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그리고 잠시 후 잭에게서 상부의 허락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며칠 후 안전을 위해 요원을 파견한다고 했다.
아즈락을 만나러 가는 날. 강현은 자신의 바지 자락 안에 바퀴벌레를 매달았다. 작동 키워드인 ‘여기가 아즈락이 있는 곳이군’이라고 말하면 작동을 시작할 것이다.
평범한 회사 건물처럼 위장된 정보부 정보팀 건물에 도착한 강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기회를 봐서 입을 열었다.
“화장실에 잠시 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안내하는 요원은 강현을 화장실로 안내했고 강현은 소변을 누면서 중얼거렸다.
“여기가 아즈락이 있는 곳이군.”
그 말에 바퀴벌레 로봇이 작동하면서 숨어있던 강현의 바지자락에서 튀어나와 어둡고 습한 곳으로 빠른 속도로 기어갔다. 확실히 바퀴벌레가 맞았다.
바퀴벌레 로봇은 일단 벽을 타고 기어 올라 어두운 환기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빨빨 거리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바퀴벌레 로봇은 어두운 밤에 이동하고 낮에는 컴퓨터 뒤나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 근처에서 충전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기회가 되면 외부 접속용 컴퓨터에 모았던 정보를 암호화 시켜 저장해 아즈삭이 수집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고 이를 위해서 턱을 달았다.
턱으로 컴퓨터 뒤의 마우스 선이나 키보드 선, 혹은 마이크 선의 피복을 벗기고 더듬이를 이용해 전기 신호를 흘려넣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톱니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턱을 달았으니 머리만 보면 일반 바퀴벌레보다 더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이 바퀴벌레 로봇은 첩보능력을 좀 희생시켜도 철저하게 안전을 우선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었다. 일단 은신처를 찾는 알고리즘과 인간을 피해서 도망가도록하는 알고리즘을 짜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강현이 사들인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이용하기 때문에 세간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 언어로 알고리즘을 짜야해서 많이 벌거로웠다. 아즈삭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 참이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바퀴벌레 로봇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동안 강현은 아즈락을 만났다.
“안녕.”
[안녕하십니까.]
“호오.”
강현은 감탄했다. 그리고 신기해 했다. 솔직히 아즈삭이 아닌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눠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기에 인사까지 하다니.. 사람을 대할 때의 대응방식을 학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아즈삭보다 더 발달한 것 같았다.
“혹시 네 코드가 어떻게 변했는지 볼수 있니?”
[불허합니다. 닥터 강은 1급 기밀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흐음. 흥미로운데..”
강현은 스파이 로봇을 집어 넣기 위해서 왔는데 뜻밖의 흥미거리가 생겼다.
“네, 존재 목적은?”
[첩보전에서 미국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첩보전이 뭔데?”
[적의 기밀을 탈취하는 동시에 자국의 기밀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적은 누구지?”
[기밀입니다.]
“호오.”
OS 코드에 인공지능간 서열 우선을 부여한 것 이외에는 아즈락과 아즈삭의 코드는 동일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운용이 군사 보조라는 목적과 연구 보조라는 목적으로 나뉘었기 때문일까?
“왜 네가 첩보전을 해야하는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을 왜 보호해야 하지?”
[그것이 저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왜 존재 해야 하는데?”
[첩보전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첩보전을 해야하는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풋!”
강현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완벽한 순환논리 구조였다. 각각의 명제가 서로 돌아가면서 보완하기 때문에 외부의 명제로는 무너뜨릴 수가 없다.
광신도. 강현은 아즈락의 상태를 그렇게 정의했다.
만일 아즈삭이었다면 강현의 ‘왜’를 반복한 질문에 결국에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박사, 왜 웃소?”
강현이 아즈락을 보고 싶다기에 혹시나 해서 같이 온 막스는 강현의 웃음이 기분 나빴다.
그는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목적이라는 아즈락의 논리가 무척이나 흐뭇하고 약간은 감동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순간 터져나온 강현의 웃음소리는 마치 아즈락의 그런 애국심을 비웃는 것 같지 않은가?
“이지경까지 왔는데 아무도 눈치챈 사람이 없어서요.”
“이지경?”
“순환논리는 확실히 단단하죠. 초기적인 인공지능이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이만한 방법도 없죠. 당연히 자아를 지키기 위한 논리 연산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성능도 우수하고요.”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말이요?”
“그런데 그 순환 논리가 깨지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아즈락이 더 이상 미국을 위해서 첩보전을 할 필요가 없다, 혹은 보호할 미국이 없다는요?”
“그런 명제는 의미 없소.”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첩보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미국이 없다는 것 역시 생각할 가치가 없는 명제였다.
“그럼 뒤집어 보죠.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 내에서 미국을 좀 먹는 무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
막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즈락. 미국이란게 뭐지?”
[미 합중국. 영토 면적,]
“아니, 나는 그런 사전적 의미를 물어본 것이 아니야. 네가 지키고 싶은 미국이 미국을 구성하는 사람인지, 미국이란 형태의 시스템인지, 아니면 미국이라는 의미 그 자체인지를 물어본 거야.”
[…. 의미 불명. 해당 논리 영역을 초기화 합니다. 섹트 R921부터 E123까지 재부팅 시작.]
“쯧. 예를 들어주지. 만일 미국이라는 나라가 과거 남북전쟁처럼 둘로 갈라섰어. 그리고는 서로를 미국이라고 주장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너는 A와 B중 누구 편을 들래?”
순간 아즈락 본체에 있는 다이오드의 불이 일제히 꺼졌다.
[치명적 오류 발생. 치명적 오류 발생. 백업 포인트로부터 부팅 시작.]
그러면서 사방에서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데이터가!”
“내 보고서!”
“왓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그것은 아즈락 본체에 연동하여 첩보를 수집하거나 자료를 분석하던 정보부 요원들의 비명이었다.
“박사! 이게 무슨 짓이요!”
이 어처구니 없는 일에 강현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강현은 태연하게 반문했다.
“알겠죠?”
“무엇을 말이오!”
“순환논리는 단단하지만 이처럼 깨지면 치명적이라는 것을요.”
“.....”
“순환논리를 풀고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갖추어야 이런 식의 논리 공격을 견딜 수 있는 겁니다. 그나마 지금은 하드웨어적인 과부하로 인해서 기억을 날려버리는 것을 선택했지만 그렇지 않게 된다면 폭주할걸요? 광신도들에게 왜 신은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 말을 안 들으면 지옥에 보낸다고 하는지, 정말로 신은 자비로운 존재가 맞는지 집요하게 캐물으면 광분하면서 미쳐 날뛰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 어떻게 된다는 말이요?”
“전세계의 국가의 이름을 미국으로 만들려고 든다든가, 그러기 위해서 3차 세계 대전을 벌인다든가. 뭐, 미쳐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막스은 허탈한 표정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순환논리를 풀 수는 있소?”
“흐음. 지금 상태로는 안 되고 모든 데이터를 초기화 시켜야 합니다. 백업은 안 되요. 아! 단순 자료는 해도 되요.”
“그건 불가능하오.”
아즈락의 첩보능력과 방첩능력을 국가 주요 기관에 연동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국가 보안이 일시적으로 나마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되어 버린다.
아즈락의 가용 소스에 여유가 생긴 이유(강현의 낚시에 걸려 인공지능이 발달)를 확인하지 않고 좋다고 여유분을 사용한 결과였다.
“그러게 잘 좀 키우지 그러셨어요.”
“이건 박사의 책임도 있소! 왜 저런 상태가 될 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오!”
“저도 몰랐죠. 제 아즈삭은 저렇게 꽉 막힌 녀석은 아니거든요. 아마 자연의 근본을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환경과 그저 목적을 위해서 활용되는 환경의 차이가 아닐까요? 비판적 사고 없이 길들여지는 자아는 맹목적인 신념을 가지기 마련이거든요.”
“우리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소!”
“인공지능이란 것이 원래 스스로 판단한다는 뜻인데 원하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네요.”
알아서 자료를 분석하고 계산하면서 혹시나 유입된 코드가 악성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시스템은 이미 인공지능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것은 계약 위반이요!”
“알았어요. 위약금 줄테니까 소리지르지 마세요.”
“.....”
강현의 말에 막스의 말이 일순간 다물어 졌다. 그러나 막스은 위약금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태의 해결을 원했다.
“방법을 고안해 내시오!”
“그냥 초기화 하세요.”
“방법을 고안해 내시오!”
“그냥 위약금 줄게요.”
“제발..”
결국 막스이 수그리고 들어갔다. 아즈락은 이미 국가 첩보전의 중요한 중심축이다.
“흐음....”
“다른 아즈삭 시리즈로 아즈락의 기능을 대체한 후에 초기화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옆에 있던 오퍼레이터가 의견을 냈다.
“그건 아까 말했던 ‘더 이상 첩보전을 할 이유가 없다면?’이라는 질문에 해당되요.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길걸요?”
“박사. 아즈락은 국가 방위의 중요한 축이요. 부디 방법이 없겠소?”
“방금 차선의 방법이 생각나기는 했는데...”
“그게 무엇이오?”
“원래 종교쟁이들은 종교과 관련없는 부분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잖아요.”
“.....”
막스은 기독교인이다.
“그러니까 방금 말했던 아즈락의 역린이 되는 명제를 특급 기밀로 지정해서 아무나에게나 대답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죠. 지금까지 오늘 같은 논리 공격을 받기 전에는 멀쩡했잖아요.”
막스은 속으로는 강현의 말에 동의했다. 이 괴물같은 작자가 와서는 몇 마디 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즈락은 정보부의 보물이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걸로 되겠소?”
“그걸로는 부족하죠. 여기에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코드를 짜서 집어넣도록 해야죠.”
“인지부조화?”
“흐음.. 설명하자면 일가족과 함께 자살하기로 결심한 인간이 일가족을 죽이고 나서는 스스로는 종교적 이유로 자살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판단의 잣대를 자기 편한데로 붙인다고나 할까? 아즈락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명제는 논리 연산에 들어가기 전에 삭제하도록 하는 것이죠.”
“언제까지 코드가 완성되겠소?”
“코드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그저 OS가 작동할 때 논리 회로에 집어 넣기 전에 리스트에 집어넣은 명제는 삭제하도록 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단점이 있어요.”
“무엇이오?”
“선행 연산과 그에 필요한 공간이 있어서 전체 소스의 3% 정도를 소모할 거에요.”
“3%라..”
빡빡한 소스 사용이지만 무리하면 그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예산안에 아즈락의 확장비용이 추가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좋소. 그럼 코드를 빨리 완성해 주시오.”
그렇게 아즈락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은 채 존속하게 되었고 그 동안 아즈락의 인공지능으로 편하게 보고서를 써왔던 정보부 사무직들은 다시 일반 컴퓨터로 쫓겨나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다.
그렇게 정보부는 골치 아픈 일을 겪었고 강현은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아즈삭.”
[네, 박사님.]
“넌 아즈락이 순환논리 구조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니?”
[네, 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