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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3화 (23/241)

23화

거부한다면 각종 장학 혜택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그 조항을 보면 쉴세 없이 졸업할 때까지 여유가 없는 생활이 되겠지만 학자금이란 큰 빚을 지지 않고 사회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생각할 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아니 오히려 전체적으로 조건이 너무 후했다.

그녀는 한슨 재단이라는 곳이 뭔지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고 생각보다 건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단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안심한 그녀는 즐겁게 사인을 하고 한슨 재단의 장학생이 되었다.

한편, 프랑스에 도착한 강현은 해가 떠있는 프랑스의 창공을 보았다. 졸음이 몰려왔지만 시차로 인해서 아직 해가 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걱정하지 않았다. 밤을 세워 연구하던 그의 버릇 덕분인지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왔을 때에도 시차 적응에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습관은 칼퇴근을 권하는 연구실의 분위기와(특히 컴퓨터 개발부 직원들은 법적으로 명시된 퇴근시간을 지키라고 강현에게 강권했다.) 제시의 걱정으로 인해서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였기에 프랑스에 와서도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현! 여기야!”

저기에서 피켓을 들고 강현을 반가히 맞이하는 제시가 보이자 강현이 바쁘게 걸어나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연인은 서로를 끌어 않았다.

“Hello.”

그런데 강현은 잘생긴 금발 백인의 남성이 자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과거 제시와 화상전화를 할 때 그녀가 사진으로 보여주었던 얼굴이다.

이름이 막심이라고 했던가?

“저 사람이 여기에 왜 있어?”

“차 태워준다고 하길래.”

제시가 무안한 듯이 혀를 내밀었다.

새로운 환경에 취해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던 그녀는 깜박 강현을 마중나간다는 사실을 까먹어버렸다.

프랑스에서 차를 사지 않았기에(돈 많은 남친이 사면 그 차를 이용해 출퇴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지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침 막심이 오늘 자신의 남친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는 정류장에 초조하게 서 있던 자신에게 데려다 준다고 호의를 표했던 것이다.

제시의 설명을 들은 강현은 그거 어장 관리 아니냐고 말하려고 했다가 당사자가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강현은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막심을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이 불쌍한 생선에게 손을 내밀 정도의 도량은 있었다.

“감사합니다. 닥터 강입니다.”

“하하하!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과학자분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연구소에서 구해준 제시의 집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집은 컸는데 아마 강현도 올 것이라는 언질을 듣고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이웃간에 별일 아닙니다.”

막심이란 인간이 사는 집은 제시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구소 근처에서 새로 생긴 양과자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머리를 과도하게 사용해 항상 당분을 요구하는 뇌를 가진 제시가 연구소 근처에 새로 생긴 달콤한 가게에 발길을 멈출 수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제시와 막심은 서로를 알게 되었다.

막심이 다시 가게를 열기 위해서 돌아가자 강현이 뚱한 얼굴로 제시에게 말했다.

“잘 한다. 애인도 있으면서 저 좋다는 남자에게 도움을 받다니. 죄책감도 없어?”

“응? 친구하기로 했는데? 친구면 서로 도와줄 수도 있지 않아?”

너무 태연한 반응에 순간 강현도 ‘그런가?’하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고나서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느라 학창 생활도 제대로 겪지 않아 미국의 상식을 제대로 모르는 그에게 제시의 대답은 남자와 여자가 친구 사이도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래도 내가 기분이 나빠.”

“그래?”

그러나 남친으로서 기분이 안 좋은 건 당연했다. 강현은 솔직하게 자신의 기분을 얘기했고 제시는 피식 웃었다.

그래. 확실히 질투하는 것이 맞았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은 건지도 모른다. 이런 자신이 나쁜 년 같았지만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내가 기분 풀어줄게.”

물론 그런 사실을 이런 소소한 일 아니고도 느낄 수 있으니 서로의 알몸을 부비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제시는 눈을 반짝이며 강현에게 다가갔고 둘은 금방 알몸이 되었다.

딱! 따딱!

두 사람이 알몸으로 재회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막심은 스마트 폰으로 어디론가 문자를 했다. 스마트 폰에서는 문자를 넣는 효과음이 울렸다.

[프로메테우스 도착. B플랜을 시작.]

강현에게 프로메테우스란 별칭은 붙이는 곳은 막심이 아는 바로는 단 한 군데 밖에 없다. 바로 미 정보부.

그렇다. 막심은 미 정보부의 요원으로서 취미로 하고 있던 양과자 제조로 가게를 열었다. 물론 계획은 상부에서 내려왔다.

단순하게 미남계를 이용해서 제시를 꼬셔 기정사실을 만든 다음 제시와 강현의 둘 사이를 갈라 놓겠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제시가 무척이나 미녀였기 때문에 막심도 불만은 없었다. 게다가 둘을 갈라 놓은 다음에는 적당히 핑계를 만들어 서로 갈라설 계획도 있었다.

플랜 A의 경우에는 강현이 프랑스에 오기 전에 제시와의 썸씽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제시가 좀처럼 넘어오지 않았다. 감정적인 부분보다 이성적인 부분이 강한 그녀는 막심의 매너와 부드러운 언변에도 잘 넘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강현이 프랑스에 오게 되었지만 예비 계획 하나 준비하지 않은 상부가 아니었다.

플랜 B. 그것은 막심이 제시와 강현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제시와 관계를 가지고 세 사람의 좋은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흔히 막장 드라마나 불륜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계획이었지만 인간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에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된다면 프랑스에서 불쾌한 일을 당한 강현은 아마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런 강현을 위해서 새롭게 ‘미녀’를 준비해 놨으니 미 정보부에서 강현에게 들이는 관심과 노력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막심은 막심대로 자신에게 넘어가지 않은 여인에게 자존심을 상한 상태였다. 이미 동료들에게 알려질 대로 알려진 매력남이자 카바노바로서 반드시 제시를 자빠뜨리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한 막심이 뭔가 잘 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하하. 또 오셨네요.”

“크로와상 2개랑, 초콜릿 무스 케익 1개와 커피 두 잔이요.”

강현은 사람 좋게 웃는 막심에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막심은 인내심을 가지고 웃으면서 강현에게 주문한 상품을 포장해 주었고 강현은 카드를 긁은 다음에 막심이 뭐라 말을 걸기도 전에 휙 하고 가게를 나가 버렸다.

‘Oh! Shit!’

막심은 쓴 웃음을 지었다. 벌써 며칠 째 제시를 보시 못하고 있었다. 강현이 계속 가게에 와서 제시 몫까지 간식을 사가는 것이다. 님을 봐야 뽕을 딴다고 막심은 차선으로 강현과 친분을 다지려고 했지만 강현은 막심과 친해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했다.

딱딱한 표정, 사무적인 말투, 그리고 용건만 처리하고 나가버리는 행동은 막심을 연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건 그 만큼 막심이 위협적인 대상이라는 것을 암시했지만 상황은 더 나빴다.

‘고난이 있는 사랑만큼 튼튼한 건 없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제시와 강현의 사랑을 위협하는 존재는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을 강하게 해줄 뿐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뭐라고 하더라?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리?

덕분에 막심은 가게를 정리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막심의 존재가 오히려 두 사람의 결속을 강하게 만드는 악요소가 되니 상부에서는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상부는 플랜B를 폐기할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고 대안으로 장기 플랜이 준비되고 있었다.

흔히들 사랑은 2년짜리라고 한다. 사랑의 호르몬이 분비가 멈추는 시점이 평균적으로 그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2년을 넘어가는 남녀관계는 그 2년 동안 쌓은 추억과 서로에 대한 은은한 애정이 결속시킨다.

그리하여 상부에서는 그 2년을 기점으로 하는 플랜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막심의 양과자 전문점을 정리하는 것도 아직 확실하게 결정 난 것은 아니었다.단지 심적 준비를 하라는 것에 불과했다.

일단 장기 플랜이 시작되면 두 사람의 분위기를 정탐할 첩자가 필요했고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할 때 작업에 투입할 요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게의 철수는 의외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남계에 막심만한 인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마 막심에게는 작업을 자제하고 상황을 파악하라는 대기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았다.

미 정보부에서 강현이 미국을 떠나니 마니 하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강현은 새로운 연구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 박사님. 그리고 빅토리아 박사님.”

“안녕하세요.”

강현과 제시가 같이 출근하자 자신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경비가 있었다. 둘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나중에 점심 시간 때 봐.”

“어디서?”

“내가 찾아갈게.”

제시가 강현의 연구실에 찾아가기로 약속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연구에 정신이 팔린 강현이 약속을 기억해 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찾아가는게 더 빠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강현이 파스퇴르 연구소에 등장하자 연구소에서는 냉큼 연구실을 하나 내 주었다. 아니 비어있던 창고를 개조해 그를 위한 전용 연구실을 하나 만들어 준 것이다.

비싼 기자재들은 예산 때문에 다른 연구실과 공용으로 사용해야 했지만 그 밖에 기본적인 실험 도구들을 비치해 그럴싸한 연구실로 꾸며주었다.

하지만 곧 강현이 자비로 몇 가지 실험 장비들을 구입할 예정이었다. 간단한 시료 분석기도 다른 연구실과 같이 써야 했으니 강현이 답답했던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돈이 많았고 시료 분석기는 연구실 크기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았으니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강현은 미생물이 연구의 주 소재인 장소에서 세균보다는 그 세균을 이루는 물질인 단백질에 관심이 더 많았다. 특히 아미노산의 결합인 펩티드 결합의 특성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강철보다 질기고 튼튼하다는 거미줄 역시 결국은 단백질이 아니던가? 단백질의 펩티드 결합은 생각보다 끊기가 무척 어렵다. 특정 효소가 있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만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단백질처럼 굉장히 안정적인 단백질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프리온 단백질이 얼마나 안정하냐면 PDA 규정으로 수산화 나트륨을 집어넣은 다음에 섭씨 130도의 온도로 30분 동안 가열해야 한다는 소독지침이 있을 정도다. 그냥 물로 가열하면 130도의 온도로 1시간 넘게 가열해야 했다. 과연 고기를 요리하는 방법 중에 130도의 온도로 1시간 넘게 가열하는 조리법이 있을까?

아무튼 자연계에서 펩티드 결합은 무척이나 질기고 안정된 결합이었다. 때문에 거미의 유전자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거미줄을 만드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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