예술품으로 진화하게 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가격과 연비만으로 구입하지는 않는다. 그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과 이미지 역시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된 시대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싸움에서 자동차의 디자인은 그 기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종목이었다.

차량 내구성은 기본이고 제조시의 용이성, 연비를 줄이기 위한 유체 공학적인 곡선은 물론이고 그 안에 담길 부품들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자동차의 디자인은 거의다 비슷하다. 승용차의 옆모습이 영국 신사의 모자와 같은 모양에서 단지 약간씩의 다변화만 주었을 뿐, 미래의 자동차처럼 달걀형이나, 원뿔형 같은 전혀 새롭고 이질적인 디자인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냐면 가장 중요한 운전자의 안전을 고려해서 전후방이 툭 튁어나온 형태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툭 튀어나온 부분이 없다면 충돌시 그 충격이 바로 운전자에게 가해지는 것이다.

트럭의 경우에는 운전석의 위치가 높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트럭과 트럭이 정면 충돌하지 않는 경우, 즉, 승용차와의 충돌시에 충격이 발밑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차량 전복이 없다면 운전자가 사망할 경우는 드물다.

결국 차량의 디자인은 운전자의 안전을 고려하는 한, 현재의 일반적인 형태를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여기에 아스칼 회장이 강현을 만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만일 운전자의 안전에서 차량의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든다면? 그렇다면 좀 더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우디의 이미지는 벤츠와 BMW의 중간쯤에 있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닌 개성때문에 자기주장이 강한 젊은 층에 어필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그에 발맞춰 상품 역시 변해야 한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현재를 녹여내는 디자인이 필요하지만 기술의 한계는 디자인의 한계 역시 결정짓는다. 그러나 강현이 획기적인 충격 완화 시스템을 개발해 준다면 좀 더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즈칼 회장의 생각이었다.

“좀 신기하네요. 그런 의뢰는 BMW에서나 나올 의뢰인데. 혹시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로 BMW와 경쟁하실 생각인가요?”

“물론. 앞으로 시대는 훨씬 빨리 변할걸세. 우리에게 벤츠와 같은 보수적인 이미지가 약한 이상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가 확실하게 필요하네.”

“그럼 BMW와 경쟁한다는 건가요?”

“경쟁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 미래라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양하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래의 자동차에 대한 이미지를 선점하는 것이 회사에 이득이라는 거야.”

“그래서 새로운 완충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제시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원래 연구 용역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강현은 이번 일에는 생각이 달랐다. 연구 해보고 싶다. 자동차의 안전을 더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싶다.

“좋습니다. 그러면 연구 해보도록 하죠.”

“하하하. 고맙네.”

“하지만 그 기술을 아우디에만 제공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응?”

아스칼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기술입니다. 독점하고 싶으세요?”

아스칼의 얼굴이 굳자 강현의 얼굴도 굳었다. 그 표정에 아스칼 회장은 속으로 아차하고는 표정 관리를 하며 변명했다.

“아, 아닐세. 단지 생각도 못했던 말을 들어서 당황한 것이지.”

“그렇다면야. 저는 제가 개발한 충격 완화 기술의 원천 기술을 무료로 풀 생각입니다. 그러니 굳이 연구 비용을 대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당연한 일이다. 기업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그만큼의 대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연구 용역을 청하는 것도 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닌가?

“아닐세. 비용을 지불하지.”

“왜죠?”

“자네 이름값 때문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