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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32화 (32/241)

32화

“절대로 잊을 생각없어.”

“강하구나.”

“강한 게 아니야. 각오했을 뿐이지.”

“각오?”

“세상은 잔혹하고 소중한 것은 언제든 잃을 수 있다는 각오.”

강현의 말에 잭의 표정이 알 수 없게 변했다. 그것은 연민인 것인지 골치가 아프다는 건지, 아니면 미안하다는 얼굴인지 좀 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글쎄.. 평가란 주관적인 것이니까.”

잭은 더 이상 그에 관한 것은 말하지 않고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연구 환경은 어떻냐 찾아오는 바이어들은 많으냐 따위의 평이한 이야기.

잭은 강현과의 만남을 끝내고 나오면서 강현이 걱정되었다. 세상이 싫어서 연구실에만 파묻히는 것이 아닐까?

상부에서는 강현이 그래준다면 무척이나 고마울 것이다. 아직 석유 업계에 지진을 일으킨 사건만 해도 새로이 변화한 역학관계를 파악하느라 정보부에서는 머리가 깨질 정도였다.

그러나 잭 개인적으로는 강현이 좀 더 세상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행복을 만끽했으면 했다. 사랑을 잃은 상실감은 사랑이 아니면 채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시를 잃은 텅 빈 자리를 과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채울 수 있을까?’

잭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각오를 들으니 그가 망가질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다른 곳에 갈 걱정 없이 연구실에만 박혀있을 것이 분명하니 미국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오히려 이렇게 잘 굴러 가는 것이 불안했다.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하지만 잭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부에서는 지금 강현의 상황이 자신들에게 매우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제시가 없으니 미인계 작전을 다시 한 번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그런 그들의 계획이 단지 의견 단계에 있을때 강현은 아즈삭 시리즈들과 아즈삭과의 연락망을 갖추고 자신과 관련된 모든 첩보를 입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첩보 조직들이 자신을 프로메테우스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 인류에게 문명을 가져다준 존재. 하지만 영원히 간이 쪼이는 형벌을 받은 존재. 강현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두 번이나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고 덕분에 절절하게 실감되는 별명이었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은가? 단지 남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런 잔혹한 운명을 맞게 되다니 말이다.

강현은 첩보를 찬찬히 훑어보면서 인공 근육의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연구를 하던 중 기존의 탄소 나노 튜브에 이온을 붙였던 방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반복 작동 중에 이온이 확산을 해서 출력이 떨어지고 전기 환원 작용이 일어나 석출물이 발생하여 마찰 저항이 증가해 반응 속도가 무척 떨어졌던 것이다.

강현은 이온의 확산과 석출을 줄이기 위해서 탄소 나노 튜브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탄소 나노튜브에 이온을 붙일 적절한 방법을 생각해 낸 결과 역시나 단백질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발상을 했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철 이온은 단단히 붙잡는 것과 같이 단백질의 구조가 이온을 흡착하기에 매우 유리하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그리하여 혈액에서 헤모글로빈을 추출해 몇 가지 효소처리를 하고는 긴 가지 모양의 사슬 구조를 가진 폴리머에 결합했다. 펩티드 결합을 가진 이 폴리머는 탄소 나노 튜브 위에서 자기 조립 성질이 발휘되어 탄소 나노 튜브를 감싸게 되었고 탄소 나노 튜브의 내구성과 함께 단백질 막으로 인해 출력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동일 단면적 대비 평균 인간 남성의 근육보다 1.5배의 힘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실제 사용시에는 내구성과 사용 피로를 고려해 1.3배 정도의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정도로도 안드로이드를 만들기에는 넘치도록 충분했다.

강현은 표준 성인 남성의 근육 모형을 토대로 수백가지의 근육을 만들기 시작하지 않았다. 뭣하러 귀찮게 그것을 일일이 자신의 손으로 만드냐 말인가?

그는 자신의 인공 근육을 발표하였고 자신의 생각대로 인공 근육에 대한 수요는 넘치도록 많았다. 특히 의수 의족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곳에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 동안 문제가 되어 왔었던 인공 근육의 반응 속도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바이오 시밀러라고 근육의 산도를 조절하여 수축을 조절하려는 연구를 비롯해 생물의 근육을 그대로 재현해 보려는 공학적인 시도가 있었지만 실제 근육과 닮으면서 그 정도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역시나 세포 단위에서의 설계가 필요했다. 현재의 미세가공 및 조립기술의 한계를 생각해 보았을 때 불가능한 일인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는데 줄기세포의 분화를 통해 인공적인 팔을 만드는 연구도 그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포외기질이라는 혁신적인 물질을 발견하였다. 이 물질은 신체의 재생을 도와주는 물질로 원래 이 물질은 경주마의 인대 치료제였다. 그러나 돼지의 콩팥을 갈아 세포외기질만 분리하여 사람의 절단된 손가락을 몇 주에 걸쳐 뼈까지 완벽히 재생한 예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단 부상을 입은 초기에나 적용이 가능한 물질이고 재생 한계가 있어 심각한 부상이나 이미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 혹은 선천적인 기형을 앓은 사람들에게는 의수, 의족이 더 확실한 해결 방법이었다.

강현의 인공 근육은 정상적인 생활을 원하는 이들에게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미 수술을 통해 신경 신호를 전기 신호로 증폭, 전환하는 기술은 이미 나와있었으니 강현의 인공 근육을 적용만 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강현은 의수 의족용 인공 근육의 생산에는 라이센스 비용을 받지 않았는데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싼 가격에 이 신형 의수 의족이 판매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호의를 이용해 좀 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그런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아마 불구가 된 이들을 상대로 일을 하다보니 마음이 정화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동화 작용을 일으키는 사회적 동물이고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호의가 생겼을 수도 있다.

물론 동화 작용 대신 상대방에 대한 경멸과 자기 우월감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장애인을 상대하는 업무를 지속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속사정은 조금 달랐다. 사람에게 욕심은 본질적인 요소다. 욕심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을 때 마음껏 욕심을 부리는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가치에 욕심을 부리는지는 그때가 되어 봐야 안다.

강현은 라이센스의 무료 제공을 결정할 때 이런 말을 했다.

‘당신 회사의 기업 목표를 믿습니다.’

의수와 의족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의 기업 목표는 뭘까? 봉사일까 아니면 이윤일까? 강현은 전자를 생각하고 말했지만 욕심많은 이들은 그의 말을 경고로 해석했다. 상대는 세계 에너지 업계를 주름잡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강현의 심기를 감히 거스를 담량을 지닌 경영자는 없었던 것이다.

“닥터 강. 카다피가 처리 되었습니다.”

“......”

강현은 말이 없었다. 리비아에서 새로이 파견된 주미 리비아 대사 라불은 식은 땀을 흘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다. 리비아는 내전으로 많이 피폐해졌다. 땅을 메말랐고 석유는 팔리지 않아 필수품을 수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식량이야 겨우 국제 지원을 받아 배급하고 있는 열악한 현실이었다.

그런 리비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강현의 석유 제조 라이센스를 받아 어떻게든 다시 석유 시장에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잠시의 침묵. 긴장했던 라불은 강현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과거 1차 협상 시기의 생산량에 맞추어서 드리지요.”

“아! 감사합니다!”

라불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라불은 강현이 싫었다. 왜냐면 그가 결국 리비아 내전을 촉발시켜 무수히 많은 희생을 만든 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현의 모습이.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지도자를 택한 국민들의 운명이라는 그의 논리가.

사실 라불은 이렇게 쉽게 라이센스를 허락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몇 번은 찾아와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왜냐면 강현은 리비아에 아무런 아쉬움이 없기 때문이었다. 리비아가 과거의 국력을 찾아도 강현을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강현은 약간의 사색 끝에 너무나 쉽게 허락을 해주었다. 이유가 뭘까?

강현은 일관성을 좋아한다. 그것은 과학이 언제나 동일한 과정 동일한 결과를 추구하기 때문이었다.

일관성이라는 맥락에서 강현은 리비아에 라이센스를 허락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록팰러가의 스탠다드 오일과도 그렇게 관계를 맺었는데 카다피가 죽은 리비아와 안 될 것은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단지 그가 사색을 한 것은 국제 유가 시장에 올 영향이 어떠할 지 가늠해 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크게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석유는 더 이상 유한한 자원이 아니었고 레드 솔라 셀이라는 재생 에너지와 경쟁해야 했기에 가격은 더욱 내려갔다. 덕분에 제3세계에서 수요가 발생했고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 국제 유가가 다시 오를 기미를 보이고 있었고 다음 석유 컴소시엄의 주제는 석유 생산 증가를 위한 추가 라이센스 계약이었다.

거기에 리비아가 추가 된다고 해도 별로 상관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 배 아파 하겠지만 ‘온건’적인 강현의 결정에 수긍해 줄 것이다.

[리비아! 다시 석유 에너지 시장에 복귀!]

[독재를 물리친 리비아! 과거의 영광을 위한 부흥시대 개막!]

경제지들은 요동치는 유가에 리비아의 라이센스 계약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덕분에 선물 시장에서 유가가 오를 것에 투자한 이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물론 리비아 대사가 강현을 방문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은 이들은 강현의 성향을 분석해서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강현이 리비아에 라이센스를 주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많이 떨어졌고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한 편, 강현의 인공 근육을 이용한 의수 의족을 단 장애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의수 의족 회사들이 스폰서가 되어 선수들에게 그들이 자신있게 만든 인공 수족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올림픽은 ‘정상인’의 올림픽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본격 사이버네틱스의 시작!]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세계의 사람들은 이 사건에 주목했다. 이제 팔다리가 없는 것은 장애가 아닌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의수 의족 회사들이 가진 기술력에 관심을 쏟은 이들은 정작 장애인은 아니었다. 각 국가 정부들이 이 인공 수족에 관심을 보였다.

이른바 슈퍼 솔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평범한 인간 수배의 힘을 내는 수트를 착용시키는 방안이 연구 중이었고 강현의 인공 근육을 이용한 인공 수족 제어 기술은 어쩌면 연구에 필수적일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물론 보안에 신경쓰지 않았다는 헤프닝으로 강현의 안드로이드 설계가 새어나가기는 했지만 강현의 설계는 거의 인간의 근골격 구조와 동일해서 딱히 써먹을 곳이 없었다.

근육을 제어하는 소프트 웨어가 더 중요했지만 아즈삭에서 빼낸 정보에는 그에 과한 내용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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