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강현이 기존의 전기 전도성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새롭게 조합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단량체의 액체가 충분히 탄소 나노튜브의 사이로 스며들어갈 성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탄소 나노튜브 사이에 기포가 남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정전기가 머리칼을 뻗치게 만들 듯 전압을 걸어서 탄소 나노튜브 사이의 거리를 벌리고자 한 것이다.
“어? 이럴 필요 없잖아.”
기포를 빼는 것 만이라면 이럴 필요가 없었다. 강현은 즉시 넓을 플래이트에 젖은 CNT다발을 올려놓고 말랑말랑한 플라스틱 덩어리로 한쪽 방향으로 빗질하듯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F1자동차에 사용되는 탄소 나노 튜브 패널을 만들 때와 동일한 방법이었다. 이 탄소 나노 튜브 패널은 스티커처럼 생산되어 자동차의 외형을 만들 때 겹겹이 쌓인다.
아무튼 계속 액체를 조금씩 부어가며 빗질을 하여 충분히 기포를 뺏다 싶을 때 자외선 경화 장치에 집어 넣었다. 자외선이 단량체에 힘을 가해 활성화 에너지를 높여 촉매의 활동을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약 6시간을 소요해 완벽하게 경화시키고 나서 강현은 탄소 나노 튜브의 젖지 않은 부분에 기름을 잘짝 적셨다.
이 기름은 알칸족 사슬로만 만든 기름으로 강현이 특별히 만든 것이었다.
이 기름은 플라스틱이 경화해서 부피가 줄어들어 생긴 탄소 나노 튜브와의 간격으로 스며들어 기체 분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탄소 나노 뷰브와 전기 전도성 플라스틱 사이의 접촉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윤활제 역할을 해 마찰을 줄여주는 것이다.
즉, 강현이 구상한 인공 근육은 일종의 가변 축전지와 비슷한 개념으로 한쪽에 +가 걸리면 다른 쪽에는 -극을 걸어 서로에게 생기는 인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됐다. 실험해 보자.”
강현의 실험작은 생각보다 무척 성능이 떨어졌다. 기존 근육의 10분의 1에 불과한 단면적당 힘과 반응속도 역시 0.8초나 걸렸다. 게다가 전압 한계가 있어서 그 이상 전압을 가하면 쇼트가 발생했다.
“흐음. 실험작 치고는 나쁘지 않네.”
하지만 강현은 긍정적이었다. 내구성은 기대치를 넘어섰고 또한 전압을 가한 상태에서 정지해 있는 경우 에너지 소비가 거의 0에 수렴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출력을 올리지?”
이건 정말로 어려운 문제였다. 정전기적인 인력은 한계 출력이 존재했다. 전자를 고정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자가 떨어질 정도로 충분한 에너지가 가해지면 공기나 진공을 통해서 전자가 이동해 버린다.
강현은 윤활제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생각했지만 몰드와 탄소 나노 튜브의 간격이 나노 간격이라 어차피 별로 큰 영향을 줄수는 없었다.
강현은 생각 끝에 원소를 첨가해 보기로 했다.
전자를 잡아둘 수 있는 원소. 전자 친화도나 전기 음성도에서 플루오르나 염소같이 너무 전자를 잘 잡아 두는 것은 안 된다. 그들은 전자를 너무 잘 잡기 때문에 반응성이 크고 화합물 상태에서 항상 이온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1족 원소를 사용하는 것도 무리다. 양이온의 형태로 화합물을 형성하는 그들이기 때문에 전자를 잡아두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강현이 선택한 것은 전이 금속 계의 원소들이었다. 전이 금속은 산화수가 다양하다. 대표적인 전이 금속인 철의 경우 산화가가 두 개인 이 산화철, 세 개인 삼산화철로 자연계에 존재한다. 이는 전압이 걸리는 정도에 따라서 전자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전자를 잘 잡아 둘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 했기에 전압의 증가에 따른 전자의 방전 효과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강현은 이 전이 금속들을 종류를 달리해가며 +극과 -극이 달리는 몰드와 CNT에 붙이고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철 삼가 이온(Fe3+)을 몰드에 집어 넣고 코발트 이가 이온(Co2+)을 CNT에 붙여 전자가 몰드에서 탄소 나노튜브로 옮겨가는 가능성을 최소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덕분에 한계 출력도 상승했다. 성능도 개선되어 보통 근육의 7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다만 불순물이 섞인 것이라 할 수 있어 한계 수명이 절반 정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20만번의 직전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반응 속도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아즈삭을 통한 시뮬레이면 노가다 끝에) 반응이 0.8초나 걸리는 이유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정지 마찰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정지 마찰 계수가 운동 마찰 계수보다 큰 이유는 정지 상태에서 물체간 접촉 부위에서 원자 레벨의 결합이 생기기 때문이다. 강현은 그것을 생각해 윤활유를 사용했지만 워낙 인공 근육의 구조가 미세하고 나노 크기였기 때문에 강현이 개발한 윤활유로도 부족했던 것이다.
강현이 나노 사이즈의 틈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알칸족 사슬만을 이용한 윤활제를 만들었지만 그들도 정지 상태에서는 서로 간 어떤 결합을 했고 나노 구조의 표면적이 워낙 넓기 때문에 그 결합의 수가 무척이나 많아 정지 마찰력 역시 컸던 것이다.
강현은 어쩔 수 없이 알칸족 사슬의 길이를 절반으로 줄이는 윤활제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라고 할만 한 점은 엔진처럼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윤활제 설계가 무척이나 쉬웠다는 점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으니 전압을 거는 함수를 다시 설계해서 움직임의 초기에 그래도 존재하는 정지 마찰력보다 큰 힘이 생성되도록 순간적으로 전압을 가하도록 했다.
그렇게 반응 속도를 0.3초까지 줄이는 기염을 통한 강현은 본격적으로 이족 보행, 아니 안드로이드 제작을 압두고 있었는데...
“잭. 무슨 일이야?”
의외다. 오랫동안 잭과 알고 지내온 강현은 잭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찾아오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현.”
“왜?”
“제시가... 죽었어.”
강현은 잭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 = = =
삶은 잔혹하다. 운명은 개인의 힘으로 조절할 수가 없다.
강현은 멍한 정신으로 전세기를 타고 프랑스로 날아왔다. 그리고 얼굴에 흰 천이 씌워진 그녀를 보았다.
창백한 손가락에는 자신이 끼워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교통사고라고 했다. 비가 오는 날 미끄러져버린 트럭이 그녀가 운전하던 차를 치어버렸다고 했다. 다중 연쇄 추돌 사고.
그 사고로 제시뿐만 아니라 도로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트럭 운전사마저 사망했다고 했다.
‘불행한 사고입니다.’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당하면 으레 하는 말. 불행.
강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현.”
빛이 사라진 것 같은 칙칙한 눈빛에 잭이 강현이 걱정되어 불렀다.
“혼자있게 해줄래?”
잭은 강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강현은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얼굴을 문질렀다.
왜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왜? 한 번으로는 부족했단 말인가?
강현은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불합리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양자역학이 대두 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이 말하지 않았는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실을 주사위를 던진 것 마냥 제멋대로 돌아갔다. 강현은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대부분 조절할 수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조절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다. 자신은 신이 아니었으니까..
강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시의 얼굴을 가린 천을 벗겼다. 창백하게 식은 얼굴이 드러났다. 화사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짓궂게 웃음 짓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표정을 볼 수는 없겠지..
강현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보랏빛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더 이상 온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떨리는 손을 잡아 그녀의 손에 끼워진 약혼 반지를 빼내기 시작했다. 손이 덜덜 떨려와 빼기 힘들었다.
“흑! 크흑!”
그는 반지는 빼는 도중에 결국 울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를 눈물을 훔치며 기어코 반지를 빼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반지를 다시 자신의 왼손 약지에 짝이 되는 반지와 같이 끼웠다.
강현은 영원히 그녀를 잊을 생각이 없었다.
반지를 그녀와 함께 묻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강현은 죽은 그녀의 시신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녀의 육체라는 것 만으로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그곳에 없다.
설사 강현이 그녀를 되살린다고 해도 그것이 그녀인지 아니면 그녀의 정신을 복제한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녀가 스스로 제시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강현은 믿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끝이니까.
부모님이 죽은 후 강현이 설마 부활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부모님을 되살리는 것을 꿈꾸지 않았을까?
하지만 강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전자만 부모님이어서는 안 된다. 정신과 마음 역시 부모님이어야 했다.
그러나 정신과 마음은 개인이 쌓은 역사와 사건, 그리고 그때그때의 선택과 느낀 감정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사 그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다고 해도 다시 살아난 부모님이 자신들을 강현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강현이 만들어낸 그의 부모의 복제라고 생각할 것인가?
강현은 상상했다. 만일 제시를 되살렸을 때 제시가 할 말은 무엇일까? ‘고마워’일까 아니면 ‘난 뭐지?’일까?
부질없는 상상이다. 무엇보다도 강현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이 그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강현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그 어떤 구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은 여전히 미지의 존재였다.
강현은 제시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살았던 빌라에 거주했다. 여기 저기에서 그녀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빨지 않고 널려진 속옷. 언제나 깔끔한 일등 신붓감으로 굴었던 그녀의 본 모습일 것이다.
강현은 먼지가 쌓인 브래지어를 집어들고 코에 대고 힘껏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향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강현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다. 식사는 하지 않았다.
그런 강현을 돌보게 된 것은 의외로 같이 온 잭이 아니라 샐리였다.
겨울 방학이 되자 다시 파스퇴르 연구소의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 그녀 역시 제시의 죽음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
처음에는 강현과 얽힌 일 때문에 제시의 미움을 받았으나 오해가 풀리고 나서는 좋은 언니처럼 대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샐리가 강현을 돌보게 된 이유는 연구소에서 두 사람과 가장 밀접한 사람이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박사님.”
“.......”
“박사님, 식사 좀 하세요.”
“.......”
강현은 반응이 없었다. 샐리는 억지로 강현에게 미음을 먹이다가 어느 날 찾아온 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거 심각한데.”
잭은 강현이 다시 자폐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에 그의 부모님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다.
잭은 강현을 다시 미국에 데려가서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강현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잭의 호의를 계속 거절하고 무시했다.
이유는 얼마 되지 않아서 밝혀졌다.
“가야 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척해진 모습으로 강현은 택시를 잡았다. 그를 걱정하는 샐리와 잭도 그를 따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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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전개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