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강현의 논문을 읽느라 날밤을 새웠다. 그리고 며칠 간 물리학계에는 폭풍 전야같은 고요함이 일었고 누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닌데 일제히 NASA로 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물리학자는 물론이고 유럽의 물리학자들까지 일제히 비행기를 타고는 NASA의 연구소, 그 중에 강현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이, 한스. 자네가 왠일인가?”
“그럼 자네는?”
존은 라이벌이자 동기인 한스를 비행기 체크인을 할 때 만났다. 서로 누가 먼서 좋은 결과를 내놓는지 경쟁하는 선의의 관계였다.
존과 한스는 서로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똑똑한 그들은 이내 상대방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자네도 그 논문을 읽은 건가?”
“당연하지.”
존의 질문에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절로 논문의 서론 부분이 생각났다.
‘... 4차원의 세계에서 살면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1차원이나 2차원이라는 것은 모순이다. 또한 시간마저 상대적이니 3차원이라는 것도 모순이다. 따라서 기존의 11차원의 초막 이론에 2차원을 더 추가하여 4차원인 ‘초시공간’을 다루어야 한다.
즉 이 ‘초시공간’의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장(場)이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이는 현실의 4차원에서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가지는 물질파를 고려할 때 타당하다고 보여지며..’
“아인슈타인의 재림인가?”
“역시 과거의 사람이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라는 것이지.”
사고 실험 만으로 빛의 속도가 어디에서든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인슈타인. 그의 직관은 모든 것의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 입자가 아니라 장(場)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는지도 모른다.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의 융합인가?”
한스의 말에 존이 썩소를 지었다. 강현에 대한 일화는 과학계에 너무나 유명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도 알려졌는데 어렸을 때부터 폰 노이만 같은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싶어 전화번호부를 달달 외우며 계산하고 다녔다는 일은 이공계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웃지 못할 개그였다.
그리고 폰 노이만 방식을 탈피한 아즈삭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계산기는 이미 강현과 폰 노이만을 같은 반열에 두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인슈타인의 직관까지...
과학 문명의 발전과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는 축복이었지만 경쟁자의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이건 뭐 강현이 연구하지 않는 것을 골라서 연구해야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 않나?
“그나저나 약속은 잡았나?”
“그렇다네.”
“몇시에?”
“한 시.”
“호오.. 나도 한시인데. 날짜가 다른가 보지? 나는 금요일일세.”
“어? 나도 금요일인데..”
““......””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불길한 상상을 했다. 설마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학자들과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약속을 잡은건 아니겠지?
““......””
두 사람의 불길한 상상은 그대로 실현됬다.
NASA는 몰려드는 전세계 학자들로 인해서 부랴부랴 대형 홀을 빌리고 출장 뷔페를 찾아 계약했다. 그리고 홀에는 바글바글하게 물리학자들이 모여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하하! 오랜 만일세. 어떻게 지냈나?”
“나야 여전하지. 자네는 잘 지냈나? 가족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럼 그 상수값을 어떻게 처리했나?”
“변수로 취급해서 컴퓨터에 돌렸지. 역시나 아즈삭이 편하기는 편하더군. 간단한 수식 수정 정도야 알아서 하니..”
서로의 연구 진행 과정을 묻기도 했다.
“그 장(場)을 양자 색역학적으로 나타내면..”
“나는 그런 생각에 반대네. 왜 굳이 장(場)의 개념을 도입했겠나? 이미 입자로는 설명하기 난해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기존 주류 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해를 하려면 그런 노력도 필요해.”
하지만 역시가 서로가 대화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소재는 역시나 강현의 통일장 이론이었다.
아인슈타인 사후 주류 물리학계에서 외면받은 통일장 이론이 과연 어떻게 표현 될 것인지가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한 시가 되었다. 그들이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의 답장에 명시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칼 같이 강현이 들어와서는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전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의 논문을 읽고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시는 뜨거운 반응에 좀 많이 놀랐습니다. 덕분에 NASA에서 부랴부랴 홀도 빌리고 고생 많이 했죠.]
수 많은 과학자들을 복도에 세워 둘 수 없다며 홀을 예약한 기획부장이 이레이가 들었다면 드디어 천재가 철 좀 들었구나 하면서 감동할 멘트였다.
[이렇게 모든 분들을 이런 자리에서 한꺼번에 만나는 것이 좀 무례한 일이기는 하지만 제가 워낙 바쁜 사람이다 보니 그러려니 해 주세요.]
강현이 고개를 숙이며 사의를 표하자 모인 학자들은 쓰게 웃었다. ‘좀 무례한’ 일이 아니라 ‘상당히 무례한’ 일이었다. 이 자리에 나온 학자들은 대부분 각 국가에서는 기초 물리학의 자존심들이었다.
그래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강현의 연구 속도와 시간이 NASA에 있는 동문 혹은 제자의 제자들로부터 알음 알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통상 9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까지 연구를 하고는 퇴근한다. 퇴근을 하다가 다시 연구실에 와서 데이터를 훑어본다. 또 연구하냐고 묻는 질문에 강현이 한 대답은 ‘심심해서’였다.
그나마 요즘은 여자친구가 생겨서 그러지 않았지만 제시가 연구 일정에 연구소에 틀어박히면 어김없이 또 그러는 것이다.
‘제시도 연구가 바빠서 집에서는 혼자고.. 심심해..’
그런 강현의 대답에 잭이 그를 데리고 클럽에 가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거렸다는 것은 비밀이다. 또한 잭의 성향을 알고 있는 정보부에서 미리 그에게 강현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훼손할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는 지령이 내려왔다는 것도 비밀이다.
아무튼 그런 강현이기에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강현에게 무례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상대는 자신의 재능만큼이나 시간을 충실하게 쓰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존경할 만한 연구자였다.
[다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그 통일장 이론에 관한 논문에 대해서 심도 있게 대화를 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강현의 질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강현의 공식은 논리적인 전개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더 없이 난해 했으며 논문에 적힌 유도 과정만으로는 다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13차원의 공식에서 시간과 3차원 공간을 표현한 4차원을 제외한 나머니 9개의 변수였다.
기존의 10차원을 다루는 초끈이론에서는 4차원을 제외한 6차원에 대한 설명을 자주 작게 말려있기 때문에 관찰할 수 없는 차원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강현은 9개의 차원을 겹쳐져 있지만 느낄 수 없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매우 모호했고 더 이상의 추가 설명이 없었기에 과학자들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혹시 평행 차원이나 다중 차원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누군가가 손을 들어 마이크를 받아 이에 관한 질문을 했다. 역시나 가장 궁금한 점은 가장 빨리 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어 그러니까.. 저도 정확히는 잘 몰라요.]
““““......””””
좌중의 사람들은 당황했다.
[저도 말해 놓고 좀 당황스럽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저는 그 9개의 차원이야 말로 이 우주를 구성하는 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어떤 세계관을 상상했기에 그렇게 생각을 한 건가요?”
[으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면서 설명을 듣는 게 빠르겠죠?]
강현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뒤에 있던 기획부에서 나온 직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기획부 직원은 홀 밖으로 나가 헐레벌떡 뛰어서 출장 뷔페의 책임자에게 향했다.
그러는 동안 생긴 잠시의 시간 동안 모두는 취향별로 롤케익 조각과 케이크 조각, 혹은 달달한 음료수를 디저트로 챙겼다. 이제부터의 시간은 뇌를 많이 사용하는 시간이 될 터이고 당분은 뇌의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곧 기획부 직원이 투명한 유리병을 가지고 와서 강현에게 전달했다. 유리병의 내용물은 층을 이루고 있었는데 밑에는 물이었고 위에는 식용유였다.
[제가 보는 세상을 극단적으로 축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우주가 깨끗하게 있는 것이 빅뱅전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강현은 병을 한번 힘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기름 알갱이가 물안에 생기며 천천히 부유했다.
[이것이 빅뱅 후의 세상입니다. 이 기름 알갱이의 표면이 곧 물질이라고 할 수 있죠.]
강현은 그 말을 필두로 긴 설명을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은 곧 에너지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실 아인슈타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속하는 물체는 점점 가속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빛보다 빠른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영감을 얻은 독일의 핵물리학자는 핵분열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가속하는 물체가 아니라 일반적인 물질에도 적용 가능함을 증명했다.
강현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법칙은 어디에나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E=mc^2이란 공식은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은 곧 에너지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에너지는 언제나 존재하기 위해서 매질이 필요합니다. 과거 빛을 전달하는 매질인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매질이란 의미를 확장한다면 이 공간 자체가 매질입니다. 즉 물질이 물질로 존재할 수 있는 매질이 이 공간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강현이 논문에서 설명한 ‘초시공간’은 물질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 장(場)의 발현 장소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도 의문이 남습니다. 이 에너지 장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 서는 9개의 차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시공간’에 있는 장(場) 사이의 상호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른 입술을 다시 물로 축였다.
[이 차원 중 적어도 2개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차원, 즉 그 둘만을 위한 매질 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이 물과 기름에서 기름과 같은 역할이죠.]
기름 방울은 둥둥 떠서 정말로 작은 기름 방울만 남아있었다. 그 기름 방울들은 강현이 유리병을 살짝 흔들 때마다 경계층의 파동에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였다.
[전기장과 자기장의 파동은 각기 허락된 기름층, 즉 겹쳐진 차원을 통해서 전파됩니다. 이것으로 빛의 속도가 어디에서나 동일하다는 것도 설명이 됩니다.]
빛을 구성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파동 에너지는 현재의 물질계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겹쳐진 차원에 의해서 전달된다. 따라서 발광체의 속도와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서 빛의 파장이 바뀌는 도플러 효과는 발생하지만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아직 이 겹쳐진 차원에 대한 건 증명할 수도 없고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논리도 부족하지만 말이죠.]
몇몇 과학자는 그래도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을 오자로 벌렸다.
빛의 속도는 왜 고정되어 있는 것인가? 과학자들 중에 그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많았다. 왜 그런지도 수많은 가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전기장과 자기장의 에너지가 오가는 겹쳐진 차원이란 개념은 상당히 그럴 듯 했다. 비유하자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이 어떤 진동수의 파도를 만들어 내던 어떤 속도로 움직이던 그것을 관측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파도의 속도가 동일하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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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죠?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