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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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될까?”
“뭘?”
제시는 입에 넣은 음식물을 건성으로 씹으며 말하는 강현의 질문에 반문했다. 하지만 강현은 그녀의 반문을 듣지 못했다. 혼잣말인 것이다.
“현. 먹고 생각해.”
“.....”
멍~ 했다. 강현은 밥먹다 말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식사조차 거르니 보다 못한 제시가 강제로 끌고 나와 이렇게 밥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제시는 멍한 강현의 모습에 한 숨을 쉬었다. 저 천재의 머릿속에 또 무슨 기상 천외한 발상이 들어있는 것일까?
제시는 강현이 쩝쩝 앞에 놓인 식사를 다 먹을 때까지 그가 씹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계속 주의를 주었다. 옆에서 보면 마치 정신병동의 환자에게 밥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 같았다.
근래 물리학에 푹 빠진 강현은 제시가 주의를 줄때마다 반사적으로 턱을 움직였다.
그런 강현의 모습에 제시는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좋은 남자라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남친에게서 좀 더 스마트하고 멋진 모습을 보고 싶은 제시였지만 잠깐 생각해 보고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희대의 천재에다가 이미 억만장자의 반열을 넘어선 남친이었다. 특히 석유 업계를 한 손에 쥐고 흔드는 그의 역량은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가장 남편 삼고 싶은 남자 1위에 올라섰다.
일에 열중하니까 자유롭게 내버려 둘 것이다. 게다가 돈도 많다. 젊다. 몸도 과학자치고는 훤칠하게 관리를 잘했다. 등등 그가 앙케이트에 1위를 한 이유도 많지만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권력이었다.
과학자가 무슨 권력이냐고 하지만 권력은 영향력이었다. 세계 석유 업계가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정치가들 역시 강현의 눈치를 봐야 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은 곧 힘이고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받아 엄청난 거부가 된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유력가였다.
“제대로 좀 씹어.”
“어.”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안에 있던 음식물을 씹는다는 것을 까먹은 그의 멍하니 벌어진 입가에서 음식물이 흘러나오자 제시가 닦아 주면서 다시 주의를 줬다.
“하아...”
제시는 남친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오래 있을 수록 그의 단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생각에 빠진 그는 완전히 그냥 바보였다.
하지만 이런 남친에게 영화나 TV에 아는 모델처럼 항상 멋지게 있으라고 요구하기는 망설여졌다. 일단 자신이 그 때문에 강현에게 반한 것이 아니고 또한 잠재적 경쟁자들이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 인터넷 뉴스에게 강현에 대한 기사들을 흐뭇하게 읽고 있던 와중에 ‘그의 가치는 얼마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자산은 역시나 과학의 신이 강림한 것 같은 두뇌였고 그리고 석유 업계를 주무르는 라이센스와 배터리 라이센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현금 자산 또한 열거했다. 그 밖에 그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해서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자산을 불릴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제시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이 너무 딱딱한지 말미에는 ‘색다른’ 가치를 추가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정자의 가격이었다.
만일 그가 그의 정자를 정자은행에 기부한다면 정자은행은 얼마에 그 정자를 팔 수 있을까?
대답은 1억달러였다. 1억달러에 사겠다는 수요자가 존재했다. 그것은 물론 각국의 정부였고 강현의 피를 이은 아이는 강현을 대하는 여러 전략적인 카드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외에 많은 커리어 우먼과 독신녀들이 그의 정자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설문 조사도 덧붙여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제시는 그제서야 남친의 가치가 요 얼마새에 엄청나가 뛰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마치 주식을 발목에 산 자신의 안목이 자랑스러웠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남친과의 썸씽을 원하는 미녀들이 달라붙었을 때 그는 과연 정조를 지킬 수 있을까?
제시는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어리석게 그것을 시험할 생각은 없었다. 모든 일은 확률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혈기 왕성한 남친이 싱싱한 여체에 홀라당 넘어갈 가능성은 0에 가깝기는 커녕 동전의 앞뒤 맞추기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연구실에서 마음껏 연구를 하게 해서 다른 여자를 만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고 논리적으로 따져보았을 때에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친이 더 멋있어진다? 애써 접근을 차단한 똥파리들이 왱왱거리며 들러붙지 않을까?
“현. 잘 좀 먹어.”
“어.”
그래도 제시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현재 강현의 모습에서 그 스마트하고 똑똑한 천재의 모습을 찾아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영감이 떠올라 뇌를 200% 사용하고 있는 그를 억지로 현실로 끌고오려고 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만일 강현을 계속 연구실에 처박아 두었다면 그녀는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남친의 멍청한 모습을 여전히 모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사랑하는 연인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을 고작 그런 이유로 막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을..
강현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제시가 그가 앉은 바퀴 달린 의자를 밀어 도로 연구실에 넣어주지 않았다면 계속 멍하니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열심히 해. 저녁에 보자.”
“어.”
제시는 여전히 생각에 푹 빠져있는 그를 보며 이젠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웃었다. 그리고 강현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다시 자신도 연구를 하러 연구실로 향했다. 저번에 발표했던 HJ세포로 구체적인 동물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연구에 착수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제시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 멍하니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얼굴을 좌우로 돌리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곧 볼펜과 노트를 발견한 그는 후다닥 급하게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수식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강현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그로부터 약 이주일 후.. 전세계의 물리학자들을 기겁하게 만든 논문이 발표되었다.
‘초끈 이론의 한계와 초막 이론의 개량인 초 시공간 이론. 그리고 숨어 있는 차원에 대한 고찰과 통일장 이론으로의 회귀.’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은 4가지다. 중력, 전자기력, 그리고 강력과 약력.
중력은 거시 세계에서, 전자기력은 원자 단위의 주로 관찰되는 힘이고 강력과 약력은 주로 중성자나 양성가 같은 쿼크 단위의 미시 세계에서 관찰되는 힘이다. 강력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성자와 양성자들이 결합하는 힘으로 이해할 수 있고 약력은 베타 붕괴 그러니까 중성자가 붕괴되어 양성자와 전자가 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힘이다.
그리고 이 네가지 힘들을 하나의 모델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이른바 ‘모든 것의 이론’이었다.
이 모든 것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통일장 이론은 그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양자역학과는 달리 장(場)이란 개념으로 자연계의 4가지 힘을 통합하여 표현하려던 아인슈타인의 이론이었다. 물론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현재 이 4가지 힘을 통일하기 위한 노력으로 초막 이론까지 제안되었다.
원래 그 전까지는 모든 물질이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초끈 이론이 유력한 통일 이론으로 떠올랐지만 우주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끈의 종류가 무한대가 필요하다는 답이 나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 차원 높은 11차원의 이론인 초막 이론이 제안된 것이다.
이런 현대 물리학의 난점을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한 강현의 사고는 그의 인지를 내면 깊숙히 빠져들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여자친구에게 못 볼 꼴을 보여주고 만 것이었다.
강현은 생각했다. 왜 10차원이 아니라 11차원일까?
원래 초끈 이론이 나온 것도 0차원의 입자들을 다루는 양자역학으로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1차원의 끈을 다루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10차원의 초끈 이론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모순이 생겼기 때문에 11차원의 초막 이론이 제안된 것이었다.
모순. 그 모순이란 바로 ‘무한’이다.
단위계에서 길이는 너무나 쉽게 표현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길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점이 ‘몇 개’나 필요할까?
답은 무한대다. 그러니까 ‘길이’는 점의 ‘갯 수’로 표현할 수 없으며 무한을 표현하려면 차원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강현은 여기에 매력을 느꼈다. 무한이란 모순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차원을 뛰어 넘어야한다는 것. 마치 신이 인지하는 세계를 보기 위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초끈 이론에서 초막 이론을 생각했고 이차원인 막을 다루는 초막 이론에서 3차원의 공간을 다루는 이론을 생각했으며 실제 물질이 존재하는 4차원 시공간을 다루는 이론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이론을 ‘초 시공간 이론’으로 이름 붙였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공식들을 써 내려갔다. 초막 이론이 2차원인 막을 11차원에서 다루는 것이니 그보다 2차원이 더 높은 ‘초시공간’을 다루는 이루는 이론은 13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3이라.. 꽤나 의미심장한 숫자였다.
예수가 죽기 전에 12명의 제자와 함께 13명이서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비록 13일의 금요일 등 서양에서는 불길한 숫자로 생각되나 그것은 와전 된 것이었다. 실제 미국의 처음 국기에는 별과 줄무늬 개수가 13개였다. 남북 전쟁 당시 남군의 깃발에도 별이 13개였다. 13이 불길한 숫자라면 그렇게 그려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동양의 12간지, 서양의 12성좌, 올림푸스의 12신, 헤라클레스의 12 시련 등 인간에게 허락된 숫자는 12까지 뿐이고 그 위에 13은 신의 숫자라고 일컬어 지기도 한다.
수비학에서 1은 신성을 의미하고 3은 창조를 의미한다. 모든 것의 이론인 통일 이론에 어울리는 의미가 아닌가?
“이것은! 통일장(場) 이론이다!”
논문을 읽은 물리학자들은 경악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주류로 각광받기 시작하던 양자역학을 외면했다. 그리하여 그의 이론은 더 이상 주목 받지 못했다. 그 뒤로 아인슈타인처럼 장(場)의 개념으로 통일 이론을 구상하려는 과학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 시대를 뛰어넘어 한 천재가 다시 통일장 이론에 불을 당긴 것이다.
“스티븐 박사님. 이제 그만 주무셔야죠.”
불행한 천재.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 스티븐 박사는 제자인 팀의 걱정에도 모니터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모니터에서는 빽빽한 수식들과 중간 중간 간략한 문장이 적힌 텍스트가 한 장 한 장 넘어가고 있었다.
약 24페이지의 글은 읽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븐 박사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달각거리며 다시 화면의 맨 위로 올라갔다.
“박사님?”
잭은 스티븐 박사의 건강이 걱정되어 그에게 다가가 그만 주무시라고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스티븐 박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과학자로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일까.. 아니면 자신이 올라가지 못한 산 정상을 이미 다른 누군가가 정복했다는 아쉬움의 눈물일까? 아마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아즈삭에 관한 챕터에서 국제 표준 기계어가 존재하냐는 질문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답합니다.
국제 표준 기계어는 없습니다. 혹시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됍니다.
물론 IEEE 규격이라고 국제 표준이 있지만 이것은 부동 소수점을 표기하기 위한 변수 선언이니 햇갈리시면 안됍니다.
그리고 기계어는 CPU에 따라서 그 코드가 다 다르다고 합니다. CIA에서의 사고는 그래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장 CPU를 잘 파는 인텔과 주인공표 CPU의 차이라고 할까요?
국제 표준 기계어라는 표현은 이 인텔에 대한 설명으로 과도하게 글이 전문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음을 공지하며 혹시 헷갈리신 분이 계시다면 사과드립니다.
PS-이글은 픽션이며 SF성이 짙은 현대물임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부제가 '과학의 군림자'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