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49화 (49/241)

49화

제현 투자회사는 작가를 빼낸다 따위의 치졸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냥 주식을 사기 위해 돈을 쏟아 부었고 주가는 고공행진과 낙하를 거듭했다. 그리고 결국 며칠 간 지속된 엄청난 현금의 파상공세에 에이버의 대표는 경영권을 지키기 못했다.

다른 기업들은 에이버가 제현 그룹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피눈물을 삼켰다.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최고의 카드를 순식간에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도와주기에는 호시탐탐 주식을 노리며 매물을 말려버리려고 달려드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너무나 무서웠다. 설마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주인이 제현 투자회사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무튼 그리하여 탄생한 에이버JH. 거기에 검색 엔진을 구글의 뛰어난 검색 엔진으로 교체하기 위해큰 돈을 주고 계약했다. 덕분에 이전보다 더욱 강한 검색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강현의 행태에 금융 종사자들은 더욱 아리송해졌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영권을 빼았고 싶나? 그렇다면 통신사인 KFT를 빼았기 위해 다시 돈을 풀어 주가를 요동치게 만들었을 때 에이버의 경영권도 같이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이렇게 차례로 돈 낭비를 하다니..

한편, 설마 설마 했던 여론의 커다란 귀퉁이를 빼앗긴 기득권층은 악다구니를 쓰며 정치권에 청탁을 시작했다. 정치권 역시 한통속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나섰다.

명분은 주가 조작 및 탈세 혐의였다.

그러나 경영진들을 체포할 수 없었다. 정말로 안타깝게도 그들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주가조작은 그 동안 요동친 주식 시장 때문에 혐의가 있을지는 몰라도 탈세 혐의는 정말 날조였다. 그리고 그런 날조 혐의로 미국 시민권자를 체포한다? 글쎄.. 미국이라면 설설 기는 국회의원들이 그럴 수 있을까?

뿐만 아니다. 공권력으로 압박을 가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재벌들의 페이퍼 컴페니를 이용한 천문학적인 탈세 사실을 고발했다. 검찰은 물론 경찰, 각 언론사는 물론 에이버JH의 뉴스 홈에도 커다랗게 이 사실이 걸렸다.

거기에 몇몇 국회의원들의 비리 자료마저 공개 되었고 단숨에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랐다.

변상득 의원은 그 몇몇 국회의원 중의 한 명이었다.

보좌관이 급하게 변상득 의원의 이름이 포털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라왔다고 알려왔다. 그는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이유를 직감했다.

이름이 올라간 의원들은 하나같이 국세청에 압력을 가해 제현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도록 한 인물들이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변상득 의원은 에이버JH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명예회손이라며 당장에 이름을 내리라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검색어의 수정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뭐!? 무슨 헛소리야!”

지금까지 에이버에서 얼마나 많이 검색어를 조작해 왔는데 못한다니.. 그게 말이 돼?

변상득 의원은 전화 상담원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포털에 축적되는 모든 자료는 외부로부터의 해킹이나 불공정한 조작 행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공지능 컴퓨터의 관리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저희 사장님께서 가지신 권한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래? 사장 바꿔!”

변상득 의원은 씩씩 댔다. 감치 정부의 딴따라, 나팔수 였던 주제에 이따위 짓을 해? 감히 국회의원을 뭘로 보고.

[여보세요.]

어눌한 말투. 쫓겨난 임원진 대신에 내려왔다는 그 외국인 전문 경영인 같았다.

“여보세요. 저는 변상득 국회의원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지금 실시간 검색에 올라와 있는 제 이름...”

변상득 의원은 그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며 즉시 내리지 않으면 고소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오우! 명예훼손은 말도 안 됩니다. 실시간 검색 순위는 순전히 검색 횟수에 의해서 영향을 받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해당 인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변상득 의원에게는 그것이 문제였다. 비리와 얽혀있는데 유명해지니 말이다.

“명백한 명예훼손이요!”

[오우! 그럼 당신 이름을 검색한 이름도 모르는 그 많은 사람들을 고소할 겁니까?]

“무슨 소리! 고소당할 쪽은 바로 에이버요! 알겠소?”

[Why?]

“너희들이 내 명예를 훼손하고 있잖아!”

[잘 이해가 안되시는가 본데.. 저희 업체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단시 시스템적으로 자동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악의로 순위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공정한 시스템은 변상득 같은 이들에게는 충분히 악의적이었다. 감히 ‘자신들의 말대로 조작되지 않는 공정한 시스템’이라니! 그 따위 것이 왜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찌 되었건 명예훼손이야! 당장 내려!”

계속되는 억지에 어이가 없어진 외국출신의 전문 경영인의 답은 이랬다.

[Fuck you.]

그리고 끊어지는 전화 소리에 변상득 의원은 괴성을 지르며 책상 위를 밀어버렸다. 사실 그런 행동은 정치가로서 실격이었다.

하지만 현재 변상득 의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제현 그룹에 의해서 촉발된 말하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와 기득권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기업에서부터 정치가, 법조인에게까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었다. 그렇다. 변상득 의원이 느끼는 위기감은 느끼지 않는 국회의원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터진 비리 혐의와 확실한 자료. 그것은 변상득 의원의 정치생명을 끝장낼 수 있을 정도이니 그가 이렇게 평소 답지 않게 광분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한편 전화를 끊은 에이버JH의 외국인 전문 경영인, 엠젠은 왜 오늘 전화를 받으면서 몇 번이나 Fuck you를 연발했는지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억지도 적당히 부려야지.

그러면서 고용주의 비전에 깊이 공감했다.

‘저런 자들과 권력을 나누지는 않겠다.’

사회 지도자라면 어떤 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엠젠의 철학이었다. 비록 그 철할 때문에 사장 자리에 쫓겨난 전적이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 된 것 같다. 한국에 온 뒤로는 매일매일 보람찬 생활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구체적인 적이 있으면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발휘하죠. 제가 당신에게 적을 보여주겠습니다.’

천재 강현의 그 말이 아직 머리에 생생했다.

= = = = =

난데없는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한 탈세 및 재산 빼돌리기의 이슈는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그리고 연이어 비리 정치가에 대한 이슈가 퍼지면서 제현 그룹에 대한 정치적 공세는 주춤거릴 수 밖에 없었다.

대중은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분열되었다.

역시 그놈이 그놈이다, 물타기 하지 마라, 정치적 공세에 맞서는 현명한 대응이다, 부디 타협하지 말고 밀고 나가라 등 여러관점이 섞여 여론이 통일되지 못했다. 공중파와 주류 언론은 비슷한 논조로 일관했지만 인터넷 여론은 너무나 복잡했다.

그리고 복잡한 여론은 정치 토론란을 만든 에이버 덕분에 더욱 용광로처럼 불타올랐다. 비리 문제를 슬슬 덮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한 진보 언론사와 제이슨 킬덤의 인터뷰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와 더욱 세간의 흥미를 끌었다.

그것은 주가 조작이라는 혐의에 대한 제현 그룹과 제현 투자회사의 입장 표명이었다.

[킬덤 회장님. 제현 투자회사의 회장이시지만 사실은 강현 박사님의 대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요즘 제현 그룹이나 제현 투자회사에 대해서 주가조작 및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고 계십니다. 이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제이슨의 입에서 그동안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했는지 제법 유창한 한국어나 나왔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혐의들이 모두 날조라는 사실입니다.]

[날조요?]

[네, 날조요. 탈세혐의야 세무조사를 받으면 저희 회사들이 단 1원도 탈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고 주가조작의 경우에도 어떤 불법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아, 그 말씀을 들어보니 궁금한 점이 두가지가 생깁니다. 먼저 단 1원의 탈세도 없다는 것이 가능한가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하하하! 저희 회사들의 회계는 사람이 담당하지 않습니다. 아즈삭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공지능 슈퍼 컴퓨터가 담당하고 있죠. 어떤 누락이나 오류가 있다면 즉각적으로 회계팀에 연락해서 사실 확인과 수정을 요구합니다. 오류가 있을 수가 없어요. 회계를 담당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니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날리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오히려 다른 기업은 안 털어도 여기 저기 똥을 싸질러 놨더군요. 이를 보고 한국 속담으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하던가요? 아, 저희는 한 점 의혹도 없으니 똥 묻은 개가 샤워한 개보고 짖는다라는 문장이 적절하군요.]

제이슨의 말에 인터뷰를 하는 기자의 얼굴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곤란해 한다. 진보 신문이라지만 재벌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제이슨은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넘어 조롱하고 있었다.

[주가 조작 혐의는 어떻게 된 건가요?]

[주가조작은 주로 소문, 그리고 내부정보, 회계조작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악의적인 행위죠. 물론 정보의 비대칭성 자체는 자본과 경쟁의 논리에 의해서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정보를 불법적으로 가공하거나 시장에 퍼뜨려 이득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죠?]

[결과가 증명하죠. 저희는 KFT와 에이버의 경영권을 빼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주가가 요동치는 동안 저희는 손해를 보았으면 손해를 보았지 결코 이득을 보지는 못했죠. 물론 저희는 그 손해를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한 비용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경영권을 빼앗아 왔죠.]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코스닥과 코스피 지수가 50포인트나 상승했다. 그 모든 돈이 제현 투자회사에서 나온 돈은 아니었지만 가히 천문학적인 투자였고 국제자본이 한국 증권 시장에 들어오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한 건은 확실했다.

솔직히 KFT와 에이버의 기관투자자들은 큰 이득을 얻었기 때문에 주가조작이라고 말할 명분은 무척이나 약했다. 그리고 주로 주가조작은 어떤 세력이나 사측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놓고 돈을 쏟아부은 제현 투자회사가 주가조작을 했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도 주가가 널뛰기를 반복하는 동안 손해를 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액 투자자들을 말하나요?]

주식 시장은 많은 돈이 오간다. 그곳은 정글이며 적자 생존의 법치 적나라하게 적용되는 곳이었다. 때문에 세력들은 주식 시세의 흐름을 유추하기 위해서 막대한 투자를 한다.

그리고 강현은 아즈삭이라는 첨단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돈을 투자했다. 그것은 세력과 아즈삭이라는 첨단 인공지능의 싸움이었다.

이 둘이 싸운 여파는 엄청났다. 주가는 미친듯이 움직였고 중간에 끼인 개미는 손해를 보고 떨어져 나가야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아즈삭의 승리로 끝났다. 아즈삭은 강현의 재력이라는 스트레이트 플러쉬를 쥐고 공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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