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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6화 (16/241)

16화

<03-기득권>

그를 위해서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 중 테러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시설의 운영을 막는 방법이었다.

“저에게 뭘 바라세요?”

“빨리 라이센스 계약을 해주게. 배분에 관한 것을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기겠네.”

“귀찮은데..”

불퉁하니 입술을 내미는 무례한 모습에도 록팰러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상대는 능력이 있었으며 자신이 미처 관리하지 못한 조직의 내밀한 정보 역시 파악할 정도의 능력자였다. 그리고 인류에게는 축복이지만 석유 카르텔에게는 악몽인 석유 제조 기술을 20대의 젊은 나이에 완성한 괴물이었다.

“그럼 일단 제 말을 전해 주세요. 오늘로부터 30일 안에 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는다면 제가 알아서 배분하겠다고요.”

“하하하! 알겠네.”

록팰러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가 웃은 이유는 강현이 석유 카르텔을 무시하고 라이센스를 배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강현에 대한 모든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한 그와 지인들은 강현이 뼛속까지 연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은 자신의 연구과 관련없는 것은 관심이 없고 자신이 연구하는 것을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이미 한국 정부와 겪은 갈등과 그에 따른 선택의 결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강현은 젊은 사람 답지 않게 기득권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이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 사회에 대한 어떤 책임감이나 의무감 따위가 없었다. 그래서 카르텔 같은 연합과 담합의 체제에도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또한 무척이나 똑똑하고 생각을 깊게 했다. 강현이 석유 제조 기술을 개발한 이유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히트맨들을 보낸 자들에 대한 응징이 목적인 것을 짐작했을 때에는 모두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사고를 깊게 할 수 있다면 몰락을 앞둔 카르텔이 어떤 선택을 할지 파악하고 살 길을 열어줄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강현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고 기분 좋게 돌아갔다. 그리고 강현의 라이센스 컴소시엄에 참가했던 모든 이들에게 매일이 통보되었다. 30일 이후까지 모든 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임의적으로 계약을 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난데 없는 날벼락에 수 많은 이들이 강현과 담판을 짓겠다고 찾아왔지만 강현은 연구실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에 덩달아 제시 역시 연구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미안해.”

“.... 참나..”

제시는 어이가 없었다. 기껏 사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안전을 위해서라니.. 하긴 일방적인 통보와 협상의 난항을 생각했을때 강현의 연인인 제시를 납치해 협박하는 것이 라이센스 배분을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향후 20년 동안 천문학적인 가치를 산출할 수 있었고 탐욕에 물든 이들이 충분히 선택할 만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제시는 미 정부 요원들의 경호와 안전을 위한 권고로 자의에 상관없이 30일 동안 연구실에 갖혀 지내게 된 것이다.

물론 생활에 필요한 세탁이나 샤워, 식사는 언제든지 제공 받을 수가 있었다. 이미 연구실에서 몇 년간 생활한 강현이 불편하지 않도록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NASA에서 편의 시설에 돈 좀 써 놨기 때문이었다. 제시가 지냈던 기숙사에 대한 지원과 너무 비교되었지만 강현이 독자적 신형 엔진과 배터리 라이센스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매년 많은 돈을 기부했기 때문에 강현 혼자만을 위한 편의 시설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별로 눈치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는 아즈삭D의 판매로 3조원의 매출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옷은? 나 벌써 사흘째 이 옷 입고 있거든.”

“응? 내 옷 입을래? 추리닝이지만 편해.”

“싫어. 좀 작아.”

왠지 성장이 더딘 강현은 여전히 제시의 눈높이에 있었다. 그래서 그의 옷은 그녀에게 작았다. 하지만 제시는 작은 강현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특히 침대위에서.

“그럼 밖에 있는 요원 아저씨에게 가져다 달라고 하자.”

“뭐?”

잠깐.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정부 요원 아니야?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켜도 되는 거야?

제시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 강현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서는 한 요원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부탁이 있어요.”

“Sir. 말씀하십시오.”

“저희 집에 가서 제시와 제가 입을 만한 옷 좀 챙겨와 주세요.”

“..... 네?”

보안이라든가 어디에 가야 할 필요가 있으니 경호를 부탁한다는 말 정도를 예상했던 그는 어이가 없었다.

“여기 팁이요.”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100달러짜리 지폐를 자신의 상의에 쑤셔 넣는 강현의 태도였다.

그리고 강현은 그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당연히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 나...”

요원은 갈등했다. 무시할 것이냐 아니면 심부름을 할 것이냐? 전자는 무리였다. 상대는 연구비 배정을 안 해 준다고 조국을 배신하고 떠나온 괴팍한 천재였다. 무시한다면 보안망을 뚫고 다짜고짜 자택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심부름을 하자니 미국의 정보부 요원으로 쌓아온 프라이드가 꿈틀댔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어이 잭. 나 마이클인데.”

정보부 후배인 잭에게 말이다.

잭은 선배의 부탁 아닌 부탁에 인상이 찌뿌려졌다. 오늘은 주말이고 또한 비번이었기에 간만에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참이다.

하지만 정보계통에서 인간관계는 무척이나 중요했으며 특히 선배인 마이클은 라인을 잘 탔다고 소문난 인간이었다.

할 수 없이 잭은 주말에도 직장에 나와야 했고 강현을 찾아가야 했다.

강현의 연구실에 가면서 잭은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표정을 풀었다.

‘마인드 컨트롤. 마인드 컨트롤.’

이제부터 그는 선배의 부탁아닌 부탁에 억지로 끌려나온 고달픈 직장인이 아니라 직장 동료를 걱정해 주말에도 찾아오는 신뢰할 만한 친구가 되어야 했다.

“Hey! Boy! 잘 지내고 있나?”

“어? 잭.”

잭을 본 강현은 의외라는 듯이 그를 보았다. 강현도 오늘이 주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걱정되서 말이지. 요즘 말이 많잖아.”

강현의 일방적인 라이센스 계약 시일은 언론에도 대서 특필 되었다. 어떤 신문에서는 강현이 말한 ‘Dead Line’이 진정한 사전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면서 만일 라이센스 계약이 성사되었을 시에 몰락할 이들의 리스트를 뽑기도 했다.

“아아.”

하지만 강현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이고는 다시 책을 보면서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잭은 그런 강현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괴짜. 그는 지금 자신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 의미가 정작 본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야 상관없겠지만 제시는 어때? 벌써 며칠째 집에 못 들어 갔다며? 옷도 못 갈아 입었을 텐데.. 너 그거 애인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일인 건 알고 있니?”

강현의 몸이 멈췄다. 그리고 고개가 획 돌아가며 잭을 바라보았다.

“그런거야?”

“그렇고 말고.”

“그럼 빨리 가져와야 할텐데...”

강현이 인상을 썼다. 잭은 강현이 말한 문장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하고 말을 이었다.

“뭘?”

“내가 앞에 있는 요원에게 부탁 좀 했거든. 옷 좀 가져와 달라고.”

“그런데 가져와 줄까? 그 사람은 공무원이야. 함부로 자신의 자리를 이탈할 수 없다고.”

“아. 그렇지. 그럼 팁은 괜히 줬네?”

“팁?”

“응. 100달러.”

Oh! My God!

잭은 중지로 자신의 미간을 눌렀다. 세상에 FBI도 긴장하게 만드는 미 정보부 요원을 한 낯 벨보이로 취급하다니. 어째 자신을 부를 일도 아닌데 마이클 선배가 자신을 불렀다 싶었다. 그냥 마이클 선배는 누군가에게 상처 난 자존심을 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 비번인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만큼 적절한 방법도 없었고 말이다.

“그 사람에게 집 열쇠는 줬어?”

“응? 정보부 요원이면 열쇠 없이도 들어갈 수 있지 않아?”

아이고 두야.

“아무리 정보부 요원이라도 공적인 임무에 무단 침입을 할 수는 없잖아.”

“아아. 그렇구나.”

천재 맞아?

잭은 가끔 강현이 바보로 생각될 때가 있었다. 특히 이런 상식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정보부 요원이라도 열쇠없이 수색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타인의 집에 침입한다? 비공식 작전으로 들키지 않을 상태라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뻔히 공적으로 다 들어낸 상태에서 그런 짓을 하면 정보부를 탐탁치 않게 보는 이들에게 공격의 빌미가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강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현에게 그런 법적 절차와 체면치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강현이 마이클이었다면 협상을 통해 100달러의 팁을 더 받고 기꺼이 몰래 갔다 왔을 것이다. 보안이 걱정된다면 놀고 있는 다른 정보부 요원들을 이용했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현의 사고 방식은 그의 뛰어난 사고 방식이 주변의 변수들을 고려했기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히트맨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석유 시장을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 자체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강현의 내면이 드러난 것이었다.

물론 개발할 때에는 신나게 연구했지만 개발하고 나니 실제 파급력이 무척이나 커서 컨소시엄이란 형태로 처리를 했지만 말이다.

강현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고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기존 질서를 부수는 것보다 약간의 위협으로 자신에게 호의적이게 만드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결론은 얻었기에 석유시장의 질서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게 열쇠를 줘. 내가 다녀 올게.”

“그래도 돼?”

“동료잖아.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잭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강현에게 집 열쇠를 받았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에 케이스 백을 끌고 돌아왔다.

“자! 이 정도면 한달 정도는 충분할 거야.”

“어? 잭.”

“안녕 제시.”

잭이 도착했을 때에는 마침 강현과 제시가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연구실에 딸린 숙소로 식사가 담긴 트레이를 끌고 와준 요원들 덕분에 둘은 식당에 가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둘은 꽤나 안면이 있었는데 다 강현을 중심으로 만난 사이였다.

“그게 뭐야?”

제시의 질문에 잭이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속옷.”

“... 뭐?”

“걱정마. 그 야시시한 빨간 속옷도 챙겨넣었으니까. 역시 감금 생활에서는 요거 만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없지.”

그러면서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 손가락을 집어 넣고 꿈틀거렸다.

“잭! 너!”

잭은 제시에게 한 소리 듣기 전에 얼른 밖으로 나와 자신의 부서에 얼굴을 한번 비쳤다가 돌아왔다. 주말에 불려 나온 짜증은 어느 정도 풀려있었다. 그렇다. 그는 마이클을 욕할 자격이 없었다.

= = = = =

한 달은 훌쩍 지나갔다. 그러나 역시 협상은 타결되지 않았다.

밤을 세워가며 협상을 했지만 석유에 얽힌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과 감정의 골은 깊었고 탐욕은 드높았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통보 드린 대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알아서 배분을 하겠습니다. 불만이 있으시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일반적 통보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도 강현의 말에 불만 섞은 투정을 하지 않았다. 이 괴팍한 천재가 그에 심기가 불편해서 라이센스 배분에 불이익을 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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