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이 금속 갑옷이 이 남자가 총탄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인건가? 그전에 총탄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두께로 갑옷을 만들면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그리고 그 갑옷을 입고 그렇게나 세차게 팔을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단련할 수 있는가?
“이, 이보게!”
이견호 회장이 로브를 잡아 당겼다. 그러자 거한의 머리를 씌운 로브가 벗겨지며 머리통이 드러났다.
그 머리통을 본 이견호 회장은 충격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 사람이 아니야?”
반질반질한 머리, 목을 가린 철판, 고개를 돌린 안면은 철갑의 달걀과도 같았다. 그리고 빛을 반사해 반들거리는 카메라 렌즈가 눈 위치에 있었다.
이견호 회장이 멍해 있는 동안 K는 벗겨진 로브를 도로 머리에 쓰고 지정된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직 최상급 명령권자가 지시한 임무들이 남아있었다.
= = = = =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박기호 대장은 동시 다발적으로 올라오는 보고에 당황했다. 숙청 대상으로 정한 이를 체포하는 것에 모조리 실패했다는 것이다.
방해자는 하나같이 중세시대 로브를 쓴 2미터에 육박하는 거한이라고 했다. 총알도 먹히지 않았다고 했다.
“미친! 홍길동이냐?!”
어떻게 한 사람이 동시 다발적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 나타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2미터에 육박하는 이가 그리 많을 리 없다. 총알을 퉁겨내는 갑옷을 입고 날뛸 수 있는 거한이 수십명이라니. 박기호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쯤되면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만했지만 박기호는 눈앞에 닥친 상황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성난 서울의 시민들이 청와대로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컨테이너로 산성을 쌓고 가용 가능한 군부대를 모두 투입했지만 청와대 앞에 집결하는 시민들의 수가 늘어날 수록 점점 불안은 심해졌다.
그렇다고 함부로 군인들로 강제 진압을 명령 할 수가 없었다. 만일 총탄이라도 발사가 되면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서울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그건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였다.
그래서 박기호가 선택한 방법은 좀 더 많은 군인들을 모아서 위압감을 주는 것이었다. 대중은 쉽게 끓어오르지만 쉽게 식기도 한다. 그러니까 의연하고 단단한 태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쪽수가 필요했다.
혹시 누군가가 유혈사태를 일으키더라도 지금의 병력으로 저 많은 시민들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때문에 근처 군부대에 치안을 위한 병력을 보내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물론 대통령을 통한 지시였지만 실제로 그러한 안을 올린 것은 박기호였다.
부아아앙!
일렬의 하프 트럭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병력을 요청받아 지원가는 것이다.
사실 이 병력을 지위하는 최철 준장은 입맛이 무척이나 썼다.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군인 정신과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망설임이 그의 내부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갈등을 애써 무시하며 그는 단지 아무일 없이 이 일 또한 지나가기를 바랬다.
그는 눈을 감으며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애썼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무슨 일이야?”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습니다.”
운전병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최철 준장은 운전병의 시선이 닿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했다.
운전병의 말대로 나무가 쓰러져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작위적이었다. 나무가 하나가 아니라 세 그루가 쓰러져 2차선 도로를 완전히 가로 막았다.
“사주 경계!”
최철 준장이 지시를 내리자 병사들이 총을 매만지며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부사관들이 인원을 배정해 트럭 주위를 경계했다.
“트럭으로 저 나무를 치울 수 있겠나?”
“뭘로 묶어서 당기면 트럭이 지나갈 틈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철 준장의 질문에 한 부사관이 의견을 내었다. 최 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트럭으로 저 굵은 나무를 타 넘을 수는 없었다. 타 넘다가 걸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도를 내어 밀치는 방법의 경우에는 트럭이 전복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 서두르게.”
“넷!”
지시를 받은 부사관이 밧줄을 구하기 위해서 병력을 차출하려는 순간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손 들어!”
한 병사만의 외침이 아니었다. 또 한 명의 병사가 갑자기 나타난 거한을 발견했다.
그러나 거한은 둘이 아니었다. 또 한 명의 거인이 나타나 병사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한 명 더, 그리고 한 명 더.
총 6기의 K 시리즈가 50명의 부대를 완전히 포위하고는 달려들기 시작했다.
“흩어져!”
부사수는 사수를 따라 사수는 분대장을 따라, 분대장은 하사관을 따라서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거한들이 너무나 빨랐다.
“아악!”
“내 팔!”
몇 명이 붙잡혀 후려쳐지고 팔다리가 부러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 훈련대로 나무나 차 뒤에 엄폐한 병사들은 이어진 사격 명령에 총을 쏘기 시작했다.
“아악! 쏘지마! 아악!”
그러나 거한은 총알을 튕겨내는지 유탄에 쓰러진 병사들이 맞았다. 고통어린 비명 소리에 총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쏴! 계속 쏘라고!”
부사관이 독려했지만 거한들이 총탄 세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성큼 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후퇴!”
그 모습을 본 최철 준장이 명령했다. 입술을 깨물었다. 총탄이 통하지 않는 적이라니.. 일단 퇴각해서 중화기를 가져와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두고볼 K시리즈가 아니었다. 두 기는 퇴각할 수 있는 수단인 트럭으로 가서 핸들을 뜯어내 버렸고 도보로 도망가는 병사들을 하나 하나 잡아서 다리나 팔을 한 짝 씩 부러뜨렸다.
“아악!”
최철 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쓰러진 병사들처럼 팔이 부러진 채 널부러졌다.
멀쩡하게 도망친 병사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덕분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대는 와해되었다.
K 시리즈는 최철이 이끌고 온 부대를 와해시키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단 이런 일이 이 곳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서울 주위의 군부대에서 서울로 오는 도로 여러 곳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그렇게 K 시리즈의 저지로 시위 현장에 도착해야 될 병력의 절반 정도가 K시리즈의 습격을 받아 도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기호 대장은 그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 수방사가 습격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말도 안돼!”
백 수십여기의 K 시리즈들이 조깅을 하듯이 가볍게 뛰면서 진지 안을 휩쓸고 있었다. 기존 초병들의 총탄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병사들은 K 시리즈들이 팔을 한 번 씩 휘두를 때마다 어깨가 빠지거나 다리가 부러져 나갔다.
부르릉!
장갑차가 등장했다.
“비켜!”
두르르르륵.
장갑차에 실린 중화기가 불을 뿜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겁 없이 돌진하던 K 시리즈들이 엄폐를 하기 시작했다.
“중화기 더 가져와!”
지휘관이 소리쳤다.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이미 건물안에 침투한 K시리즈들이 영창을 습격하고 있었다. 영창에는 계엄령에 반대하거나 회의감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악!”
“총이 안 통해!”
국회의원들은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어리둥절했다.
“으악!”
철컹!
“헛!”
감방을 지키던 병사가 갑자기 날라와서 철창에 세차게 부딪히자 갖혀있던 이들 중 몇 명이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꽈득!
그들은 곧 거한이 철창에 다가와서는 그대로 문짝을 뜯어내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누, 누구요?”
누군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거한은 품에서 디스플레이를 하나 꺼냈다.
디스플레이가 켜지더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얼굴이 나왔다.
[안녕하신가요?]
화면 안의 강현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 =
“말도 안돼!”
박기호 대장은 중화기가 장치된 장갑차에 총알이 통하지 않는 거인들이 몸을 피하자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거한들이 모퉁이에서 한꺼번에 갑작스럽게 뛰쳐나오더니 중화기의 대구경 탄환을 견디며 달려들었다.
운전병이 급히 장갑차를 뒤로 뺐지만 때를 놓쳤다. 설마 대구경 탄환에도 멀쩡하게 달려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K 시리즈가 좀비같이 장갑차에 달라붙었다. 장갑차를 기어 올라가 중화기를 쏘던 병사의 목덜미를 잡아 던지고는 중화기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땅위에 당당하게 서더니 중화기를 가지고 오는 병사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급히 중화기를 설치하다 말고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서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다른 K 시리즈 중 한 기가 중화기 사수가 있던 공간을 통해서 운전병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 손을 휘휘 저었다.
“히익!”
운전병은 그 우람한 손을 피하기 위해 운전대를 놓고 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휘휘 저어지던 손이 멈추고 손바닥이 운전병에게 향했다. 그때 운전병은 적의 팔이 은회색의 철갑으로 둘러진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운전병이 기억하는 모두였다. 갑자기 온 몸이 저릿하더니 의식을 잃은 것이다.
손목에 있는 스턴건으로 운전병을 무력화 시킨 K는 손목의 모터를 감아 전선을 잡아당겼다. 운전병의 몸에 달라 붙었던 전극이 다시 손목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장갑차에서 내려온 그 K 시리즈는 중화기를 가진 다른 K의 엄호를 받으며 군인들의 중화기를 뺐으러 달려가는 K들의 대열에 동참했다.
한편, 그 와중에 영창에서 탈출한 국회의원들은 K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방사 밖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잡아! 저 자식들을 잡아! 총을 쏴! 국회의원들을 죽여!”
그 광경을 보는 박기호 대장은 광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지만 지휘 체계는 이미 붕괴했다. 실전을 겪어보지 않은 병사로는 총알이 먹히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무리였다.
아니, 지휘 체계가 온전했더라도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수방사가 겪고 있는 전투의 형태는 근대에 총이 등장하고 나서 치뤄졌던 그 어떤 전투와도 모양새가 달랐다. 차라리 그것은 중세의 전쟁과도 비슷했다. 중장보병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노출된 궁수대에게 달려드는 것과 같았다. 아니, 화살이 박히더라도 소용없다는 측면에서 더 했다.
의원들은 K 시리즈가 무력화 시킨 장갑차나 근처에 있던 군용 차량을 탈휘해 빠르게 사라졌다.
“으아아아아!”
의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박기호는 절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의원들이 다시 국회에 나타난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쿠앙!
그가 있던 방의 문이 부서졌다. K 시리즈가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면서 들어왔다.
“으아아아아!”
박기호 대장이 총탄을 쐈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K가 굵은 팔을 들었다. 철갑으로 뒤덮힌 팔이 휘둘러 졌고 박기호 대장은 머리를 맞았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 = = = =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로 K 시리즈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총탄이 먹히지 않는 K 시리즈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경호실의 저항을 무용 지물로 만들며 대통령 집무실까지 순식간에 쳐들어 왔다.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급하게 피신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K 시리즈들이 조를 짜 모든 퇴각로를 막고 있었다. 심지어 헬기장에도 말이다.
할 수 없이 청와대 지하 방공호로 대피했지만 방공호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강현이 미리 침투시킨 바퀴벌레 로봇이 면도날 같은 이빨로 전기 계통을 씹어 무력화 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