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공학자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것이다.(비슷한 말로 예산이 없으면 심신이 갈린다는 말도 있다.)강현은 자신이 유추한 거미줄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가만히 노려보고 원격으로 아즈삭을 이용해 변수를 줘가며 시뮬레이션을 실시하여 가장 단순한 아미노산 패턴으로 거미줄과 유사한 섬유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럴 때 시뮬레이션이란 무척이나 편리한 도구였다.
그는 실험 노가다는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연구실에 출근하면서(심지어는 주말에도) 한 가지 단백질 구조를 완성하고 말았다.
100개의 아미노산 패턴을 기본으로 하는 이 단백질은 베타 시트와 비정질 구조간 전환시에 출입하는 에너지의 양이 그리 크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결과로는 기존 거미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베타 시트보다 더 작고 수는 많은 베타 시트가 형성되어 물성이 극적으로 상승되었다.
“하아.. 힘들다. 이제 남은 건 이 단백질을 만드는 DNA를 만드는 것 뿐인가?”
강현은 논문을 인터넷으로 올리고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분자 생물학은 솔직히 그의 역량을 총 동원해야 할 정도의 고난도 분야였다. 기계나 전자같은 분야는 전체를 부분 부분 나누어 차근차근 생각하고 설계할 수 있는데 이 단백질 설계는 그것이 불가능 했다.
단백질 구조의 물성을 결정짓는 분자간의 물리 화학적 특성과 접힘, 그리고 아미노산의 배열들은 물론 pH나 다른 화학물질의 영향까지 변수가 너무 많고 이것들이 모두 동시에 즉각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전체를 파악해야 했다. 수학으로 따지자면 변수가 여러개인 고차 연립 미분 방정식을 푸는 난이도에 가깝다고 할까? 아마 아즈삭이 없었으면 강현표 인공 거미줄 단백질 구조를 구상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강현이 쉬는 동안 그의 인공 거미줄 단백질 구조를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과학자들에게 읽혔다. 누구는 그의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나타난 아즈삭의 효용성에 관심을 가졌고 누구는 논문의 결과물에 관심을 가졌다. 이도 저도 아닌 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지만 그 결과물이 가져온 파생 효과에 관심을 가졌다.
강현의 인공 거미줄 단백질은 ASP라는 약어로 불렸는데 다른 거미줄 연구자들은 강현의 거미줄 단백질이 실제로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은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DNA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현의 이번 논문은 그저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제 DNA를 만들어야지.”
그러나 강현은 자신에 대한 비판이 있던 없던 콧노래를 부르며 연구에 들어갔다.
언제나 기존에 없던 뭔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는 그에게 기쁨이었다.
일단 새로운 거미줄 단백질을 합성할 DNA를 만들어 내면 그 다음에는 플라스미드에 집에 삽입해 다시 HJ세포에 집어넣으면 단백질이 생성 된다. 그리고 그 단백질을 이용해서 실제 섬유로 뽑은 공정을 다시 생각해야 되지만 강현은 그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유리 섬유 같이 노즐과 압력을 이용해 분사하는 방법이나 나일론처럼 섞이지 않는 유체의 경계막을 이용하는 방법같은 다양한 방법이 있었고 그 중에서 적당한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현은 DNA조합에 들어갔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이미 존재한다. 제한 효소와 접합 효소를 이용해서 의미있는 DNA사슬을 의미없는 정크 DNA와 바꿔끼는 것이다.
그러나 강현이 설계한 단백질을 만드는 DNA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강현이 원하는 DNA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미노산 중합 반응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중합반응에 네가지 염기를 집어 넣으면 무작위로 배열이 일어난다.
즉, 이 중합 반응을 조절하고 강현이 원하는 순서대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결국에는 강현이 원하는 염기 배열이 나올 때가지 실험을 반복하던가 아니면 새롭게 DNA를 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야 했다.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낫겠지?”
전자의 경우에는 언제 만들어 질지 모른다. 100개의 아미노산 배열이 나올 확율은 4의 100승 분의 1이었던 것이다.
강현은 새롭게 DNA 배열을 만드는 방법을 구상했다. 아미노산이 팹티드 결합을 할 때 그 반응을 조절하는 방법이 있을까?
일단 용액을 이용한 방법은 무리다. 순서대로 조합을 하려면 필요없는 염기를 즉시 빼야하는데 미안하게도 그것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다.
그렇다면 기체는 어떨까? DNA 염기를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기체화 한다? 글쎄.. 강현은 회의적이었다. 용액과 마찬가지로 유체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은 무리기 때문이다.
“스퍼터링?”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이런 기체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반도체 공정 기술 중에 박막을 올리는 스퍼터링 기술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강현은 일단 첫번째 시작하는 아미노산을 기판에 붙여야 했다. 실리콘 기판의 표면을 환원시켜 아미노산의 히드록시기를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중합반응을 위한 효소를 살짝 바르고 스퍼터 기계에 집어 넣었다.
일반 금속을 증착하는 것처럼 과한 진공은 필요 없었다. 적당히 아미노산이 승화할 수 있는 기압고 온도만 유지시켜주면 되었다. 다만 산화를 막기 위해서 산소를 제거하기 위해 질소를 불어넣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몇 차례의 실험과 전자 현미경으로 기판을 조사한 끝에 아미노산을 붙이기 적당한 가장 적절한 조건을 찾아낸 다음에 계속 아미노산을 바꾸어가며 실험을 반복했다.
‘아! 지겹다!’
강현은 짜증이 났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기존의 방법처럼 유전자 재조합을 이용할 걸 잘 못 생각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패턴의 DNA를 만든다? 그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 질리가 없었다. 강현은 자신이 오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냐.’
강현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음 작업을 계속했다. 크로마토그래피로 가장 완성에 근접한 분자량의 DNA사슬을 찾아내고 증폭한 뒤에 다시 희석해서 플라스미드에 삽입했다.
원래라면 그 사슬들이 정말로 강현이 원하는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그 가느다란 DNA사슬을 하나하나 집어내어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사슬을 하나 하나 집어낼 수 있어야 분류를 하든 말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검증 없이 플라스미드에 삽입해 HJ세포에 집어넣는 강현의 심정은 ‘에라 모르겠다.’였다.
그는 설마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강현은 공학인들이 흔히 잘못된 방식을 고수하면서 범하는 ‘사서 고생’을 직접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 강현의 인공 거미줄 생산은 실패로 끝났다. 타인이 보기에는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강현이 생각한 것 만큼의 물성이 나오지 않았다.
‘스퍼터를 이용한 새로운 DNA 패턴 제조 방법.’이란 논문의 말미에 ‘인간이 직접 DNA를 조합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DNA 패턴을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라는 말은 강현이 위대한 자연에 고개를 숙이는 겸손함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인공 거미줄은 생각보다 더 파급효과가 컸다.
‘나일론 생산 공정을 이용한 인공 거미줄 중합 반응.’이란 논문으로 실제 인공 거미줄의 합성에 성공하자 돈 냄새를 맡은 바이어들이 프랑스로 몰려들었다.
이미 DNA는 강현이 만들어 놨고 거기에 HJ세포를 이용해 기본 원료인 거미줄 단백질의 생산은 문제가 없었으며 기존 나일론 생산 공정을 조금만 손보면 됐기 때문에 원료만 공급되면 언제든 인공 거미줄 섬유의 대량 생산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하면 강현의 인공 거미줄은 DNA조합의 실패로 인해서 실제 천연 거미줄에 비해서 물성이 80%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당장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업계에 의미하는 바는 ‘나일론 생산 공정을 이용한 인공 거미줄 중합 반응’에 관한 라이센스를 따낸다면 차후 완벽한 거미줄 단백질이 공급되었을 때 바로 상품을 생산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미줄 섬유라는 시장을 미리 선점할 수 있으니 섬유업계에서 탐을 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실패작인데 필요해요?”
“그렇습니다.”
“실패작인데...”
“하하! 강 박사님의 눈에는 실패작으로 보이지만 저희 비지니스맨의 눈에는 충분한 상품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요?”
강현은 솔직히 팔기가 좀 그랬다. 언제나 완벽한 작품/기술만을 팔아온 그에게 스스로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기술을 파는 건 처음이었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팔기 싫은데..”
“하하하! 팔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마음이 바뀌시면 반드시 저에게 먼저 연락을 주십시오.”
강현의 인공 거미줄은 수 많은 바이어들의 발길을 끌어들였지만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이어들의 입을 통해 강현이 이번 결과물을 스스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돌았다.
적어도 강현은 시뮬레이션한 인공 단백질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어한다는 말이 돌면서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사람들과 달리 초조함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연구소장 쟝 마르코였다.
그는 강현이 만든 아즈삭으로 NASA에서 수십조의 매출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강현이 온다고 했을 때 전용 연구실을 구비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연 그의 기대대로 강현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인공 거미줄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데.... 팔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때 느낀 실망감과 허탈함이란..
현대의 첨단 기술 개발은 각종 첨단 실험 장비가 필요했다. 과거처럼 개인이 사비를 털어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연구소장으로서 쟝은 예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고 때문에 예산을 넉넉히 할 이번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아니지? 그 기술을 판다고 그 이득이 연구소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미리 강현과 이야기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강현이 그 이득을 혼자 독점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 혼자만의 결과물이었기에 흉을 볼 수는 없었고 또한 NASA에 매년 막대한 기부를 하는 것을 보았을 때 파스퇴르 연구소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면 파스퇴르 연구소에도 기부를 해줄 가능성도 있었다.
쟝은 그 동안 빌미가 없어서 강현을 만나지 못했지만 이번 인공 거미줄을 계기로 강현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강 박사. 오랜만일세.”
“소장님. 어쩐 일이세요?”
강현이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기에 쟝 역시 영어를 사용했다.
“이번에 그 거미 실크 말일세.. 그걸 팔지 않는다고 들었네.”
“네.”
“그 이유가 스스로의 기준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라면서?”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고 팔려니까 기분이 안 좋아서요.”
강현의 대답에 쟝이 진지하게 설득을 시작했다.
“강 박사. 자네도 알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특히 기술 개발 분야에서 예산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예산이 없어서 하고 싶은 연구도 마음껏 하지 못하고 갈려나가는 공돌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강현처럼 대박 기술을 터뜨려 풍부한 예산을 가지고 싶은 공돌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역설했다.
“... 자고로 돈과 예산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라도 많은 재산을 축적해 놓는 것이 좋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