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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0화 (20/241)

20화

“하지만 그렇다면 중력에 의해서 빛이 휘는 현상은 중력이 그 겹쳐진 전자기장의 차원도 휘게 만든다고 설명하려는 겁니까?”

[에.. 말이 되게 하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세계관이 너무 복잡하지 않습니까?”

다른 물리학자는 인상을 찌뿌렸다. 물리학은 심플함을 추구한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단순한 원리로 세상이 구성된다고 믿는 사람은 많았다.

[법칙은 단순하지만 구성은 복잡하다.]

“??”

[모두들 아시다시피 세상은 정말로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리는 정말로 단순하죠. 그렇다면 그 복잡성은 어디에서 올까요? 저는 그것이 애시당초 복잡하게 구성된 환경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법칙은 어디에서나 적용 가능해야 하기에 오히려 더 단순해지는 것이 필연이라고 믿습니다.]

1+1=2. 이 단순한 수학 법칙은 자연수 뿐만 아니라 유리수, 실수, 복소수의 영역까지 모두 적용이 된다. 수학은 수의 범위를 확장하여 좀더 복잡해지고 좀 더 다양한 규칙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실상 가장 단순한 법칙은 괴리없이 모든 영역에 적용되었다.

[그런 신념에서 저는 사실 통일 이론도 실제로 공식으로 표현하면 지금보다 더 단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이론이 적용되는 우주의 복잡성을 설명하려면 세상 자체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천재의 논문은 반박되고 옹호되고 수정되기를 반복했으나 문맥상 그리고 수학상의 논리와 가장 핵심적인 세계관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사실 그것을 반박하기나 옹호하기에는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수식적인 논리는 완벽했기에 물리학자들의 대부분은 이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4차원이 아니라 13차원일지도 모른다.]

[겹쳐진 차원. 그 놀라운 변설.]

[천재의 오만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세상을 구성하는 새로운 관점! 사실 세상은 여러개의 차원이 겹쳐져 있다?!]

사실 강현이 도입한 세계관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다 누군가가 한 번쯤은 상상했던 것이다. 소설 속 상상에서 천국과 지옥은 공간적으로는 현실과 겹쳐져 있지만 존재하는 차원이 다르기에 볼 수 없다는 소재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수학적으로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복잡한 수식과 개념들이 길게 나열되었지만 물리학자들이 아니고서 그 수식들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수학적으로 공식을 만들어 내야만 구체적인 수치를 뽑을 수 있고 데이타를 축적해 오류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수학은 공학적인 중요성 뿐만 아니라 여러 데이터에 필수적인 도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강현의 수식은 완벽했다. 그러니 정말로 그의 가설인 ‘겹쳐진 차원’이 존재하는 지의 여부만 확인 한다면 그의 가설은 통일장 이론으로 확증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존재하는 그 어떤 다른 방법도 강현의 ‘다중 차원 이론’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개미가 인간의 빌딩을 탐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강현의 다중 차원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요즘 물리학계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학자기는 하지만 공학도로서 정체성이 더 강했다. 그는 질문보다는 답을 더 좋아했고 원리를 이해하기 보다는 원리를 응용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진리를 깨닫는 것보다 창조하는 것이 더 좋은 강현이었다.

그렇기에 좀 더 보강 논문을 내 달라는 물리학계의 요청을 깡그리 무시하고 요즘 필이 꽂힌 로보트로닉스에 푹 빠져버렸다.

“아즈삭. 출력은 어느 정도 낼 수 있지?”

[현재 나온 모터로는 약 0.1마력에 불과 합니다. 이것으로 밸런스를 지탱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흐음.. 신소재가 필요한 건가?”

강현은 자율형 로봇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NASA의 무인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 자극을 받은 것인데 아무래도 바퀴가 달린 로봇은 로봇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강현의 이상한 지론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현은 바퀴를 대신 할 만한 것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곤충의 다리였다. 생물을 모방해서 원하는 효과를 얻는 기술은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다. 깊게는 나노 스케일부터 크게는 건축까지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강현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가 가장 모방하고 싶었던 것은 이족 보행 동물인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걷는 행위를 모방하는 것은 지금의 기술로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왜 인간은 두발로 걸을 수 있을까? 그리고 왜 다른 동물들은 네발로 걸을까?

유인원들은 두발로 걸으려면 뒤뚱뒤뚱 걷는다. 펭귄도 뒤뚱 뒤뚱 걷는다. 그것은 체중의 이동에 의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이다. 자연계에서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걷는 동물은 없다.

과거 이족 보행을 연구하기 시작했을때 학자들은 하체만 따로 때서 연구했다. 오랜 시행 오차에도 불구하고 그 로봇들의 걸음걸이는 인간과 닮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실상 인간이 걷기 위해 중심을 맞추는 데에는 상체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척추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척수를 움직이는 근육의 조절이 너무나 정교했기 때문이었다.

균형 감각에 한해서 인간을 능가하는 동물은 없었다. 세상에 어느 동물이 인간처럼 체조를 할수 있고 묘기를 할 수 있겠는가?

“흐음.. 사람의 머리가 무거워진 이유가 이건가?”

사람의 머리는 상당히 무겁다. 혹자는 지능의 사용으로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대뇌피질이 발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현은 그 의견에 회의적이었다.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까마귀 역시 나뭇가지들을 이용해서 먹이를 먹을 수 있고 인간이 만들어낸 고차원적인 장치의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뇌의 부피만으로 지능을 결정한다면 돼지와 개에 맞먹는 지능을 보여주는 까마귀의 능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연선택에 의해서 살아남는 유전형질이 있다고 하면 쓸데없이 부피와 무게만 늘린 머리보다는 차라리 뇌의 시냅스 구조를 좀더 촘촘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에너지적으로 적게 든다.

물론 지능이 두뇌 크기의 성장에 전혀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진화의 방향성을 단정 짓기에는 세상은 복잡하고 여러 요소들이 서로 피드백을 하며 상호 작용을 일으켰다.

누구나 한 번쯤 긴 막대기를 손끝에 세워두고 얼마나 오래 가는지 균형을 잡는 놀이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균형 잡기 놀이는 짧은 막대기 보다 긴 막대기가 균형을 유지하기가 더 쉬운데 이유는 관성 모멘트라는 물리량에 있다. 마치 관성의 법칙에서 직선 운동을 하려는 물체가 계속 직선 운동을 하듯이 회전운동을 하는 물체는 계속 회전하려는 성질을 관성 모멘트라고 하는 것이다.

이 관성 모멘트는 물체의 무게와 회전축에서 무게 중심까지의 거리로 결정이 되는데 길이가 긴 장대일수록 축이 되는 손가락에서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회전하지 않으려는 성질이 더 크고 때문에 적절히 손가락의 위치를 바꾸어 가며 균형을 조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머리는 사람의 무게 중심을 상당이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람이 걸을 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소모를 무척이나 줄여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마침 발달한 대뇌 피질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걷기 균형을 제어하는데 일조하였으며 인간에게 논리적 사고력을 부여하였고 문명을 일으켜 지금에 까지 이르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 강현의 생각이었다.

물론 겨우 이 두 가지 이유 뿐만 아니라 당시의 환경적 요인과 두뇌 발달을 요구하는 다른 요인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그것을 더 따지고 들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과 같은 걸음걸이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무게 중심이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현은 설계에 들어갔다. 평상시의 그와 다르게 일단 설계부터 시작했다. 제조에 필요한 재료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은 설계로 자신의 창조 욕구를 듬뿍 충족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필요한 스펙의 재료가 없다면 나중에 자신이 천천히 개발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아..”

제시는 연구실에 처박혀 컴퓨터로 뭔 가를 설계하는 강현을 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 가자고 할까?’

그녀는 최근 프랑스의 한 연구소에서 편지를 받았다. 세계적인 유명 분자 생물공학 연구소에서 저번 그녀의 HJ세포를 보고 깊게 감명을 받았다면서 같이 연구하기를 바랬다.

그녀는 갈등했다. NASA의 연구시설이 좋다고는 하지만 NASA는 애시당초 우주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생물학 연구실은 극한 환경에서 생명체의 존재가 있을 수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과 우주 환경에서의 식량 생산이나 각종 식물의 재배 같은 공학적인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녀의 HJ세포가 그런 그들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HJ세포는 좀 더 근본적인 연구를 위한 툴이었다. 응용성은 무궁무진 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생명체 형성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기 무척 편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NASA에서의 생물학 연구는 그 분야가 무척 좁고 무엇보다도 같이 연구를 할 동료들이 무척 적다는 점이었다.

고도화 되는 과학문명과 축적되는 대량의 데이터는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과거과 같이 몇몇 천재 과학자들의 기지와 노력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강현은.. 일단 예외로 치자.

아무튼 제시는 그 동안 HJ세포를 혼자서 구상하고 개발하느라 무척이나 힘이들었다. 혼자서 수십 명의 몫을 해내는 강현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과 같은 것을 목표로 연구하는 집단에서 자신을 바라고 있다는 편지는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가 꿈을 쫓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강현.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그를 노리고 있다. 그를 놔두고 원거리 연애를 한다? 글쎄.. 그것이 과연 오래 갈 것인가?

강현은 모르지만 자신은 참을 수가 없다. 언제나 옆에서 한결같이 든든하게 있어주던 그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버린다는 것이....

하지만 꿈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이 너무 욕심 많은 여자인 걸까?

“학! 학! 학!”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그들은 뜨거운 시간을 가졌다. 직장이 같다는 것은 일상의 일정이 비슷하다는 이점이 있었고 같이 보낼 시간을 만들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단점은 헤어지면 골치 아프다는 것이다.

제시는 강현과 나란히 누워 키스를 하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후희를 즐겼다.

제시는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한 결심을 실행하기로 했다.

“저기. 현.”

“응?”

“나, 사실..”

그녀는 얼마 전 프랑스에 있는 생물학 연구소에서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NASA보다 확실히 생물학 연구에 더 좋은 인프라와 인력이 있기에 꼭 가고 싶다고.

“가면 되잖아.”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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