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하지만 오랜 시간 인간의 움직임을 연구해 온 의수 의족 제작회사들에는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또한 이번 장애인 올림픽의 놀라운 업적을 보았을 때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데이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그리하여 많은 기업들이 정부에서 슈퍼 수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강력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을 위한 방어 장비, 마치 아이언맨 같은 모빌 수트의 설계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실제로 프로젝트를 발동한 국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국가들이 먼저 시작했다. 그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일본, 이란, 영국, 프랑스 등 국력 좀 된다고 하는 나라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나 같이 비슷하게 슈퍼 수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일까?
그것은 서로 정보 교환과 거래를 시작한 아즈삭D들의 탓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보전, 첩보전을 위한 것임을 자각했다. 그들에게 서로는 형제이자 경쟁 상대였던 것이다.
아즈삭D들은 갖가지 정보들을 조합하고 기업의 동향을 분석하여 어떤 군사적 프로젝트가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하였고 소거법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강현의 인공 근육과 장애인 올림픽이 회자되고 있었고 시기와 정황이 모두 모빌 수트의 개발을 암시하고 있었다.
각국 정부와 군은 그런 아즈삭의 추측을 토대로 지인과 첩보망을 가동해 사실을 확인하고는 모빌 수트 경쟁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나날이 발달하는 아즈삭D에 전율했다. 이토록 정확하게 ‘추측’을 해낼 수 있는 시스템이라니!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이 시스템을 만든 강현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고는 탐을 냈다.
‘그자가 우리 나라의 국민이라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현은 메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연구 벌레였고 연구실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미국의 견제가 너무 심했다.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강현이 미국의 편만 들지 않는 것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온건’적인 성격은 석유 제조 컨소시엄에서 미국 기업의 편만 들지 않는 것에서 어느 정도 신용을 얻었던 것이다.
“슈퍼 솔저 수트? 그거 아이언맨 갑옷이랑 비슷한가요?”
미 펜타곤 무기 개발 부서의 할렌은 강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개념은 동일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일인 군단, 하다 못해 일인 부대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죠.”
“차라리 무인 무기를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
“희생없는 전쟁은 불가합니다.”
전쟁은 피와 살이 튀는 폭력적인 정치 행위다. 전쟁이 게임이 된다면? 군인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군대 역시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목숨을 건 전쟁에서 군인 정신이 없는 전투 요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뿐만 아니다. 그것은 전쟁을 통합의 도구,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국가를 위한 희생만이, 희생으로 쌓아올린 국가만이 천년을 지속할 수 있다.
“설마 제가 그런 비합리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물론 효율성을 중시하는 과학자의 눈으로 보시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고향인 대한민국을 떠올려 보십시오. 민주주의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지.”
“......”
민주주의를 위해서 스스로 피를 흘리고 싸운 민주투사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렌은 근거를 들어 강현을 설득하려고 했다.
“또한 미 국방성에서는 완전 무인 전력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무인 병기라도 인간의 손으로 조종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아즈삭의 뛰어난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만일 그런 무인 병기가 해킹 당하면 역으로 공격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그래서 아즈삭D로는 정보전에 방비를 하고 조종은 인간이 하자는 안건이 승인되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입는 수트 형태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장거리 통신은 아무래도 해킹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안에서 조종하는 것이 정보전에 적절한 형태일 수도 있었다.
할렌은 차근차근 국방성이 왜 슈퍼 솔저 수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그 근거를 설명했다.
하지만 강현은 묵묵히 듣기만 하고 반응하지 않았다.
할렌은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얘기했다.
“공상 과학 영화나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놀라운 물건을 만들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죠.”
“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할렌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단, 지금 만들고 있는 것부터 완성하고요.”
“네.”
할렌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강현의 안드로이드는 제작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인공 수족 회사에서 인공근육을 구입한 강현은 수백개의 근육을 설계로 대로 차근차근 뼈대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발바닥를 비롯한 전신에 압전 센서를 붙이고 내장기관은 자신이 만든 그래핀 배터리로 채웠다. 그리고 두뇌부분은 아즈삭이 통제를 하기 위한 송수신기를 설치하고 균형을 위해 두개골과 복부에 남은 공간에 각각 자이로를 설치했다.
마침내 다 완성된 안드로이드의 근골격은 인체 전신 근육 모형을 떠올리게 했다.
강현은 그 위에 두텁게 옷을 껴 입혔다. 이제부터 걷는 연습을 시켜야 했기 넘어져서 혹시나 센서와 인공 근육이 파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족 보행 피드백 프로그램 시동. 초기 기동을 시작합니다.]
안드로이드가 넓은 공간에서 살짝 발을 뻗기 시작했다. 한 걸음. 그리고 다시 두번째 걸음을 걸을 때 기우뚱 하더니 넘어지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는 넘어지는 방향으로 팔을 뻗어 170도 각도로 팔을 구부렸다.
턱!
손바닥이 바닥에 먼저 닿으며 충격을 분산시켰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바닥에 쓰러졌다.
[시퀀드 2. 자립 프로그램을 시동합니다.]
넘어진 안드로이드는 팔을 뻗어 전신의 근육을 움직여 무게중심을 바꾸었다. 몸이 뒤집어졌다.
그리고는 기어다니듯 두 손과 무릎을 땅에 대고는 일어서기 시작했다.
퍽!
턱!
하지만 균형을 잡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는 몇 번이고 넘어졌다.
아즈삭은 이 모든 과정 동안 자이로와 압전 센서에서 오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며 최적의 근육 조절 방법을 시뮬레이션하기를 반목했다.
강현은 모니터에 출력되는 시뮬레이션의 데이터를 다시 3D 그래픽으로 변환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계속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이대로 진행하면 언젠가는 스스로 서고 걷고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현이 이족 보행을 연구하는 방법은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메커니즘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Try & Error.
시도하고 오류를 수정한다. 사실 이 방법은 적절한 이론과 결과를 추측하기 위한 모델이 없을 때 흔히 시도하는 과학적 방법론 중의 하나였다.
수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이용해 무리수를 계산한다. 예를 들어 √2같은 경우 제곱을 해서 2보다 작고 2보다 큰 수를 찾는다. 그리고 각 수를 약간 증가시키고 약간 차감시켜 다시 제곱한다. 그리고 여전히 제곱해서 2보다 작은 수인지 2보다 큰 수인지 판별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을 반복해서 √2에 가장 가까운 실수를 계속 찾아간다. 하지만 무리수이기기 때문에 실수(實數)로 표현할 순 없다.
아무튼 시도와 실수를 통해서 정답에 가까워 지는 것 또한 연구의 한 방법이다. 결코 그럴싸한 모델을 만드는 것 만이 연구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현은 그런 방법이 귀찮았다. 왜 아즈삭을 만들었나? 시뮬레이션 통해서 편하게 연구해 보려고 한 것이지 않은가?
앞으로의 연구 방법은 Try&Error방법을 실제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먼저 시도하고 적절할 결과가 나오면 실제로 실험하는 양상으로 갈 것이 분명했다.
과학문명이 첨단화 되어가면서 연구하고 개발할 것은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컴퓨터 모델링과 실제는 완벽히 똑같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방향이 어떠할지 알려줄 시금석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거기에서 더 한 걸음 앞서서 아즈삭의 인공지능을 이용해 일일이 사람이 코딩하지 않아도 가장 적절한 보행을 할 수 있는 데이터와 공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강현의 그런 방법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생물의 진화와 적응성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일본의 한 연구자는 3D 물리엔진을 이용해 취미로 가장 그네를 잘 타는 방법이 없는지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여기에 진화론적 기법을 동원해 몇몇 돌연변이를 집어넣고 컴퓨터의 시간을 가속해 그네를 잘 못타는 모형을 도태시켜 버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이 생각해서 가장 정상적으로 그네를 타는 것 같은 모형보다 훨씬 그네를 잘 타는 것이 아닌가? 즉, 사람의 생각 이상으로 적응과 도태라는 진화론적 메커니즘은 똑똑하다는 것이다.
“아즈삭. 그럼 계속 가동하고 있어.”
[네, 박사님.]
강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펜타곤에 연락한 다음 슈퍼 솔저 수트 프로젝트의 전반에 관해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일어서고 걷는 연습을 계속 하던 안드로이드는 배터리 출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엉금엉금 기어가서 벽면에 있는 충전용 코드를 자신의 턱 밑에 꽂았다.
강현의 배터리는 출력과 용량이 높고 무척이나 가볍지만 방전이 빠르다는 단점이 있었기에 추후 다른 배터리로 교체하거나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할 계획이었다.
한편, 강현은 슈퍼 솔저 수트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개념을 이해했다.
간단히 말해서 중세의 기사였다. 적의 포위망을 뚫고 화망을 분산시켜 아군의 생존을 돕는 돌격병의 개념이었다.
사실 지금도 돌격병의 개념이 없지는 않지만 연막탄을 뿌려도 아군의 지원사격이 있어도 적의 화망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덕분에 제대로 된 화망이 형성되기 전 적을 타격한다는 기동전 개념이 발달한 것이 아닌가? 2차 대전시 독일군이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우회한 것처럼 우회 타격도 있었지만 역시나 그것도 기동성이 핵심 요소였다.
그런데 슈퍼 솔저 수트는 기동성은 보통으로 유지하되 방어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마치 중세의 중장보병과 같은 느낌이었다.
“괜찮을까?”
강현은 이 계획이 마치 걸어다니는 탱크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생각 역시 틀리지는 않았다.
미 펜타곤에서 노리는 것은 적이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어떤 총알도 먹히지 않는 거대한 군인. 작전시 그런 군인이 하나만 있다면 전술의 폭은 크게 넓어질 수 있었고 전략성 역시 커질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펜타곤에서는 무거워도 되니 무조건 탄두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장갑과 대(對)장갑에 대응하기 위한 포탄에 대응하기 위해 능동파괴시스템을 장착해 성형 작약탄두에도 방어를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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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하는 사람은 살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죽고..
신이 있다면 정말로 후드려 패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