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자연계가 빚어낸 최고의 구조용 소재는 무엇인가?
강현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섬유’라는 대답을 바로 낼 것이다. 섬유질이 없는 문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철 와이어의 경우는 목적이 일반 섬유와 좀 다르니 예외로 치자.
아무튼 인공 거미줄의 합성은 분자 생물학의 발전과 생명 공학 밑 바이오 시밀러의 개념으로 인해서 연구에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고 있었다.
거미줄로 만든 섬유는 같은 부비의 강철만큼 질기고 탄성이 있어 총알조차 막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거미줄이 대량 생산이 된다면 일대 혁명이 될 것이 분명했다.
거미줄의 구조는 마치 천이 구개어져 접혀 있는 형상이었고 그런 접힘은 단백질의 특징이다.
미국에서는 거미줄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집어넣은 누에를 만들어 내었고 캐나다에서는 거미줄 단백질이 포함된 젖을 짜는 유전자 조작 염소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점은 누에의 실크에는 거미줄 단백질이 10%에 불과했고 염소젖에서 정제한 거미줄 단백질로 실제 거미줄을 뽑는 기술은 아직 개발이 된 상태는 아니었다.
실상 거미줄이 단백질에서 거미줄로 형성되는 과정은 거미의 꽁무니에 있는 방적돌기에서 단백질이 방적돌기의 관을 빠져나오며 미세한 산성도의 변화에 따라 중합반응을 일으키기에 이 미세한 과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세포단위의 관을 통과하면서 미세하게 pH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거미줄 방적기계라? 과연 지금 있는 기술로 만들 수 있을까? 또 만든다고 해도 대량 생산을 할 수는 있을까? 돈은 될까?
그러나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똑같이 모방할 수 없다면 비슷하게라도 모방해 보자.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으로 거미줄 단백질과 비슷한 단백질을 만들어 중합반응을 해보았지만 결국은 실패였다.
거미줄 단백질인 스피드로인의 구조가 완벽하게 조사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실상 현재 과학자들은 거미줄 단백질의 절편만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절편들이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단백질의 구조 분석이야 말로 강현의 특기 중 특기가 아니던가?
강현은 거미 유전자 분석을 한 논문과 단백질 분석을 한 논문을 찾아 모아 기본 데이터를 확보하고 사용할 거미를 정했다. 근처 와인 농가에서 채집한 흔한 프랑스 거미였다.
아마 미국이 강현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았다면 당장에 미국 거미를 수송해 주었을 것이다. 거미줄의 단백질도 거미에 따라서 다르고 유전자 정보 역시 특허 출원이 가능하기에 강현이 스피드로인 구조를 완벽히 파악한다면 엄청난 국가적 자산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방탄복 소재인 캐블라 섬유보다 3배는 강하고 더 가벼운 섬유는 군사적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자. 끝이 뭉툭한 할로우 포인트 탄은 사람을 가장 잘 죽이는 탄환이다. 하지만 끝이 뭉툭하기에 체크무늬처럼 짜인 방탄복에 걸리고 만다. 그 말은 총알이 뼈는 부러뜨릴 수 있을 지언정 치명적인 내장 기관의 손상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잘 죽지 않는 병사. 그런 병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섬유는 그 가치가 엄청난 것이다.
아무튼 강현은 거미줄 단백질인 스피드로인의 구조분석에 들어갔다. 말이 구조분석이지 3500개가 넘은 아미노산의 결합품인 스피드로인의 구조는 분자량만 30만이 넘어가는 초거대 단백질이었다.
이 스피드로인의 가장 큰 특징은 접힌 단백질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베타 시트였다. 원래 일반적인 단백질의 경우에는 단일 사슬 자체의 팹티드 결합에서 산소원자와 히드록시기에 의한 수소결합으로 DNA처럼 나선형으로 되어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특정 단백질 패턴에서는 이 수소결합이 단일 사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슬간에 일어나서 마치 밧줄을 교대로 접은 듯한 결정형 단백질 구조가 나타나고 이를 베타 시트라고 한다.
이 베타 시트의 구조는 그 비율에 따라서 거미줄의 인장강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거미줄을 이루는 각 단백질 절편 간의 결합 순서를 알아내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은 열심히 각 단백질 절편의 아미노산 서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미노산 서열은 복잡했다. 일정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절지 동물의 역사는 포유류보다 훨씬 오래 되었고 거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거미와 거미줄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성능의 개선없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자연 도태에 의해서 약한 거미줄, 경제성 없는 거미줄을 잣는 거미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거미줄은 진화해 왔을 것이다.
물론 진화의 방향이 복잡성이라고 단정짓는 증거는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 거미줄의 아미노산 배열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강현은 약 한 달간의 연구 끝에 결정질인 베타 시트와 베타 시트를 제외한 비정질 단백질의 개략적인 패턴을 유추할 수 있었다. 결정질인 베타 시트 부분의 단백질은 약 10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단백질들의 연속적인 결합채였고 그 외의 비정질 부분은 일정한 패턴을 말할 수 없는 무작위적인 아미노산의 배열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강현은 자신이 유추한 내용을 가지고 아즈삭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리고 실제와 거의 비슷한 물리적 성질을 갖는 모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만들어 학계에 던졌다. 그리고는 이내 관심을 돌려버렸다. 정말로 그런지 확인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거미줄의 단백질 구조를 확인한 그는 좀더 간단한 단백질 단위를 이용해서 거미줄을 합성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HJ세포?”
제시는 강현의 부탁에 떨떠름했다.
“응. 그게 필요해.”
강현이 구상한 인공 거미줄을 구성할 단백질은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미국의 유전자 조작같은 누에를 쓸까? 아니면 캐나다처럼 거미줄 단백질이 포함된 젖을 내놓는 동물?
일본에서는 미생물에 단백질을 집어 넣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해 대량 생산 기술을 획득한 벤처 기업이 있었다.
그러나 미생물도 미생물 나름이었고 온도와 pH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백질을 원하는 형태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완벽히 조절이 가능한 미생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강현이 아는 바로는 그런 미생물은 제시의 HJ세포가 유일했다.
“그럼 HJ세포에 거미줄 단백질을 합성하는 DNA를 집어넣을 거란 말이야?”
“그게 가장 효율이 좋으니까.”
대규모의 양잠 시설이 필요한 누에나 넓은 사육장이 필요한 염소보다 그냥 커다란 배양 용기만 있으면 되는 미생물 쪽이 대량생산에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 나좀 도와줘.”
제시가 머리를 헝클며 답했다.
“뭘?”
“HJ세포에 미토콘드리아를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제시는 포도당과 산소를 이용해서 직접 ATP를 만들어 내는 HJ세포를 만들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거 세포 용적에 한계가 있어서 그런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HJ세포의 크기를 조절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화학 물질을 첨가해 생리학적으로 자극하면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 단백질을 합성하는 속도가 늘어나 세포의 크기가 더 커진다.
물론 ATP나 각종 아미노산의 전달을 위해서 크기에 한계가 있었고 미토콘드리아 같은 세포 소기관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은 충분히 있었다.
“미토콘드리아의 구조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HJ세포의 컨셉은 생명활동의 극단적인 단순화다. 때문에 분열에 필요한 필수적인 아미노산과 생존에 필요한 ATP 농도만 유지해 주면 생존이 가능했다.
“문제는 미토콘드리아를 HJ세포 내에 주입하면 파괴되거나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거야. 문제가 뭔지 모르겠어.”
“다시 말하지만 미토콘드리아의 DNA분열과 활동은 대단히 복잡해. 일단 외막에서의 능동 수송 기능만 해도 HJ세포에서 재현하지 못하고 있잖아.”
“그건 그래.”
“적어도 미토콘드리아의 활동을 모방한 단순한 세포소기관을 만들거나 아니면 HJ세포를 미토콘드리아 정도로 고도로 개선 시키지 않으면 어려울걸?”
생물체에게 미토콘드리아란 존재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다. 암컷과 수컷이 서로의 유전자를 합쳐 번식하는 일반적인 고등 생명체에게 이 미토콘드리아는 거의 모계 유전으로만 존속한다.
뿐만 아니라 세포의 에너지 요구량에 따라서 스스로 분열해 수를 늘리거나 죽어서 수를 줄이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양반 집 머슴처럼 열심히 ATP란 노동력을 제공하는데 그 모습이 세포내 소기관이라고 하기보다는 공생체에 가깝다. 소 위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이 소에게 각종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었다.
그런 기존의 체세포에 익숙해진 미토콘드리아에게 HJ세포 안에서 살라고 하는 것은 소 위에서 사자 위로 이사해 살라는 말과 동일했다. 당연히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아.. 이제는 미토콘드리아까지 연구해야 하나?”
제시의 입에서 한 숨이 나왔다. 연구를 하면 할 수록 연구거리가 끝없이 나오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때문에 적절한 연구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래도 첫 결과물은 잘해도 인공 미토콘드리아가 아니라 ATP를 생산하는 HJ세포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을걸?”
“하긴. 원래 미토콘드리아도 단일 개체라는 말이 있으니까.”
세균 간 DNA전달이나 융합 현상은 흔히 확인할 수 있는 활동이다. 과학자들은 진핵 생물의 DNA 계승과 미토콘드리아의 DNA계승의 차이점에서 미토콘드리아가 원래는 세포 밖에 있던 개체라는 이론을 내 놓기도 했다.
그리고 산소가 많아지기 시작한 환경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공생 관계를 이루었고 그것이 진핵 생물의 내부에 자리잡는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럼 샘플을 나누어 줄게. 나중에 좀 도와줘.”
단백질 분석에서 강현을 뛰어넘은 ‘조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도와 준다면 미토콘드리아 연구도 빠른 시일내에 끝낼 수 있으리라..
제시의 허락을 얻은 강현을 HJ세포를 배양하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했다. HJ세포는 환경에 굉장히 민감했기 때문에 500mL 용량에 5000CFU/ml(ml당 5000마리)를 유지하기 위한 정밀한 유체 조절 장치가 필요했다. 그 유체 조절 장치로 각종 아미노산과 ATP의 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거미의 거미줄 단백질 유전자를 찾아 플라스미드에 붙이는 노가다를 시작했는데..
“나.. 왜 이러고 있지?”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제한 효소 넣고 플라스크 흔들고 접합 효소 넣고 플라스크 흔들고 원심 분리기나 크로마로그래피로 제대로 합성된 플라스미드를 골라내고 다시 이 작업을 다른 DNA절편에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나! 짜증나서 못해 먹겠네!”
분자 생물학은 너무 복잡했다. 특히 아미노산의 배열에 따른 단백질의 생화학적 특성변화는 컴퓨터의 대용량 데이터 처리가 없으면 분석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수많은 배열의 결과물을 플라스미드에 옮기는 작업 역시 그리 단순하지도 않았고 간단하지도 않았다.
강현은 결국 처음부터 다시 구상하기로 했다. 단순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플라스미드를 딱 한 개만 집어 넣는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