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50화 (50/241)

50화

아무리 주가가 널뛰기를 해도 아무리 지분 관계가 복잡해도 에이버의 지분을 가진 회사를 잡아먹고 그 회사의 지분을 가진 회사를 잡아먹고 또 잡아먹고 전방위적인 공격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에이버가 안된다면 아음, 아음이 안된다면 레이트 등 차선의 방법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차선의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에이버의 콘텐츠를 뺏어오기 위해서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을 할 계획도 구상해 놓았다.

물론 아즈삭은 바보가 아니였기에 매물을 낚아챘다가 풀어주었다가 하면서 최대한 손실을 줄였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강현이라고 해도 없는 매물을 사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이 벌어지는 동안 주식 시장은 폭등과 폭락을 반복했다. 주가 조작이라는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희의 목적은 경영권이었다고요. 그러니 주식을 붙잡고 마냥 주가가 오르는 것을 바라는 개미 투자자들을 배려할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투자라는 것은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 이윤을 바라면서 손해란 리스크를 지는 것이 아닙니까?]

미친 주식 널뛰기에 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제현 그룹에 등을 돌렸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왜 굳이 한꺼번에 경영권을 얻지 않고 차례로 나누어서 일을 벌인 건가요? 세간에서는 돈 낭비라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혹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시세차익의 문제는 저희가 오히려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거론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두번에 나누어서 일을 벌인 것은 그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필요요?]

[제가 이 나라의 사회 경제를 공부해 보니 사회 전반에 카르텔이 단단하게 구성되어 있더군요. 저희 회사가 경영권을 빼앗은 기업들은 하나 같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카르텔을 구성하던 기득권들을 쫓아내고 적절한 인재를 찾아 정상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죠. 때문에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 그렇군요.]

기득권, 카르텔. 학연, 지연, 혈연의 대한민국이지만 그것을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비난하듯 말하는 것도 기자 입장에서는 참 생소했다.

[하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기득권과 타협하는 것이 이득일 텐데요?]

[그런 무능한 것들과 타협하다니요?]

[네?]

[카르텔을 만들지 못하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이들과 손을 잡아서 어디다가 씁니까? 저희 회사는 세계와 경쟁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무능한 사람들과 타협하고 중요한 자리에 두고 경제적 파트너로 삼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쟁력이 퇴보할 겁니다.]

적나라 하다, 적나라해. 기자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제현 그룹은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전부 무능하다며 협상의 여지가 없는 적임을 확실히 했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여러 사업을 벌이시면서 그런 식으로 재벌을 적.. 대하는 특이한 경영 전략을 구사하고 계신데 그것이 강현 박사님의 뜻인가요?]

[물론입니다.]

[왜 그러는 건가요?]

[박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벌들은 돈으로 법질서를 흐트리는 주제에 지들이 잘난 사람인양 하하호호하며 끼리끼리 논다. 나는 그런 것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 받기 싫다.’

[…...]

기자는 아연했다. 그리고 그 뒤의 인터뷰는 그냥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위한 형식적인 질문 정도였다.

아무튼 이 동영상은 올라오자마자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도 넘쳤다.

[아니! 그럼 왜 대한민국에서 사업해? 그냥 미국에서 사업하지!]

[우왕 짱이당!]

[재벌들을 싹 밀어주세요!]

[지가 존나 잘난 줄 아네.]

[잘났거든.]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거든.]

[석유 시장을 쥐락펴락 하거든.]

대한민국 국민들의 여론은 대체로 이런 댓글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재벌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 국가를 뒤집어엎을 위험분자라는 빨갱이 논리, 그냥 비위 상해서 트집 잡고 비난하는 어줍이들, 그리고 열광하는 팬들까지.

미국의 한 언론은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을 내어 놓았다.

[대한민국. 침략 당하다!]

아무리 민주화 시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도 사회 지도층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회 지도층은 그 사회의 문화와 분위기의 흐름을 이끌고 크게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아니라고? 이완용은? 을사오적은? 그들이 조선의 운명을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뜨리지 않았나.

그뿐만이 아니다. 문화는 아래에서 위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전파된다. 많은 이들이 신분상승의 꿈을 꾸고 열망하면서 상류층의 문화를 따라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이치를 보여준다.

물론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힘없는 자들이 힘있는 자들처럼 살기를 바라거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힘있는 자들은 절대 힘없는 자들처럼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힘있는 자들은 자유가 없는 힘없는 자들의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

이 일방적인 동경의 관계로 인해서 문화는 힘 있는 곳에서 힘 없는 곳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된다. 조선이 중국에게 사대하며 소중화를 자처했던 것처럼, 광복 후에 미국이라면 엄지를 치켜든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다시 돌아오면 사회 지도층이라는 계급은 곧 국가의 운명과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계층이다. 좀 더 과장하면 그들이 곧 국가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계급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진리였다.

때문에 미국의 이 언론이 내놓은 기사 제목은 좀 더 직설적이었고, 마치 강현이 대놓고 대한민국의 기득권에게 하는 것처럼 노골적인 표현으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것은 대한민국 기득권에게는 분명히 침략이나 마찬가지다.

제현 그룹은 대한민국의 권력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의 지지를 모으며 기득권층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있었다.

타협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작정한 것처럼 빼앗고 또 빼앗고 또 빼앗고 있다.

처음에는 대한민국의 유명 대기업을, 그 다음에는 노동자를, 그 다음에는 시장을, 언론을, 대중의 지지를.

결국 최후에는 권력마저 쟁탈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침략행위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

기사는 다음으로 기득권층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층으로 인해 발생한 나만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 세태를 꼬집으며 적어도 제현 그룹 밑에 들어간 사원들은 그런 천박한 삶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했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 그리고 희생에 따른 명예가 보장되는 제현 그룹의 정책은 기존의 대한민국 기득권층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왜냐면 그들은 내부고발자를 철저하게 색출해 보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던 그들이 전 유럽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비단 이런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과학도들은 드디어 갓(God)이 정의의 철퇴를 집어들었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며 친일 매국노들이 바로 지금의 기득권층이라고, 때문에 강현의 손에서 참된 민족의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레발 쳤다.

그러나 모두 헛다리를 짚었다.

강현은 아즈삭이 정리해준 여론의 동향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진정한 사회 지도층? 정의의 사도? 민족을 해방하는 애국지사?

강현은 그 모든 명칭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냉정한 복수자에 불과했다. 필요하다면 저 모든 명칭들을 이용할 생각이 있는 차가운 피를 가진 무법자.

사실 원수들을 찾아내 죽이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바퀴벌레 로봇에 독침을 장착해 찾아낸 원수들이 잠잘때 몸에 한 방씩 놔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은 고작 그 정도로 복수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고 싶었고 절망하게 만들고 싶었기에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는 방향으로 복수의 수단을 정했다.

그래서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복잡한 인맥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그들은 돈과 권력으로 민주주의 정신과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무리였고 강현은 원수들의 방법으로 그들을 몰락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바꾸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되었고 또 앞으로도 소요될 예정이었지만 강현의 재산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지금도 계좌에서는 전 세계 석유 매출에 대한 로열티가 차곡 차곡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단말기 생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이제 막 설계에 들어갔습니다.]

“나도 좀 서둘어야겠군.”

강현은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모니터는 전자 현미경으로 스캐닝한 이미지를 출력하고 있었는데 화연에는 작은 구가 일렬로 가지런하게 서있었다.

이 작은 구의 배열은 강현이 구상하는 초소형 안테나의 핵심이었다.

안테나는 전기 회로의 끊어진 선로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말이 옳다. 안테나는 외부에서 수신되는 전자파와의 공진으로 전기 회로에 전기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보통 안테나를 설계할 때 유전율, 즉 어떤 재료가 전기장에 의해서 내부에 전기장을 만드는 정도를 고려해서 설계하게 된다. 이 유전율이 좋을 수록 안테나가 더 민감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전파는 전기장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자기장 역시 같이 존재한다. 그래서 전자기파라는 용어로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렇기에 만일 안테나 이 자기장에 민감하다면 어떨까? 강현의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자기장에 관련된 소재들의 성질은 꽤 많다. 그러나 크게 세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강철과 같이 자기장을 가하고 나면 재료 자체에 자기장이 남아 있는 강자성, 그리고 구리처럼 자기장을 가했을때 마찬가지로 재료 내부에 동일한 방향으로 자기장을 생성했다가 외부 자기장이 사라지면 다시 자성이 사라지는 상자정, 그리고 초전도체처럼 외부에서 가해지는 자기장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자기장을 만드는 반자성(초전도체의 경우에는 특별히 초반자성, 혹은 완전 반자성이라고 한다.), 이 세가지다.

그런데 철이나 마그네슘같은 강자성 물질이 나노 입자 정도로 작은 알갱이가 되면 매우 특이한 현상을 만든다.

이른바 초상자성이라고 해서 강자성 물질인대도 불구하고 자기장을 가하고 나면 마치 상자성 물질처럼 자기장이 0이 되는 것이다.

이 초상자성과 상자성의 차이점은 초상자성이 자화율, 그러니까 외부의 자기장에 대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강현은 이를 이용해서 기존의 안테나보다 훨씬 민감한 초소형 안테나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초상자성 물질, 나노 자성체를 최초로 사용하는 종이 인간은 아니다. 주자성 박테리아라는 몸속에 작은 나노 자성체 알갱이를 가지고 있는 박테리아들은 이미 이것을 이용해 거대한 지구에서 방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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