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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61화 (61/241)

61화

그러나 군부의 인물이 정치권의 인물과 자주 접촉하고 만난다는 사실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순간 김무한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수십년 전 그때 그 쿠데타 사건이었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이미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된 것조차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였기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보증이 필요했고 그것은 만일의 사태에 미국이 개입해 준다는 약속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미국밖에는 없었다. 만일 정말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쿠데타에 저항할 시민 세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왜냐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미개’하니까 말이다.

미국의 거절에 김무한은 입술을 씹었다. 미국이 안 되면? 중국? 북한을 보호하는 중국? 말도 안된다. 그렇다고 독재자가 집권하고 있는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정말로 비웃음 거리 밖에 안되는 아이러니였다.

남은 일본마저 전쟁을 미화하며 우경화 되고 있으니 적절하지 않은 상대였다.

김무한은 도움을 청할만한 세력이 어디가 있는지 고심하다가 제현 그룹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경영 방식은 자신의 정치 관념과 방향이 틀려도 너무 틀렸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제현 그룹은 단지 강현의 돈지랄에 의해서 유지되는 사업체일 뿐이었다. 강현이 변심한다면 언제든 망할 수 있는 기업인 것이다.

때문에 김무한은 제현 그룹이 돈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질서를 흔드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만일 제현 그룹이 샘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경제가 강현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아.. 기우겠지?”

김무한은 답답한 심정에 부디 자신의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일은 전혀 기우가 아니었다.

“빨갱이 기업을 없애라!”

“미친 가스통 할배들을 죽여라!”

갑자기 벌어진 과격한 시위, 아니 시위를 넘어선 폭도의 무리들이 유리창을 깨고 불을 질렀다.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과 민주정신의 계보를 이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집회를 시작해 제현그룹 본사 앞에서 만났다. 그리고 서로 욕설을 주고 받는 것을 시작으로 주먹이 오가고 몽둥이가 오가며 점점 과격해지더니 폭도의 수준으로 순식간에 변해 버렸다.

선혈이 낭자하고 경찰이 진압에 나섰지만 어째선지 병력 지원이 오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일선 지휘관은 자신의 모가지가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했지만 전경은 엠뷸런스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했다.

언론에는 이 사건을 두고는 우파와 좌파의 극심한 대립이라고 기사를 쏟아냈고 금방 이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인양 몰아붙였다. 이는 반공 교육을 받아 철저하게 빨갱이들을 증오하는 기성세대에게 극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도대체 정부는 나라 꼴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데 뭐하냐는 말이 나왔다. 각지에서 스스로를 애국 보수라고 칭하는 이들과 민주 수호를 부르짖는 이들이 피가 나도록 싸우고 불을 지르며 사회적인 불안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곧 대통령의 발표가 있었다.

[.. 본인은 사회적 불안으로 인해 치안 유지와 사법권을 보호할 수 없음 깨닫고..]

그것은 계엄령이었다. 국회에서 의원들간의 격렬한 몸싸움 끝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방송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멍해졌다. 21세기에 계엄령이라니..

하지만 계엄령에 환호를 보내는 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들은 계엄령으로 지금의 정권이 국가를 좀 먹는 이들을 몰아내기를 바랬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확실히 인터넷이 보급된 시대라서 그런지 언론의 침묵에도 상황을 알고는 밖으로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이에 국회의원들은 상황을 다시 생각했다. 정말로 이런 저항을 받으면서 계엄령을 유지해야하나?

계엄령에 찬성했던 국회의원들이 다시 논쟁을 벌였다. 국가의 위기 상황이라며 계엄령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과 이러다가는 다 역풍을 받아 죽겠다는 이들이 연일 입씨름을 했다.

그리고 박기호 대장이 나섰다. 그들은 계엄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국가 반란 혐의로 모조리 체포했다.

“이것은 쿠데타다!”

들고 일어난 의원들도 모조리 체포했다. 남은 의원들은 정족수를 간신히 채우는 정권의 딸랑이들 뿐.

상황은 단순한 계엄령에서 순식간에 쿠데타로 변모해 버렸다.

그리고 강현이 한국에서 대여한 한 땅의 K시리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여!”

“아직 자료 정리가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인명 자료 정리는 마무리 됐습니다!”

국정원 비밀 자료실에서는 그 동안 내사했던 한국의 중요 인물들에 대한 성향 분석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현 국정원장 차필호는 청와대 비서실장 홍일헌과 이미 한배를 탄 것이다.

시일은 촉박했다. 이번 쿠데타로 이루어진 권력의 체계는 기존의 독제 권력과는 그 형태가 판이하게 틀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희 대통령 홀로서는 너무나 커져버린 남한 사회를 관리할 수 없다. 반드시 지지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지금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고 있는 홍일헌이나 박기호의 힘이 유지될 가능성 역시 전혀 없었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사태의 원죄를 지고 있었고 다른 동조자들 줄에 적지 않은 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권이 안정된 후에는 뒤로 물러나는 것이 수순이었다. 물론 그 자신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즉, 어느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된 절대 권력 왕정 체제가 아닌 기득권들이 대거 참여하는 귀족주의적인 권력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에 민관군 전반에 걸친 그들의 오랜 인맥과 유기적인 상호 관계를 생각했을 때 매우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었다.

숙청.

민주의식과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서 쿠데타를 성공시키는 것은 왕정시대에 역성 혁명을 일으키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성공하더라도 그 정권을 안정시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숙청은 반드시 필요했다.

숙청과 동시에 분노한 국민들을 달래줄 제물 역시 필요했다.

차필호는 대중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밥그릇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이라는 존재는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면 만족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한 적절한 제물로 차필호는 재벌을 선택했다. 대통령, 아니 계엄 사령관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차필호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보고서에 올라간 이름에는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인 샘성이 있었다. 정확히는 총수 일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샘성 공화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샘성을 찍어누를 수 있게 되다니..

차필호는 그 거대한 권력을 누리는 것 같은 기분에 서둘러 보고서를 작성하고 즉시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론을 압박에 이견호 회장을 제물로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 보고를 올렸다. 거물은 거물을 위해서 특별한 제물대가 필요한 것이 원칙이었다. 국민들을 위한 Show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강 의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무 조사라니!”

[그게 계엄 사령관님의 의지가 철통같습니다. 아무튼 어서 해외로 잠시 몸을 피하시는게..]

이견호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처먹인 돈이 얼마인데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걸까?

그러나 강 의원의 상황 판단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자고로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법이었다.

이견호 회장은 서둘러 출국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강 의원의 전화가 왔을 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이, 이러시면 안됍니다!”

벌컥!

군복은 입은 이들이 막는 비서들을 뚫고 막무가내로 회장실로 쳐들어왔다.

“이게 뭣들하는 짓이야!”

이견호 회장은 모욕감에 얼굴을 붉히며 치를 떨었다. 감히 자신에게 이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그동안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 회장님. 당신을 세금 포탈 혐의로 체포합니다. 증거인멸이 우려가 있어서 구속수사를 하게 된 점을 양해해 주십시오.”

“헛!”

이쯤 되니 이견호 회장은 어이가 없어졌다. 구속수사?

“미쳤군.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어.”

이견호 회장이 중얼거리자 상급자가 병사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병사들은 머뭇머뭇하면서 이견호 회장에게 다가갔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다시 소란이 일어났다.

“당신 누구요! 자, 잠깐만!”

병사들이 뒤 돌아보자 거기에는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람이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중세시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다.

“너 누구야!”

누가봐도 수상한 차림에 이견호 회장을 체포하러온 지휘관이 소리쳤다. 하지만 거한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에게 성큼 성큼 걸어갔다.

“멈춰! 꼼짝마!”

지휘관은 권총을 뽑아들고 거한을 겨눴지만 거한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지휘관은 입술을 깨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거한의 몸집에서 강한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탕!

“....”

그러나 거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듯 했다. 지휘관이 당황해서 계속 총을 쏘았지만 총알이 튕겨나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거한이 팔을 들었다.

“오, 오지마!”

지휘관이 한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몽둥이처럼 휘둘러지는 거한의 팔을 피하지는 못했다.

“컥!”

사람이 단지 팔로 사람을 후려쳐서 이렇게 날려보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했지만 거한은 불가능을 실행했다.

마치 트럭에라도 부딪힌 것 같은 충격에 지휘관은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거한은 표적을 바꾸어 질린 표정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거한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거한이 다가가자 병사들은 망설였다.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도 하지 못했다.

철컥. 철컥.

“으아아아!”

한 병사가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지향사격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조준간을 자동에 놓는 것을 까먹어 연신 검지를 당겨 총알을 발사했다.

탕! 탕! 탕!

하지만 거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퍽! 퍽!

거한이 자신에게 총알을 쏜 병사를 후려쳐 기절시키자 다른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실전 경험의 유무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병사들이 도망치자 회장실 안에 남은 것은 거한과 이견호 회장, 그리고 기절한 군인 둘 뿐이었다.

“이, 이보게! 자네는 누구인가!?”

이견호 회장은 총알에도 꿈적하지 않고 병사들을 처리한 거한에게 물었다. 하지만 거한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보게! 어서 도망치게! 지원 병력이 올걸세!”

보고가 없으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한 상부에서 지원병력을 보낼 것이다. 아니면 도망간 병사들이 지금의 상황을 보고할 수도 있었다.

“이리 오게! 나와 같이 가면 금방,”

이견호 회장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팔뚝을 붙잡았을 때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 작품 후기 ============================

후기

역시 분란이 생기는군요. 먼저 죄송하다는 사죄를 드립니다.

하지만 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저는 광우병이란 단어는 꺼낸 적이 없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도 미국 소고기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치느님을 사랑하는지라.. 소고기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비리 선거라는 단어도 꺼낸 적이 없습니다.(사실 비리 선거 여부를 떠나 그분이 당선 되었다는 것만으로 유신정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알 수 있죠. 특정인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좌파, 광우병 파동, 비리선거 등의 단어들이 포함되는 프레임을 걸어버리는 것은 매우 불행한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수꼴이니 일베충이니 하는 프레임을 무턱대고 씌우는 것 역시 불행한 행위입니다.(일베충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보수주의자들은 일베충을 싫어합니다. 보수의 이름에 먹칠을 하기 때문이죠.)왜냐면 프레임은 곧 소통의 벽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죠. 심지어는 각각의 사항에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양 프레임에 의해서 박쥐로 취급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합니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불쾌감을 가지게 마련이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번 편을 쓸 때 굉장히 고심했습니다. 스토리에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 쿠데타라는 사건을 끌고 들어왔으나 쿠데타가 일어나는 상황을 개연성있게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나?

쿠데타는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나 무력적인 것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고도의 복잡한 정치적 결과물입니다. 한 나라의 정권을 탈취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 일리가 없죠. 또한 기득권의 동조와 시민들의 침묵없이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때문에 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결국 정치적인 해석이었습니다. 특히 쿠데타라는 사건을 미화하지 않으려고 하니 좌파적인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색이 노골적으로 들어나는 것은 감수했습니다. 결국 그 방법 외에는 전개를 할 수 없었던 제 능력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차하신 분들께는 불쾌감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그럼 남은 분들만이라도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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