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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53화 (53/241)

53화

그러나 김강호 사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샘성이 망해도 대한민국이 망할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면 제현 그룹이 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샘성이 망하면 제현 그룹이 대신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전 바빠서.”

더 이상 이야기할 가치를 못느낀 김강호 사장이 축객령을 내렸다. 그리고 최전 대표이사는 정신이 멍해졌다.

응? 방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건가? 샘성이 망하면?

아연해진 그는 이를 앙다물고 회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샘성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가히 한 국가의 1위 기업이 가지는 능력은 대단했다. 그들은 멀티는 뺐기더라도 본진만은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대한민국의 점유율 유지에 나섰다. 사실 단말기 시장을 포기해도 세계적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회사라는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완제품 시장을 빼앗기게 된다면 그로 인한 부품 공급에도 많은 손해가 따르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90%의 완제품 시장을 점유한다면 부품 시장 역시 90% 가까이(기술력이 된다는 전제 아래)점유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완제품 시장을 90%점유 한다면 부품 시장의 점유율 역시(기술력이 앞도적이지 않다면) 기존보다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완제품 시장을 점유하는 기업이 갑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부품 공급에서 다른 업체의 부품을 대체할 만한 기술이 있다는 전제로)샘성이 이를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울 역량은 없다. 그렇다면 리스크 관리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멀티를 지키려다가 본진까지 털리는 것보다는 본진을 지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호갱들이라면 충분히 다시 세계에 나아갈 발판이 되어 줄 자본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또한 제현 그룹은 초상자성 안테나를 샘성에게만 납품하지 않는 아주 악질적인 회사였고 강대한 적이었다. 대놓고 샘성이 망하면 자신들이 대신 하겠다라고 회사 사장부터 말하고 다니지 않는가?

게다가 샘성의 본진, 한국의 기업이었기에 본진이 털릴 위험이 너무나 높았다. 물주인 강현이 지금도 계속 회사의 자본금을 높이기 위해서 회사의 주식을 틈틈이 대량구매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행동은 제현 그룹에 힘을 계속 실어주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냈고 그 자본력만 따져도 제현은 만만한 회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샘성은 본진이 털리지 않기 위해서는 국제 시장의 점유율에 밀리는 것을 감수하면서 국내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시장에서 퇴출 될 가능성은 없다. 그정도까지 경쟁을 하기에는 다른 단말기 제조회사의 출혈이 크다. 그저 1위나 2위 정도의 점유율을 내어 놓고 살짝 물러서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보존한 역량으로 본진을 방어하겠다는 의도였다.

샘성은 국내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서 출혈경쟁에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안테나 독점으로 제현 그룹을 제소하고 싶었지만 교활하게 국내 2위 업체인 NG그룹을 참가시켰다. 그러니 홀로 좋은 것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명분은 그리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샘성의 단말기를 쓰도록 출고가를 낮추는 방법 뿐이었다.

그러자 바로 제현 그룹이 대응에 나섰다. 본격적인 단말기 교체 행사를 실시한 것이다. 기존에 제현 그룹에서 제조한 단말기를 제현 그룹에서 만든 최신형 단말기와 무료 교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입이 딱 벌어진 것은 샘성이었다. 이건.. 밑지고 사업을 하자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미 적이 되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샘성 역시 대출혈 행사에 들어갔다.

그러자 NG그룹까지 출혈경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NG그룹에서는 원하지 않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경쟁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과도한 출혈 경쟁. 이래도 되는가?]

[지나친 출고가 인하.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슬슬 언론에서 단말기 시장의 전쟁을 지적하고 당국에서 슬슬 제제를 가할 시기를 가늠하고 있을 때 제현 그룹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냥 단말기 인하 경쟁을 뚝 정지해 버렸다.

이에 샘성은 포기했는가 생각하면서 떨어진 점유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좀 더 대출혈 서비스를 진행했다. NG그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정부에서도 잠시 두고 보기로 했다. 참으로 불공평한 행동이지만 재벌과 정부는 이미 한통속이었다. 물론 제현 그룹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으니 배려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왜 제현 그룹에서 이렇게 일찍이 경쟁을 포기 했는지 의아해 했다. 물주의 돈이 다 떨어졌나?

그러나 곧 세간에서 제현 그룹이 샘성 전자의 지분을 18%나 확보했다는 뉴스가 강타했다. 단말기 시장에서의 점유율 악재로 인한 잠깐의 주가 하락이 치명적인 헛점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제현 그룹에서 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떨어진 국제 시장 점유율에 본진인 한국을 공략하는 제현 그룹에 대항하기 위해서 출혈 경쟁을 벌였고 계열사에서는 그 동안 과도한 경쟁으로 유동성이 소모되었으며 돌아오는 어음을 결재하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채권을 발행에 시간이 좀 걸리고 그 동안 국제시장에서의 영향력 감소로 회사의 주식 가치가 생각보다 떨어졌기에 대출은 좀 거부감이 들었다. 아무리 끼리끼리 노는 기득권이지만 그만큼 탐욕도 많아서 서로가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해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은행과 그 뒤에 있는 정치 인맥들은 재벌들도 쓴웃음을 지을 정도로 탐욕스럽기 때문에 대출에도 역시 위험이 따랐다. 그들 중 샘성의 위기를 순수하게 도울 인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샘성 계열사들은 보유 지분을 팔아서 잠시 어음을 결재하고 금방 복구하려고 했다. 왜냐면 샘성이기에. 샘성이기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판단은 옳았다. 아즈삭이 그들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말이다.

샘성 계열사들의 주식이 나오자 말자 강현은 바로 전략을 수정했다. 원래는 출혈 경쟁으로 시장 점유율을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의외로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정부보다 영향력이 더 큰 기업이 바로 샘성이니 그 저력을 생각하면 신기한 일도 아니엇다.

그리고 어차피 그의 목적은 샘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재벌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거대 그룹의 경영자인 재벌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대주주의 탄생이라는 전략이 샘성 시장에 대한 잠식이라는 전략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어차피 회사가 어려워져도 재벌은 대한민국의 막강한 권력자로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샘성 그룹의 지분 중 18%가 제현 투자회사에 넘어갔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것이 샘성에게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주가도 요동쳤다.

제현 투자회사의 지분확보가 적대적 M&A의 시작인지, 아니면 단순히 투자의 개념인지, 아니면 또 뭔 가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견호 재벌 일가에는 그 뭔가가 더욱 골치 아픈 문제였다. 샘성은 대기업이다. 국제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가치가 무척 높다. 세계는 대한민국은 몰라도 샘성은 안다.

때문에 적대적 M&A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 단순 투자일 경우에는 걱정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다른 무언가라면... 만약 그것이 현 CEO의 퇴출이라면... 상황은 심각해 진다.

이견호 회장은 18%나 되는 지분이 넘어갔다는 말에 기함했다.

“김 비서! 빨리 주식 보유 상황이 어떻게 됬는지 확인해봐!”

샘성 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문어발식 사업확장이 가능하다. 지주 회사에서 계열사들의 주식을 보유하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샘성 그룹은 크게 샘성 생명, 샘성 전자, 샘성 증권, 샘성 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에서 샘성 랜드의 지분을 총수 일가가 지배하고 있고 여기에서 뻗어나온 하위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간에 샘성 생명이나 샘성 증권이 끼어 고객의 돈으로 재벌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단 한번도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여론의 주목을 받은 점은 없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샘성은 그만큼 강하고 넓은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고리의 하나를 뺏겨 버리면 다른 회사 역시 연쇄적으로 빼앗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다.

“뭐? 샘성 전자만 13%라고?”

샘성 그룹의 지배구조의 중요한 축인 샘성 전자의 지분 비율 중에 총수일가의 보유 지분은 5%도 안된다. 하지만 샘성 물산, 자사주 보유, 그리고 인맥과 혼맥에 기관들의 우호 지분은 약 37%정도로 나머지 63%가량은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를 포함한 기타라고 할 수 있다.

이 기타에 포함되는 지주는 이견호 일가의 샘성 경영에 우호적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분류할 수 없는 지분이었다. 아니 이득만 된다면 굳이 샘성 전자를 이견호 일가의 지배에 맡겨둘 생각이 없기도 했고 주식가치만 올라간다면 샘성 전자가 샘성 그룹의 계열사로 굳이 남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들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서 움직이는 중립자들인 것이고 강현이 생각한 샘성 그룹의 약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중립자들의 비율이 50%로 줄었다. 이견호 일가에게 우호적인 지분은 37%에 그치고 적대적 지분은 13%, 알 수 없는 지분은 50%.

만약 알 수 없는 지분의 38%를 제현 투자회사에서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면 샘성 전자가 넘어간다. 순환 출자 구조의 중요한 축이 재벌이 아닌 타인에게 넘어가 재벌의 지배구조가 붕괴하는 것이다.

“당장 주주들에게 연락해!”

상황을 파악한 이견호 회장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외국인 주주와 소액 주주의 30%가량은 이미 제현 투자회사에 넘어간 상태였다. 그들은 제현 투자회사에서 말하는 비전, ‘샘성 전자를 단순한 재벌의 기업이 아닌 세계 일류 기업, 결코 무너지지 않을 다국적 기업을 건설하겠다’라는 말에 홀딱 넘어간 상태였다. 물론 개인적으로 사례금 역시 적잖이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위임장을 써주었다. 제현 투자회사의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혁파해야 했으니까..

솔직히 샘성 전자의 주식을 구매한 주주들은 재벌 경영에 조금 불만이 있었다. 가령 다른 사업체에서 손해가 났을 때 샘성 전자의 이득금으로 손해를 보전해 주는 행태가 가장 불만스러웠다.

그런 짓을 하면 배당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왜 제조 기업인 샘성 전자가 샘성 생명이나 샘성 증권의 손해를 보전해 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샘성 전자는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었기 때문에 혼자 잘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만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샘성 전자를 재벌의 지배 구조에서 탈출 시키겠다는 제현 투자회사의 구상에 귀가 솔깃한 투자자들은 위임장을 써주었고 제현 투자회사는 대량의 위임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샘성보다 한 발 빠르게 말이다.(당연히 아즈삭의 정보 수집 능력이 크게 기여했다.)이런 상황을 늦게 파악한 이견호 일가와 그 추종세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면서 제현 투자 회사에 나머지 8%의 지분도 넘어가지 않도록 발에 불이나게 뛰었다.

“아이고 사장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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