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나쁘지 않은데?”
[손실율이 무려 20%나 떨어졌습니다.]
“민감해서 그래.”
손실율이 적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다. 단순 계산해도 중계기의 숫자가 20%나 줄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1차원적인 사고방식이다.
1차원에서 중계기가 커버할 수 있는 거리가 20%늘어난다는 것은 중계기의 숫자가 기존의 0.8배로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중계기로 구성된 통신망은 지표면에 2차원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니 제곱을 하면 기존의 0.64배. 즉 64%의 중계기만으로 기존의 구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통신 중계기의 수를 36%나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는 힘들었다. DMB같은 단방향 통신이라면 몰라도 요즘 단말기는 모두 양방향 통신이기 때문이다.
“중계기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기존 핸드폰의 출력도 증가시킬 필요가 있어.”
그렇다. 중계기의 수가 줄어들면 단말기와 중계기의 거리가 증하는 법. 중계기와의 접속을 위해서는 단말기의 전파 역시 강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배터리의 비중이 증가해야 합니다.
“쯧, 여기서 더 배터리를 개량해 봤자 방전 정도만 줄어들 뿐인데..”
[단말기의 전원이 문제라면 태양전지 충전패널을 기본 악세사리로 집어넣는게 어떻습니까?]
“글쎄..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이 상품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니까. 그냥 중계기의 숫자를 대폭 줄이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줄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중계기의 숫자는 휴대폰의 전파가 닿을 정도로는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는 편이 통화 품질을 더 좋게 할 수 있었다.
강현의 이 나노 자석을 이용한 안테나는 나오자 마자 빠르게 특허를 얻고 도입되었다. 전 세계에 동시 등록을 했기 때문에 한국의 단말기 제조 업체들은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강현의 나노 자석 안테나는 그저 기존 안테나 제작 설비에 그저 졸겔 공정을 추가만 하면 됐기 때문에 빠른 도입이 가능했다.
거기에 기존 KFT고객에게 무상으로 안테나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정책을 펼쳤다. 여기에 소요되는 인력은 세컨드 연합에 들어와 하청이 끊긴 업체들이 담당했다.
각 지역에 A/S 센터를 만들자 매일 수백명씩 안테나를 교체하러 왔다.
그런데 막상 중계기를 줄이려고 하니 아직 업그레이드 되지 않은 단말기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있어 중계기 수를 줄이자는 정책이 멈추고 말았다.
적어도 기존 고객의 90%이 상이 업그레이드된 안테나를 단 단말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 중계기의 수를 줄여버리면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큰 잡음이 나지 않도록 중계기 축소 정책은 장기 프로젝트로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한편, 강현의 초상자성 안테나는 미국에서 크게 관심을 가졌다. 차세대 무인기 개발 사업에서 안테나는 무척이나 중요한 물건이었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강현에게 이 기술 역시 국가 기밀 기술로 지정해도 되겠냐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
하지만 강현은 이번에는 거절했다. 왜냐면 대한민국의 단말기 시장을 먹기 위해서는 나노 자석을 이용한 안테나의 독점이 필요했고 이 안테나가 대한민국 다른 단말기 제조 회사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하는 구나.”
“응.”
잭은 질려버린 얼굴로 태연하게 대꾸하는 강현을 보았다.
잭은 강현이 저번에 했던 대규모 사회과학적 실험이라는 목적을 설마로 받아들였는데 일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진짜였다.
“네가 만든 안테나가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을 몰랐어.”
제현 그룹에서 만든 스마트폰 단말기가 2위인 NG그룹을 제치고 무섭게 1위인 샘성을 따라붙고 있었다.
“안테나 만이 아니야. 마케팅의 승리지.”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전세계에서 아이폰 열풍이 불 때에도 샘성이 대한민국에서 1위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제1의 기업이라는 이미지의 힘이 컸다.
하지만 이번에 제현 그룹은 마케팅에 거대한 돈을 쏟아부어서 샘성의 1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갉아먹는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주류 언론에게 쏟아부은 광고비도 엄청났다. 아마 샘성은 조중동 3사에게 뒷통수를 맞은 기분일 것이리라.
“어디까지 갈꺼야?”
“글쎄? 기존의 기득권층이 완전히 숙이고 들어올 때까지?”
“겨우 그 정도면 돼?”
잭의 얼굴이 밝아졌다. 왜냐면 잘하면 좋은 결과를 보고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리적인 위치는 동북아 외교관계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과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서 경제를 일으켜 공산화를 막지 않았나?
장차 성장하는 중국과 다시 기지개를 켜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남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거둬낼 수 없다.
그리고 그 와중에 미국에게 적극 협조하는 한국의 기득권층은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있는 기득권층이 쓸려나가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잭을 보내 강현에게 이쯤해서 슬슬 타협해 줄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러 간 것이다. 그런데 고작 항복하는 것 정도로 그만두어주겠다니..
“아아, 내 마음대로 숙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이고 들어와야지.”
“숙... 청?”
“응, 숙청.”
잭은 강현이 원하는 것은 정말로 실험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지금 강현이 하는 방법으로 기존의 기득권층이 완전히 쓸려나가거나 아니면 기존의 기득권이 강현의 입맛대로 찌그러지고 변형되어버려 원래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그가 원하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던가. 아무튼 강현의 입장은 어찌 되었던 간, 실험이 성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의미였다.
“그들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걸?”
잭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기득권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들의 자존심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자존심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든 자존심을 굽힐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결사 항전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 끝까지 가야지.”
강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 = = = =
강현의 초상자성 안테나는 국제적으로 특허를 받았고 그리고 외국의 단말기 제조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초상자성 안테나를 제조하는 세컨드 밴드 연합의 중소기업들은 쌓이는 이익금에 입가에 미소를 물었고 세계에 단말기를 수출하는 대기업들은 입술을 물었다.
“부디 저희 회사에도 납품을..”
“안 팔아요.”
“돈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필요없어요.”
샘성 전자는 답답했다. 왜 우리 기업에는 팔지 않는다는 말인가? 심지어 3위로 떨어진 NG전자에도 부품을 납품하고 있으면서..
초상자성 안테나의 획득에 실패한 샘성 전자는 전세계적으로 매출이 5%나 급감하기 시작했다. 강현의 초상자성 안테나를 탑재한 각 국의 단말기 제조 회사들과 국제적 경쟁기업에서 샘성 전자의 시장 점유율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한 손해는 막대했다. 샘성 전자의 주가가 매출이 하락 한 만큼 떨어졌고 앞으로도 더 떨어진 전망이었다.
샘성의 경영진들이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마치 전 세계가 자신들을 표적으로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초상자성 안테나로 기존의 중계기 유지비에서 10%정도나 절약되었으니 그 돈으로 마케팅을 벌이거나 디자인이나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 것이다.
이렇듯 기업의 입장에서는 첨단 기술 하나만 도입하면 그 파급효과는 무궁무진했기에 언제나 기술 개발비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쓸만한 기술을 찾아다니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인다.
그런데 이번에 초상자성 안테나를 하나 놓친 것 만으로 이렇게나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제현 투자회사와 제현 그룹에서 각 국의 단말기 제조 회사와 짝짜꿍을 해서 시기를 맞추어 전방위적으로 샘성을 압박한 것이다. 이를 테면 세계 단말기 시장에서 ‘넌 OUT’이라는 느낌이랄까?
샘성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악의적인 국제적인 담합이었지만 도대체 이것을 어디에 가서 호소한단 말인가? 이건 각국에서 아이폰과 특허분쟁을 벌이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하나로 세계 정부가 없는 이상 각국에서 마치 샘성을 노린 것처럼 벌어지는 이 일을 담합이라며 고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프랑스 법정에서 영국 단말기 제조업체와 프랑스 단말기 제조업체의 악의적인 담합을 고발해 봤자 영국 단말기 제조업체는 애시당초 프랑스 법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샘성으로서는 초상자성 안테나를 납품받아 중계기의 수를 줄이고 그 돈으로 전세계적인 공격을 막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팔지 않는단다.. 담당직원으로서는 미칠 지경이다.
결국에는 샘성 전자의 사장이 직접와서 부탁을 했지만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인해서 헛걸음만 했을 뿐이다.
‘저희는 제현 전자에서 의뢰받은 만큼 납품합니다. 그 이상 생산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산의 주체는 제현 전자였고 세컨드 밴드 연합의 중소기업은 단지 하청을 받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라이센스도, 생산 기술도 결국은 모두 제현 전자의 것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 납품하는 것은 계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악의적인 공격이다!’
샘성 그룹은 직감했다. 그렇다면 반격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반격을 해야하나? 제현 그룹은 딱히 국내 시장에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말기의 경우에는 다르지만 그 외의 부분은 너무 비중이 없어서 딱히 공격해 봤자 별다른 효용이 없었다.
샘성 전자의 최전 대표이사는 결국에는 제현 전자와 담판을 짓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세계적인 압박을 홀로 버티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건 곤란합니다.”
제현 전자의 김강호 제현 전자 사장은 턱을 문지르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왜냐면 일은 이미 벌어졌고 세계적으로 샘성 전자 단말기의 점유율이 각 국가마다 3위권 밖으로 떨어질 때까지 각 단말기 제조 회사의 공세는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현 그룹은 이 공세 작전을 구상하고 연합을 결성한 주체로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이 암묵적이고 국제적인 담합을 탈퇴할 수 없다. 그것은 배신이었으며 오히려 담합의 표적이 제현 그룹으로 돌려질 수도 있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샘성이 이 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아시지 않습니까? 샘성이 휘청거리면 나라가 휘청거릴 겁니다.”
최전 대표이사의 말에 김강호 사장의 인상이 찌뿌려졌다. 그는 그 따위 과정된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왜냐면 샘성 그룹이 대한민국에서 직접 총 수출가액을 차지하는 비율은 25%, 샘성이 휘청한다고 해도 세컨드 밴드 연합에서 그를 보존할 수 있을 만큼의 이득을 얻고 있었고 제현 그룹의 단말기 역시 꾸준히 수출이 증가하고 있어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은 없다. 타격을 입는다면 샘성에 빌붙은 기득권층이 타격을 입는 거겠지.
그리고 정말로 최전 대표이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나라의 존재가치는 없다. 고작 기업 하나에 의지하는 나라라니.. 언제든 회사가 망하면 같이 망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리가 없다. 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니 결국 이윤 추구가 최상의 목표가 되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