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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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마.”
“응.”
강현은 여자친구 제시의 손을 꽈악 잡았다. 덕분에 긴장했던 그녀의 힘이 약간은 풀렸다.
여기는 국제 분자 생물학 세미나가 열리는 홀이었다. 그녀도 오늘 발표에 참여한다.
한 명 두 명씩 앞선 순서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발표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제 제시의 차례였다.
“그럼 다음 순서는 제시 빅토리아의 ‘인공 합성 세포의 개발’에 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그러자 회장 안이 잠시 술렁거렸다. 사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자들이 가장 관심이 있던 연구가 바로 그녀의 것이었던 것이다.
공동저자로 세기의 천재 강현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기에 인공 생명이란 다소 진부한 연구 주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한 자리를 얻기 위해서 동분서주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제시가 단상에 나오자 술렁임이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마이크에 입을 대고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제시 빅토리아입니다. 오늘 발표할 내용은..]
그녀의 논문은 익히 선행 논문으로 모두들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수 많은 단백질을 합성해 내는 각 DNA 단위별로 플라스미드에 삽입해 인공적인 세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논문의 결과는 그것이 성공했는지 안 했는지를 공표하게 될 것이다.
[…. 그러므로 이 HJ 세포는 가장 기초적인 물질 대사를 실시하여 스스로 증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배양기 속의 ATP농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증식 속도가 줄어들며 활동이 완전 정지합니다.]
ATP는 미토콘드리아에서 포도당과 산소를 이용해 생산하는 세포 활동의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HJ세포는 미토콘드리아가 없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ATP를 생산할 수 없다. 이는 연구 관찰에 좋은 조건이었는데 증식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실제로 집어 넣은 플라스미드가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차후 어떤 요소를 추가할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매우 유용한 요소였다.
[…. 그리하여 차후 미토콘드리아를 추가해 ATP가 풍부한 환경이 아니라 포도당과 산소가 있는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는지가 남은 연구 목표가 되겠습니다.]
발표가 끝났다. 그리고 박수소리가 홀을 울렸다. 과학자들이 그녀의 연구가 가진 가치를 인정하고 감탄한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마주친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생물의 어떤 반응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은 단순하지만 그 전개 과정이 언제나 미지수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생명체 내의 반응은 DNA란 정보체계의 존재로 인해서 작은 요소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보인다. LSD, 호르몬 따위의 약간의 화학물질은 생명체 내에서 과학자들이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수준으로 이 카오스와 같은 세계에서 생명 활동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모든 요소들이 맞물려 피드백 작용을 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복잡한 수열을 보고 그 수열의 일반항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제시의 연구는 이 생명 활동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툴을 제시함으로서 차후 모든 생명의 유전자에서 어떤 DNA패턴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시의 HJ세포는 기초 과학으로 차후 분자 생물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 틀림없었다.
박수소리가 그치고 Q&A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닥터 강이 이 연구에서 어떤 부분을 맡았습니까?”
이미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기에 제시는 침착하게 답했다. 사실 자신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아름다웠고 그 때문에 아랫도리를 놀려 강현에게 연구 논문을 하나 받지 않았냐는 악소문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확실하게 그 악소문을 종결시킬 기회였다.
“닥터 강은...”
사실 이 논문에서 닥터 강이 맡은 분야는 사실 단 한 가지다. 바로 단백질 구조 분석. 많은 실험과 시간이 필요한 이 것을 그가 맡아주지 않았다면 오늘 논문의 발표는 몇 년은 미뤄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부분, 각종 단백질의 기능 유추와 HJ세포의 핵심적인 세포 활동에 필요한 최소 단위의 DNA 유추는 제시가 맡았다. 그렇기에 이 논문은 제시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 단백질 분석을 죄다?!”
“저도 언제나 닥터 강의 능력에 언제나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이 논문도 몇 년은 더 걸렸겠죠.”
감탄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 체 다른 사람이 질문했다. 그의 이름은 프라니우스 융, 닥터 융이라고 불리는 세포 노화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다.
“DNA가 아니라 순수 플라스미드 만으로 세포를 만들어낸 그 발상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는 일단 칭찬으로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그 세포는 텔로미어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불로불사가 되지 않을까요?”
“그, 글쎄요.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텔로미어는 생물이 노화해 죽는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바로미터다. DNA의 끝에 있는 이 유전물질은 세포 분열시 DNA가 복제 될 때마다 확률적으로 손실된다. 그리고 점점 짧아서 마침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플라스미드는 그런 것이 없다. 기본적으로 원형의 닫힌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리 화학적인 파괴가 없다면 무한히 증식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닥터 융이 짚었다.
“닥터 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무한히 살 수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군요. 하지만 불로불사를 목표로 한다면 암세포의 텔로미어 보충에 관한 메커니즘 연구가 더 빠를 것 같아요. 인체의 유전자를 닫힌 고리 형태로 만들기에는 현존하는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하고요.”
세균도 조건만 맞으면 무한히 증식할 수 있다. 그리고 암세포 역시 텔로미어의 손실 없이 무한히 증식할 수 있다. 그러니 불로불사를 연구하려면 이 둘의 불로불사를 연구하는 것이 더 빠를 거라는 것이 강현이 말하는 의미였다. 괜히 생물의 정상적인 나선형 DNA를 닫힌 고리 형태로 만드는 건 뻘 짓이라는 의미였다.
“허허! 그도 그렇군요.”
그 뒤에도 몇 개의 질문이 이어졌으나 제시는 침착하게 대답을 했고 다음 발표자가 발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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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힘들었어.”
제시가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제시가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피곤한 어투로 말했다.
“수고했어.”
“현도.”
“내가 뭘. 난 그냥 따라왔을 뿐인데.”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편안하게 돌아가네.”
“별로 쓸데도 없는 돈, 이런 때라도 써야지.”
둘의 비행기 좌석은 일등적이었다. 물론 돈은 강현이 냈다. 제시는 자신의 좌석은 자신이 사겠다고 했지만 이미 강현이 둘다 사버린 상태였다.
나중에 제시가 표값을 주겠다고 하길래 강현은 연구 발표 기념 선물이라면서 돈을 받는 것을 거절했다.
“현. 그냥 잘거야?”
“아니. 씻고 자야지.”
둘은 짐도 내팽겨두고 각각 1층과 2층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는 가운만 입고 침대위로 뛰어들었다. 침대의 스프링이 신축하는 소리고 침대 프레임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젊음은 수 시간에 걸친 비행에도 지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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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평온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변신하고 있었다. 강현의 석유 제조에 관한 라이센스는 여전히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서 세계의 주목과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현대 문명의 온상인 석유. 그리고 석유 없었다면 발전할 수 없었던 대량 생산 체제의 자본주의.
석유를 대체할 무한한 에너지원과 원료의 등장. 그리고 그 생산 권리의 라이센스와 얽히고 얽힌 수 많은 이해 관계들이 연일 들춰지고 있었다.
종교가 얽힌 중동, 거기에 민족간 갈등 문제와 독재가 얽힌 제3국가들은 물론이고 유럽 연합내에서도 이런 저런 말이 많았다.
특히 주로 석유 수입 국가들의 불만이 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아시아의 화약고를 둘러싼 러시아, 중국, 일본의 불만은 대단했다.
러시아는 비록 천연가스와 석유를 수출하는 국가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화석 연료의 제한성과 올라가는 연료 비용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국가들이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갖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의 화석연료가 수출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당장에 러시아는 내려가는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으로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었다.
중국은 경우가 좀 달랐다.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원자재의 블랙홀 국가로 거듭난 중국은 국제 유가 급등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그래서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은 반겼다.
그러나 그로 인한 라이센스 배분에는 심한 불만을 가졌다. 만일 지금 현재의 석유 생산량에 대한 비율로 라이센스를 배분한다면 중국은 여전히 제조된 석유일지라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제조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에는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력과 지열 발전으로 그나마 중국보다는 석유를 덜 요구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짓는 것은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이 국가들이 국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국가들이라는 점. 또한 세계 경제에 막대한 이바지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일본의 엔화는 금과 같은 안전자산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은 막대한 달러를 비축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석유 제조 라이센스 배분에서 이 국가들에게 타격이 온다면 세계 경제가 위축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그래서 여전히 라이센스 배분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기술이 실현되지 않는 것이 이득인 원유 산출국들은 이런 상황을 내심 반기며 그냥 시간이 이대로 현상 유지가 되기를 바랬지만 20년후 특허권 만료에 대한 대비책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분명 수 많은 국가들이 자국에 석유 생산 공장을 설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일한 이유 때문에 석유 카르텔들은 애가 탔다. 이 라이센스를 이용해 에너지 분야에 관한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계획이 계속 난항을 겪는 것이었다. 아니 장기적으로 보면 원유 생산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위협을 맞이한 것이다. 20년 후 특허의 만료기간이 되면 그들의 기반은 완전히 무너진다.
“닥터 강. 이대로라면 손해가 막심하네.”
그래서 강현과 안면이 있었던 록팰러가 총대를 맸다. 이 지지부진한 협상을 서둘러 종결해야 했다.
“그래서요?”
“이대로라면 전쟁이라도 해야 할 판이야.”
그는 심각한 얼굴도 말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혹자는 우연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겠지만 얕은 인간의 인지와 빈약한 사고로 모든 것을 알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로 전쟁은 이득 때문에 일어난다. 아무도 이득 없는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영광된 제국의 건설을 꿈꿨기에 전쟁을 일으켰고 거기에서 전혀 이득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영국은 독일에 대항해 참전을 결정했다.
석유 카르텔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뻔히 보이는 붕괴의 시나리오에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20년 후에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이권을 가진 국가 이외의 국가에 석유 제조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