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예를 들어 각 면을 통해 전달하는 정보가 0과 1이라고 하자. 그러나 각 면에 붙어있는 다른 뉴로칩들은 동기화를 통해 중앙의 뉴로칩이 각 칩에 전달한 데이터에 0과 1이 각각 몇개인지 확인한다. 즉 6개의 면과 그 면에 붙어 있는 뉴로칩의 동기화를 통해 단순한 0과 1의 디지털 데이터가 2의 6승, 64진수의 결과로 출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다시 각 6개의 뉴로칩이 연산해 다시 다음 6개의 칩으로 전달한다. 연산에 참여하는 뉴로칩의 개수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64진수라는 출력 단위, 거기에 연산 과정에 참여하는 뉴로칩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어 슈퍼 컴퓨터급의 연산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저기 이해가 잘 안됩니다만..”
“어셈블리어는 알죠?”
사용자 지향적 언어로 컴퓨터의 코딩을 쉽게 해주는 컴퓨터 언어다.
“네.”
“그래서 컴파일러가 필수라는 것도 알죠?”
컴파일러는 어셈블리어로 된 프로그램을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기계어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습니다.”
“그럼 기계어를 다시 어셈블리어로 바꾸는 컴파일링이 가능할까요?”
“네 1:1 대응이니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2진수 언어를 64진수 언어로 바꾸는 건 가능한가요?”
“네, 수학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즈삭은 못해요.”
“네?”
“아! 표현이 잘못됐네요. 기존의 기계어를 이해하지 못해요. 컴파일링을 했을 때 기계어가 기존의 컴퓨터와 완전히 양식이 다르니까요. 이를테면 영국에서만 살던 사람이 난생 처음 중국어를 들었을 때라고나 할까요?”
이레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아즈삭에 사용된 기계어를 국제 표준을 무시하고 만들었단 말입니까?”
“네. 원래는 개인 연구 보조용으로 사용하려고 만들던 건데 이렇게 팔 줄은 몰랐죠. 그래서 생긴 문제에요.”
“그럼.. 왜 직원들에게는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말을 하신 건지..”
“아즈삭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래밍을 한번이라도 기계어로 작성해 봤다면 금방 알아차릴 문제였으니까 그렇죠.”
이레이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의 원인에 이마를 짚었다. 강현은 그의 속이 지금 어떤지도 모르고 ‘이래서 폰 노이만이 어셈블리어를 만드는 제자들에게 은혜로운 기계를 가지고 딴짓한다고 호통을 쳤나보구나.’라고 새삼 폰 노이만의 일화에 감탄하는 혼잣말을 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답답해진 막스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문제는 언제 쯤 해결될 것 같습니까?”
“음... 아즈삭에 사용된 기계어를 국제 표준으로 만들려면 뉴로칩의 설계까지 다 바꾸어야 하니까 무리구요. 그냥 기계어 변환용 프로그램을 하나 깔면 되겠네요.”
“그 프로그램은 언제..”
“몰라요.”
“네?”
“전 손 땔래요. 뭐, 흥미로운 오류인줄 알았는데 그냥 헤프닝에 불과했네요. 개발이야 다른 직원들이 알아서 하겠죠.”
헤프닝? 국가 안보에 밀접하게 직결된 문제가 고작 헤프닝?
막스가 붉어진 얼굴로 돌아서 유유히 나가버리는 강현의 등을 바라보았다.
당장 잡아서 가두고 통조림을 시켜 프로그램을 짜라고 강요하고 싶었지만 천재 강현이 고작 예산 장난질에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왔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 손쓰기가 망설여졌다.
거기다가 석유 제조 기술의 라이센스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로열티에 절세 노력 따위는 일절하지 않고 성실하게 막대한 세금을 내는 모범시민이다. 그러니 CIA국장도 아니고 정보부의 부장에 불과한 자신이 어설프게 손을 댈 존재가 아니었다.
막스는 한숨을 쉬고 이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럼,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으니 빠른 해결을 부탁드립니다.”
“네, 물론이죠.”
이레이는 기꺼이 그러기로 했다. 일단 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덕분에 아즈삭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를 미리 발견할 수 있지 않았나?
강현과 NASA에 이레이는 다시 NASA의 컴퓨터 개발부를 찾아와 부장 알론을 닦달했다.
“아니! 그게 국제 표준을 따른 게 아니었어?!”
“맙소사!”
“Shit!”
“F○cking God!”
다시 컴퓨터 개발부의 직원들은 아즈삭에 사용된 기계어를 국제 표준 기계어로 서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짤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방대한 아즈삭의 기계어를 읽는 노가다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아즈삭은 네트워크 컴퓨팅 방식의 인공지능형 논리연산자를 가지고 있었고 그 만큼 기계어의 종류는 일반 컴퓨터의 몇 배에 달했다.(지못미)그들은 하기 싫었지만 이대로는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고 컴퓨터 개발부에 줘야 할 보너스도 물 건너 갈 것이라는 말에 울며 겨자먹기로 날밤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헌신 덕분에 CIA보다 뒤늦게 아즈삭D의 해킹 능력을 실험 하려는 구입자들에게는 적절한 타이밍에 기계어 표준화 해석 프로그램이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거 성능이 너무 좋잖아.”
막스가 해킹 시스템의 성능을 테스트 해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보안 프로그램도 아즈삭에 의해서 시뮬레이션 되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동 방식이 출력된다. 그러면 해커는 그 구동 방식을 보고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할 수 있고 이는 슈퍼 컴퓨터 급 연산을 할 수 있는 아즈삭의 보조를 받아 순식간에 뚫을 수 있다.
만일 이런 것이 적성국에 들어간다면 일반 컴퓨터를 사용하는 국가 시설은 완전히 무방비로 노출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막스는 긴급히 이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 보고서에 의해서 아즈삭을 전략 물자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미국의 움직임에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즈삭D로 여러 가능성을 발견한 구매자들이었다. 물론 그 구매자에는 여러 국가도 있었다.
그들은 확신했다. 아즈삭으로 인해서 해커들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강현이 짠 소스 확인 및 시뮬레이션 코드는 어떤 해커의 침입도 막아냈다. Ddos 공격같은 대량의 트래픽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취약점이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도 시스템의 다운이나 붕괴는 일으키지 않아 주요 권한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물론 해커와 같은 판단 능력은 떨어졌기에 다른 컴퓨터를 해킹하는 능력 역시 떨어졌지만 이는 해킹 프로그램의 개발이 상황이 아직 그렇게 무르익지 않아 제대로 된 결과물이 없기 때문이었고 이도 해커가 보조 한다면 당장 해결되는 문제였다.
즉, 인터넷 시대에 보안을 위해서 혹은 정보전을 위해서 아즈삭은 필수품이 된 것이다. 그런 아즈삭을 미국이 독점한다? 미국이 자국의 은행 전산망같은 기간망을 어떻게 할 줄 알고? 미국의 우방으로서도 거부할 만한 일이었다.
결국 미국은 아즈삭을 전략물자로 지정하지는 못했다.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에 군뿐만 아니라 기업과 은행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의 완벽한 보안 능력을 갖춘 아즈삭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재! 해커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다!]
컴퓨터 잡지는 물론 주요 언론사에서도 강현의 아즈삭을 대서특필했다. 그것은 그만큼 아즈삭이 뛰어나면서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작품인 탓도 있었다.
각종 인터넷 결제와 카드 결제 등 자본의 흐름이 전자 화폐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자 화폐란 해킹의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때문에 안전한 전자화폐를 위해서 은행과 증권회사들이 보안 시스템에 들이는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여기에 거의 완벽한 인공지능형, 그것도 수상해 보이는 프로그램을 따로 시뮬레이션을 해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아내는 형태의 보안 프로그램은 큰 비용을 지불해도 아깝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강현의 아즈삭을 반기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도한 정보 보호는 정보의 불균형을 형성한다! 그 부작용과 패악은 어찌할 것인가?]
세계적인 해킹 집단 어나니머스는 정보화 시대에서는 정보에 대한 공평한 접근성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시대의 정당한 흐름이라며 그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들의 행보는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막 미국 정부에서 사들인 서버용 아즈삭D에 대한 해킹을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과연 수많은 해커들과 최신예 보안 컴퓨터의 대결은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걱정 안돼?”
강현을 밀착 감시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잭은 언제나 그렇듯이 점심시간에 강현을 찾아 왔다. 오늘은 천재의 여친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실험에 여념이 없나 보다.
그는 요즘 이슈가 된 해커들과 아즈삭의 대결에 관해서 강현에게 물었다.
“뭐가?”
“만약 해킹 당하면 엄청난 위약금을 내야 할텐데..”
“NASA가 내지 내가 내나?”
“... 그건 그렇군. 하지만 제작자로서 기분이 나쁠 것 같지는 않아?”
“기분이 나쁘긴. 오히려 보완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기분이 좋지.”
“그, 그것도 그렇군.”
역시 천재의 사고방식은 뭔가 다르다. 아니 명예에 초탈한 강현이기에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아무튼 과연 뚫릴까?”
“글쎄. 그들이 아즈삭의 시스템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지 않고 기존의 해킹 방식을 답습하려고 한다면 절대로 불가능할거야.”
“그래?”
잭의 얼굴에는 다행이라는 표정이 지어졌다. 사실 그가 이런 것을 물어본 이유는 상부에서 천재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가 다행이란 감정을 느낀 것도 국가에 충성하는 잭 개인적으로도 국가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아즈삭D의 성능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아즈삭을 해킹할 방법은 없는 거야?”
잭의 질문에 강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가능할까?
“아즈삭D는 가능. 그러나 아즈삭은 불가능해.”
“너도?”
잭의 표정이 아연해 졌다.
“아즈삭은 아즈삭D와 다르게 완전히 인공지능화 되어있어. 아즈삭의 OS는 이제 전자 세계에서 사는 생물이라고나 할까?”
강현이 꿈꾸던 디지털 세상의 소프트웨어, 즉 다른 프로그램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소프트 웨어가 실현된 것이다.
“나의 정신이 디지털화 되어서 직접 아즈삭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아즈삭을 해킹하는 건 불가능해.”
“대, 대단하군.”
천재가 만든 자신도 해킹이 불가능한 컴퓨터 시스템이라!
“그럼 아즈삭D는 어떻게 해킹할 수 있어?”
“음.. 당장 떠오르는 건 두가지 뿐이야. 하나는 프렉탈 이론과 카오스 이론을 적용한 악성코드로 아즈삭D의 시뮬레이션 연산 섹터를 계속 확장시켜버리는 것. 그러면 OS구동을 위한 최소한의 구역을 제외하고는 계속 그 악성 코드의 연산만 한다고 시스템이 마비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뉴로칩에 계속 루프 연산을 반복시키켜 결과값을 출력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야. 전자가 과도한 과제량으로 학생을 멘붕시키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뇌에 악성종양을 심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해결할 수 있어?”
“OS만 조금 손 보면 얼마든지.”
즉, 버전만 업그레이드 하면 현존하는 완벽한 보안 시스템이 완성된다는 의미였다.
“언제 손 볼 거야?”
“내가 왜?”
강현이 이상한 걸 묻는다는 어조로 반문하니 잭은 당황하고 말았다.
“저, 저기. 현? 자신이 만든 아즈삭D가 해킹 당해도 좋아?”
“내가 만든건 아즈삭 뿐인걸. 아즈삭D는 개발부에서 만든거고.”
“.......”
잭은 언제나 그렇듯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아즈삭D를 판매하는 성과를 냈던 기획부로 들어가 또다시 OS를 손 보기 위해서 개발부 직원들이 갈려나갔다는 후문이 있었다.
공밀레. 공밀레.