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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46화 (46/241)

46화

김소열 회장 일가에 일어난 일은 너무한다면 너무한 일이겠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탐나는 기술과 비전을 먹기 위해서 인맥을 통한 압력으로 융자를 막고 유동성 경직에 빠지게 해 강제로 부도를 일으켜 날로 삼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회 그룹에서 벌어진 일 역시 그와 별다른 건 없었다. 단지 그 스케일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커졌다는 것뿐?

그러나 그 전개과정을 살피면 무시무시했다.

평범하게 그냥 채권을 대량 구입해서 공격했다면 한회 그룹 회장 일가와 인맥관계가 있는 정재계 인사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여유 자금을 지원해 주고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은행에 압력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돈이 없었다. 얼마전 있었던 코스피, 코스닥 광풍. 재벌들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 돈을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고 기관과 은행은 시세차익을 위해서 열심히 광풍에 동참했다.

그런데 갑자기 거품이 주춤하다가 되팔지도 못할 정도로 푸욱 꺼져버렸고 돈이 말라버렸다. 그리고 한회 그룹이 마치 대기업에게 돈 공격을 받는 중소기업처럼 무너져 버렸다.

무시무시했다. 만일 그때 공격이 한회 그룹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업에 향했다면 과연 버터낼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대기업은 없었다. 애시당초 전세계적으로 판매되는 석유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강현과 현금 대결을 펼칠만한 여력이 없었다. 회사의 자산을 다 판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팔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주식 광풍이 잠잠해 지고 한회 그룹이 강현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급기야 회사 명까지 제현 그룹으로 바꾸려고 했다. 마치 한회라는 존재를 사회에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 같았다.

새로 임원이 된 전문 경영진들은 그런 강현의 결정을 못마땅해 했다. 왜냐면 대기업의 명칭은 그 명칭만으로 하나의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강현의 투자회사인 제현 투자회사에 항의도 해봤지만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뿐이다.

‘나는 기존의 재벌을 계승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강현의 의도는 기존 재벌들에게 위기감을 주었다. 전혀 타협하지 않는 모습에 강현이 자신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재벌들은 정치가들을 움직였다.

한국의 중요 대기업이 외국 투자 회사로 넘어가는 것이 합당한가?

이른바 애국심을 이용한 언론 조작이었다.

때문에 몇몇 시민단체는 제현 그룹에 대한 불매 운동에 나섰지만 제현 그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사업의 비중을 해외와의 교역에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원화 가치 절감 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에 수출 기업이 큰 이득을 보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제현 그룹 역시 수출 주도형 사업으로 전환했고 그를 위한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아니, 빼앗기 시작했다.

“정 사장! 왜 아직 부품이 납품되지 않은거요?”

[김 과장, 더이상 미래 자동차와 거래하지 않겠소.]

않겠소? 한대 자동차에서 일하는 김 과장은 정 사장에게서 생전 처음 받은 어투에 당황했다. 그러나 곧 분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흥! 그쪽 아니라도 거래할 곳은 넘쳐! 위약금이나 물 각오나 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다른 하청 업체에 추가 주문을 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무리입니다. 지금부터 24시간 가동을 해도 주문량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에 납품하는 물량을 이쪽으로 넘기세요.”

[그건 안됍니다.]

“하세요. 안 그러면 다음 납품을 못받을 지도 모르오.”

[….. 그냥 지금 납품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군요.]

“뭐욧!?”

[이번 주 물량은 납품하지 않을 거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김 과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납품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쌍으로 미쳤나? 도대체 무슨 돈으로 위약금을 내고 사업을 하려고? 파산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김 과장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다음 하청, 다음 하청에 연락을 했다. 그러나 그럴 수록 그의 얼굴은 당황을 넘어 절망으로 시커매졌다.

전화를 건 하청마다 납품을 거절해 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납품해주겠다는 하청은 시설자체가 열악해서 납품 수량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곳이었다.

김 과장은 급하게 사태 파악에 나섰다. 이대로라면 이번 수출 물량에 차질을 빚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납품하지 않겠다는 부품이 하이브리드카에 필수나 마찬가지인 전기 모터라 더욱 그랬다.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

김 과장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더 독이 되었다. 각 라인에서 부품이 떨어져 간다는 보고서가 부장까지 올라간 것이다.

부장은 김 과장의 무능에 혀를 차며 직접 하청업체를 돌아다니면서 허리를 숙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 뿐이었다.

왜? 이것 좀 이상한데?

회사에서는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하청 협력업체들이 갑자기 등을 돌린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조사끝에 원인이 밝혀졌다.

제현 투자회사가 이 일을 조작한 것이다.

미래 자동차에서는 상도덕에 어긋난 짓이라며 언론을 통해서 맹 비난 했지만 제현 투자회사에서는 미래 자동차에서 떨어져 나간 하청업체들을 끌어모아 하나의 거대한 회사를 만들었다.

고용 인원만 미래 자동차에 준하는 초대형 하청업체의 등장이었다.

(주)세컨드 밴드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기업의 주주는 기존의 하청 업체 사장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의사 결정 과정을 협동조합과 동일한 방법을 선택하여 협동 조합도, 그렇다고 주식회사도 아닌 묘한 구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각 대기업 제조 회사의 하청회사가 하나 둘씩 연합에 참가했다.

대기업들은 그런 행동을 막기 위해서 협박도 해보고 돈으로 회유를 해보기도 했지만 많은 하청회사가 참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떠나버린 하청 자리에 남은 것은 사내 하청 기업과 그룹 권력 라인에 밀접한 기업뿐. 하지만 그런 기업들에게 이익을 쥐어짜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대기업들은 언론을 움직여서 제현 투자회사의 비도덕성을 비난하는 한편 (주) 세컨드 밴드 연합의 독과점을 제소했다.

이에 제현 투자회사는 오히려 물품 밀어내기, 원가 절감을 위한 하청 쥐어짜기, 불공평 계약 등의 이슈로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며 (주)세컨트 밴드 연합은 하청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기회이자 미래를 위한 비전이라고 맞섰다.

거기에 독과점 제소에는 한미 FTA조항에 위반된다며 역으로 맞섰다.

대기업들은 정치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치권이라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만일 협잡질을 시도한다면 한미 FTA ISD(투자자 국가 제소)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제현 투자회사에서 나온 이들이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ISD는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독소 조항이라며 말이 많았다.

사실 그렇다. ISD의 조항이 한 국가의 법 주권을 침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제외하고도 ISD로 인해 한국 기업이 승소해도 그 이득은 결국 해당 기업에게 갈 뿐 국민에게 가지 않는다. 반대로 미국 기업이 승소하면 한국 정부는 세금을 통해 그 기업의 손해를 매꿔 주어야 한다.

이득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전형적으로 책임을 약자에게 떠넘기는 조항이었다. 즉, 기업만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

몇몇 정치인들은 만일 ISD를 사용하면 오히려 (주)세컨드 밴드 연합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고 뻗댔지만 제현 투자회사는 그 배상금을 (주)세컨드 밴드 연합에 재투자한다는 카드가 있다며 멍군을 놓았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가들은 다시 한미 FTA의 독소 조항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대기업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입장이 된다.

대기업에겐 자신들에게 이득을 몰아주기 위한 협상이 이제는 거꾸로 자신들의 목을 조이게 된 상황인 것이다.

[제 1회 연합 합동 토론회]

한편, (주)세컨드 밴드 연합에 가입한 사장들을 대상으로 앞으로의 비전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주)세컨드 밴드에 가입한 이들은 비단 대기업에게 쥐어짜이는 것에 질린 이들만 가입한 것이 아니었다. 제현 그룹, 강현의 기술력에 기대에 자신들의 기업을 튼튼하게 만들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이들 역시 참가했다.(때문에 대기업에게 남은 것은 그저 안정만을 바라는 노예같은 하청만이 남았을 뿐이다.)하루 하루 어음을 처리하고 돈을 융자하기 위해 금융권에 손바닥을 비비는 짓에 질려버린 이들과 비전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과연 제현 투자회사가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제이슨 킬덤입니다.]

강현의 대리자로 더 잘 알려진 제이슨 킬덤이 단상위로 올라섰다.

그는 기대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주춧돌 빼앗기.’

자신의 고용주는 이번 작전을 그렇게 명명했다.

앞으로 적이 될 것이 분명한 재벌들에 대해서 기선을 제압하고 대한민국에서 제현 그룹을 무시하지 못할 튼튼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주)세컨드 밴드의 역할은 간단하다. 제현 그룹을 든든히 받쳐줄 기반.

제현 그룹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기반한 인프라가 필요했다. 상품과 시장? 굳이 국내에서 놀 필요가 있는가? 친 수출기업 정책 일색인 대한민국에서 똑같이 친 수출적인 경영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제현 그룹이란 브랜드를 입은 상품을 건실하게 생산해줄 기업들이 필요했고 이 자리에 있는 기업들은 면밀한 검토를 통해 경영자의 경영 마인드를 확인한 뒤에 가입시킨 이들이었다.

그렇다. 대기업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김이 진한 하청을 여기에 밀어넣어 분탕질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가입과 퇴출에 대한 전권은 제현 투자회사에 있었고 아즈삭과 슬슬 활동하기 시작한 바퀴벌레 로봇으로 얻는 첩보로 대기업의 시도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같은 원리로 대기업 그룹내 권력자의 고위직에 연이 닿아있는 사장들이 있는 하청은 그 가입을 초기부터 봉쇄했다.

덕분에 이 자리에는 결코 출세할 수 없고 남은 운명이라고는 쥐어짜이는 것 밖에 없는 이들만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럼 앞으로 여러분에게 어떤 비전이 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뒤 몇 시간의 설명회와 질문 및 토론 시간을 가진 회원들은 대단히 만족해가며 돌아갔다.

자신들에게 인텔이 하청을 맡긴다? 벤츠와 아우디에 부품을 공급한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다?

전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왜냐면 제현 투자회사와 제현 그룹의 주인이 바로 석유 제조 라이센스의 주인이자 희대의 특허 괴물인 것이다.

기술 뿐만 아니라 돈까지 있었기에 (주)세컨드 밴드 연합이 망할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들은 그저 탈퇴 당하지 않도록 경영을 투명화하고 자신들이 처음 연합에 들어올 때 맺은 계약대로 자신들만의 경영철학을 고수하면 되는 것이었다.

세간에서는 이런 제현 투자회사의 행보가 결국에는 제현 그룹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난 혹은 긍정하는 관점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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