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정지황 회장. TK에너지를 자회사로 갖춘 TK그룹의 회장으로 라이센스를 받은 후 다른 국내 정유 회사들과 함께 거대한 석유 제조 공장을 건설한 뛰어난 경영자였다.
[강녕이고 자시고, 자네 지금 뭐하고 있나?]
“저야 다른 의원들을 만나며 국정에 대해서 상의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자네 지금 뭐하고 있냐니까!]
“아, 아니. 김 회장님.”
이정국 의원은 갑자기 터져나온 호통 소리에 당황했다.
[무슨 지랄들을 하고 있냐고!]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자네들 지금 강 박사에게 수작 부리고 있지?]
“수작이라니요. 저희는 그냥,”
[닥치게! 자네 지금 누구를 건들고 있는지 알고나 있나! 강 박사는 석유 제조 라이센스의 소유자네. 그가 심기가 불편해지면 어찌 될 것 같나? 앙!?]
“상대는 겨우 애송이입니다. 감히 국제적인 컴소시엄으로 합의된 라이센스 계약을 자기 멋대로 파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야이, 미친 새끼야! 리비아 사태 못 봤어?! 앙! 뭐? 애송이? 너네들이 지금 우리 그룹들을 망가뜨릴려고 작정을 했지?!]
“.....”
격앙된 목소리에 이정국 의원이 잠시 말을 하지 못하는 사이 감정을 추스린 정회장이 낮은 목소리로 강력하게 경고했다.
[자네들은 상대를 잘못 봤어. 그는 리비아에서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혈한일세. 그가 이런 식의 천대를 받고 대한민국에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나?]
“하, 하지만 그도 한국인입니다.”
[그가 애국심을 눈꼽만큼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예산으로 갑질 조금 했다고 미국으로 냉큼 가버리지는 않았겠지.]
“.....”
[자네는 정치인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기업들에게는 그자는 정말로 무서운 존재야. 그가 발표하는 기술 하나 하나가 기업의 존망을 좌우하네. 그러니까 내 경고는 TK그룹의 경고가 아니라 다른 모든 그룹들의 경고라는 것을 명심하게.]
전화가 끊어지고 이정국 의원은 굳은 얼굴로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일에 뜻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강현에게 국정원 출입 승인이 떨어졌다. 아즈삭D와 접촉할 수 있는 비밀 인가 역시 떨어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는 결과였다. 각 의원들 역시 대기업 회장들에게서 강력하게 경고를 받았고 기업 공화국이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는 의원들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즈삭D를 면담하고 스파이 로봇을 침투 시킨 강현은 다시 마지막 일정인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지구를 반 시계 방향으로 빙 둘러서 이동했으니 길다면 길었던 일정이다.
당연히 그가 떠나기 전에 그와 만남을 가지고 싶은 인사들은 너무나 많았다. 대기업 회장부터 정치인, 시민단체 회장까지.
그러나 강현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의 모든 접견 요청을 거절했다. 때문에 한국 기득권층에서 강현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다. 도무지 타협이 안되는 인사로 낙인 찍힌 것이다.
일정을 강행해 일본에 온 강현은 다시 일본의 아즈삭D를 교정하고 바퀴벌레 로봇을 심을 다음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쉬지도 않고 연구 일정을 재개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강현의 모습에 사람이 너무 변했다. 너무 연구에 몰두한다며 역시 약혼녀의 사망이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수군댔다.
그런 루머가 퍼지자 꿈 많은 소녀들은 상처입은 소년의 영혼을 달래주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시의 지성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비공식적인 기준을 먼저 만족해야 했다.
덕분에 힘든 과학의 길로 투신하는 여학생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는 웃기는 이야기도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그러나 강현은 흥미있는 연구거리에만 관심을 줄 뿐이었다.
그가 요즘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는 바로 아즈삭의 하드웨어 축소였다. 어떻게 하면 아즈삭의 전력 소비가 줄어들고 하드웨어의 부피를 축소할 수 있는가?
그동안 아즈삭의 크기는 확장을 거듭해 방을 거의 꽉 채울 정도였다. 거기에 발열도 엄청나서 에어컨을 풀 가동 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더 이상의 확장은 냉각 효율의 저하를 가져와 열폭주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해결책은 두가지. 하나는 아즈삭을 인터넷 회사의 데이터 센터 같은 거대한 건물로 옮겨 확장과 냉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아즈삭의 시스템을 완전히 개량하는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과거 초기 휴대폰이 나왔을 때, 모바일 기기 제조 회사들의 기술적 핵심 요소는 ‘좀 더 작게’였다.
모바일에 사용하는 전자 부품의 크기가 작아질 수록 더 많은 이점이 생기는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저전력, 저발열이었다. 물론 그외 다양한 기능들을 확장시켜 추가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니 아즈삭의 하드웨어인 뉴로칩을 좀 더 소형화 시키면 더 많은 확장이 가능했다.
강현은 이 두가지 방법중에 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아즈삭의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었다.
전력이 끊기면 백업 포인트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 그 말은 아즈삭의 본체를 이사했을 시에 지금까지 구성해 놓은 논리 연산 체계를 다시 구동해야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마치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로 재구동된 아즈삭이 원래의 아즈삭과 동일한 자아를 가지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만큼 아즈삭의 뉴로칩을 오가는 전자 신호들은 미묘하게 아즈삭의 지성과 자아를 구성하고 있었다.
강현은 고작 그런 이유로 아즈삭의 지성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기에 뉴로칩의 소형화를 꾀했으나 그리 신통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전통적인 반도체를 이용한 반도체 칩의 설계는 재료상의 난항에 부딪힌 상태였다. 재료 사용의 한계에 다달했다고나 할까? 특히 나노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자 터널링에 의한 간섭 효과는 획기적인 방법이 없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한계였다.
“흐음.. 재료를 바꾸는 수 밖에 없나?”
강현은 반도체의 성질을 가지는 여러 물질들을 떠올렸다. 그중에 가장 소형화 할 수 있는 물질들은 역시나 나노 물질이었다.
CNT, 실리콘 나노 입자, 그래핀 조각 등등, 여러 물질이 조건에 따라서 반도체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한국에서 만났던 천마륵 교수가 떠올랐다.
“퀀텀 닷이라..”
퀀텀 닷. 양자 점. 나노 구조의 가장 특징적인 물리 현상은 전자의 에너지가 준위가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양자 역학적으로 전류의 흐름을 설명 할 때에는 전자와 전자의 에너지 준위를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과정처럼 전자의 흐름을 물의 흐름에 비유하지 않는다.
전자가 다른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전자가 비어있는 전자 에너지 준위가 필요하고 전자를 그 위치로 이동시키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거시 세계에서 물질의 전자 에너지 준위는 연속적인 밴드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에너지의 간격이 무척이나 작은 무수히 많은 전자 준위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전도체의 경우에는 이 밴드에 전자가 덜 차있기 때문에 전압을 가해 전자에 에너지를 주면 전자가 쉽게 밴드의 빈 공간으로 올라가면서 전류를 형성한다.
부도체의 경우에는 전자가 꽉찬 밴드와 비어있는 밴드 사이의 에너지 차가 무척 크기 때문에 전류를 흐르게 만들기 무척 어렵고 반도체의 경우에는 전자가 꽉찬 밴드와 전자가 비어있는 밴드의 에너지 차이가 적기 때문에 특정 조건을 조절해 가며 전도성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나노 물질의 반도체적인 성질이 바로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양자 수준의 미시세계에서는 전자 준위가 불연속적이고 에너지 준위의 간격이 입자의 크기에 따라 변동하기 때문에 전자가 차있는 준위와 전자가 비어있는 준위의 에너지 차이를 조절하여 마치 반도체와 같은 밴드 에너지 차이(밴드 갭)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강현은 바로 그런 나노 입자를 이용해서 뉴로칩을 소형화할 생각을 하다가 다중 출력이 가능한 트랜지스터를 디자인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노 입자의 불연속적인 에너지 준위 구조는 전자가 여러개의 에너지 준위를 가질 수 있게 한다.
그 말은 각 에너지 준위에 전자가 올라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출력값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고 하나의 트렌지스터가 여러 개의 신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강현은 의욕에 불탔다. on-off형태의 반도체 소자가 아닌 여러 출력값을 가진 반도체 소자는 분명 아즈삭의 하드웨어 크기 축소에 크게 보탬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퀀텀 닷으로 사용할 재료로 실리콘 나노 입자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실리콘은 전자 문명 시대로 들어오며 가장 물성이 면밀하게 연구되었고 반도체 제조를 위해 전자 구조 역시 데이터가 풍부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단순 용액 처리로 나노 입자를 만들기 너무나 쉽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나노 입자는 만들기가 무척이나 쉬운 물질이다. 약간의 화학반응에 대한 지식과 그 화학반응을 조절하는 기제를 알고 있다면 온도가 농도를 조절해서 나노 입자를 쉽게 만들 수가 있다.
강현 역시 실리콘 나노 입자를 만들고 그를 이용해서 회로를 구성해 보려고 했는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노 입자의 형성 자체는 쉽지만 나노 입자의 위치 조절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트랜지터로 활용하기 위해 소스, 게이트, 드레인 전극 사이에 나노 입자를 정확하게 끼워 넣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피 대비 표면적인 극대화 되기 때문에 나노 입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전기적인 인력, 고등학교 시간에 배우는 반데르발스 힘이 작용해 엉켜 붙기 때문이었다.
이를 해결하고 고르게 나노 입자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계면활성제를 이용해 분산시키는 등 여러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일반적인 실리콘 기판을 이용한 반도체 제작방법처럼 집적회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를 해결해 보고자 연구자들은 특정 물질과 쌍으로 결합하는 화학물질을 나노 입자에 붙여 원하는 곳에 결합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나 복잡한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응용하기에는 영 마딱찮았다.
그리고 강현이 만든 실리콘 나노 입자는 그 크기가 시중에 나온 퀀텀닷 디스플레이에 비해 훨씬 작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조절하기 훨씬 어려웠다.
그래서 강현은 기존의 집적회로 기술에 이 재료를 이용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멀티 게이트 트렌지스터의 개념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평면적인 구조가 아닌 입체적인 구조가 필요했다.
강현이 구상하는 트렌지스터 소자의 구조는 이렇다. 마치 메탄의 분자 구조처럼 중앙의 탄소 자리에 나노 입자가 있고 게이트 및 드레인 소스 전극이 수소의 위치에 자리잡는 것이다.
강현은 그런 소자를 이용해 집적회로를 구성해 보려고 하니 마치 뇌세포의 복잡한 시냅스 연결이 연상되었고 그 방법을 사용할 생각을 해보았다. 나노 크기의 수십 만, 수십억의 트랜지스터 소자가 입체적으로 연결 된다?
강현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렇게 그는 본격적인 소자의 설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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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많이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