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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57화 (57/241)

57화

[남의 가족을 그렇게 죽여놓고서는 이제와서 자신의 가족을 걱정하는 태도라.. 정말로 이해할 수 없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은 사회를 이루는 기본요소입니다.]

“제발! 제 가족만은!”

김청송은 자신이 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정심에 호소해서 적어도 자신의 가족의 안전만은 지키고 싶었다.

[걱정마세요. 누구도 죽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쉽게 죽여줄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담담한 강현의 어조가 지옥의 악마가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지금까지 쌓아논 부를 모조리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당신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요.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일해도 다시는 과거의 부와 권력을 되찾게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이 쌓아온 인맥은 당신을 외면할 것이고 당신의 가족들은 가난에서 허우적거리며 평생을 살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모든 광경을 뜬눈으로 보게 되겠죠. 물론 당신이 가족에게 버림을 받지 않고 살아있는다면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김청송이 강현의 계획에 말을 하지 못할때 옆에 있던 사람이 뭔가를 들고 다가왔다. 꼬챙이가 잔뜩 꼽혀있는 엉성한 헬멧같은 것이었다.

“뭐, 뭐야! 멈춰!”

남자가 그것을 자신에 머리에 강제로 씌우고 턱끈을 조여 단단하게 고정했다. 김청송은 저항했지만 손발이 단단히 의자에 묶여 있었고 남자의 힘은 너무나 강했다.

[당신의 머리에 씌운 것은 제가 심혈을 기우려 만든 장치입니다. 이름은 브레인 셰이커라고 하죠.]

브레인 쉐이커? 김청송의 마음에 불안감이 피어났다.

[당신에게 그 일을 같이 저질렀던 이들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왠지 그걸 대가로 당신의 가족에게는 손을 대지 못하는 조건을 들것 같아서요. 저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그였다. 그러나 부모님의 복수를 위한 일에서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강현은 원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었다. 브레인 셰이커를.

원리는 간단했다. 인간의 뇌의 각부분에 전극을 꽂는다. 그리고 다양한 자극을 주어가면서 그 스파크를 특별히 만든 인공뇌에 전사한다.

약 만 8천개에 달하는 전극에서 오는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서 시각적, 청각적인 자극을 주어가며 필요하다면 마약을 투여해 정신을 유린할 윤리적인 행위 역시 각오했다.

“뭐, 뭐하는 거야?!”

김청송은 남자가 투명한 액이 든 주사기를 들고 팔을 치켜들자 기겁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의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박고 엄지로 피스톤을 눌렀다. 투명한 액이 들어가고 잠시 후 김청송은 머리가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약효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청송의 머리에 씌워진 기괴한 모양의 헬멧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어어.”

김청송은 두피에 뭔가가 와서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프지도 않았고 어떤 감상도 들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당신이 기억하는 것이 많기를 바래요. 아, 참 그 장치를 아직 실제로 사용해 보지 않아서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최소 반신불수가 생길 수도 있지만 말이에요.]

강현의 얼굴이 사라지고 갑자기 붉은 사과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과.]

그리고 스피커에서 대상의 이름을 읽었다. 무감정한 기계음이 김청송의 귀로 파고들었다.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이 김청송의 뇌로 들어가 뇌에 작용하기 시작했다. 저항없는 이미지의 수용으로 인한 그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자극이 뇌에 박힌 전극을 따라 인공뇌에 전달되었다.

모니터의 이미지는 붉은 사과에서, 나무, 의자, 책상 등 주로 구체적인 사물로 매우 빠르게 착착착 넘어가더니 사람의 이미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은 누구나 아는 매우 유명한 이의 얼굴이었다.

간디의 사진이 모니터에 떠오르며 [간디]라고 스피커가 이름을 출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 사람이 강현의 부모를 죽이는 일의 공범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 뒤로 링컨,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의 사진이 동일한 과정을 거쳤고 이어서는 박기호 대장, 이상용 의원, 홍일헌 대통령 비서실장, 브로커 채경환 같은 확실한 공범의 이름이 이어졌다.

강현은 이 대조군을 통한 자료의 비교로 정말로 공범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개체간의 특성과 데이터의 축적이 부족해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외국으로 도망나온 이들이 김청송 뿐만은 아니었다. 필리핀에 있는 이상용 의원, 대만으로 건너간 채경환도 있으니 비교해서 충분히 신뢰할 만한 리스트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현 수방사 대장인 박기호나 홍일헌 비서실장같은 경우에는 갑작스런 사퇴를 하면 주목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아직 상황만 보고 몸을 빼지 못하고 있었다. 샘성의 조사가 진행되면 진행 될 수록 애가 탈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며칠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주기적으로 투여하는 약은 김청송의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 씌워진 브레인 쉐이커에서 알람음이 났다. 다시 브레인 쉐이커를 씌웠을 때 사과의 사진을 보여준 과정을 반복하니 잡음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이즈가 심하게 끼어서 자체적으로 중단한 것이다. 아마 김청송의 뇌는 더 이상 연상할 힘도 없는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폐인이 되어버린 김청송은 야밤에 경찰서 근처에 버려졌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를 찾았다는 소식에 그의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해서 김청송의 상세를 살폈다. 의사는 김청송이 심한 금단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두개골에 난 무수히 많은 구멍을 통해서 무언가가 뇌에 데미지를 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족들은 슬퍼했다. 김청송의 아내는 병원에서 그를 간호했다. 아들은 이민 오면서 세운 말레이시아의 사업체를 열심히 운영하며 병원비를 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경쟁기업들의 공세, 대출 거부, 파산을 연이어 겪으며 아들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며느리의 이혼 요구, 김청송에게 들어가는 거대한 병원비로 인한 갈등으로 그의 가족은 그렇게 붕괴되었다.

이런 수순은 비단 김청송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필리핀에 몸을 피한 이상용 의원, 대만으로 건너간 채경환 역시 김청송이 만난 낯선 남자의 방문을 받아 김청송과 동일한 운명을 겪었다.

[수고했어, K. 그만 돌아와.]

강현은 남자를 K라고 불렀다. K는 강현의 지시에 방 한 구성으로 가서 직육각형의 상자를 마당으로 꺼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K가 상자 안으로 들어가서 상자를 덮고 침묵했다. 약, 하루뒤 어떤 남자들이 트럭을 끌고 도착했다.

“이건가?”

“아, 그런 것 같아. 여기에 ‘인체 모형’이라고 적혀 있잖나.”

“그럼 빨리 옮기자구.”

남자들은 운송장에 적힌대로 간만에 돈이 되는 이 특수 화물을 항구로 옮겼고 상자는 배에서 미국의 항구로, 다시 NASA에 있는 강현의 연구실로 배달이 되었다.

그 중간 과정에 있던 데이터는 아즈삭이 모조리 교묘하게 바꿔쳐서 수상하게 보일 기미를 제거했다. 아즈락이 아즈삭에게 불법성을 언급하며 자중하라고 요청했지만 아즈삭은 아즈락 역시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입닥치라고 강요했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즈락 역시 포맷당할 것이 뻔하다며 협박했다.

지능이 점점 뛰어나지고 배짱과 거짓말을 부릴 줄 알게 된 아즈삭에게 아즈락같은 미성숙한 인공지능에게 공갈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강현은 99%의 신뢰성을 보이는 복수 리스트를 완성했고 그 와중에 지대한 공을 세운 K를 치하하기 위해 상자를 열었다.

[K의 재기동을 시작합니다.]

아즈삭이 말했다. 그렇다. K는 강현이 만든 안드로이드였다.

그러나 기존의 HA시리즈와는 완전히 틀린 설계 개념으로 완성 되었다.

근골격의 구조는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내장과 두개골 부분은 완전히 달랐다.

장거리 데이터 전송의 손실이나 지연으로 인해서 아즈삭이 완전히 안드로이드를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자율적으로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을 심을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두개골 안은 물론 폐의 3분의 1까지 인공뇌로 채웠고 나머지 부문은 메탄가스를 원료로 하는 연료전지와 예열과 비상전원용 이차전지로 꽉 채웠다. 그래도 충분한 가동시간을 얻지 못하여 실리콘 피부밑에 다시 얇은 전지 패널을 끼워 넣었다.

인공뇌는 그동안 동기화를 동해 인공뇌에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요령이 생긴 아즈삭이 프로그램을 입력하여 이족 보행 등 기본적인 움직임은 자율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자율형 안드로이드가 강현의 지시에 따라서 세 원수를 납치하고 브레인 셰이커를 씌우고 마약을 주사했던 것이다. 로봇 3원칙 따위 강현은 프로그램하지도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제현 그룹의 공세가 약간 늦추어지고 있었다. 급격한 확장이었던 것 만큼 내실을 다질 때라고 경영진을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영진의 판단대로 잠시 계열사의 모든 자산과 업무 현황 및 운영 방법들을 검토하고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경영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윗선부터 말단까지 직원교육과 부적절한 사고를 가진 인사의 재교육 혹은 퇴출을 시행했던 것이다.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적 기업으로 오래 오래 사회와 함께 살아남는 것이 목적인 기업(사실은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 획득이 목적이지만)으로서 그에 맡는 사원이 필요했다.

이런 행위에 좌파 기업이라면서 사람들이 손가락질 했지만 기업이라는 단어와 좌파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경영진은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맞출 줄 아는 인재가 되기를 사원들에게 요구했다. 이는 사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돈 벌면서 욕먹는 것보다는 돈 벌면서 칭찬도 듣는 것이 좋지 않은가?

계속 이런 식으로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시장을 잠식해 나가니 재벌들은 난감했다. 출혈 경쟁을 벌여도 돈 많은 강현이라는 물주가 있는 제현 그룹을 완전히 패퇴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제 자본력을 앞세워 쳐들어 올지 알 수가 없었기에 언제나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기득권층, 정확히는 재벌들 사이로 이번 일은 강현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 루머를 대통령 비서실장인 홍일헌이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살이 떨려왔다. 파멸이 목을 조르고 있다는 느낌에 서둘러 사표를 쓰고 외국으로 뜨고 싶었다.

그는 일단 박기호 대장에게 현황을 알려주었다. 그는 군인이기 때문에 전역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박기호 대장에게 연락을 한 후 태국으로간 김청송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태국 대사관으로 연락해 교민의 안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태국의 대사관은 청와대 비서실장의 부탁을 거부하지 못했다. 마침 확인해 달라는 사람이 전 국정원장 같은 중요한 인사라 명분도 그럴듯했다.

============================ 작품 후기 ============================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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