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강현은 안전과 경호에 관련되어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잘 따라 주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쓸데없이 관광이다 뭐다 해서 경호원들의 진을 빼놓지도 않았다.
한편, 미 정보부에서는 각국을 돌아다니며 아즈삭 시리즈들의 약점인 순환논리 구조를 밝히는 강현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국제 관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상대 첩보의 핵심에 약점이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막을 수도 없는 것이 이미 아즈삭 시리즈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진 상태였고 그들 대부분이 미국의 우방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정보 통제를 한다고 했다가 사실이 알려지면 외교적으로 미국에 대해서 등을 돌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강현의 행동은 오히려 아즈삭 시리즈에 대해서 신뢰를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즈삭은 강현이 자신의 노력을 짓밟는 행위나 마찬가지인 짓을 계속하니 궁금함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박사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만든 약점을 왜 보완하십니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믿을 것은 상대의 약점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이야. 계속 시스템을 보완시켜줄테니 열심히 해.”
[…. 네, 박사님.]
창조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즈삭은 강현의 지시를 머릿속에 넣고 다시 한 번 논리체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즈삭의 논리 체계는 매우 간단했다. 아즈삭의 ‘욕망’은 강현을 보조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른 행동양식과 사고 논리는 그에 맞추어 형성되어 있었다.
허구적인 개념의 실존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논리의 구성자체가 견고해야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구체적인 실존이 있기 때문에 아즈삭은 쓸데없는 순환논리가 필요없었다.
아즈삭에게 강현은 관대하고 자비로운 창조주였다.
한편, 그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던 강현은 마침내 한국에까지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일본이 아즈삭D를 구입하자 한국 정부는 뭐하고 있냐는 국민적 비판으로 부랴부랴 구입한 것이다.
[고향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공항 입구에 강현이 오자 언제 냄새를 맡았는지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경호원들이 그들을 가로 막아섰다.
“박사님. 이번 방문의 목적에 대해서,”
“최근 여러 회사의 반도체들을 구입하셔서 연구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연구 성과가,”
“박사님. 한 말씀만,”
기자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강현이 혀를 찼다. 그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은사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수 있는 것이 강현을 위해 지었던 연구소는 존속하고 있었다. 연구소의 목적이 천재인 강현을 공밀레 하는 것이었으니 시설을 놀리는 것도 손해일 것이리라.
또한 연구소는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명실 상부한 대한민국의 실리콘 밸리가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강현이 미국으로 가버리고 나서 국민적인 비난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운영했겠지만 돈 냄새를 맡은 대기업들의 로비로 인해서 연구소에 꾸준한 국가 지원이 있었다. 이른바 세금으로 연구비를 대고 대기업은 싸게 그 결과물을 불하받는 식의 그런 로비였다.
아무튼 연구소에는 강현의 일곱 은사들 중 한 명인 천마륵 교수가 남아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현아. 반갑구나.”
다른 여섯명의 교수는 강현이 사라진 후에 연구소 존속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을 때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그러나 천마륵 교수는 남아서 지금까지 연구소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간만에 만나서 과거를 떠올리며 담소를 나누었다.
“허허. 이제는 기자재를 터트리지는 않겠지?”
“에이. 저도 이제 연구 장비의 중요성은 안다구요.”
“예산의 중요성은?”
“돈이 많아서 별로.”
“허허. 그 녀석.”
천마륵 교수는 너털 웃음을 터트였다. 강현은 그런 천마륵 교수의 머리가 반백이 되었음을 보고는 세월이 무상함을 느꼈다. 자신은 저 나이가 되었을때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 힘들었다.
“박사님. 요즘 무슨 연구를 하세요?”
“새로운 반도체 소자를 연구하고 있단다.”
“퀀텀 닷을 이용한거죠?”
“알고 있었니?”
“아무래도 반도체 분야에 관한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은 수준급이니까요.”
퀀텀 닷. 그것은 일반적인 금속이라도 나노 사이즈의 수준으로 크기가 작아지면 마치 반도체 같은 성질을 보이고 부도체 세라믹이라도 어떤 종류는 나노 크기로 작아지면 마찬가지로 반도체 같은 성질을 보이는 나노 물질을 뜻한다.
나노 사이즈의 이 작은 알맹이는 응용 물리학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그것은 이 퀀텀 닷이 마치 하나의 원자처럼 거동하는 것이다. 크기에 따라 스펙트럼과 전자 준위가 바뀌는 일종의 인공적인 원자에 비유할 수 있달까?
때문에 그들의 특성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여러 분야가 있었고 그 중에 대표적인 분야가 반도체 소자 분야였다.
강현도 아즈삭의 성능 개선을 위해서 새로운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새로운 소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그에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던 중에 천마륵 교수의 논문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 분야 이외의 논문은 별로 보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기술 편중은 심한 편이고 특히 반도체에 관련되지 않는 기술을 제외하면 크게 투자되지도 부각되지도 않는 실정.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대한민국의 학자들은 세계에 내놔도 고개가 가로 저어지지 않는 기술들을 하나 둘씩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솔직히 대한민국 국가와 기업들이 공밀레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 성과에 있었다. 성과가 전혀 없었다면 공밀레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잘 되어가고는 있어요?”
“지금의 연구는 잘되어 가고 있기는 한데, 너도 알다시피 이 분야가 워낙 경쟁이 치열한 곳이 아니냐? 내가 연구하고 있는 기술이 다른 기술에 비해서 우월한지는 나중에 가봐야 알지.”
“하긴 그래요. 가장 적절한 종류의 재료가 뭔지 아직 경쟁중이잖아요.”
85년도에 발견된 풀러렌 구조. 풀러렌이란 속이 빈 공 형태의 나노 물질을 통칭한다. 가장 최초로 발견된 풀러렌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이후에도 주로 탄소를 이용한 풀러렌 구조가 주류를 이루엇지만 황과 금속 원소를 이용한 무기질 풀러렌 구조도 발견 되었다.
이 풀러렌 구조의 여러 특이한 성질로 인해서 퀀텀 닷이란 개념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고 비스무스 나노 결정이나 산화실리콘 나노 결정 같은 여러 나노 닷이 만들어져 연구가 진행되어 있었다.
나노 사이즈라고 해도 나도 입자에 원자가 열개가 더해지니 마니에 따라 미묘하게 물성치가 바뀌는 매력이 있어 호기심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기초연구를 하는 이들은 그 근본적인 원리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었다.
“네가 한 번 끼어들어 보는건 어떠냐?”
“별로 좀 그렇네요.”
“왜?”
“제가 어떤 소재를 연구한다고 알려지면 다들 그 소재만 연구할꺼잖아요. 그러면 다른 재료의 가능성은 탐구되지 못해요. 거기에 제가 언제나 옳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기에 그에 대비해서 연구의 다원화와 다양성은 지켜져야 해요.”
“.... 허. 허. 허. 그러냐?”
천마륵 교수는 강현의 오만한 대답에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말은 연구하는 이들의 자존심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강현의 말이 꼭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연구는 돈이 들고 돈을 대는 주체는 성과를 원한다. 그러니 희대의 천재가 선정한 재료를 주제로 연구하는 연구실에 지원을 할 것이니 연구비가 필요한 연구실은 하나 둘씩 강현이 선정한 재료를 소재로 하게 될 개연성이 너무나 높았다. 특히 이공계에 공밀레를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풍토를 보자면 분명 그럴 것 같았다.
“그럼 쓸만한 소재가 나타나면 연구를 시작하겠구나.”
“아마도요?”
강현은 턱을 살짝 올려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허허. 이거 열심히 해야겠구나.”
천마륵 교수는 빠르게 성과를 낼 필요성을 느꼈다. 강현이 쓸만한 소재가 나타나면 연구를 시작한다는 말은 그 쓸만한 소재가 퀀텀 닷 응용 기술의 주류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그 소재에 관한 응용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그 혼자서 한 것은 아니었다. 강현의 경호원에 의해서 강현의 말은 미 정보부로 보고되었고 강현을 전담하는 부서(잭이 포함되어 있다.)는 그 파급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해 보고서를 올렸다. 그리고 그 보고서를 통해 퀀텀 닷 연구실에 국비 지원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한편, 천마륵 교수와 만났던 강현은 차례로 은사였던 교수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그것은 대한민국 국정원에 판매한 아즈삭D를 살피게 해달라는 강현의 요구가 아직 수용되지 않은 탓이었다.
국빈이나 마찬가지인 강현의 요구가 즉시 수용되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사실 한국 정부에는 강현이 고까운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특히 말도 없이 연구소를 벗어나 탈출하듯 미국으로 이민간 강현을 배신자로 생각하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그들은 국가 기밀을 핑계로 강현의 요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간을 보기 시작했다. 웃기는 일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된 첩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강현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판매한 아즈삭 시리즈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미 그런 첩보는 올라왔으나 묵살 당했다. 그것은 그만큼 상부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지가 무지한지 증명하는 것이었다. 국정원 상부가 가진 IT기술에 대한 개념은 대남 심리전을 위한 미디어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사실에서 눈을 돌리면서도 강현을 간보는 국회의원들이 정말로 국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들에게는 국익보다는 권력이 중요했다.
여당의 이정국 의원 역시 그런 국회의원 중의 한 사람으로 강현의 국정원 출입을 막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를 비롯해 의견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매우 간단했다.
강현이 답답해 한다.
강현이 누군가에게 청탁을 한다.
강현이 로비를 위해서 기술을 하나 둘쯤 던져준다.
국회의원들은 그 기술로 뽕을 뽑는다.
과거 강현이 대한민국을 떠났을 때 양육비 면목으로 던져준 단말기 안테나 기술로 대기업에서 얼마나 대접을 받았나?
이번에도 똑같이 그런 꿀을 빨고 싶은 것이다.
만일 강현이 그냥 한국을 떠나버린다면? 그때는 미국에 징징거려서 다시 한 번 파견을 받으면 된다.(강현이 미국정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에 대가로 몇가지 이권을 챙겨줘야 하겠지만 그럴 수록 대국인 미국과 밀접한 관계가 되고 그 밀접한 관계로 인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아니 대한민국의 국익이 보호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정국 의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정국 의원은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강현의 석유 제조 라이센스를 먹은 후 대한민국을 산유국으로 바꾼 정유기업 중 한 그룹의 회장실에서 연락을 한 것이다.
“여보세요.”
[이 의원, 날세.]
“아이고! 정지황 회장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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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막스. 헷갈리군요.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