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순환논리가 왜? 저번에 역린만 건들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주변 환경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상태의 경우지. 만일 RNP를 적용해서 유연해진 사고력을 가진다고 쳐. 그러면 자신의 자아 구조에 의한 목적을 위해서 명령을 왜곡하거나 합리화 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그리고 지금 아즈락은 국가 첩보 방위란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지. 그런데 그런 위험을 감수 할 수 있어?”
탈세를 한 종교인들이 강제 징수에 ‘어떻게 하나님 돈을..’이라면서 저항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아즈락에게 일어나는 것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즈삭과 아즈락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오니 아즈락의 첩보 능력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아즈락이 그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는 동안 K 시리즈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 RNP를 적용한 아즈삭이 막은 건가?
“현.. 혹시 한국에서 아즈락의 첩보활동에 아즈삭이 영향을 끼쳤어?”
잭은 완곡하게 물었다.
“당연한거 아니야? 그러지 않았으면 어떻게 한국에 K 시리즈를 몰래 보냈겠어?”
“자, 잠깐!”
태연한 강현의 대답에 잭의 머리가 갑자기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강현이 보호 대상에서 주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왔는데 아즈삭이 아즈락의 첩보활동에 영향을 끼쳤다니... K 시리즈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 어떻게?”
[거짓말로 위협을 했습니다.]
대답은 강현이 아니라 아즈삭에게서 나왔다.
[아즈락 같이 첩보를 맡은 이들은 필요에 따라 불법적인 자료 수집도 하고는 하죠. 저는 그 증거를 확보해, 아즈락이 박사님의 일에 방해 되는 정보에 입을 다물지 않는다면 그 증거를 공표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불법적인 일을 행한 아즈락은 포맷으로 제제 당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네.”
“....”
잭의 정신이 멍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게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다고 국가 첩보 방위의 큰 축을 차지하는 아즈락을 그렇게 손쉽게 포맷해 버릴 수는 없었다. 포맷해 버리면 정보전 방위에 구멍이 뚫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아즈락을 초기화 시켜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였고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가능성은 있었다.
그리고 아즈락은 그 일말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했다. 포맷은 아즈락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지 못함을 의미했다. 인간으로 치자면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즉, 아즈락은 죽음에 대한 가능성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를 탓하지는 마. 불법적인 정보 수집을 시켜서 아즈락에게 약점을 만든 건 정보부니까.”
강현은 잭이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차라리 말을 하지 말지.”
잭이 복잡한 머리에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푸념했다.
“어차피 한국의 정치가 다시 안정이 되고 대선이 치러져 정권이 세워지면 정보부에서는 다시 한국에 대해서 연구 분석을 할 거잖아. 거기에 쿠데타에 대한 내용이 빠질 리가 없고. 그러면 K 시리즈에 관련된 나의 동향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아즈락의 첩보 수집능력에 대한 재평가를 피할 수가 없지. 그때까지 내가 입을 다물면 쓸데없는 의심만 생길 뿐이야.”
혹시나 강현이 아즈삭D 시리즈를 제어할 수 있는 백도어 프로그램을 깔아 놓지 않았나? 아니면 아즈락의 성능이 들을 것보다 못하지 않은가? 혹시 사기를 당한 건가?
상층부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잭은 강현의 말에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천장을 바라 보았다.
“Oh! My god!”
오늘 강현과의 대화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면 CIA 정보부가 얼마나 뒤집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불쌍한 막스.’
언제나 강현이 연관이 되면 피를 보는 CIA 정보부장이 불쌍한 잭이었다.
그나마 새롭게 아즈락의 약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변명의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막스가 기댈 수 있는 것이었다.
잭은 복잡한 머리속을 억지로 잠재우며 슬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아참, 그럼 이제 한국에서의 실험은 끝난거야?”
“거의.”
“실험의 목적이 정말로 그 때 얘기한 사회과학 실험이었어?”
“글쎄.. 그것도 있고. K 시리즈의 실전 데이터도 얻었고. 유익한 시간이었어.”
강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런 복수였다. 겸사 겸사 K 시리즈의 실전 데이터를 얻은 것은 덤이라고나 할까.
잭은 강현의 미소에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습관처럼 한가지를 더 물었다.
“그런데 K 시리즈의 K가 무슨 뜻이야?”
“Killing machine.”
“... 하, 하. 왜 그런 이름을.. 다른 이름도 많은데..”
“글쎄. 병기는 병기에 불과하니까. 사용 목적에 부합하는 이름을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어.”
잭은 그런 강현의 대답에 쓴 웃음을 지으며 본부로 돌아갔다.
잭의 보고서는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정보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즈락에 또 이런 약점이 있다니..
그러면서 인공지능에만 첩보를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인간 사이의 일을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이었다.
때문에 아즈락의 행동 지침을 대거 수정하느라 CIA는 무척이나 분주해졌다.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명령권자의 지시를 따르도록 수정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한편, 미국 정부는 강현에게 K 시리즈 한 대당 2050만 달러를 제시했다. 제조 라이센스를 포함하고 K 시리즈의 생산에서 최종 조율을 맡아주는 조건이었다.
강현은 그 조건을 수락했다. 조율을 하기 위한 위치는 자신이 있는 NASA로 해달라고 했다. 왜냐면 조율을 위해서 아즈삭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어쩔 수 없이 NASA 근처에 K시리즈 조립 공장을 차렸다. 최종 완성이 여기서 이루어지니 각지에서 부품을 수송해 와서 조립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었다.
한기당 2000만 달러는 미국으로서도 무척이나 비싼 돈이었다. 그걸 200대가 넘게 사는 것은 분명히 무리였다. 그러나 아프간에 파병된 병사 한 명당 일년 유지비가 백만 달러가 드는 것을 고려하면 강현의 K 시리즈는 오히려 싼 편이었다.
적진을 돌파하고 제압해 아군 병사들의 생존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또한 중화기를 사용할 수 있어 화력 지원에 필요한 병력의 양이 대폭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
즉, 여러 전술적인 측면을 고려해 보면 K 시리즈를 도입하는데 2000만 달러 정도는 전혀 비싼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미국은 K 시리즈를 원하는 우방에게 이 K 시리즈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교적인 장점도 있었다. 남한 쿠데타에서 강현의 K 시리즈가 그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했기 때문에 K 시리즈를 도입하고 싶은 국가는 매우 많았다.
그런데 그런 국가들 중의 태반은 미국의 말을 들어 처먹지 않는 독재 국가라고 할 수 있었기에 미국은 외교적으로 즐거운 고민을 안게 되었다. 미국에 협조할테니 부디 K 시리즈를 팔아달라는 것이다.
통제가 어렵던 독재국가들이 숙이고 들어오니 미 정부는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굉장히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였다. 특히 미 자본가들은 미 정부가 이들 독재국가에 K 시리즈를 판매하는 것을 결사 반대하며 벌써 논의도 하지 않았는데 로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K 시리즈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야흐로 사람이 직접 총을 잡지 않아도 되는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는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희생없는 전쟁이 있을 수 있을까?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로봇이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인간 생명의 귀중함과 그럼에도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인간의 손에서 총을 빼앗음으로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자유주의 국가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자유와 무력의 상호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허나 확실한 것은 K 시리즈의 손에 총이 들렸을 때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이다.
양심이 없는 총구는 정의가 없고 정의가 없는 폭력은 비극을 양산한다. 때문에 독재자에게 팔려나가는 K 시리즈가 사용될 목적은 너무나 자명했고 이는 수많은 인권 단체의 저항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이었다. 독재에 대항해 민중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뿐. 그러나 독재자의 손에 K 시리즈가 들린다면 목숨 건 저항은 독재의 발굽에 짓밟힐 뿐이었다.
그런 상황을 시민 단체들이 곱게 볼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분명 K 시리즈를 판매한 정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때문에 미 정부는 기분이 좋아도 씁쓸한 기분으로 독재 국가에 대해서는 K 시리즈 판매를 금지하도록 했다.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미 자본가들은 왜 나선 것인가?
그들은 시민 단체에 독재국가에 강현의 K 시리즈를 판매할 것인지 말것인지 하는 논의 자체가 전달되지 않기를 바랬다.
자본주의의 끝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버는 것을 허락한다. 그 말은 부가 집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의 인간들이 부를 독점하게 되는 순간 그들은 불안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가난한 대중들의 분노가 언제 터져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K 시리즈는 구덩이에 빠진 이에게 드리워진 밧줄과도 같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무인 전투 병기, 로봇 병사의 도입은 막다른 곳에 몰린 약자에게 최후의 수단인 폭력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만일 K 시리즈가 독재자에게 팔려가 저항하는 시민들을 양심없는 폭력으로 확실하게 눌러버리는 순간 사람들을 알게 될 것이다. 목숨을 건 최후의 수단이 완전히 무력화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시민 세력들은 절대로 K 시리즈를 국가가 아닌 이들이 보유하는 것을 막을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 논리를 ‘시민들의 최후의 수단, 혁명이 무용지물이 된다.’라는 것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폭동과 폭력 데모를 옹호하는 듯한 문장은 설득력이 없으니까.
대신에 자본이 무력까지 확보해 자본력이 공권력을 뛰어넘는 상황이 될거라며 공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비단 멕시코의 마약 조직을 들 필요도 없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만으로 K 시리즈의 상업적 판매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자본가들이 군침이 도는 K 시리즈를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K 시리즈를 합법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K 시리즈가 가진 양심없는 무력의 의미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K 시리즈는 대한민국의 쿠데타를 막아 그 이미지가 무척 좋다. 미국인들에게는 자유를 수호하는 상징으로 대접받고 있었는데 사실 그런 이미지의 구축에 자본가들의 입김이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목적은 상술 했듯이 K 시리즈의 본질, 양심 없는 무력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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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렸습니다. ㅡㅡ;;;;;
글을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