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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47화 (47/241)

47화

연합은 결국 효과적으로 하청을 갈취할 구실에 불과하다며 비난하는 이도 있었고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드디어 하청업체들이 커나갈 수 있는 우산이 생겼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가장 냉정한 분석은 ‘연합 중소기업이 세계적 부품 생산 기업이 되었을 때 그 부품을 사용해 상품을 만드는 제현 그룹의 브랜드 가치는 부쩍 상승할 것이다.’정도?

그러나 그런 냉정한 분석마저도 제현 그룹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김소열 일가가 회사에서 쫓겨나자마자 회사에서는 숙청의 바람이 불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김소열 일가에 알랑거리던 무능한 보신주의자들을 해고하고 갑의 위세를 부리던 영업직 사원들을 색출해 해고했다. 해고 사유는 그런 썩은 마인드로는 앞으로 세계적 기업이 될 세컨드 밴드 연합과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는 것.

그렇게 비어버린 자리에는 인품과 능력은 되지만 줄서기를 못해 출셋길에 벗어난 사원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낙하산? 그런 것은 임원진에 한했을 뿐이었고 앞으로도 경영진을 제외한 고위직은 모두 승진을 통해서 채우겠다는 사측의 입장은 사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유능한 인재를 끌어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제현 투자회사에서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승진의 방법만으로 좋은 인재를 얻으려면 그만한 인재풀이 있어야 했기에 충분한 사원 수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다. 사원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재능을 깨달은 인재들이 두각을 나타내어 사측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현 투자회사에서 고용한 전문 경영인들은 이러한 이치를 확실하게 파악하고는 곧장 쓸데없는 대기 시간을 줄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대한민국 기업문화에서 상급자의 요구에 따라 자기 일을 미루고 자료를 작성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금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일 일순위는 자신의 일이었고 상급자는 자료가 필요하다면 직접 찾아서 확인해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상급자가 무능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임원들의 견해였다.

뿐만 아니라 회의는 일일 이회, 오전이 한번, 오후에 한번. 시간은 총 1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지었다. 지엽적인 내용의 전달은 문서와 자료로 전달하고 회의에서는 핵심 내용만을 교환하도록 했다.

이런 개인주의적 성향의 기업문화는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에 딱 맞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 만큼 책임을 지게 하는 문화, 거기에 더불어 쓸데없이 상사 눈치 보지 않고 소신 껏 일할 수 있는 문화에 다소 월급은 높지 않더라도 제현 그룹에 입사하려고 하는 사회 초년생의 비율은 점점 높아졌다. 물론 쓸데없이 야근을 시키지 않는 것도 주요했다.

일이 많다면 알바, 비정규직을 늘리면 된다는 것이 임원들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정규직도 대우는 나쁘지는 않았다. 치사하게 사내 식당에서 비정규직이라고 돈을 내고 식사를 하게 만들지 않았다. 임원들은 똑같은 일을 한다면 똑같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강현의 지시에 손해를 볼 것이 분명하지만 시행했다. 비록 사대보험이나 정규직을 위한 각종 혜택은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월급만큼은 하는 일이 동일하다면 동일하게 지급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전문 경영인이란 원래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임원들은 아즈삭이 찾아내고 강현이 골라낸 소위 도태된 임원들이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들에게서 자신들의 경영철학을 고수하다가 쫓겨난 자본주의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강현은 그들을 고용했다. 천민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대한민국을 정복할 기업의 경영인으로서 그들은 대한민국의 재벌들과 결코 같이 갈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였고, 또한 그들은 강현의 비전(천민자본주의 국가의 기득권 강탈)에 전율하며 기꺼이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즉, 그들은 대한민국 정복의 첨병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익의 극대화가 필요 없었고, 대신 대한민국에 제현 그룹의 영향력을 퍼뜨리는 것이 우선했다. 이익은 회사를 유지할 만큼만 있으면 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제현 그룹의 경영 방침에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아니 심각한 위기감을 느겼다.

‘비정규직에 대해 합리적인 대우를 요구한다!’

제현 그룹의 비정규직과 그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너무나 눈에 띄자 파업과 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미래 그룹 전해진 회장은 사내 하도급들이 일으킨 파업에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 같았다면 비웃으며 각종 공작을 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제현 그룹에서 대량의 하청업체를 빼갔기 때문에 납기일을 못맞춰 거액의 배상금을 물었다. 물론 위약금을 받아냈지만 자본이 없는 기업들이라 받아낼 수 있는 위약금에는 한계가 있어 배상금으로 인한 손해를 충당하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렇게 손해를 보고 다시 다음 물량을 생산하기 위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서 협력업체를 찾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쓸만한 협력업체는 세컨드 밴드 연합으로 홀라당 넘어간 상태.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하려니 원가 절감은 불가능했고 세컨드 밴드 연합에 손을 벌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들은 기득권에 반역을 일으킨 존재들이었다. 부수고 쳐내고 깨부숴야 하는 곳이었다. 재벌로서 절대로 그런 곳에 손을 벌릴 수 없었다.

때문에 급하게 남아있는 하청 기업의 규모를 확장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 파견한 근로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것이다.

답답했다. 빨리 공장을 정상화 해야 회사의 신용을 지킬 수 있는데 일분 일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이런 파업이 벌어지다니..

사실 미래 그룹에서 사내 파견 직원에 대한 대우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다른 곳에 비하면 후한 편이다.

하지만 왜 비정규직들은 들고 일어나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만큼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차별을 당할 때 노예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유인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비정규직은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차별은 그뿐만이 아니다. 같이 사내 하도급으로 간 비정규직 사이에도 임금차가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미래 자동차에서는 사내 하도급으로 간 비정규직에게 일괄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 원인은 미래 자동차에서 돈을 받아 다시 비정규직에게 돈을 지급하는 하청회사에서 중간에 그들의 임금을 때어 먹는 것이다. 왜 그러는지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미래 자동차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자신들은 오히려 다른 비정규직보다 후하게 챙겨주는데 왜 이런 식으로 욕을 들어먹어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법원에서 판정한 것처럼 불법 하도급을 막고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하청회사를 동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기 때문에 중간에 임금이 사라질 일이 없는 것이다. 욕도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지 못한다. 비단 돈 문제가 주요한 결정 요소는 아니었다.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비용은 한해 영업이익 8조원에 비하면 겨우 천억원 가량에 불과하니 정말로 돈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었고 그 본질은 정규직은 곧 노조를 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에는 노조의 결성이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은 각종 방법으로 그들은 무력화시키려고 했다. 심지어 어용 노조를 만드는 것은 물론 노조 결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 사원들을 감시하고 협박하며 돈으로 회유하기도 했다.

즉, 결국 미래 자동차에서 일어난 비정규직의 시위는 노조를 무슨 역병처럼 취급하는 재벌들의 경영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 비서, 샘성 이 회장에게 연결하게.”

[네, 사장님.]

곧 전화가 샘성 그룹의 이견호 회장에게 연결되었다.

“이 회장, 나 전 회장일세.”

[무슨 일인가?]

“뉴스는 보았나. 이번에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생겼네.”

[쯧쯧, 안타깝구먼.]

“이번 사태를 수습해도 계속해서 이런 일은 생길걸세.”

[그렇지. 결국엔 제현 그룹이 문제야.]

대한민국 대기업은 재벌을 통해서 경영된다. 그러나 제현 그룹은 전문 경영인에 의해서 경영된다. 만일 그 경영인들이 한국인이었다면 혼맥이나 그런 것들을 이용해 회유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그 이질성은 제현 그룹을 기존의 기득권이 회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나?”

[후우.. 나도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 모르겠네. 정치권이 나서주면 좋겠지만..]

회사의 과반수나 되는 주식을 가진 이가 그 강현이라는 자였다.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이 애지중지하는 천재 과학자였다.

그런데 그런 자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한다? 확고 부동한 명분이 없다면 불가능했고 오히려 지금 상태는 강현이 세운 제현 그룹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전반에 걸친 긍정적 여파로 재벌들의 기존 기업 경영 방침이 비난받고 있었다.

상대가 그냥 평범한 자본가라면 이득을 대가로 타협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제현 그룹은 이득 추구를 목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재벌에 대한 이빨을 드러냈고 그것은 김소열 일가의 일부터 협력업체 빼앗기까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는 적이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는 석유 카르텔를 주무르는 천재 과학자, 같은 편이 되기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건만 이렇게 적대감을 감추고 있지 않으니..

그 일례로 전경련이 주최하는 파티에 제현 그룹의 경영진들을 초대했지만 단 한사람도 초대에 응한 이가 없었다.

정말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언론 조작과 시민 단체를 움직여 불매 운동을 벌여도 소용없다. 제현 그룹은 수출형 기업이었다. 그들은 원자재를 사와 가공해 철저하게 외국에 팔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품목자체가 소비자들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게 파는 부품류였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제현 그룹이란 기업이 있으니 완제품이 나온다면 이미 구축되어 있는 유통망을 이용해 팔 수 있는 것이다.

“회, 회장님!”

통화중에 누군가가 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천아! 이게 무슨 짓이냐! 이 회장 미안하군, 좀 있다가 전화하지.”

갑작스레 쳐들어온 사람은 자신의 아들인 전유천이었다.

“네 이놈. 아비가 지금 중요한 전화를,”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뉴스를 보세요!”

그러면서 급하게 TV를 켰다. 뉴스채널에서 급하게 속보를 보내고 있었다.

[아우디와 제현 그룹의 합자 회사 설립!]

[아우디 제현 자동차 회사 탄생하다!]

[아우디의 디자인, 그리고 천재 강현의 기술력이 만나다!]

화면에는 강현의 대리인이라고 알려진 제이슨이 어떤 백인과 공장 부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허.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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