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강현은 강철의 종류를 뒤적거리다가 고용 강화를 주로 이용한 강철을 선택했다. 고용 강화란 용질 금속을 이용해 철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인데 이 외에 결정립 강화, 가공 경화, 석출물 강화의 방법도 있다.
대부분의 금속 재료는 다결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결정의 크기가 작아질 수록 단단해 진다. 하지만 작은 금속 분말을 이용한 소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결정립의 크기는 정해져 있어서 이 방법은 패스.
가공 경화의 경우는 가공에 따라 금속 내부에 생성되는 결함이 금속 원자들의 이동을 방해하는 원리는 이용한 것인데 강현이 설계한 복합재는 탄소 나노 튜브의 네트워크 구조가 강도의 핵심이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었다.
석출물 경화는 열처리로 석출물을 강철 내부에 분산시켜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건축물이나 구조용 재료에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나 소결법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재료였다. 왜냐면 석출경화는 비교적 큰 결정립을 가진 재료에서 결정 내부에 석출물이 있어야 석출 경화가 의미가 있는데 이미 소결에서는 분말이라는 형태로 결정립의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석출물이 강도 증가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석출 경화를 위해 결정립 내부에 석출물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영어로 Dislocation line, 한글로 전위라고 불리는 물질 이동이 결정 내부에서 일어나며 이것을 석출물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고용 강화나 가공 경화 역시 동일한 방법을 사용한다.)강현은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족할 만한 물성을 가진 강철을 선택하고는 이번에는 생산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탄소 나노 튜브의 종류는 MWCNT, 그리고 SWCNT가 있는데 MWCNT는 다중벽 탄소 나노 튜브의 약자고 SWCNT는 단일벽 탄소 나노 튜브의 약자였다.
이 둘 중에 강현은 MWCNT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SWCNT로는 사슬형 연결은 가능해도 네트워크형 연결은 어렵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MWCNT는 SWCNT보다 월등히 싸다는 이점이 있었다. 물론 돈 많은 강현이지만 굳이 돈을 쓸 필요가 없는데 돈을 쓸 생각은 없었다.
강현은 MWCNT를 일단 산화 처리해서 CNT 표면을 살짝 깍아냈다. 이는 겹쳐진 CNT의 안쪽 길이와 바깥쪽 길이를 다르게 해서 한 가닥의 CNT에 여러가닥의 CNT를 붙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CNT의 탄소들은 끝에 결합이 완전하지 못한 탄소를 제외하면 대부분 안정한 상태라 반응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그렇게 산화 처리한 CNT를 씻고 걸러서 말리고는 용기에 철 분말과 일정 비율로 넣었다. 넣는 비율은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이거다 싶은 것으로 정했다.
거기에 다시 철 구슬을 넣고 질소가스를 불어 넣은 다음에 용기의 뚜껑을 닫았다. 철 구슬은 불규칙한 움직임과 전자기적인 인력으로 인해서 엉겨붙은 입자들을 때어내기 위해서 넣는 것이었고 질소 가스는 섞는 와중에 철 분말이 산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넣는 것이었다.
강현은 그 혼합재가 든 용기를 기계에 넣고 작동 시켰다. 모터가 돌아가면서 일정한 속도로 용기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아마 안에서는 쇠구슬들이 원심력으로 용기 안을 회전하며 CNT분말과 철 분말을 잘 섞을 것이다.
강현은 분말들이 잘 섞이도록 대략 하루 쯤 그 상태로 두고는 주변을 살폈다.
“아즈삭. 첩보는 아직인가?”
[미인계가 발동되고 있습니다.]
“저번에 말했던 그거?”
[네.]
짝을 잃은 강현. 그런 강현을 원하는 국가와 여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를 좋아하고 평생을 같이할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앗다.
국가들은 강현이 연구만 하는 바보(Nerd)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미인계를 위한 인재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쯧.”
강현은 혀를 찼다. 어떤 여자를 대령해도 제시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번에 참가하진 프로젝트에 신시아라는 여류 과학자를 집어 넣었습니다.]
“프로필 보여줘봐.”
강현의 명령에 아즈삭은 신시아의 프로필을 띄었다.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지만 아즈삭은 그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법 준수라는 개념은 없었다. 물론 그 개인정보 역시 정보부에서 수집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이는 21살. 나와 동갑이군.”
강현은 적발 벽안의 미녀를 보고는 감상을 내뱉었다. 초롱초롱한 눈빛, 열정이 넘치는 모습을 찍은 장거리 도촬 사진이었다.
금발 벽안이었던 제시. 똑같은 벽안이었지만 신시아의 눈동자에서 제시를 연상하는 일은 없었다. 제시가 에메랄드에 가까운 청색이었다면 신시아는 녹색에 가까웠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자신은 정보부에서 자신을 미인계 인재로 선발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
[아마 박사님이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연스런 만남을 이루게 끔 하려고 하는 것이겠죠.]
강현의 생각과 아즈삭의 추천은 동일했다.
“아아, 그렇겠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려고 했던 것도 그 만남을 위해서인가?”
[그에 대한 첩보는 아직 없습니다. 아즈락과의 연계가 아직은 미흡합니다.]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지.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강현은 다시 신시아의 얼굴을 보았다. 분명히 미녀였다. 하지만 미 정보부의 의도를 모르고 만났더라도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일을 없을 것이 분명했다. 왜냐면 자신은 제시를 영원히 기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가 미 정보부의 의도를 알게 되었으니.. 신시아와의 관계는 피상적인 동료 이상을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강현은 각국의 아즈삭 시리즈에서 자신에 대한 첩보가 없는지 확인하고 하룻 밤 푹 쉬었다. 그리고 다음날 혼합 장치에서 혼합물을 꺼냈다. 이제 소결을 할 차례였다.
강현은 소결용 용기에 혼합물을 조심스럽게 쏟아넣고 유압장치를 가동했다. 피스톤이 푸욱 들어가며 혼합물을 압착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다시 기계를 조작해 소결을 시작했다.
소결의 또 하나의 단점은 바로 시간이었다. 일반 공정 라인에서 쑤컹쑤컹 철판을 재단하는 것처럼 생산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현은 한나절이 넘게 걸리는 소결 작업후에 두깨 0.5센티, 직경 5센티의 철판을 획득했다.
그는 절삭 머신으로 한쪽 끝에서 작은 조각 두개를 잘라낸 다음 인장강도 실험과 미세구조를 보기위한 시편을 제작했다.
그러나 실험 후 얻은 물성치가 시뮬레이션으로 얻은 물성치의 반도 되지 않았다.
“흐음.. 네트워크 구조가 제대로 안 만들어졌나 보군.”
강현은 고민 끝에 다시 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섞는 과정에서 일정량의 산소를 불어넣어 철이 약간 산화되도록 했다. 탄소 나노 튜브는 산화철을 촉매로 자라기 때문에 산화철로 각 CNT의 접촉 부위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도였다.
[항복 강도 684MPa, 인장 강도 1542MPa, 연신율 24% 입니다.]
“나쁘지는 않네.”
강현은 만족하고 다시 시험용 방탄 철판을 제작했다. 두께는 1센티 직경은 15센티였다.
“할렌? 지금 개발한 방탄 철판이 있는데 시험해 보세요.”
[네? 벌써요?]
경악한 할렌은 특급 배달을 이용해 물건을 받았다. 그리고는 권총부터 시작해 소총, 대구경 소총, 그리고는 12미리 대물 저격총까지 차례로 시험했다.
“WHAT THE FUCK!”
그러면서 뒤로 가면 갈수록 경악하고 말았다. 권총탄에는 흠집만 나고 소총에서는 찰흙을 손가락으로 살짝 누른 듯한 자국이 나더니 결국에는 대물 저격총을 맞고서야 뚫리고 만 것이다.
할렌은 이런 장갑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겠다는 말을 듣고 이제 4개월이 지난 거지?”
정신이 아연할 정도였다. 이 세상의 연구자들은 도대체 뭘한 것인가? 상상을 초월한 개발 속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강현의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직감과 아즈삭의 초고성능 시뮬레이션의 합작 덕분이었다. 아즈삭의 도움이 없었다면 강현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무튼 할렌은 결과를 강현에게 전달했다.
“흐음. 대물 저격총에는 뚫린다. 이 말이죠?”
[네.]
“그럼 다시 샘플을 만들어 보낼게요.”
그리고는 아즈삭을 시켜서 대물 저격총의 총탄을 막을 수 있는 두께를 구했다. 그 두께는 약 2.5 센티 정도. 90미터 거리에서 대물 저격총용 탄약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 4.5 센티의 강판이 필요하고 그에 비교하면 강현이 만든 철판은 엄청나게 성능이 향상된 것이다.
“그래도 좀 두껍지?”
[시뮬레이션 이론치대로라면 2센티 이내로 줄일 수 있습니다.]
강현은 아즈삭의 말에 새롭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다. 소결시에 탄소 나노 튜브의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산화철 농도와 온도 압력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다시 일주일 쯤 후에 정확히 두께 1.8센티의 철판을 다시 할렌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3발의 대물 저격총을 막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12미리 대물 저격총은 탄종이 일반 12미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탄환도 더 단단하고 장약도 더 많다. 대물 저격총이라는 의미는 사람이 아닌 적의 위협 장비를 노리는 총이라는 의미고 장갑차 정도는 그냥 뚫어버리는 물건이다.
“......”
그런데 그 탄환을 막았다. 고작 1.8센티로.... 그 엄청난 성능에 할렌은 할 말을 잃었다.
강현의 초기 샘플의 성능을 보고받은 국방부에는 이 새로운 신형 장갑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이 장갑이 있다면 탱크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여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할렌의 새로운 보고를 받고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것은 무기의 혁명이다!
그러나 그들은 강현의 말을 듣고 실망했다. 소결법으로 만든 방탄 장갑이란다. 그 말은 대량 생산하는데 설비가 무척이나 많이 들고 생산단가 역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패널을 만들어 붙이면 되니까. 패널 사이의 접합면이 걱정되면 벽돌 쌓듯 지그재그로 겹쳐 쌓으면 되니까.
그보다도 그들은 이 신형 방탄 철판을 국가 기밀로 만들고 싶었다.
“왜요?”
“그것이 미국의 국익이니까요. 손해는 반드시 벌충해 드리겠습니다.”
“뭐, 마음대로 하세요.”
강현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빨리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희생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라 국가적으로 보상을 해준다고 하지 않는가?
강현이 신형 장갑을 만들고 그 스펙이 알려지자 프로젝트의 설계팀은 환호성을 질렀다. 도무지 수트의 크기를 줄이면서 출력을 늘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일시에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 중 몇 명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준 강현을 한 번쯤 만나고 싶었기에 상부에 휴가를 요청했다. 그랬더니 상부에는 오히려 단체 휴가로 강현을 만나러 가도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모빌 슈트 계획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부족한 완력을 보조해 주기 위한 스켈레톤 아머 계획이 그것이었다.
신체의 동작에 동조하는 프로그램도 거의다 짜여져 있었다. 단지 필요한 것은 출력과 튼튼한 장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현의 인공 근육과 방탄 장갑으로 그것이 일시에 해결이 되었으니 완성은 시간 문제였고 마침 강현이 미국과 더 깊은 관계가 되어주기를 바란 상부에서는 그에게 호감이 있는 인원들을 프로젝트란 핑계로 만나게 하고 싶었다. 집에 혼자 있는 고양이보다 친구가 있는 고양이가 가출할 확률이 더 적은 것이다.
“박사님, 만나서 반가워요.”
“박사님.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