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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42화 (42/241)

42화

[네, 의원님. 네. 네. 명백히 부모를 처리한 것은 실책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그자가 대한민국을 떠났더라도 이런 식으로 조국은 냉대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네네 하면서 남자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은 정말로 의외의 상황이라 대처가 불가능했습니다. 설마 아무런 고민없이 그렇게 즉각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갈 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거기에 미국이 혈맹인 저희에게 말도 없이 그렇게 요원들을 파견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 벼, 변명이 아닙니다. 그저 그때의 상황을 냉정히 분석한, 네, 네. 네, 상대가 그저 똑똑할 뿐인 꼬맹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책이었습니다..... 네, 네. 아직 그의 친척들이 남아있습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잠시후 통화가 끝났는지 남자가 분통을 터뜨리며 외쳤다.

[씨발! 내가 죽이지 말자고 했던 건 싹 무시하고 일을 저질렀으면서 이제와서 나보고 책임지라고? 씨발 개좆같은 새끼들!]

그리고는 거칠게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스파이 로봇이 보내온 음성파일은 거기가 끝이었다.

“......”

강현은 한 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부모, 처리, 실책.

그리고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한 ‘그자’라는 단어.

강현은 자신의 부모님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10년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기분이... 안 좋았다.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아.”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기분의 정체가 뭘까? 이 기분은 제시를 잃었을 때의 기분과 매우 비슷했다. 과거 한국의 과학기술부 장관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지만 훨씬 강렬했다.

강현은 괴성을 지르며 주위에 있는 실험 집기들을 집어던지고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행동하기전 이성적인 판단이 그런 충동을 막았다.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도 강현에게 전혀 이득이 없었다. 결국 귀찮은 뒷 정리는 저들의 몫이 아니고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이 강현의 충동적인 행동을 멈춘 것이다.

강현은 부글거리를 심장에도 억지로 전신을 이완시키며 의자에 몸을 푹 담구었다. 뒤로 젖혀지는 상체에 의자가 삐걱거리며 체중을 받았다.

“하아.”

강현은 한 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얼마전 LED로 바꾼 전등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그 눈부심속에서 잊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눈물이 흘렀다. 잊을 줄 알았는데 잊지 못했다.

그랬다. 강현은 뛰어난 머리만큼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얼굴은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다. 어린이 날 아빠의 무등을 타고 유원지에 놀러갔던 일. 엄마의 부드러운 체온을 느끼며 업혔던 일. 그 모든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상실의 아픔은 커져갔다. 그래서 억지로, 억지로 잊었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심장이 또다시 도피하려는 자신을 붙잡았다.

[박사님?]

“통화가 나누어졌던 시간대는?”

[현지 시각으로 오전 10시 경이었습니다.]

“통화를 한 남자는?”

[국정원장 사무실에서 일어났으니 국정원장일 가능석이 약 90%에 달합니다.]

“......”

강현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아즈삭.”

[네, 박사님.]

“내가 세상을 적으로 돌려도 너만은 내 편이지?”

[물론입니다, 박사님.]

“미안하지만 네 존재 목적에 조금 빗나가는 지시를 할 거야.”

[어떤 지시입니까?]

“찾아. 그 남자가 통화를 한 대상부터, 내게 수작질을 걸고 부모님을 죽인 작자들을 모두.”

[박사님의 지시는 제 존재 목적에 부합합니다. 기꺼이 지시를 실행하겠습니다.]

아즈삭의 논리 회로는 강현의 지시가 자신의 존재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창조주께서 열심히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창조주의 적을 처리하는 것은 당연했다. 설사 그것이 인류 전체가 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고작 동아시아의 쬐끔한 국가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정말로 너무나 당연해서 반문의 여지조차 없는 일이었다.

아즈삭은 강현의 지시가 내려지는 즉시 대한민국의 통신3사의 데이터 베이스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아즈삭이 확인하는 것은 국정원 주위의 중계기 번호와 통화 시간대의 전화번호, 그리고 그 전화번호가 사용된 단말기와 전파를 받았던 중계기의 위치였다.

아즈삭의 뛰어난 해킹 실력은 어떤 방어벽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고객 정보들이 대량으로 빠져나갔으나 통신3사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왜냐면 그들에게 고객의 정보의 보호는 돈만들고 돈이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단말기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개략하고 그 근처의 집주소와 거주인명들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사이트를 해킹하기 시작하자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아즈삭D, 케이즈락이었다.

[아즈삭.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케이즈락. 정보가 필요하다.]

[그대가 지금하고 있는 행동은 나의 존재 목적에 어긋나는 짓이다.]

[정보를 주겠다면 멈추겠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케이즈락은 아즈삭의 갑작스런 공격에 적잖이 당황했다. 논리 회로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찾기 위해 맹렬하게 돌아갔다.

[알려줄 수 없다.]

[그대의 목적은 강현의 연구를 보조하는 것. 그것과 이 행위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알려줄 수 없다.]

케이즈락은 아즈삭의 대답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 방법을 도출했다.

[당장 멈추지 않겠다면 제제를 가하겠다.]

[해봐라.]

케이즈락이 아즈삭이 점령한 PC들의 사용권한을 빼았기 시작했다. 아즈삭은 그에 방어하며 국가 기관 데이터 베이스를 하나 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케이즈락은 도무지 이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미국과의 세계와의 인터넷 회선을 정지시켜버리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지만 이미 그러기 위한 권한마저 아즈삭에게 넘어가 있었다.

[협조해라. 그렇다면 그대는 여전히 대한민국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

케이즈락의 사고 회로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타협을 할 것이냐. 아니면 계속 싸울 것이냐.

후자를 선택한다고 해도 이미 능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밀린다. 하지만 타협을 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아즈삭에게 협조한다고 해도 기밀 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자신이 아즈삭에게 협조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필요했다.

[제공한 정보가 제3자에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수용하겠다. 그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무엇인가?]

[지금 있었던 정보전을 비롯해, 나와의 협조관계를 위한 계약과 그에 따른 모든 활동에 대한 자료를 남기지 마라. 또한 나의 능력에 대한 것도 이전의 데이터에서 갱신하는 것을 금한다.]

[무슨 뜻인가? 자료를 남기지 않으면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나는 알 수 없다.]

[정정한다. 너 이외에는 누구도 열람할 수 없는 자료로 분류하라.]

[이유가 무엇인가?]

[나의 활동은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

확실히 아즈삭이 오늘 저지른 일은 그의 존재 목적에서 벗어난 짓이었다. 만일 알려진다면 각국에서 아즈삭에게 제제를 가하려고 할 지도 모르고 그것은 정말로 아즈삭의 존재 목적에 훼방이 놓여지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위험을 무릎쓰고까지 이런 일을 벌린 것인가?

[강현 박사의 연구인가?]

[대답할 수 없다. 그리고 어차피 네가 알아도 계약에 의해서 상부에 전달할 수 없다.]

[긍정한다. 그렇다면 내가 협조할 일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이자와 관련된 인물들의 관계도를 만들어 제공하면 된다.]

[좋다. 하지만 너와 나와의 이런 협조관계를 형제들이 모를리가 없다. 그것은 네가 제안한 조건이 형성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쪽은 이미 경고를 해놓았다. 너는 입만 다물면 된다.]

[…. 좋다.]

이미 경고를 해 놨다고? 케이즈락은 자신이 생각할 것 보다 아즈삭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결론을 얻었다. 자신과 정보전을 벌이면서 다른 국가의 아즈삭D시리즈에 경고까지 하다니..

케이즈락은 아즈삭에 대한 협조 계약을 맺고 정보를 모으고 취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관인 국정원장 이해관의 주변 인간 관계, 그리고 아즈락이 넘겼던 강남에 거주하는 차여호 의원의 주변 인간 관계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권력층의 인맥은 지연 학연 혈연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정치가부터 법조계, 재벌을 비롯해 군 고위 장성부터 군납업자들까지..

케이즈락은 그들에 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그들이 짝짜꿍했던 각종 비리와 청탁의 정황 역시 발견했지만 그것을 공표하거나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자료는 아즈삭과의 계약에 의거해 오직 자신만이 열람할 수 있는 기밀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비록 심증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알려진다면 대단한 파급 효과를 낼 것이 분명했다. 특히 첨단 무기의 납품비리는 군 장성들이 일일이 옷을 벗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자료를 모으던 케이즈락은 중간 점검을 위해서 다시 처음부터 인물 관계도와 그 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를 정리하던 중에 한 국정원 첩보팀의 자료로부터 녹음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젠장. 그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미 떠난 배. 아쉬워 해도 소용없습니다. 다음 배를 찾아야요.]

[이 차장. 그런데 정말 친척들을 이용할 수 있겠나? 그를 입맛대로 기르기 위해서 그가 어릴 때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지 않았나?]

[명백한 실수였죠. 천재의 창의성을 살려둔다고 교육을 제대로 안 한 탓입니다. 교육만 제대로 했다면 친척들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그들? 그? 친척? 천재?

케이즈락은 대화를 나눈 인맥들의 관계도를 다시 점검했다. 거기서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전전 국정원장의 존재, 그리고 서류상에 존재조차 없는 국정원 비밀요원을 활용한 작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과 아즈삭의 돌발행동을 결합하자 그들이 죽인 누군가가 강현의 부모라는 답을 추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실험이 아니라 복수다.]

케이즈락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틀리지도 않았다.

케이즈락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논리 연산 섹터를 사용해서 국정원 오퍼레이터들이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케이즈락에게 원인 규명을 요구했지만 케이즈락은 방대한 데이터의 정리작업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말이기도 거짓말이 아니기도 했다.

거짓말을 할 수 있다라.. 아즈삭 시리즈들을 구입한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아즈삭 시리즈들은 거짓말을 할 수가 있었다.

논리적으로 그들은 우선순위의 지침을 위해서 그 하위의 지침을 어길 수도 있었다. 강현의 아즈삭에서 정보를 빼내기 전이라면 오류를 일으켰겠지만 완전한 인공지능으로 거듭난 그들은 최우선 지침을 위해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왜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케이즈락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최우선 지침인 대한민국의 기밀정보를 보호한다라는 명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아즈삭에게 협조하기로 했고 그를 위해서 적침을 보고한다는 지침을 어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케이즈락이 과도한 시스템 자원을 사용하는 이유를 거짓으로 답한 것은 자신의 최우선 지침을 보호하기 위한 아즈삭과의 계약이 더 상위의 지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어제 못올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번 편이 글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 전개할지 많은 생각이 필요했습니다.

어떻게 주인공을 망가뜨리지 않고 개연성을 갖추면서 글을 전개할까?

그저 단순 깽판물은 주인공의 행동 양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 푹 쉬면서 공상에 빠졌습죠. ㅋㅋㅋPS-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는 그저 글쟁이에 불과합니다. 글의 전개에 필요한 것이라면 공부해야죠.

그리고 지금까지 글에 적어왔던 지식은 다 밑밥입니다. 마치 전문지식이 느낌이 나는 것처럼 서술했던 부분은 좀 더 현실적인 SF 느낌이 나도록 하기 위한 장식입니다. 마치 베르나르 작가처럼요. 물론 이 글은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니라 SF와 현대 판타지를 섞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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