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59화 (59/241)

59화

“미친 소리.”

“그자가 미친 작자라는 말입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득하나 없는데 그 많은 돈을 뿌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자는 복수에 미친 것이 확실합니다.”

“너무 과장된 생각이네.”

“과장된 생각이라고요? 그럼 머리에 구멍이 숭숭 나서 죽은 그 세 명은 뭐라는 말입니까? 상대는 복수를 위해서는 법도 윤리도 무시하는 미치광이 입니다.”

계속된 홍일헌의 주장에 김하진의 표정이 점점 변해간다. 얼굴에서 완고한 기색이 사라지고 채념의 빛이 감돌았다.

“성공하더라도 문제가 적지 않을거네.”

“목적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제현 그룹이 이대로 계속 성장한다면 이 대한민국의 명망있는 집안들은 죄다 망할 겁니다.”

“.....”

김하진 변호사는 홍일헌의 주장에 대답하지 않았다. 명망있는 집안이라.. 이 대한민국에 그런 집안이 있던가? 정말로 명망있는 집안은 오히려 제현 그룹의 득세가 반가울 것이리라.. 왜냐면 그들의 조부나 할아버지들은 정말로 모든 것을 바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했고 그 후손들은 생활보호 대상자나 되어 하층민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홍일헌이 말하는 명망있는 가문이란 결국 과거 군부 독재 시절에 빌붙어 상류층에 올라선 이들과 일본 식민지 시절부터 부와 권력을 가지고 생존했던 이들. 지금의 물질만능주의의 대한민국을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아무도 뭐라고 지적하지 않는...

“.... 결국 그들의 동의를 구한 건가?”

“그렇습니다.”

쿠데타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쿠데타는 어떻게 시도할 수 있는가?

단순한 무력으로 쿠데타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에 협조할 동조세력은 필수였다. 히틀러의 경우, 자신의 뜻을 따라주는 나치라는 조직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독재자가 될 수 없었으리라..

때문에 홍일헌은 김하진을 만나기 전에 많은 인사들을 만나 그들의 협조를 구했다.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제현 그룹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고 사실을 아는 이는 홍일헌과 박기호를 씹어먹을 듯이 이를 갈며 노려보면서도 제현 그룹과 강현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복수를 위해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미치광이 과학자, 기득권을 압박하기 위해 그 많은 돈을 쓰레기 버리듯 써버리고 원수의 가족들에게까지 손을 써두는 강현의 행태에 그들은 그가 이미 이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도저히 홍일헌, 박기호 두 사람을 넘겨준다고 일이 마무리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넘겨준다고 치자. 두 사람을 그냥 아무도 몰래 넘겨주면 두 사람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자수를 통해서 생명만이라도 보장받으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아무리 노예처럼 부려먹는 국민이라도 지켜야할 선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이 절차였고 법치였으며 사회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틀이었다.

때문에 덮어야 했다. 애시당초 일에 연관된 이들이 너무 많았다. 국가 권력 기관인 국정원부터 입법의 핵심인 국회의원, 법조계, 그리고 재벌로 대변되는 대기업의 핵심 간부와 군부까지.

만약 이 모든 일이 알려진다면, 생존을 위해서 주모자를 팔아넘긴다면 강현의 부모에게 일어난 사건은 이 사회에 대한 부조리에 대한 책임이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닌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권력자들의 결탁에 있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될 수 있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그것은 골치의 수준을 넘어선 공포였다.

그러나 다시 한번 쿠데타를 한다면 다를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익숙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침묵할 것이고 젊은 세대는 반항하거나 절망할 것이다. 반항한다면 반항하는 대로 강압하면 된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대중은 침묵한다. 저항은 미미하다. 사람을 설득하는 것에는 굳이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설사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상관없었다. 헛소문을 치부해 버리면 된다. 국가를 좀먹는 유언비어라고 몰아붙이면 된다. 그리고 제현 그룹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살 수 있다.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쿠데타를 계획에 동참하고 침묵으로 묵인한 이들의 판단이었다.

“알겠네.”

“감사합니다.”

간신히 입을 여는 김하진 변호사의 얼굴은 몇년은 폭삭 늙은 것 같았다. 법치주의의 최고봉인 검찰 총장의 자리까지 지냈던 이라 쿠데타라는 말에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입을 열 생각도 없었다.

그는 침묵할 생각이었다. 일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방조죄였지만 그가 나선다고 해도 대세는 바꿀 수가 없었다.

평범한 국민들이 그의 생각을 안다면 대세는 무슨 대세라며 지랄하지 말라고 말하겠지만 힘은 사람들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힘은 그 자체로 실존하며 잠재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은 침묵하는 자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 자를 노예로 부린다.

김하진은 침묵의 대가가 그리 크지 않음을 인지했다.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탓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단지 침묵으로 쿠데타를 묵인하는 일을 증명할 증거도 없다.

검찰 총장까지 지낸 법조인, 지식인이자 사회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침묵했다. 역사의 반복은 동일한 환경에서 일어난다.

= = = = =

쿠데타 계획은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홍일헌은 국정원장에게 요청해 기득권 인사들 중에서 반드시 포섭해야 할 자와 성향이 확실한 자에 대한 명단을 추렸다. 인원은 적지 않았다. 그들만 모조리 계획에 동참시킨다면 쿠데타 후 정권의 획득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협조해 주겠다는 이들이었다. 제현 그룹의 등장에 불안감은 느끼고 있지만 아직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쿠데타의 성공이 협조를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었다.

때문에 쿠데타의 형태가 매우 중요했다.

친위 쿠데타인가, 아니면 정권을 엎어버리는 쿠데타인가?

전자는 지금의 대통령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방법은 히틀러가 그랬던 수권법처럼 합법적인 형태로 독재체제를 만들거나 아니면 계엄령을 발동해서 군이 나서게 하는 방법.

후자는 결탁한 모든 이들이 인정할 만한 이를 선정해서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문제가 많다. 권력의 이양에서부타 계엄령까지 걸림돌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았다.

미국이 간섭하거나 시민 세력이 결집하기 전에 일을 마무리 해야 할 만큼 신속함이 요구되었다. 또한 명분적으로도 지금의 대통령이 참여한다면 어느정도 지지를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홍일헌은 지금의 대통령이 참여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홍일헌은 대통령을 설득시키는 일에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현재의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된다라.. 이는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는 면에서는 매우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반대로 독재자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됨으로서 독재를 옹호하는 미숙한 시민의식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해할 만했다. IMF와 그 이후 계속되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체는 과거 그 시절 자고 나면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 눈에 띄는 시설에 대한 향수를 불러왔을 것이다. 때문에 과거 시설의 독재자를 신으로 추앙하며 기념하고 숭배하며 국비를 받아 1000억원이 넘는 기념사업도 벌였다.

그런 행위가 북한과 뭐가 다르냐는 말에는 거품 물고 이렇게 대꾸한다.

‘이 나라 역사에 또 그런 분이 계실 것 같아?!’

‘그분이 독재하지 않았으면 이 나라가 이렇게 될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분은 신이시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니들이 뭘 알어?!’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는 그들은 모른다. 그가 과거 남로당 빨갱이였다는 사실을. 그가 지하 경제를 양지로 끌어올린다고 화폐개혁을 시도하다가 나라 경제가 절단 날 뻔 했다는 사실을. 때문에 미국이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간섭해 그를 압박하고 자신들이 경제 정책을 주도해 남한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는 단지 미국의 성과에 숟가락을 얻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이는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사실을 외면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인간이 그리 합리적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신은 무지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는 불합리함에서 탄생했다.

그러니까 홍일헌은 쿠데타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많은 이들이 독재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잡은 것일까? 사실 히틀러의 나치당은 소수정권이었다.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똑똑했다. 그들은 기존의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사이를 아주 잘 이용했다. 그리고 그들이 정권을 탈취하고 독재 정권을 이룩했다.

만일 그때 독일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더라면 결코 성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오히려 환영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독일의 사회는 혼란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 좌파와 우파로 극명하게 나뉜 국민들의 분열. 급기야는 서로를 죽이고 죽이며 엄청난 혼란 속에 싸여있었다.

사람들은 이 모든 혼란을 종식시켜줄 무언가를 원했고 강력한 ‘국민통합’을 주장하는 히틀러에게 매료되었다.

당시 기득권이던 우파 정치세력 역시 히틀러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좌파를 증오했으며 그들을 척결할 이가 필요했다. 그 일에 공산당을 증오하는 히틀러처럼 적당한 인물은 없었다.

국가적인 혼란에 진저리 난 국민, 좌파와 우파가 공존하는 민주사회 체제를 용납하지 못하는 기득권, 그리고 상대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정당과 당총수가 만들어내는 말그대로 환상이나 다름없는 ‘국민 통합’이라는 선전.

그렇게 나치당은 제2당이 되었으며 히틀러는 총리가 되었고 수권법을 통해 독재 정권을 구축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때아닌 좌우 이념 대립, 경제적인 어려움, 빈부격차, 세대간의 갈등, 민주세력과 독재옹호 세력간의 웃기지 않는 촌극에 인터넷을 통한 민주사회를 증오하는 반민주 청년 세력의 구축. 거기에 쿠데타를 바라는 기득권층까지.

군부에 의한 쿠테타가 아닌 히틀러식 독재정권의 구축이 가능한 환경이었다.

“대통령 각하.”

“무슨 일이죠?”

얼마전 대통령에 당선된 이정희는 비서실장의 독대 요청에 의문을 느끼면서 그가 내민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한장 한장 넘기기 시작했다.

“.... 이게 무엇인가요?”

“제현 그룹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

동문 서답이었지만 대통령은 오히려 침묵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보고서는 제현 그룹이 이 나라의 안보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제현 그룹 같이 좌파 기업이 득세하면 빨갱이들이 판을 치며 나라를 뒤집어 엎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그녀는 믿었다. 왜냐면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화에서 국가를 지킨 위대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