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이견호 회장은 그렇게 생각했고 처음부터 다시 강현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 현재부터 과거까지 모두 재검토하기를 지시했다.
그러면서 강현이 원한을 가질 만한 사건을 추리도록 했고 그 첫번째는 역시나 당시 강현을 괴롭혔던 과학기술부 장관과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 약했다. 겨우 그정도의 일로 여기까지 일을 벌렸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곧 제시의 교통사고와 강현 부모님의 교통사고에 대한 일이 조심스럽게 보고서로 짜여 올라왔다.
“이거야!”
이견호 회장은 벌게진 눈으로 강현의 부모가 죽은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트럭이 미끄러졌나? 왜 강현의 부모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 아니라 좀 더 먼 응급실로 향했나?
어떻게 트럭이 브레이크 파열에도 핸들을 꺾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왜 그 운전기사에 대한 정보는 샘성의 정보망으로도 찾을 수가 없을까?’
빠드득!
이견호 회장은 이를 갈았다. 결국 이것이었다. 천재가 자신의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사건을 조작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정재계에 끈이 있는 기득권층이 분명하겠지. 그러니 그가 이 나라의 권력자에게 취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자를 포함하고 보호하고 있는 집단.
즉, 세기의 천재는 이들 모두를 처 낼 각오를 하고 일을 벌린 것이다. 설사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돈이 얼마나 들든..
“김 비서. 여당 총재와 약속을 잡게.”
이견호 회장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음에 또 주주 총회가 열리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고 보기 힘들다. 빨리 강현의 원수들을 색출해서 이 전쟁을 멈춰야 했다. 그래야 피를 보는 것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회장실의 환기구에 숨어있는 바퀴벌레 로봇을 통해 아즈삭에게 전달되었다.
[시나리오 C가 시작되었습니다.]
“B도 아니고 C라.. 역시 샘성을 그냥 키운건 아니라는 거군. 감이 좋아.”
이견호 회장은 사태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파악해 냈다. 그래서 시나리오는 C라는 분기를 타고 진행되기 시작했다.
강현에게는 시간이 절약되는 시나리오였지만 A나 B에 비하면 분기점이 훨씬 많고 변수도 많아서 자신과 아즈삭이 빠르게 대응해야하는 시나리오였다.
참고로 A는 정권을 탈취하고 나서 강현이 주도적으로 복수를 진행하는 시나리오였고 B는 중간에 원수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시나리오였다.
물론 각 시나리오에 대해서 강현은 다양한 준비가 필요했다. 시나리오 C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분기점이 많으니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자는 시간을 줄여야겠군.”
[박사님. 수면시간이 줄어들면 사고속도가 느려집니다.]
“괜찮아. 어차피 시나리오 C에 진입한 이상 1년은 걸리지 않을거야.”
시나리오 C. 기득권 내에 분열이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변화는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니 이때 원수들의 개략적인 형태가 떠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응, 부탁해.”
= = = = =
“........”
“............”
어두운 분위기에 침묵만이 감돌았다.
수방사령관 박기호 대장이 입을 땠다.
“샘성에서 냄새를 맡았소.”
“....”
“일의 전말이 드러나면 우리는 역적이 될 것이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단 한순간의 실수로 놓쳐버린 치어가 대물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냥 대물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압사시킬 정도의 대물이 되어버렸다.
자신들의 의도는 이것이 아니었다. 잘 키워서, 말 잘 듣는 공돌이로 만들어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지경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는 남은 선택이 없소.”
이상용 의원이 입을 열자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모든 것을 내려 놓거나, 아니면 끝까지 가던가.”
전 국정원장인 김청송이 침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끝까지 간다면..”
“... 쿠데타요.”
“미쳤소!?”
당시 국무총리실장이었고 지금은 대통령 비서실장인 홍일헌이 대경했다. 쿠데타라니! 미친 소리였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절대로 용납받을 수도 성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대로 다 죽자는 말이요?”
“해외로 도망치면 되지 않소?”
“강현이라는 작자가 벌린 지금의 상황을 보시오. 외국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그가 가만히 있을 것 같소?”
“차라리 자수는 어떻소? 일을 실행한 이들을 드러내고 꼬리를 잘라버리면?”
“나쁘지 않은 일 같소.”
둘의 이야기에 군납 브로커인 채경환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정말 이 모든 일이 십 수년전 그 일 때문에 일어난 것이 확실합니까?”
“샘성이 그 일을 다시 조사하고 있소.”
“....”
샘성 회장의 판단력이라면, 그리고 얼마 전 강현을 만나기 위해서 NASA에 다녀 왔으니 어떤 교감이 있었을 수도 있다.
“... 만약에 자수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사건이 조작되었으니 권력이 개입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고 때문에 누구 하나가 책임을 져야했다. 그것이 여기에 있는 다섯 명이든, 아니면 중간 책임자든.
하지만 그때의 중간 책임자는 미리 국외로 빼돌려 버렸다. 혹시나 사건이 재조명 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매우 유명하니 제발이 저려서라도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설사 강제로 불러들였다고 해도 충분한 설득의 과정이 없었으니 그의 입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하아..”
답이 안보였다. 일을 다시 들춰내고 강현이라는 이가 만족할 만큼 큼지막하게 꼬리를 잘라야 하는데 그러기가 참 힘들었다. 아니 잘리는 꼬리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잘리는 것은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될 공산이 더 컸다.
“최제태 부회장에게 연락을 해봅세.”
최제태 현 샘성 전자 부회장. 당시 샘성 전자 이사로서 그 일이 벌어지는 과정에 강현을 이용할 기대 이득에 투자를 했던 인물이었다.(뇌물도 투자라면 투자다.) 그러나 그는 이들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아니 받아도 처음 만난 사람처럼 굴었다.
최제태 부회장은 상황 파악이 빨랐다. 결코 이들에게 발목을 잡혀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올라온 부회장 자린데..
다섯 명의 주모자는 그 당시 일에 도움을 주었던 검찰 총장, 지금은 유명한 변호사인 김하진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김하진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전화를 받고 목소리의 주인이 이상용 의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처음 만나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리고는 바쁘다면서 다음에 이야기 하자며 끊어버렸다.
“씨발 놈들. 지금 누구에게 덤터기를 씌울려고.”
그는 솔직히 억울했다. 그 당시 사건을 조기 종결해 달라는 이상용 의원의 언질과 국정원장의 협조 요청에 별다른 수상한 것이 없는 교통사고라 당연히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고아가 되어 버린 천재 소년에게 불쌍하다며 혀를 쯧쯧 찼었다. 하지만 제현 그룹이 등장하며 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식은땀이 흘렀다.
그쯤 되자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제현 그룹이 대한민국에서 무시하지 못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 되자 그 불안감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기존의 기득권 층에 대한 적대적인 경영에 불안감의 형체가 완성되었다.
그때, 자신이 조기 종결을 명한 그의 부모가 당한 교통사고 사건. 그때 분명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어떤 것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 자신은 억울했다. 단지 생각없이 관습적으로 청탁을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일의 주모자로 보이는 이들과 엮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편, 이 다섯 주모자들은 다른 협조자에게도 연락을 하기 시작했지만 점점 고립되는 것을 느꼈다. 이러다가 별다른 죄가 없는 이에게 연락을 하면 오히려 그것이 자극이 되어 자수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모자들은 처벌을 받겠지.
범인의 인권을 지독하게도 챙겨주는 대한민국의 법을 고려하면 지금이라도 자수를 하는게 옳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적용 대상에 따라서 그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자신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한 강현의 부모를 죽였기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판사들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
두렵다. 그것이 그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고립되기 시작했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던 샘성에서 점차 사건의 실체를 더듬어가는 정황이 포착되자 완전히 공포에 질려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을 해외로 보내버리고 자신들도 한국을 뜨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했다.
그동안 쌓은 재산으로 동남아나 개발이 덜 된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간다면 황제처럼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떠난 그들은 안심했다. ‘그것’이 방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르륵. 꽈직!
이상한 소리가 났다.
푹 잘 자고 있던 김청송 전 국정원장이 눈을 번쩍 떴다. 강도가 들었나?
그는 베게밑에 넣어둔 권총을 뽑아들고 격철을 당겼다. 혹시 모르니 구입해준 자위용 무기였다.
“여보?”
“가만히 있어.”
김청송은 아내를 안심시키고는 조심스럽게 안방을 나섰다. 상체를 숙이고 벽을 등지면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고 1층으로 내려온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검은 그림자가 스륵 스륵 소리를 내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꼼짝마!]
그가 총을 겨누며 그 검은 그림자에게 소리쳤다.
검은 그림자는 김청송에게 고개를 돌렸고 김청송은 별안간 확하고 시야가 환해시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새하얗게 되어버린 시선에 김청송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당황해 막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다가 목에서 따끔하고 강렬한 전기를 느끼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깨어난 곳은 창문도 보이지 않는 지하실 같은 곳이었다. 시멘트 벽에는 짙푸른 색의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공기 역시 곰팡이 냄새가 섞여서 퀘퀘했다.
김청송을 사방을 둘러보다가 검은색의 두터운 후드를 입고있는 장신의 누군가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Please! 제발! 날 보내주시오!”
그는 당황해서 영어를 제대로 할 정신도 없었다. 국정원장으로 강력한 권력을 누리던 그가 이런 강력 범죄적인 상황을 맞이한 적은 없었다.
후드의 남자는 김청송이 말을 걸자 한쪽벽에 있던 테이블을 끌고와 그 위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화면을 돌려 김청송에게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얼굴을 대면하는 건 처음이겠죠?]
화면의 얼굴을 확인한 김청송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강현, 그자였다.
[흠. 말이 없군요. 그래도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간 것은 무척이나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나를 이렇게 귀찮게 만들다니 말이에요.]
“제, 제발.. 요, 용서를..”
김청송의 얼굴은 이제 하얗게 질려버렸다. 역시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복수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은 그에게 달렸다.
김청송은 용서를 비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용서를 빌진 마세요. 전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까요.]
화면에 비친 강현의 얼굴은 담담했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통보였다.
“제, 가족들은..”
김청송의 말에 강현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며 분노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